------------------------------------------------------------------------------------ 남장소설ㄲt페boy (http://cafe.daum.net/boyhamr) 제목 : 남장† 위험한 도발, 미치도록 차가운 그 녀석의 키스에 길들여지다 작가명 : H. 체리비。 메일 : moon-sters@daum.net">moon-sters@daum.net 연재장소 : 남장소설카페 총 편수 : 60편 장르 : 남장소설 ------------------------------------------------------------------------------------ - 위험한 도발, 미치도록 차가운 그 녀석의 키스에 길들여지다 프롤로그. 어둠이 짙게 깔린 골목길을 빠져나오던 미노는 밖에서 보이는 광경에 몸을 움츠렸다. 열 댓명은 되어보이는 남자들과 싸우고 있는 한 남자. 남자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으나, 달빛에 반사된 귀걸이가 반짝였다. 수적으로 분명히 불리할텐데도, 남자는 대단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잘 싸우고 있었다. 미노가 그 광경을 보며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을 때, 탕- 하는 소리가 들렸다. 총성. 세상에 어떤 미친놈이 불법무기소지가 금지된 한국에서 총을 쏜단 말인가. 소음기도 착용하지 않고 인적이 드문 곳에서 거침없이 상대방을 향해 총을 쏘다니… "하느님, 부디 혼자 싸우던 남자가 다치지 않게 해주세요!" "…… 덕분에 죽진 않았어." 뒤에서 들린 목소리에 미노의 움직임이 멈췄다. 3… 2… 1… "에… 읍!" 소리를 지르려던 미노의 입을 막은 남자는 미노를 벽과 자신의 팔 사이에 가두었다. 한 손으로는 미노의 입을 막고, 한 팔로는 벽을 짚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는 남자. 달을 가리고 있던 구름이 걷혔고, 시린 달빛이 남자를 비추었다. "……!!" 차가운 눈매, 귀에서 반짝이는 귀걸이… "소리지르면 여기서 널 범하겠어. 무슨 소린지 알지?"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미노를 보던 남자는 미노의 입을 막고 있던 손을 뗐다. "착하네…" 달빛을 닮은 눈동자. 시릴듯이 파란 빛을 담은 남자의 눈동자에 미노는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 누, 누구… ?" 미노의 질문에 남자는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소이현." 피식- 하고 웃음을 흘린 이현은 미노를 가두고 있던 손을 거두고는 맞은 편 벽에 기대었다. 미노에게로 몸을 숙인 이현이 밖을 보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끈질긴 놈들, 설마 총까지 지니고 있을 줄은 몰랐는데… 칫." 미노의 입술에 느껴지는 이현의 숨결에 미노는 최대한 멀리 떨어지려 애썼다. 하지만 뒤는 벽이라 밀어내는 것은 불가능. 끙끙거리는 미노를 힐끔- 하고 본 이현은 낮게 웃음지었다. "왜 그래?" "너, 너무 가까워서…" 피식- 웃고 있던 이현이 양 팔 사이에 미노를 가두었다. 이현의 행동에 흠칫- 하며 그대로 멈춘 미노. "하늘에 빌었어? 내가 다치지 않게 해달라고?" 끄덕끄덕. "왜?" "다, 다치는 거 보고싶진 않으니까…" "다치는 거 싫어?" 끄덕끄덕. 대체 왜 이렇게 자꾸 다가오는 거냐구. 나 지금 남자거든요? 아니, 것보다 나 지금 위험한 사람한테 걸린 거 아냐? "기도까지 해줬으니, 선물을 줘야겠는데…" "아니, 선물을 바라고 한 건 아니니까… 그러니까, 그게…" 피식- "날 구해준 보답이야." "… 에?" 이현의 입술이 미노의 살짝 벌어진 입술을 덮었다. 이현이 거칠게 미노의 입술을 파고들었고, 미노는 그대로 얼어붙어버렸다. "내 선물, 잊지 마." 이현은 멍해져버린 미노의 입술을 자신의 입술로 살짝 누르고는 골목을 유유히 벗어났다. 소이현… 방금 나한테 무슨 짓을… 분명 입술과 입술이 맞닿았으니까… "… 말도 안 돼! 첫키스란 말이야!!" 절규하던 미노는 서서히 손을 올려 입술로 가져갔다. 바다향기 같았던 키스. "…… 소이현…" 마린고등학교. 8시 40분. 뒷 문을 박차고 들어온 미노. 아직 담임은 오지 않은 듯 웅성거리는 교실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얕은 한숨을 내쉬며 가방을 내려놓은 미노가 자리에 앉았고, 그와 거의 동시에 앞 문이 열리고 담임이 들어왔다. "전학생이 있단다, 들어오너라." 긴 다리를 뻗으며 교실로 등장한 남학생. 햇빛에 비치는 머리칼은 보라색으로 보인다. 차갑게 보이는 눈매지만 오똑한 콧날과 날렵하게 뻗은 턱선이 미소년이라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다. 흑진주처럼 빛나는 눈동자, 흰색의 피부. "소이현이다. 잘 부탁한다." 꿈이겠지? 그래, 꿈일거야. 아직 잠이 덜 깨도 한참을 덜 깼어. 하핫, 바보같은 도미노. . . . . . 꿈이 아니잖아! 미노는 앞에 서 있는 이현의 모습에 눈을 깜빡였다. 이현의 시선은 이미 미노에게 머물러 있는 상태. "이현아? 자리는 어디로 할래?" 싱긋- "저 녀석 옆이요." 꽃미소를 날린 이현은 미노의 옆 자리를 가리켰다. 왜, 왜 하필 저 악마같은 녀석이랑 짝이… "잘 부탁 해." 헙! 속으로 중얼대던 미노는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숨을 들이켰다. 어느 틈에 다가온 건지 자신의 옆에 앉아있는 이현. 담임이 나가자 이현의 앞에 몰려든 여자애들. "이현아, 넌 어떤 여자애를 좋아해?" "좋아하는 스타일 있니?" "어느 고등학교에서 왔어?" 질문을 하는 아이들을 본체만체 하는 이현. 이현의 시선은 오직 미노를 향해 있다. "애, 애들이 묻고 있잖아, 대답하지 않고 뭐해?" "아, 대답? 알았어." 싱긋- 하고 웃은 이현이 아이들을 향해 질문을 하라며 바라보았고, 신난다며 궁금한 것들을 질문해대는 아이들. 처음엔 밝기만 했던 아이들의 표정이 질문이 많아지면 질수록 난처하다는 듯이 변해갔다. 그도 그럴게, 이현은 모든 질문들을 아니, 또는 응. 으로만 대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자친구 있겠지?" 한 아이의 물음에 이현은 싱긋- 하고 웃었다. 미노를 보는 이현의 시선에 미노는 움찔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밖으로 나가려는 미노를 붙잡은 이현. "있어. 여기." "뭐? 설마, 너희 둘 사귀니?" "도미노! 너… 너… 올바른 이성관을 가진 게 아니었어?" "이건 말도 안 돼!" 아이들의 말에 미노는 급히 이현의 팔을 뿌리쳤다. "난 올바른 이성관을 가지고 있어! 분명히! 확실히! 그러니까 이상한 상상 그만해!" 미노의 말에 다행이라는 듯 한숨을 내쉬는 아이들. 이현은 그런 아이들을 향해 무서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얘 내꺼니까, 건들면 다 죽을 줄 알아." "소이현! 너 무슨 소릴 하는거야! 내가 왜 네꺼야!?" 피식- 이현이 미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여자니까, 내꺼 할 수 있잖아?" 미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싱긋- 하고 웃은 이현이 미노의 얼굴을 쳐다본다.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듯 빛나는 이현의 눈동자. "네 입술이 탐나." 뭐라고 반박할 틈도 없이 이현이 미노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겹쳤다. 버둥거리는 미노의 팔을 한 손으로 잡은 이현은 미노의 입술, 목을 거쳐 쇄골까지 내려왔다. 멋지다며 꺅꺅대는 여자애들을 보던 이현은 싱긋- 하고 웃었다. "우리 이런 사이거든. 그러니까, 너희들 얘 건드리지 마." 01. "소이현, 넌 악마보다도 더 나쁜 놈이야!" 이현에게 끌려오다시피 옥상으로 온 미노는 여유로운 미소를 띄고 있는 이현을 향해 소리쳤다. 무슨 말을 해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는 이현의 모습에 미노는 몸에 힘이 쫘악- 하고 빠지는 것을 느꼈다. 하아- 어째서 저렇게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있을 수 있는 거냐구! "도미노, 대체 뭐가 문제냐?" "당연히 문제지! 난 남자야! 너도 남자잖아! 넌 남자끼리 키, 키, 키스하는 거 봐, 봤냐?!" 말을 더듬는 미노의 행동에 이현은 시선을 미노에게로 향했다. 아무런 감정도 담겨있지 않지만, 모든 것을 꿰뚫어보는 듯한 눈동자. 미노를 숨막히게 했던 이현의 눈동자가 미노를 응시했다. "뭐, 뭘 봐!" "너… 키스 처음이지?" "아, 아냐! 처, 처, 처음은 무슨!" "흐음… 처음 아니란 말이지? 근데 말이야…" "그, 근데 뭐!" "… 말 제대로 못하냐? 뭘 그리 더듬어?" 뻐끔뻐끔. 멋대로 입술을 빼앗은 것도 모자라 미노를 바보 취급하는 이현. 그런 이현을 상대하는 데 지쳐버린 미노가 한숨을 내쉬며 벽에 기대었고, 난간에 팔을 걸치고 있던 이현이 미노에게로 다가왔다. 이현이 움직이자 본능적으로 움찔거리는 미노. "이런 곳에서는 안 덮쳐." 더, 덮치다니! 이런 변태녀석을 봤나! "왜, 아쉬워?" 아쉽기는 뭐가 아쉽냐고! 네 녀석의 눈에는 내 표정이 아쉬운 걸로 보이더냐… ! 아무런 말도 없이 미노를 응시하는 이현. 이현이 살짝 움직이자 미노는 급히 손을 올려 입을 막았다. "막아도… 소용 없는데…" "뭐…?" "소용없다고. 나한테 그런 거 안 통해." 통하든 안 통하든! 그건 내가 결정해! 그러니까 얼른 뒤로 물러나란 말이야! 어째서 그런 말을 하면서 점점 더 다가오는 거냐구! "소이현! 너 거기서 한 발만 더 와 봐! 진짜 가만 안 둘거야!" "싱긋- 그거 협박이냐?" 으아- 힘 빠진다. 거짓이라도 겁먹은 척이라도 좀 하면 안되는 거냐? 아무리 안 무섭다고 해도 어떻게 웃으면서 물어올 수가 있냐구! "하, 한 발만 더 오면 진짜… 진짜… !" 이현이 미소를 짓는 가 싶더니 미노의 팔을 잡아끌어 자신의 품으로 당겼다. 손목이 잡힌 미노가 이현의 품에서 벗어나려 안간힘을 썼지만, 이현은 자신의 몸과 벽 사이에 미노를 가둬버린다. "내가 간 거 아니다, 네가 온 거지." "무, 무슨 말도 안되… 읍!" 미노의 턱을 들어올린 이현이 차가운 입술을 미노의 입술에 겹쳤다. 입술을 살짝 깨물어 미노의 입을 연 이현. 약 10여분 가량 거친 키스를 받아내던 미노가 힘껏 이현을 밀어냈다. "하아… 하아… 소이현! 너 미쳤냐?!" 가쁜 숨을 내쉬던 미노가 이현을 향해 소리쳤다. 싱긋- "미치지 않았어… 취했을 뿐이지." * 쾅- 철문에 등을 부딪힌 미노는 그 아픔으로 인해 인상을 찌푸렸다. 담배를 피워문 채, 삐딱한 시선으로 미노를 쳐다보는 다섯 명의 남자들. "마침 가지고 놀 장난감이 없어서 심심했는데, 딱 좋은게 걸렸네." "아무리 봐도 사내녀석인지 계집애인지 구분이 안간단 말이야." 바닥을 향해 침을 퉤- 하고 뱉은 남자가 미노에게로 얼굴을 가까이 했다. 남자가 가까이 다가올수록 미노는 뒤로 물러났다. "그만 안 하냐?" "… 산예찬." 희고 투명한 피부에 빨려들어갈 듯한 푸른 눈동자. 오똑한 코와 붉은 입술이 매력적이다. 예찬의 눈동자가 미노에게 닿았다. "보내줘." 보이쉬한 예찬의 목소리가 그들을 향해 명령했고, 눈치를 보던 녀석들은 미노의 팔을 놓아주고는 사라졌다. "아… 저기…" "……" 미노를 힐끗- 하고 본 예찬은 그대로 뒤를 돌아 가 버렸고, 어정쩡한 표정으로 예찬이 간 곳을 쳐다보는 미노. "고맙다는 말은… 했어야 했는데…"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운동장으로 나오던 미노는 이현을 보고는 걸음을 멈추었다. 이현의 팔에 팔짱을 끼고 있는 여자애. "이현아, 얘 뭐야? 미노인가, 비누인가 하는 애 맞지?" 앙칼지게 생긴 여자애의 팔을 떼어낸 이현이 미노의 팔을 잡았다. 탁- 이현의 손을 쳐 낸 미노. 미노의 행동에 적잖이 당황한 듯 이현은 미노를 쳐다봤다. "데이트 잘해. 소이현." 이현을 빠르게 지나친 미노는 교실로 돌아와 자리에 털썩- 하고 주저앉았다. 여전히 아침에 있었던 일로 웅성거림이 가득한 교실 안. 나쁜 놈, 처음부터 날 가지고 놀았어. 어차피 소이현 너도, 딴 남자애들고 다를 바 없었어. "미노야, 너 정말 소이현이랑 사귀는거야?" "아니." "진짜? 이현이랑 사귀는 거 아니지?" "두 번 말하게 하지 마." "그치만, 어떻게 믿어? 너희 둘, 아침에 키스까지 했잖아?" "… 입술… 누구에게 주든 상관없어." 미노의 말에 안심을 한 여자애들이 미노의 곁에 머무르며 재잘대기 시작했다. "… 그래서 말인데, 이번 주말에 우리 요트에서 놀지 않을래?" "요트? 좋아. 몇 시에?" "내가 그 시간에 맞춰서 전화할게." 고개를 끄덕인 미노는 여자애의 폰에 자신의 폰번호를 찍어주었다. 활짝 웃으면서 폰을 받아든 여자애는 친구들에게 연락해야겠다며 밖으로 나갔고, 미노는 아이들이 떠나자 턱을 괸 채, 창 밖을 바라보았다. 드르륵-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이현이 들어섰다. 이현이 자리에 앉자 미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탁- 미노의 손목을 잡아챈 이현. 이현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미노는 이현의 손을 쳐내고는 밖으로 향했다. 옥상으로 올라온 미노는 난간에 아슬아슬하게 발을 걸치고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철컹- 쾅! "너… 뭐하는 짓이냐?" 미노는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난간을 잡고 있던 한 손을 뗐다. 바람만 불면 아래로 떨어질 것 같은 상황. 아찔하기만 한 그 모험을 여유있게 즐기고 있는 미노. "남자들은 다 그래?" "… 뭐?" "여자같이 생긴 놈들만 보면 벗겨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냐구." "바보냐? 누가 그딴 생각을 해?" "… 악마 놈. 그리고 3학년 다섯 명." "… 3학년은 알만한데, 악마 놈은 누구냐?" "보는 사람 열받게 잘생긴 놈. 첫 키스를 빼앗아간 걸로도 모자라, 날 못살게 굴거든. 그래서 별명도 악마야." 휘잉- 한 손으로만 난간을 잡은 채, 나머지 손으로 흩날리는 머리칼을 쓸어올린 미노. 그런 미노의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는 남자. "평생 그렇게 매달려 있을거냐?" "아니, 곧 그 쪽으로 갈거야." 백만불, 아니 천만불짜리 미소를 지은 미노가 가뿐하게 난간을 뛰어넘었다. 불어오는 바람에 인상을 찌푸린 미노가 손으로 입술을 박박 문질렀다. 터져서 피가 나올 정도로 문지르는 미노의 손목을 잡은 남자. "참견하는 성격은 아닌데, 그렇게까지 할 건 없잖아." "… 짜증나서." "그렇게 짜증나는 일이냐?" "아무 것도 아냐. 잊어버리는 거 나한테 엄청 쉬운 일이거든." 싱긋- 하고 웃은 미노가 남자를 보았고, 진한 갈색의 머리칼이 흩어지며 시원한 향기가 코 끝으로 전해져 왔다. "1학년이지?" "나? 1학년 7반 도미노. 내 이름이야." "3학년 차시혁이다. 고민거리 있으면 찾아 와." "… 찾아가도… 되는거야?" "대신 난간에 매달리는 위험한 행동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면." "응! 약속할게!" 싱긋- "그럼 좋아. 학생회실로 오면 날 만날 수 있을거야." "학생회… 실?" "학생회장 차시혁. 찾아와. 언제든 환영이니까." 피식- 하고 웃은 시혁은 출입문을 통해 아래로 내려갔고, 시혁이 간 곳을 보고 있던 미노는 팔을 쭉- 펴며 일어나 교실로 들어섰다. "어디 갔었던 거냐?" "아까 그 여자애 예쁘더라." "어디 갔었냐고." "자칫하면 나한테 뺏기는 수가 있으니까 조심하는 게 좋아." "… 도미노." "짝이긴 하지만, 내 생활에 간섭하지 말아줬으면 좋겠어. 그런 거 질색이거든." 02.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걸음으로 교문을 향해 걸어나오는 미노. 교문 앞에 서 있는 차에 기댄 채, 미노를 보고 있는 이현. 탁- 미노가 다른 손을 올려 이현의 손을 털어내려 했지만, 이번에는 쉽사리 빠지지 않는다. 안간힘을 쓰던 미노가 이현을 올려다봤다. "뭐하는 거야?" "날 만만히 봤어. 도미노." "뭐…?" 달칵- "… 아앗!" 이현이 뒷좌석의 문을 열더니 차 안으로 미노를 던져넣었다. 미노의 옆에 탄 이현이 문을 닫자, 차는 속력을 높이며 그 자리를 떠났다. "무슨 짓이야, 소이현! 이건 명백한 납치라구!" "입 다물고 있어." "……!!" 이현의 목소리는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섬뜩한 눈빛. 미노는 순간 어젯밤이 생각났다. 열댓명이 넘는 인원과 싸우고 있던 모습. 비록 달빛아래였지만, 이현의 날카로움은 미노에게 분명히 전해졌었다. 끼익- 차가 멈춰섰고, 문을 열고 내린 이현이 미노를 집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웅장하다고 표현해야 할만큼 커다란 저택. "소이현, 이거 놔!" 풀썩- "으앗-! 무슨 짓이야! 이 악마 자식아! 엣!" 상당히 클로즈업 되어있는 이현의 얼굴에 미노는 눈만 깜빡이고 있다. 이현의 손이 미노의 얼굴을 감쌌다. "너, 너, 너 또 이상한 짓 하려는 거지! 당장 안 비켜?!" "… 소이현에게 걸리면, 어떻게 되는 지 알아?" "… 어, 어떻게 되다니, 뭐가!" "죽거나, 내 소유가 되거나. 둘 중 하나야." "……!!" 그 말은 곧 죽을래, 내꺼될래?! 란 거잖아! 아, 아직 죽기는 싫지만… 그, 그래도 소이현 소유가 되는 것도 싫어!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죽는건데, 그건 더 싫고… 설마 진짜 죽이는 건 아니겠… 아냐, 악마 놈이니까 분명 죽일 수도 있어! 그치만 이런 협박에 넘어가면 안되잖아! "… 죽기싫지?" 끄덕끄덕. "그럼 내 소유가 되면 돼." 도리도리- "지금 이 상황이라면, 충분히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데…" 이…! 결국 날 집으로 데려온 건 덮치기 위해서란 말이더냐! 넌 역시 악마에다 못말리는 싸이코에다 변태자식이었어! "소, 손 대기만 해 봐! 네 뼈마디를 산산히 부셔줄테니까!" 이현의 얼굴이 서서히 아래로 내려왔다. 미노는 손을 뻗어 이현의 몸을 밀어냈지만, 이현은 그런 미노의 손을 잡아버린다. 고개를 돌린 미노의 입술에 겹쳐진 이현의 입술은 언제나처럼 차가웠다. "너 미쳤어… 분명… 읍!" 버둥거리는 미노를 누른 이현이 입술을 떼고 물끄러미 미노를 바라본다. 숨막힐 듯한 눈동자. "셋을 셀 때까지 정해." "… 뭐, 뭘!" "이대로 계속 진행할까, 아니면…" "지, 진행이라니! 당장 떨어져!" "좋아. 내가 물러나준다면, 넌 그 대가로 뭘 해 줄 거지?" 대가라니! 애초부터 네가 강제로 덮친거잖아! "내 말, 내 행동, 내가 하는 모든 것에 반항하지 마." "… 말도 안되잖아! 또 이런 짓을 할 게 뻔한데, 반항하지 말라니!" 이현의 눈빛이 짙게 변하더니 미노의 손을 한 손으로 잡고는 나머지 손으로 와이셔츠 단추를 풀기 시작한다. "아, 알았어! 알았으니까 그만… 그만해!" 미노의 대답에 싱긋- 하고 웃은 이현. "진작 그랬어야지." 이현이 미노의 위에서 물러나자 황급히 일어난 미노가 풀어진 단추를 잠근다. 다행이다, 많이 푼 건 아니었구나. 경계심을 품은 미노의 눈동자가 이현을 주시했다. "… 악마." "피식- 내 말에 반항했을 땐, 그에 걸맞는 벌이 내려질거야. 명심해." "… 진짜 악마같아." "넌 이런 방법이 아니면 제어할 수가 없거든." 그게 아니라 네가 이런 방법밖에 생각 할 수 없었던 거겠지! 난 먹는 것도 좋고, 선물도 좋고… 아니, 이게 아니지! 확실히… 이런 위협적인 상황이 아니었다면… 허락하지 않았을거야. 짧은 시간동안… 이렇게나 파악하고 있었단 말이야? "계속 그렇게 넋놓고 있을거야?" "… 아, 아니! 그럼 난 가볼게!" "가긴 어딜 가?" 우뚝- 방을 나서려던 미노가 그 자리에 멈추어섰다. "오늘 여기서 못 나가." * "이상한 짓 하면 가만 안 둘 줄 알아!" "… 그 말 한번만 더하면 스무번도 넘겠다." 무심한 어조로 말하는 이현. 항상 이런 식이다. 사람 긴장하게 만들어놓고 맥을 탁- 하고 놓아버리게 만든다. "소이현, 너 정체가 뭐야?" "이제서야 궁금해졌냐?" "… 그거야…" "왜, 궁금한건데." "총을 들고 있던 놈들한테 노려지니까… 너 엄청난 부자라도 되는거야?" "… 글쎄." "이렇게나 큰 집에 살고 있는데다, 너 꽤나 부잣집 도련님같은 인상을 풍기거든." "네가 그렇다면 그것도 괜찮을 것 같군." 뭐야, 아무래도 좋다는 그 말투는… "도미노, 질문 끝났냐?" "… 아? 으, 응." 미노에게로 몸을 숙인 이현. "그럼, 이제 내가 질문해도 되냐?" "… 마, 말해도 돼…" 아무거나 물어도 되긴 하는데, 왜 자꾸 얼굴을… 너무 가깝다구! 넌 거리 감각도 없는 거냐! "너 여자 맞지." … 끄덕. "근데 왜 남장을 했냐? 남장이라는 거 요새 유행이냐?" 유, 유행이라니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릴… 그딴 게 유행할 리가 없잖아! "도망쳤어, 집에서." "… 도망? 왜?" 아, 말해줄테니까 그만 좀 다가오란 말이다! "저, 그러니까 너무 가, 가깝거든…?"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해." 빌어먹을. 뭐든지 제멋대로인 녀석이로구만. "부잣집에 시집보낸대. 시집가기 싫어서 도망왔어." "… 시집? 이제 17살인데?" "얼른 시집가서 떡두꺼비같은 아들 하나 안겨달라니 뭐라니 하잖아." "… 그래서 도망을 쳤다?" "응." "여자인 것을 포기할 정도로 시집가기가 싫냐?" "당연하지! 차라리 남자가 되지, 시집은 절대 안 가!" "왜…?" "그거야…" 망설이는 미노. 그런 미노의 얼굴을 감싼 이현이 미노와 시선을 맞추었다. "괜찮으니까, 말해 봐." "난 너처럼 부자가 아니거든. 찢어지게 가난해서, 거의 팔려가다시피 하는거야." "왜, 하필 너인데?" "문찬혁… 그 자식이 날 원하거든." "네가 그 집으로 시집을 가는 대가로, 너희 집에는 뭐가 주어지는데?" "5000만원. 엄청난 돈을 준대. 그러니 결국엔 팔려가는 거잖아." 말을 끝낸 미노가 손을 씻겠다며 욕실로 들어갔다. 이현은 미노가 욕실로 들어간 것을 확인하고는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문찬혁이라는 놈, 뒤 좀 캐봐." 03. 파란색이 시원하게 느껴지는 방 안. 탁자에 놓여있는 문서를 보며 이현은 인상을 찌푸렸다. "문찬혁… 꽤나 맘에 안 드는 녀석이군." 달칵- 흰 가운을 걸치고 등장한 미노. "다 씻었어, 이제 뭐하면 돼?" "옷은 거기 뒀어. 입어." 옆에 놓여있는 쇼핑백을 손에 든 미노가 문을 닫고 밖으로 나갔다. "고분고분하네… 훗." 이현은 낮게 미소지으며 거실로 나갔고, 어느새 옷을 갈아입은건지, 머리를 말리고 있는 미노가 보였다. 브이넥 셔츠 사이로 보이는 쇄골이 보는 사람을 아찔하게 만들 정도로 섹시하다. 피식- 하고 웃은 이현이 미노의 머리에 걸쳐져 있던 수건을 벗겨냈다. "에, 뭐하는 거야?" "가만있어, 말려줄테니까." 이현의 손이 기분좋게 미노의 머릿결을 흐트렸다. 나쁘지 않은 느낌. 미노가 벌써 이 곳에 있은 지 2시간이 지났지만, 이현은 의외로 얌전(?)했다. "나 여자라는 거… 비밀로 해줘야 돼." "좋아. 비밀로 해줄게. 대신…" "대신… 읍!" 얌전하다싶던 이현이 미노의 허리를 감싸안고는 뒤에서 입을 맞추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악마 놈… 키스 광이 아닌 지 싶다. 이번에도 미노가 순순히 입술을 열지 않자, 이현은 미노의 입술을 깨물었다. "아앗…! 읍!" 입술을 연 이현이 미노의 머리를 뒤로 젖히고는 더 깊게 파고들었다. 아득해지는 정신을 놓지 않으려 미노는 손을 올려 이현을 밀어냈다. "그만… 하아… 하아… 너 이런 짓 안한다고 했잖아!" 피식- "안한다고 한 적은 없는 것 같은데, 뭔가 착각한 거 아냐?" "… 소이현!" 싱긋- "걱정 마, 비밀은 지켜줄테니." * 마궁(악마가 사는 집이므로)에서 나와 학교로 가는 길. 문을 꼭 걸어잠그고 잔 탓에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유유히 교문을 통과한 미노가 교실로 들어섰고, 교실은 일찍 도착한 아이들의 수다로 이미 한껏 달아올라 있었다. "아, 미노야!" "안녕, 미노야!" "좋은 아침이야- 도미노." 인사를 건네는 아이들에게 백만불짜리 미소를 날리는 미노. 그런 미노를 보며 쓰러질 듯 휘청대는 여자애들. "계집애들이 하트 날리는 건 상관없는데, 남자새끼들이 군침흘리면 바로 죽여놓는 수가 있다. 그런 상황 오지 않도록 네가 행동 잘해. 아니면 학교에서 살인사건 날 지도 몰라." 제발 그런 무시무시한 말은 진지하게 하라구. 웃으면서 말하니까 엄청나게 섬뜩하단 말이다! 얼굴은 보는 사람 열받게 잘생긴 놈이 말하는 건 왜 저리 무서운 거냐구! 드르륵- 문이 열리고, 들어온 남정네 다섯. 아, 창고패거리다! "도미노오- 좋은 말로 할 때 나오면, 가볍게 끝내준다." 노랑머리의 말에 이현의 인상이 굳어졌다. 하지만 이현과는 반대로 미노는 멀뚱멀뚱하게 노랑머리를 쳐다만 보고있다. "무서워서 그러냐, 예쁜아? 걱정 마, 그렇게 심하게 대하진 않을테니까." 노랑머리의 말에 뒤에 있던 인상 더럽게(?)생긴 남자들이 미노의 양 팔을 낚아챘다. 어째서인지 이현은 그대로 앉은 채 보기만 한다. "도망 안 가는데…" "응? 뭐라고했냐, 예쁜아?" "팔 놓으라고요- 도망 안 가니까." 어느 틈에 차가워진 미노. 그런 미노를 보며 풋- 하고 웃은 노랑머리가 놓아주라는 손짓을 한다. 팔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되자, 미노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는 삐딱하게 노랑머리를 올려다본다. "어이, 예쁜아. 그런 눈빛으로 봐선 안되지." "괜한 간섭 말고 교실에나 가요- 다쳐도 난 모르니까." "다쳐? 푸하하…! 누구한테?" 싱긋- "아아, 산예찬을 기다리는 거냐?" "그 녀석 오늘 학교 안 왔어, 그러니까 그 예쁜 얼굴에 기스(=상처)내고 싶지 않으면 얌전히 굴어라잉?" "난 누가 구해주러 오길 바라는 게 아닌데…" "뭐? 그럼 다쳐도 모른다는 소린 무슨 말이냐?" 씨익- "그렇게 웃으면 내가 널 안 덮칠 수가 없잖냐…" "할 수 있음 해봐요." 도발. 눈을 살짝 내리깐 미노가 검지와 중지를 까딱거리며 오라는 시늉을 한다. 위험하다, 보기만 해도 아찔하게 섹시한 자태. 침을 꿀꺽하고 삼킨 노랑머리가 미노의 얼굴에 손을 댔다. 으드득- "아악- 야, 이, 이거 안 놓냐? 응?" 미노에 의해 40도 이상 꺾여진 노랑머리의 손가락. 아프다며 인상을 찡그린 채 나머지 손을 파닥거리는 노랑머리를 보는 미노의 눈빛은 차갑다. 하지만, 얼굴은 웃고 있다. 그래서… 더 무섭다. "미안, 아저씨들. 나 이래뵈도 싸움 꽤 하거든!" 뚝- 섬뜩한 소리가 들리며 손가락이 흐느적거렸다. 손가락이 부러진 노랑머리는 아픈 손을 부여잡고 방방뛴다. 그런 노랑머리를 웃는 얼굴로 내려다보고 있는 미노. "아저씨들! 앞으로 다치기 싫으면 나한테 시비 걸지 마요- 특별히 경고 해 주는거니까. 알았지?" 눈물까지 맺혀 바닥에 주저앉은 노랑머리는 미노의 웃음섞인 잔인함에 소름이 돋아오는 것을 느꼈다. 의자에 앉은 채, 미노를 지켜보던 이현이 중얼거렸다. "소이현이 악마면, 도미노는 마녀라고 해야하나… 피식- " 04. "실력행사 좀 일찍하지 그랬냐?" "… 응?" 싱긋- "난 네가 녀석들한테 당하는 줄 알았거든." "비꼬냐?" "전혀- 난 순수하게 널 걱정한 거야." 싱긋- 전혀 순수하게 들리지 않는 말을 하면서 그렇게 예쁘게 웃을 건 또 뭐니? 설마 은근히 바라고 있었던 거 아냐? 너도 그 쪽 계열이잖아! (하지만 이현은 미노가 여자라는 걸 알고 있다.) 이현을 경계하는 눈빛으로 보고 있던 미노는 아무런 반응이 없자 이현을 콕콕찔렀다. 콕콕- "……" 콕콕콕- "……" 콕콕콕콕- "… 도미노." 이현이 입을 열자 눈을 반짝이며 이현을 향해 바짝 다가간 미노. "응응!?" "… 잡아먹히는 수가 있다, 설마 어제 아침 일을 또 당하고 싶은 건 아니겠지?" 헙! 그건 절대 안 돼! 미노가 황급히 이현에게서 멀어지며 손으로 입술을 막았다. 그 모습을 보며 쿡쿡거리며 웃는 이현. 뭐야… 농담이었어? 젠장, 또 걸려들었군. "바보냐, 어떻게 그런 단순한 수법에 걸려드냐?" 네 녀석의 표정이 너무 진지했다고! 그건 결코 내 잘못이 아니잖아! 아아- 악마 놈이랑 있다간, 항상 긴장 속에서 살아야 할 거야… 미노가 낮은 한숨을 내쉬며 어깨에 들어가 있던 힘을 쫘악- 빼곤 옆에 있던 대리석 기둥에 기대었다. 저 녀석 상대하는 게 이렇게 힘들 줄이야… 쉬고싶은데 어디 편한 곳 없나… 편한… 곳…? [학생회장 차시혁. 찾아 와, 언제든 환영이니까.] 뭐, 악마 놈 옆에 있는 것 보단 낫겠지. 가 볼까? 학생회실이라고 했었지…? 그게 어딨더라… 드르륵- "어디 가?" "에엑- !" 책상에 누워있는 이현의 옆을 몰래 빠져나가려다 들킨 미노. 약간 졸리는 모습으로 미노를 보는 이현은 눈이 부시게 섹시하다. 딴 여자애들 같으면 침을 흘렸겠지만, 난 아니라고! "뭘 그렇게 놀라? 어디가냐는데." "아! 그, 그게… 아, 화, 화장실!" "거짓말했다간… 죽는다." 헙…! 순간 악마 놈의 눈빛에 살기가 돈 것 같은 건 내 착각이겠지? 아하하… 그래, 설마 진짜 죽이기야… 힐끔- 하고 이현의 눈을 본 미노는 황급히 다시 고개를 돌렸다. 으아- 진짜 죽일 것 같은 표정이잖아…! 벗어나자, 어떻게든 여기서 벗어나야 해! "화, 화장실 가는 거 맞아!" "… 아, 그래…?" 이 녀석이 말을 느리게 하면 왠지 모르게 소름돋는단 말이다. 으으, 이럴 땐 그 방법이 최고지! "앗- ! 저거…" 미노의 반응에 이현의 시선이 돌아갔다. 이 때다- 하고 잡혀있던 손목을 빼낸 미노가 뒷 문으로 빠르게 달려나갔다. "야, 도미노! 너 이리 안 와?!" "메에-롱이다!" 혀를 쏙- 내밀고는 줄행랑치는 미노. 그런 미노의 모습에 이현은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었다. 하지만, 이내 싸악- 굳어버린 얼굴로 무어라 중얼거린다. "… 도미노, 오늘 밤… 기대하는 게 좋아." * 한편, 이현을 피해 4층 서편으로 달려온 미노는 눈 앞에 달려있는 팻말을 보고는 씨익- 하고 웃었다. 학생회실이 여기있었구나… 드르륵- 문을 열자 보이는 건 빼곡하게 책꽂이에 꽂혀있는 책들과, 가지런하게 정리정돈 되어있는 물품들. 헤에- 체육대회때 쓰는 물건도 학생회실에서 관리하는 구나. 근데, 사람은 왜 한 명도 없대? 치… 학생회실에 오면 만날 수 있을거라더니… 투덜거리며 학생회실의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 미노. 과학실에서 쓰는 인체모형을 보고는 히엑- ! 하는 이상한(?)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난다. "어, 어째서 이딴 게 여기 있는 거야!" "… 과학실도 학생회가 관리하니까." 미노는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에엣- 하고 놀라며 황급히 뒤로 돌았다. 책을 손에 든 채, 문 앞에 지친 모습으로 서 있는 시혁. "무, 문 여는 소리 정도는 내라구요!" "… 애초에 문을 닫지 않은 건 너잖아." 순간의 정적. 그렇구나. 문을 닫지 않고 바로 들어왔었지, 참. 아하하… 하며 어색한 웃음을 흘리는 미노를 보던 시혁은 낮은 한숨을 흘리곤 문을 닫았다. 가까운 곳에 있던 책상에 들고있던 책을 내려놓은 시혁이 의자에 앉자 미노는 시혁에게로 가까이 다가갔다. "되게 지쳐보인다, 괜찮아요?" 걱정되는 말투. 미노의 얼굴을 본 시혁은 미노의 진심어린 눈동자에 피식- 하고 웃었다. "내가 걱정되서 찾아온 건 아닐테고, 할 얘기가 있어서 온 거지?" "… 아니요오- 그냥 쉬고싶어서." "그런 거라면 교실이라도 문제가 될 게 없잖아?" "그 문제가 교실에 있으니까 그렇죠. 아- 피곤해, 아침부터 시달렸더니!" 풀썩- 하고 앉은 미노가 귀여운 표정으로 입술을 삐죽- 하고 내밀었다. 이내 책상에 팔을 걸치고는 턱을 괸 채 시혁을 쳐다본다. 물이 빠진 듯한 검은 머리카락, 맑고 까만 눈동자, 잡티하나 없이 깨끗한 흰 피부, 선홍빛을 띄는 예쁜 입술과, 날카롭게 이어진 턱선. 책상 위에 올려진 손가락도 길고 매끈하게 뻗어있다. 차시혁… 한마디로 엄청나게 잘생긴 놈이다. "불만이 많은 표정인데…?" 책꽂이로 다가간 시혁이 책을 정리하는 동안, 그 모습을 바라보기만 하는 미노. 하지만 어딘가 꿍- 해보이는 미노의 표정이 거슬리는 시혁이었다. "엄청 불만 많은데, 그 녀석 앞에만 서면 얼어붙어서…" "… 얼어붙어? 왜?" 여전히 책꽂이에 책을 정리하느라 손을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시혁. 하지만 분명히 듣고 있다는 걸 대답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이상하게 그래요. 실컷 앞에서 욕해주고 싶은데… 그게 안되서 화나요!" 툴툴대는 미노가 귀엽게만 보이는 시혁. 마지막 한 권을 제자리에 꽂아넣은 시혁이 웃으며 미노에게로 다가왔다. "자- 먹어." 시혁이 미노에게 내민 건 자그마한 캔디였다. 이런 걸 가지고 다닐 것 같지 않은 시혁의 모습이었기에, 미노는 캔디를 받아들며 고개를 갸웃- 했다. "단 거 좋아해?" "음- 싫어하진 않으니까. 가끔 먹어요!" "원하면 언제든 와서 가져 가. 난 단 거 싫어하거든." "… 근데 왜 가지고 있어요?" "받은 거야. 저기…" 시혁이 턱으로 어딘가를 가리키자, 자연스레 미노의 고개가 돌아갔고 보이는 물건들에 미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보는 것만으로도 엄청나게 많아보이는 상자들. 포장한 것으로 봐서는 선물 받은 것 같은데 저렇게나 많이…? "우와- 저거 처리불가능하게 보이는데…" 눈으로 짐작해봐도 50개는 넘을 것 같다. 다양한 포장지에 쌓인 상자에 한치의 틈도 없이 빼곡하게 담겨있는 캔디들. 주는 사람 성의도 고맙지만, 이건 아무래도… 받는 입장이 더 곤란할 것 같은데… 삐익- 방송을 알리는 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전해졌다. 시혁이 내민 캔디를 손에 꼬옥- 쥔 채 스피커를 보는 미노. - 도미노… 지금부터 열을 셀테니까, 그 때까지 내 눈앞에 나타나라. 히엑- ! 악마 놈이다! 미노의 얼굴이 급격하게 울상으로 변해갔다. 가기 싫지만, 반항하지 않겠다고 약속해버린 상태고, 또 약속을 어기면 그에 합당한 벌을 내린다고 했으니까 가긴 가야하고… - … 10. 이런 와중에도 카운트는 시작되었다. 도미노, 악마 놈의 손에 죽을 것인가, 아님 약속을 지키고 살아날 것인가… 안절부절하던 미노가 의자가 콰당- 하고 넘어질 정도로 벌떡 일어났다. "갈께요!" 후다닥- 하고 문을 열고 뛰어나간 미노. 정신없는 녀석이라고 생각하던 시혁은 미노가 간 곳을 바라보며 낮게 웃음지었다. 문득 난간에 매달려 있던 미노의 모습이 떠오른 시혁. 곧 날개를 펴고 하늘 높이 날아오를 것만 같았다. "천사라니… 차시혁, 제대로 미쳤어." 05. 방송실, 방송실… 벌써 카운트가 5가 넘어가고 있었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미노는 전속력으로 방송실로 달려가고 있는 상태. 저 멀리서 엄청난 무리가 뛰어오는 가 싶더니 미노의 앞을 가로막은 여자애들. "꺄악-! 어디가세요, 미노님!" "미노님! 저희 오늘 저녁에 파티하는데 같이 가 주실 거죠!" "오늘도 너무 멋지세요, 미노님! 검은 머리를 흩날리며 뛰는 모습이 너무 황홀해요!" "미노님, 미노님은 저의 왕자님이세요~ 아아, 정말 어쩌면 좋아요?!" 뭐라뭐라 중얼거리며 미노를 보며 비명을 지르는 여자애들 틈에 끼여 땀을 흘리는 미노. 나, 난 빨리 가야하는데… - … 4. 안 되! 이대로라면 분명 그 악마 놈이 날 가만두지 않을거야! 젠장, 어쩔 수 없군. 미노는 한순간에 표정을 싹 바꾸었다. 난처하게만 보이던 미노의 얼굴이 얼음처럼 차갑게 굳었다. "… 안 꺼지냐…?" 순간의 정적. 미노에게서 흘러나온 냉기가 어린 음성에 여자애들이 꺅꺅대던 비명을 멈추었다. 비록 낮은 목소리였지만, 듣는 사람은 충분히 소름이 돋을 정도의 위력(?)을 갖춘 미노의 목소리였다. "밟고 가기 전에 비켜라…" 그 말을 끝으로 양 옆으로 쫘악- 하고 갈라선 여자애들. 그런 아이들 사이를 빠져나가는 미노의 표정은 어느새 평소대로 돌아와 있다. "고마워, 나중에 봐!" 싱긋- 하고 미소를 날린 미노가 복도 끝을 향해 뛰기 시작했고, 얼어있던 아이들은 미노가 한참 멀어진 후에야 꺄악- 하며 발광(?)을 한다. - … 2. 방송실 안은 텅텅 비어있다. 이현의 목소리가 녹음된 테잎만이 유유히 돌아가고 있을 뿐. 아악- 젠장, 나 뭐한거야! 그럼 대체 어디가서 찾아야 하는 거냐구! 설마 교실… 아냐, 교실에서 기다리고 있을 놈이 아니지! 그럼… 운동장? 아니지, 날 죽기직전까지 패놓을 생각이 아니라면 운동장도 아니지… 아악! 대체 어디냐고…! 절규하던 미노의 머릿 속에 섬광처럼 옥상이 스쳤다. 옥상…? 좋아! 마지막 수단이니까 어떻게든 해보는거야! "아다다다닷-!" 이상한 기합(?)을 넣으며 옥상을 향해 뛰어올라가는 미노. 숨을 헉헉대며 올라온 미노가 옥상 문을 걷어차고는 당당하게 들어섰다. 휘잉- 너무나 썰렁하기만 한 옥상. 마지막 남은 힘까지 모두 빠져버린 미노였다. 왜 이렇게 허무하냐… 처음부터 이건 내가 질 게 뻔한 스토리였어…! (미노야, 너무 늦게 깨달았단다.) 짝- 짝- 짝- 짝- 주저앉으려던 미노는 구석에서 들려오는 손뼉소리에 귀를 쫑긋- 세우고는 소리가 들린 곳으로 다가갔다. 벽에 등을 기댄 채 여유로운 표정을 짓고 있는 이현이 보인다. "하아… 하… 이런 곳에 숨어있다니… 얍삽하잖아… 하아…" "용케 찾았네." "치… 치사해…" 피식- "으아- 손가락 하나 움직일 힘도 없어!" 바닥에 털썩 하고 무릎을 꿇은 모습으로 주저앉은 미노. 숨을 고르고 있던 미노를 보는 이현의 표정이 순간 사악하게 바뀌었다. "잘 찾아오긴 했는데…" "……?" 씨익- "… 이미 카운트는 끝났어." "… 하아?" 사악하게 웃고있는 이현과 이럴수는 없다는 듯한 표정의 미노. 그나마 찾은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미노였기에, 한숨을 내쉴 수 밖에 없었다. 일이 이렇게 되어버렸으니, 이젠 아무래도 좋다는 듯 뚱- 한 표정으로 가쁜 숨만을 고르는 미노였다. "… 내가 하는 말에 반항하지 않기로 했었는데… 내가 말한 시간에 나오지 않았으니, 결과적으로는 반항한 셈이 되어버렸네." "그치만… 일부러 그런 것두 아니구… 난 네가 방송실에 있는 줄 알고 거기까지 찾아갔었단 말이야!" "… 어쨌든… 반항한 건 맞잖아?" 이렇게 인간이 사악한 줄 알았다면, 다신 인간 같은 거 상종 안 해! (미노야, 너도 인간이란다.) 앞에 놓여있던 부서진 돌들을 주워 이현에게로 던지는 미노. "노력했잖아! 체육대회때 빼고는 이렇게 달려본 적이 없을 정도로 힘껏 뛰었는데!" 신기하게도 미노가 던지는 돌을 한 손으로 잡아내는 이현. 동체시력이 워낙 좋은 이현이라, 왠만한 빠르기라도 이현에게는 느리게만 보인다. "도미노, 나한테 거짓말치고 어디갔었냐…?" "거, 거, 거짓말이라니!" 당황해버린 미노가 또 말을 더듬었다. 으… 바보같은 도미노! "화장실에 애들 풀었더니 없었다던데…" 이런 주도면밀한 자식을 보았나! 어느새 그런 것까지 실행(?)에 옮겼단 말이냐! "아, 내, 내가 나온 다음에 가, 갔겠지!" "… 정확히 네가 나간 뒤에 바로 따라보냈는데." 으아- 이건 완전히 반박할 수가 없다. 슬금슬금 이현의 눈치를 보던 미노는 이현의 입술에 살짝 베어나오는 피에 눈을 크게 떴다. "다, 다쳤어?" 바닥에 손을 짚은 채 이현에게로 몸을 기울인 미노. 순간 씨익- 하고 웃은 이현이 바닥을 짚고 있던 미노의 손을 잡아당겼다. 얼떨결에 이현의 품에 안겨버린 미노. "왜… 왜… 그래…" "… 네가 옆에 없으니까 이렇잖아." "… 뭐?" "어떤 계집애한테 키스 당해 버렸거든." 하아…? 천하의 소이현이 키스를 당해? 설마… 네가 한 거겠지. "그래서… 나 지금 기분 존나 더럽거든…?" "… 그, 근데…" "소독 좀 해줘라…" "하아…?" 미노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겹친 이현. 또 이런 상황이 되어버렸다. 아찔하게 감겨오는 이현의 혀에 미노는 움찔- 하고 놀라 몸을 뒤로 빼려 했지만, 단단하게 허리를 감싸고 있는 이현의 팔에 의해 움직일 수가 없다. 미노의 입 안 곳곳을 탐닉하던 이현은 순간 자세를 바꿔 미노를 벽으로 밀어붙였다. 탁- "읏…" 등을 부딪힌 충격으로 얕은 신음을 흘린 미노가 인상을 찌푸렸고, 이현은 미노의 얼굴을 손으로 감싼 채, 시선을 맞추곤 싱긋- 하는 예쁜 미소를 짓는다. 하지만 미노는 그런 이현의 미소가 무섭기만 하다. "… 도미노." 움찔- "대답해, 도미노." "… 응!" "이제 익숙해질 때도 안 됐냐?" "… 에?" 순간 사고회로가 정지된 것 같은 느낌에 미노는 머리를 도리도리- 흔들더니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이현에게 눈을 맞추었다. "예전같았으면 분명 화를 내고도 남았을텐데, 어느정도 적응이 된 것 같군." "……!!" 확실히… 이젠 자연스럽게 느껴지려고까지 한다. 안 돼… 이 녀석은 내 소중한 첫 키스를 빼앗은 나쁜 놈이라구! 이제 절대 받아주지 않을거야! 어떤 일이 있어도! "설마, 이제 내가 주는 키스 선물을 받지 않겠다는 생각을 한 건 아니겠지?" 뜨끔- 이 녀석, 독심술까지 지니고 있었나? 그러니까 왠지 더 사악 해 보이잖아… "아쉽지만… 넌 내게 반항할 수 없어." "… 바, 반항이 아니라 거절하는 거야! 거절하지 말라고 하진 않았잖아!" "말대답도 하나의 반항이지." "뭐…?!" 타닥- 미노의 한 팔을 손으로 잡은 채 위로 꺾은 이현. 살짝이지만 밀려오는 아픔에 미노의 인상이 구겨졌다. "일부러 날 자극시키지 않는 게 좋아." 피식- 미노의 팔을 놓아준 이현이 유유히 옥상을 벗어났다. 멍하니 손목을 붙잡은 채 앉아있는 미노. "앞으론 악마 놈을 확실히 피해다니는 수 밖에 없어!" 결의에 찬 듯 주먹을 쥐어 다짐하는 미노였다. * "나랑 자리 좀 바꾸자!" 이현의 자리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앉아있는 여자애에게 말을 건넨 미노. "왜? 미노는 뒷자리가 편하다고 하지 않았어?" "아, 아니 그게… 치, 칠판이 좀 안 보여서!" 가당치도 않은 거짓말. 미노의 시력은 양쪽 다 2.0 으로 최고를 자랑한다. 잠시 눈치를 살피던 여자애는 책을 들더니, 자리를 바꾸어주었고, 미노는 생전처음 앉아보는 앞자리에 신기함을 느끼며 수업에 집중했다. 가끔 뒤통수가 따끔거린다는 느낌을 받았긴 했지만… 딩동댕동- 길기만 했던 수업이 끝나자 모두 점심을 먹는다며 식당으로 향했고, 미노가 가장 무서워하는 이현은 언제 나갔는 지 보이질 않는다. 이현에게 잡히지 않기 위해 앞 문으로 잽싸게 나가려던 미노는 이현이 보이지 않자 잠시 고개를 갸웃- 했다. "뭐, 아무래도 좋지." 점심시간동안 뭘 할까… 하고 생각하던 미노는 주머니에 넣어져 있던 손에 잡힌 물건을 꺼내었다. 학생회실에서 시혁이 건네준 캔디였다. 싱긋- "놀러가야지!" 학생회실의 문을 열던 미노의 눈에 의자에 앉아있는 시혁의 모습이 보였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든 시혁이 미노를 보고는 살짝 웃었다. "말짱하네." "… 에?" "무슨 일이라도 당할 것처럼 뛰어나갔잖아." 아까의 모습을 회상한 미노는 볼을 긁적이며 아헤헷- 하고 귀여운 웃음을 흘렸다. 시혁의 옆에 놓여있는 의자에 털썩- 하고 앉은 미노. "점심시간인데 식당에 안 갔어?" "배고프지 않으니까." 뚱- 한 표정으로 투덜대며 책상을 손톱으로 긁적거리는 미노. 시혁의 눈이 미노를 향해 고정되어 있다. 그런 시혁의 시선이 느껴졌는지 미노가 고개를 들었다. "왜, 왜요?" 휙- 시혁이 던진 물건을 탁- 하고 잡아낸 미노. 의아한 표정으로 손을 펴자, 그 안에 담겨있는 캔디 하나. 아, 나 아직 안 먹었는데… "그건 지금 먹으라고 주는거야." "… 잘먹겠습니다-" 잠시 망설이던 미노는 캔디를 입 안에 쏙- 집어넣었다. 빈 봉지를 만지작거리던 미노는 봉지에 써 있던 글귀를 중얼거렸다. "… 키스맛 캔디?" "왜 그래?" "… 선배, 이 사탕 이름이 웃겨요- 키스맛 캔디래…" 미노가 내민 봉지를 받아든 시혁. 시혁이 봉지를 받는 것을 보고는 팔짝- 뛰어 책상 위에 앉아버리는 미노. 다리를 까딱거리며 학생회실을 둘러본다. "난 단 거 안 좋아하는데…" "응, 그건 아까 얘기해줘서 알고 있어요." "근데 먹고싶어졌어…" "에? 왜요?" 피식- "키스맛이라는 거 꽤 궁금하거든." "… 에?" 시혁의 얼굴이 가까워지는 가 싶더니, 이내 촉촉한 입술이 미노의 입술에 닿았다. 사탕 덕분인지 살짝 벌어진 입술 사이를 핥는 시혁. (이 녀석, 학생회장이면서 야하잖아!) 시혁이 잡고 있어 뒤로 넘어지진 않았지만, 미노의 몸은 45도 이상 뒤로 기울어진 상태. 거칠게 파고들던 이현의 키스와는 다른 시혁의 달콤한 키스. 힘이 빠져버린 미노를 책상 위로 밀어 눕혀버린 시혁이 미노의 입 안 곳곳을 핥았다. "서, 선배 잠깐…! 읍…" 미노의 입에 있던 캔디를 자신에게로 옮긴 시혁. (어이, 너무 야한 거 아냐?) 잠시 입술을 뗀 시혁이 입 안에 들어있던 캔디를 뱉어냈다. 시혁의 맑은 눈동자가 미노를 향했다. 너무나 투명한 눈에 미노는 몸이 떨려오는 것을 느꼈다. "기분… 나빴니?" "… 도리도리." 피식- "같은 남자인 건 아는데… 너, 가지고 싶다." 06. 화났나… 아닌데, 화났으면 직접 찾아왔을테구… 왠지 불안한 마음에 교실을 어슬렁거리는 미노. 비어있는 이현의 자리가 상당히 신경쓰인다. 그 때, 교실로 들어온 여자애. "저기, 있잖아!" 미노가 팔을 붙잡자 얼굴을 붉히며 미노를 보는 여자애. 이름이 지희였었지…? (이름을 잘 기억 못 하는 미노) "지희야, 이현이 어디갔는 지 봤어?" "소이현? 아까 전화받고 급히 뛰어나가는 것 같던데…?" "전화? 무슨 전화였는데?" "그거야 나도 모르지, 암튼 엄청 살벌한 표정으로 나갔어." 고맙다며 살짝 웃어준 미노가 지희에게 손을 흔들어 주고는 주머니에 있던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우움… 거의 강제로 받은 번호였지만, 도움이 되려나… 신호가 가더니, 건너편에서 이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하아… 하아… 도미노, 왜 전화했냐? "……!!" 힘겨워보이는 이현의 목소리에 미노의 눈이 커졌다. 핸드폰 너머로 들리는 둔탁한 타격음이 미노의 귀를 파고들었다. "소이현, 너 무슨 일 있어?!" - 하아… 아니… 아무 일도… 없다… "거짓말 치지 마! 어디야!" - 하아… 킥, 어디면… 하아… 올… 거냐…? "응! 갈게, 갈테니까…!" - 하아… 윽, 7번가 폐창고다. "조금만 기다려! 금방 갈게!" - 하아… 도미노… "응? 왜? 왜 그래?" - 조심해서 와라… 뚝- 두근두근. 마지막에 들린 이현의 목소리에 미친듯이 쿵쾅거리는 심장을 부여잡은 미노. '설마… 착각이겠지' 란 생각으로 흘려버리곤 복도 끝을 향해 달린다. 어느새, 미노의 표정은 차갑게… 미치도록 차갑게 굳어있었다. "미노야- 너 어디 가?" "야, 도미노!" 붙잡는 아이들의 손을 매정하게 뿌리친 미노는 최대한의 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미노의 검은 머리카락이 흩날렸고, 붉은 입술에는 잔인한 미소가 걸렸다. "소이현… 멀쩡하지 않으면 반 죽여놓을 줄 알아…" 학교를 뛰어나간 미노는 7번가를 향해서 달리기 시작했고, 폐창고의 위치를 대충 머릿 속에 그려내고는 입술을 앙다물었다. 스치는 바람에 미노의 차가움이 묻어나는 것만 같은 느낌. 존재하고 있는 그 자체가 얼음으로 느껴질 만큼 강한 싸늘함을 품은 미노의 모습에 지나가던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미노를 피했다. 퍽- 퍼억- 퍽! 창고 앞에 팔자좋게(?) 늘어져있는 검은 양복을 입은 사내들의 모습을 보곤 입술을 깨문 미노. 출입문 앞에서 너저분(?)하게 주먹을 주고받는 사내들을 발차기로 깔끔하게 기절시켜버린 미노가 문을 열었다. 철컹- 쾅! "소이현…!!" 싸늘함이 깃든 미노의 목소리가 창고 안에 울려퍼졌다. 정신없이 들고 있는 무기를 휘두르고 있는 남자를 향해 다가간 미노. "넌 뭐야?" 퍼억- 앞에 선 남자가 들고있던 무기를 빼앗은 미노가 다가오려던 남자를 발로 차 넘어뜨렸다. "… 방해하면 죽여버릴 줄 알아." 잔인함이 깃든 미노의 눈을 본 사내는 그대로 누워만 있을 뿐, 아무런 미동도 하지 않았다. 힐끗- 미노에게 멱살을 잡힌 남자는 덜덜 떨고 있었다. 싸우지 않아도… 몸으로 느껴져 오는 냉기. '자칫하면 죽는다…' 란 생각이 남자의 머릿 속을 지배했다. 남자에게 시선을 고정시킨 미노가 차가운 음성으로 명령했다. "소이현… 어딨어." "… 모, 모…" 퍼억- 남자의 명치 끝을 무릎으로 가격한 미노. 캬악- 하는 소리와 함께 사내의 입에서 위액이 쏟아져 나왔다. "더럽게… 무슨 짓이야…" 퍼억- 긴 다리로 사내의 관자놀이를 발로 차 버린 미노. 미노의 발차기에 그 자리에서 두 바퀴를 돈 남자가 풀썩-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으로 쓰러졌다. "네가 아니라도… 아직 내 먹이는 많거든…" 미노의 눈동자가 먹이(?)를 물색하기 위해 움직였다. 섣불리 주먹을 날리지 못하는 남자를 향해 다가간 미노가 남자의 목을 팔꿈치로 누르며 벽으로 밀어붙였다. "… 소이현 있는 곳, 당장 불어." "저, 저기 옆에…" 덜덜 떨리는 손으로 한 곳을 가리킨 남자는 다리에 힘이 풀어졌는지 바닥에 주저앉았다. 남자가 가리킨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 미노의 눈에 눈을 감은 채 기대어 있는 이현이 보였다. "… 소이현!" "……" "소이현, 정신차려!" "……" "소이현! 정신 좀 차려 봐! 이현아, 눈 떠!" "……" "내가… 복수해줄테니까, 일어나. 응? 소이현… 이현아!" "… 그만 좀 불러, 귀 아프다." 얄미울 정도로 예쁜 미소를 지으며 눈을 뜬 이현. 그런 이현의 모습에 언제 싸늘한 표정을 지었는 지 모를 정도로 환하게 웃는 미노였다. "… 너… 너, 너 진짜…" 눈물이 맺힌 미노의 눈에 살짝 입맞춘 이현. "걱정 마, 나 소이현은 이런 애송이들한테 안 당해." "바보… 이렇게나 피를 흘리면서…" 흰색의 와이셔츠에 흥건하게 베어나온 피. 이현의 팔에 박혀있는 유리조각을 조심스럽게 빼낸 미노가 주머니에 있던 손수건을 꺼내 묶었다. "자, 이걸로 지혈은 될 거야." 피식- "내 목숨 두 번 살리네." "앞으론 이런 무모한 짓 해서 사람 놀래키지 마!" 부드럽게 미소지으며 고개를 끄덕인 이현. 팔을 뻗어 미노를 안고는 목덜미에 고개를 묻은 이현이 속삭였다. "선물은… 오늘 밤에 줄게." * 이현을 부축해 집으로 온 미노는 침대에 이현을 눕혔다. 낮은 신음을 흘리며 누운 이현을 보던 미노는 일단 피 묻은 옷을 갈아 입혀야 하겠다는 생각에 이현의 옷장을 뒤져 와이셔츠 하나를 꺼냈다. "아, 치료부터 하자. 구급상자 어딨어?" "구석에 놔뒀을텐데, 모르겠다." 한숨을 푹- 내쉰 미노가 용케도 구급상자를 찾아 이현이 앉아있는 침대 앞에 앉았다. "오, 오, 옷 벗어…" 피식- 이현이 단추를 풀고는 상반신을 드러냈다. 솜에 과산화수소수를 묻힌 미노가 묶어두었던 손수건을 풀고 상처를 소독했다. "읏… 따가워…" "다 됐으니까, 조금만 참아." 지혈이 되도록 흰 가루약을 뿌린 거즈를 상처에 갖다 댄 미노가 압박붕대 하나를 들어 팔을 감쌌다. 꼼꼼하게 붕대를 감는 미노의 모습을 보는 이현. 상처가 있는 곳은 처치가 끝났지만, 몸에 흘러내린 자국이 있는 피를 보며 인상을 찡그린다. "기다려 봐." 눈치빠른 미노가 수건에 물을 묻혀 가져 와 이현에게 건네준다. 이현이 대충 닦아내자 제대로 하라며 핀잔을 주고는 부엌으로 쏘옥- 들어 가 버리는 미노. 와락- 어느새 다가온 건지, 미노를 뒤에서 껴안은 이현. 으앗- ! 하며 황급히 이현에게서 물러나는 미노였다. "오, 오, 오, 옷도 안 입고 대, 대체 뭐, 뭐, 뭐하는 거야!" 이현의 얼굴을 향해 와이셔츠를 던져준 미노. 미노가 던져준 와이셔츠를 입은 이현은 이제 됐냐는 듯한 눈빛으로 미노를 본다. 와이셔츠 단추를 세 개 풀어놓은 모습으로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서 있는 이현을 미노가 아닌 다른 사람이 봤다면 분명 덮치고도 남았을 것이다. "날씨가 꽤 어둡다… 비 오려나…" 베란다로 다가간 미노가 밖을 보며 중얼거렸다. "… 아빠랑 엄마… 잘 계시려나…" "잘 지내고 계시니까 걱정 하지 마." "… 에? 네가 어떻게 알아?" "빚은 청산했어. 그러니까 그 집에 시집가지 않아도 돼." "… 자, 잠깐… 이게 다 무슨 소리야?" "못 믿겠으면 전화해서 여쭤 봐. 아, 참고로 네가 여기서 살고 있다는 것도 아시니까 내 안부도 좀 전해드려." 손을 흔들고는 방으로 들어 가 버리는 이현. 멍하니 서 있던 미노는 급히 핸드폰을 들어 번호를 눌렀다. 달칵- "여보세요! 엄마?!" - 어머나, 우리 미노! 잘 지내고 있니? "응! 나 잘 지내! 엄마랑 아빠는 어때? 괜찮아? 빚쟁이들이 찾아와서 괴롭혀?" - 아냐, 빚 다 갚았어. 오호호, 언제 그렇게 멋진 남자친구를 사귄거니? "어, 엄마? 남자친구라니…?" - 이현군 말이다, 아주 잘생겼던데? 우리 딸한테 그렇게 멋진 남자친구가 생길 줄은 생각도 못해… 뚝- 핸드폰을 닫은 미노. 남… 남자친구…라고요…? 아하하… 남자친구라니… 하하하핫… 남자친구? 누가? 소이현이? 에이…! 소이현이 내 남자친구… 소이현… 남자친구… 소이현… 남자친구… 소이현…? . . . . . . . . . … 말도 안 돼! 머리를 흐트리며 절규하는 미노. (상황판단이 상당히 느리다) 문을 열고 나오던 이현이 미노의 모습을 보고는 피식- 하고 웃는다. "… 혼자 영화찍냐?" "영화? 아니, 영화 찍지… 가 아니라!! 어째서 엄마랑 아빠가 네가 내 남자친구인 걸로 알고 있는 건데!" "맞잖아." 무심한 어조. 힐끗- 미노를 본 이현이 손에 든 무언가를 가지고 쇼파에 털썩- 하니 앉아버린다. "다, 당장 전화해서 해명해! 아니라고!" 미노가 이현의 얼굴 앞으로 핸드폰을 내밀었다. 물끄러미 보고있는 이현. "얼른! 전화해!" 피식- "진짜 전화해?" "당연하지!" 미노가 내민 핸드폰을 받아든 이현이 가볍게 번호를 누른다. 이 녀석, 뭐야… 번호까지 아예 외운거야? "… 안녕하세요. 저 소이현입니다." 전화를 받자 미노가 눈을 반짝였다. 얼른 아니라고 말하라는 듯 이현을 재촉하는 미노. "예, 아… 그러세요? 잘 지내셨죠?" 해명하라고 그랬지, 언제 서로 안부전하랬냐?! 하라는 말은 안하고 왜… "… 네?" 이현의 눈이 미노에게로 향했다. 이현의 시선에 미노가 궁시렁거리던 것을 멈추곤 이현을 쳐다본다. "아, 정 그러시다면야… 잘 알겠습니다. 그럼-" 뚝- 전화를 끊은 이현이 미노에게 핸드폰을 건네준다. "아니라고 말했어? 응? 그러니까 뭐래? 나, 막 집으로 들어오라고 안 해?" "아니, 그런 말씀은 안하셨는데." 휴- 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쉰 미노. 이현이 눈을 빛내는 가 싶더니, 미노를 안아들었다. "야, 뭐하는 거야! 너 팔도 다쳐서 무리하면 안된다고!" 이현의 팔에서 내리려 바둥거리는 미노. 그런 미노를 더욱 꽉 안은 이현이 문을 열고 들어가 침대 위에다 미노를 던져버린다. "너, 너 또 나쁜 짓 할려고 그러지! 저리 가! 오, 오지마!" 미노가 팔을 저으며 침대 끝으로 물러났고, 그런 미노를 잡아 침대 위로 눕혀버리는 이현. "너, 너 저리 안 가?! 사, 살려줬더니 무슨 짓이야!" 이현의 밑에 깔려버린 미노가 이현을 밀어냈다. 이대로는 안 돼! 진짜 위험하다구! 젠장, 아까 구해주는 게 아니었어! 칭찬받을 일 했는데, 왜 이러는 거냐구! "저, 저기 이현아… 음, 일단은 진정하구… 네가 혈기왕성한 나이라는 건 알겠는데, 그러니까 그게…" 피식- "덮쳐달란 소리냐?" "미쳤냐! 그게 아니라, 지금은 이럴 게 아니라 네 팔이 아프니까! 그러니까!" 피식- "도미노… 오늘 우리… 첫날밤 치루게 생겼다." 07. 쇼파에 앉아 문서를 뒤적거리는 이현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다리를 모으고는 팔로 감싼 채 꿍- 한 표정으로 이현을 쳐다보고 있는 미노. "소이현아… 아직도 화 났어?" "……" "… 머리 부딪힌 거 많이 아팠어?" "……" "있잖아… 미안…!" 딩동- 미노를 힐끔- 하고 바라본 이현이 현관문을 열었다. "이현아-!" 여자목소리. 짧은 미니스커트를 입고는 이현의 목에 팔을 감고는 안겨있는 여자. "… 어머, 누가 있었네?" "괜찮아, 들어 와." 신발을 벗고 거실로 들어선 여자의 모습에 미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현아, 나 오늘… 너랑 같이 있고 싶은데…" 힐끔- 이현의 눈이 미노에게 향했다. 하지만, 쌀쌀맞은 표정이다. "… 미안, 내가 방해가 되겠다. 그, 그럼 안녕!" 현관문을 향해 달려나가는 미노를 이현의 팔짱을 끼며 보고 있는 여자와, 그런 여자의 팔을 뿌리치지 않고 미노를 보는 이현. 미노가 채 현관문을 닫기도 전에, 방으로 들어 가 버리는 이현이었다. 달칵- 빗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기를 바랬지만, 오늘따라 문닫히는 소리가 상당히 크게만 느껴진다. 슬픈 표정을 지은 미노가 비를 맞으며 어디론가 걷기 시작했다. 옷에 스며든 빗물로 인해 미노의 몸이 차가워지고 있다. "야, 그래서 말이야… 엇!" 미노의 어깨에 부딪힌 사내가 험상궂은 표정으로 미노를 붙잡았다. "어딜 보고 다니는…!" 미노의 칠흑 빛의 검은 머리카락이 빗물에 젖어있다. 입고 있는 옷은 모두 젖어버린 상태, 눈을 내리깐 미노의 모습에 사내는 군침을 삼켰다. "… 죽이는 녀석이구만, 따라 와." 미노를 데리고 으슥한 골목으로 들어가는 사내. 몽롱한 기분만 아니라면, 당장이라도 자신의 팔을 잡고 있는 사내의 손목을 꺾어버렸을 테지만, 지금의 미노는 자신의 몸 하나도 가누기 힘들 정도로 눈 앞이 흐릿했다. 탁- 사내가 미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몸을 움찔- 한 미노가 천천히 손을 올려 사내의 손을 감쌌다. "뭐야, 너도 좋은 거였냐…?" "…이…………도…라…" "뭐? 제대로 말해." "… 썩어빠진 이 손 치우지 않으면… 널 죽여버릴지도 몰라…" 빗물에 젖은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날카로운 눈빛. 싸늘함이 깃들어있는 미노의 눈빛에 온 몸이 저려오는 것을 느낀 사내가 황급히 미노에게서 멀어졌다. 피식- 잔인하게 걸려있는 입가의 미소를 지운 미노가 멍한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 본 후, 아래로 고개를 푹- 하고 숙였다. 젖어버린 옷이 몸의 체온을 뺏어가고 있는 터라, 미노의 입술은 이미 보라색으로 변해있었다. "… 도미노?" 힘겹게 고개를 든 미노의 눈 앞에 흐릿하게 보이는 인영. 누구지…? 눈 앞이 흐릿해서 아무 것도 안 보여… 풀썩- * 코 끝에서 전해지는 기분 좋은 향기에 미노는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보이는 건 천장이 아닌… 하늘? 뭐야, 여기가 어디지? "… 일어났니?" 고개를 돌린 미노는 앞에 서 있는 시혁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 했다. 여기가, 어디지? 근데 왜 시혁선배가 여기 있는 거지? "… 선배." "내 집이야, 편히 쉬어. 아직은 안정이 필요하다고 했으니까." 미노의 머리를 받치곤 베게에다 조심스레 눕혀준 시혁. 이불을 두 손으로 꼭 잡은 채, 시혁을 보고있는 미노. "나, 어떻게 된 거에요?" "무슨 일이 있었는데, 비를 그렇게나 맞은 거야?" "… 아, 그럼 그 때 보인 게 선배였구나…" 똑바로 누운 미노는 바로 위에서 보이는 맑은 하늘에 눈을 크게 떴다. 뭐야, 천장이 유리로 되어있었던 거야? "서, 선배…" "옷은 메이드 아가씨가 갈아입혔으니까, 걱정하지 마." 따뜻하기만 한 시혁. 선배 옆에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 "나, 조금 더 자도 되요?" "… 물론이야." 미노를 향해 눈이 부시게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시혁. 사르르- 눈을 감은 미노는 오랜만에 느끼는 평안에 곧바로 잠이 들었다. 지이잉- 침대 옆에 놓아두었던 미노의 핸드폰이 울렸다. [악마] 고개를 갸웃한 시혁이 핸드폰을 열었다. "여보세요?" - 당신 …누구지? 도미노, 어딨어! "방금 잠들었습니다. 실례지만 누구시죠?" - 깨워서 바꿔주지 않겠어? "밤새 비를 맞아 앓다가 이제서야 편안히 잠들었으니, 나중에 다시 전화주세요. 그 땐 받으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뚝- 전화를 끊은 시혁이 핸드폰을 닫기 전, 종료버튼을 눌렀다. 띠리릭- 하는 전자음과 함께 꺼진 핸드폰을 쇼파 위로 던져놓은 시혁. "… 악마라… 도대체 어떤 녀석인지 궁금해지는 군." 시혁의 눈이 날카롭게 변했다. 한껏 낮아진 음성은 시혁이 화가 났다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는 듯 했다. "네가 아픈 게 이 녀석 때문이라면, 절대로 널 넘겨주지 않아…" 08. 시혁과 함께하는 등교길. 미노의 얼굴에 묻어나는 미소에 시혁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교문을 통과하자 시혁을 기다리고 있었던 건지, 여자애들이 온갖 선물을 들고 시혁에게로 달려왔다. "꺄! 선배님, 이거 받아주세요!" "어머, 선배님 오늘도 눈부셔요!" "시혁아~ 사랑해! 내 마음을 받아…" "비켜, 이년아! 선배님- 언제봐도 늘 샤프한 모습에 반해버렸어요!" "선배님… 너무 잘생기신 거 아니에요?!" 쫑알쫑알. "역시, 학생회장은 뭐가 달라도 다르나봐요?" "… 짜증나게…" 고개를 숙이고 있던 시혁에게서 음산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시혁이 건네준 캔디를 입에 넣은 채 오물거리던 미노는 시혁의 목소리에 흠칫- 하며 몸을 떨었다. 온 몸에서 검은 오로라가 뿜어져 나오는 듯한 느낌. 슬로우버전을 보는 것 같이 느리게 고개를 든 시혁이 여자애들을 본다. "꺄아- 선배님! 너무 멋지세요!" "으악! 나 지금 코피 터질 것 같아! 너무 섹시하잖아!" "… 빌어먹을, 일일이 상대하는 것도 피곤해…" 신기하다는 듯 여자애들 사이를 기웃거리는 미노의 팔을 잡아채 건물 안으로 들어온 시혁. "아, 데려다 주셔서 고마워요! 점심 때 놀러갈게요!" 탁- 교실로 뛰어가려는 미노의 팔을 잡은 시혁. 미노가 왜 그러냐는 듯이 쳐다보자 그런 미노의 시선을 무시한 채, 시혁은 1학년 7반 교실로 향한다. 드르륵- 여, 여긴 앞 문이거든요? 저기요, 학생회장님… 지금은 조례시간이니까 아무래도 담임선생님이 계실… "미노군, 무슨 실례죠? 뒷 문으로 들어…어머나! 시혁군!" 미노에게 핀잔을 주던 담임은 뒤에 선 시혁을 보고는 얼굴을 붉혔다. 뭐야, 이 아줌마가 지금 누구한테 침을 흘리는 거야! "시혁군이 어떻게… 여기에…" 싱긋- "안녕하세요, 선생님." 아줌마(시혁에게 침을 흘렸다는 이유로 아줌마가 되어버린 불쌍한 담임)에게 꽃미소를 살포시 날리며 인사한 시혁. 순식간에 눈이 하트가 되어버린 아줌마가 시혁을 쳐다본다. "그래요, 시혁군… 아침부터 샤방하…아니, 이게 아니고. 오호호, 어쩐 일이죠?" "이 녀석 결석한 거, 학생회 일 때문이니 무단 결석 처리하지 말라고 전해드리러 온 겁니다." 웃고있는 얼굴과는 달리 확연한 사무적인 말투. 시혁과 미노를 번갈아 쳐다보던 아줌마는 수줍게 고개를 숙이고는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이봐, 뭘 그렇게 부끄러워 하는건데? "그럼 전 이만…" 미노를 교실 안으로 들여보낸 후, 몸을 돌리던 시혁. "아, 잊을 뻔했네…" 미노를 향해 예쁜 미소를 지은 시혁이 허리를 굽혀 미노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 순간 싸- 해져버린 교실 안. 미노를 지켜보던 이현의 표정이 확연하게 굳어있다. "누가 괴롭히면 나한테 와, 환영할테니." 웃으며 미노의 머리를 흐트린 시혁이 손을 흔들어 보이며 서서히 멀어졌고, 교실 안으로 걸음을 옮기는 미노. "세상에… 학생회장도 미노한테 반한거야?" "좀 예뻐야지, 게다가 얼마나 귀엽니… 나 같아도 반할 것 같은데…" 수군거리는 아이들을 지나쳐 자리로 간 미노가 메고 있던 가방을 내려놓았다. 의자에 앉으려는 미노의 팔을 잡은 이현. "… 아팠다며, 이제 괜찮냐?" "응, 아무렇지도 않아." 살짝 미소지은 미노가 자리에 앉자, 이현은 미노를 잡았던 손을 놓았다.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자신을 보고 웃는 미노의 모습에 이현은 가슴 한 켠이 아려왔다. "어제…" "아, 그 얘기라면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니까 신경쓰지 마." "아무 일도 없었어." "… 거짓말, 같이 있겠다고 한 건 이현이 너였잖아? 그런데도 아무 일이 없었다니…" 말도 안 된다는 듯 고개를 작게 저으며 말하는 미노. 그런 미노를 슬픈 눈으로 보던 이현이 중얼거렸다. "너 말고는… 다른 누구도 가질 생각 없어…" * 학생회실. 높은 곳에 있는 책을 꺼내려 낑낑대는 미노. 의자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까치 발을 든 채, 손을 위로 쭉 뻗고 있다. 탁- "앗! 잡았… 꺄악!" 아니나 다를까, 의자가 넘어지며 미노가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하지만, 몸에 느껴지는 통증은 없다. 미노가 감고 있던 눈을 살짝 떠 보니, 눈 앞에 보이는 남자. 아… 이 사람은… "아, 저… 저기…" "언제나 넌 아슬아슬하네." "… 에?" 피식- 빨려들어갈 듯한 푸른 눈동자가 미노를 향했다. "… 아, 이제 내, 내려주세요!" 살짝 웃은 남자가 안았던 팔을 풀며 미노를 가볍게 땅에 내려놓았다. "저기…예, 예찬선배… 저번에 창고 앞에서 구해주셨는데, 고맙다는 인사도…" 털썩- "그런 거 필요없어." 의자에 앉은 예찬은 옆에 있던 서류 철 중 하나를 빼들었다. 예찬에게로 걸음을 옮긴 미노는 예찬이 들고있는 서류앞으로 몸을 굽혔다. 옆에서 풍겨오는 플레져 향기에 예찬이 서류를 보던 것을 중지하고 허리를 숙인 채 열심히 서류를 읽고있는 미노를 쳐다본다. "… 너." "에…?" "… 나 유혹하냐…?" "에엑- ?!" 황급히 물러나는 미노. 그런 미노의 반응이 재미있다는 듯 작게 웃는 예찬. "유, 유혹이라니요! 무슨 말도 안되는…" "그런 모습으로 계속 있다는 건 누군갈 유혹하는 모습으로 밖에 안 보이는데?" "… 에?" 예찬의 시선이 머문 곳으로 눈을 옮긴 미노는 으앗-! 하는 비명소리와 함께 황급히 뒤로 돌았다. 의자에서 떨어질 때 충격으로 단추가 풀어져있다. 으아- 어떻게 이런 일이! 좀 더 조심하지 않으면 여자라는 걸 금방 들켜버리고 말거야! "아, 저기… 전 그럴 생각이 전혀…" 피식- "너, 꽤 재밌는 아이구나…" "… 에?" "그런 아방한 얼굴로 서 있지 말고, 네가 어질러놓은 것들이나 정리해. 회장 화나면 엄청 무섭거든." 싱긋- 예찬의 말에 바닥에 어질러진 책들을 주섬주섬 주워모은 미노가 의자 위로 올라가 차곡차곡 있던 자리에 책을 넣는다. 그 모습을 턱을 괸 채 가만이 지켜보고 있는 예찬. 드르륵- 문이 열리는 소리에 놀란 미노가 으앗-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야야…" 인상을 찌푸린 채, 부딪힌 곳을 매만지는 미노. "… 괜찮아? 많이 다쳤어?" 고개를 저으며 씨익- 하고 웃는 미노를 보며 시혁은 허탈하다는 듯이 웃었다. 옷을 탁탁 털며 일어난 미노가 활짝- 웃으며 예찬을 본다. "… 바보같아." 예찬의 무심한 한마디에 미노의 얼굴이 울상이 되었다. 그 모습을 보던 예찬이 이내 피식- 하며 웃어버리고는 들고 있던 서류철로 미노의 머리를 톡- 하고 내리쳤다. "자꾸 나 유혹하면 혼난다… 꼬맹아." 09. 드르륵- 쾅! 한 무리의 남자들이 7반 교실로 쳐들어왔다. 수업을 하던 여선생님은 밖으로 줄행랑을 쳐버렸고, 교실에 남은 아이들은 그들을 덜덜 떨리는 모습으로 쳐다보았다. 야구배트와 오토바이체인, 각목 등의 무기를 가진 남자들은 교실을 쓰윽- 하고 둘러본다. "… 여기 도미노란 새끼 있다는데, 당장 나와라." 덩치만큼이나 굵직한 음성. 중간 정도의 덩치를 가진 남자가 남학생을 붙잡고 물었다. "도미노란 새끼가 너냐?" "아, 아니… 저, 저기…" 미노의 자리를 가리킨 남학생을 놓아준 덩치가 자고있는 미노에게로 향했다. 새근거리며 자는 모습을 보던 덩치는 들고 있던 야구배트로 책상을 탕- 하고 내리쳤다. "어이, 도미노. 얼굴 좀 보자!" 덩치의 소란에 눈을 뜬 미노. 흐릿한 눈동자에는 차가움이 묻어있다. 미노의 하얗고 예쁜 얼굴에서 풀풀- 풍겨오르는 살기에 덩치가 움찔- 하고 몸을 움직였다. 서서히 몸을 일으킨 미노가 흐릿한 눈동자에 잔인함을 담고서 덩치를 본다. "… 넌, 뭐냐?" "네가 도미노란 녀석이냐? 며칠 전에, 우리 애들 중 하나가 손가락이 병신이 되서 왔더라. 그 빚을 좀 갚아주려고 친히 찾아오셨다." "… 죽기 싫으면 다가오지 말라고 했을텐데… 그 새낀 고막이 막혔다든?" 초점이 잡힌 미노의 눈동자에 잔인함이 느껴졌다. 어차피, 내 잠을 깨운 늬들을 그냥 돌려보낼 생각은 없었거든… 이유야 어찌되었든… 좀 밟혀줘야겠어… "대단하다는 그 실력 좀 보자." 피식- 실소를 뿌린 미노가 덩치의 뒤로 시선을 옮겼다. "… 난 다 같이 놀고 싶어…" 미노의 말에 아이들의 표정이 경악에 찼다. 무기를 들고 있는 놈들을 한꺼번에 상대한다니… 분명 미노가 피떡이 될 거라고 생각한 아이들이었다. "우릴 너무 얕잡아보는 것 같은데… 저 녀석들 손에 들린 것들이 네 눈에는 안 보이는 거냐?" "… 너." "뭐? 이 애송이 새끼가 어디서 반말을…!" 얼굴을 향해 뻗은 덩치의 주먹을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피한 미노. 그와 동시에 오른손을 내밀어 크로스 펀치를 덩치의 이마에 질러 준 미노는 덩치의 고개가 뒤로 젖혀지자 앞으로 도약하며 팔꿈치로 넘어지는 덩치의 코를 내리찍었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으로 쓰러져버리는 덩치. 깔끔하게 한 놈을 처리해버린 미노의 모습에 아이들의 얼굴이 놀라움으로 물들었다. 씨익- "… 다 같이 놀자고 했잖아, 말을 안 들으니까 이렇게 되는 거야…" 눈이 하얗게 뒤집힌 채 쓰러져 있는 덩치에게 닿아있던 시선을 뒤에 서 있는 무리에게로 옮긴 미노. 싸늘함이 깃든 눈동자로 그들을 보던 미노는 주저할 것 없이 그들 사이로 다가갔다. 그런 미노를 향해 겁 없이 달려오는 한 놈. 미노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미노는 그를 향해 빠르게 움직이는 동시에 몸을 조금 띄어올린 다음 양 손으로 덤벼오는 놈의 머리를 잡은 채 무릎으로 미간을 쳐버렸다. 쿠당탕- 자그마한 신음과 함께 바닥으로 쓰러진 놈. 미노의 실력에 아이들은 탄성을 내뱉었고, 지켜보던 무리들의 얼굴에도 놀라움이 가득했다. "부디 도망가지 않길 바래… 결코 깔끔한 모습으로 돌려보내진 않을테니…" 낮은 목소리로 읊조리는 미노. 그런 미노의 목소리에 겁을 집어먹은 한 놈이 밖으로 도망치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 어느새 도망치는 놈의 머리를 뒤에서 잡아당긴 미노. 놈의 허리가 휘어지는 동시에 옆으로 한 발자국 움직인 미노가 다리를 걸어 몸의 무게를 실으면서 팔로 목을 찍었다. 자그마한 신음도 흘리지 못하고 기절해버린 남자의 입에서 거품이 흘렀다. "… 덤비라구…" 미노의 싸움실력은 결코 애송이의 수준이 아니었다. 눈으로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빠른 움직임, 깔끔한 발차기와 몸놀림. 마치 춤을 추는 것 같은 모습에 아이들은 숨을 죽이며 미노를 지켜보았다. 도망치는 것 조차 불가능한 상태를 자각한 무리가 어찌되었든 자그마한 상처라도 입히기 위해 무기를 휘둘렀고, 씨익- 하고 웃은 미노가 놈들의 중앙으로 파고들었다. 퍼억- ! 퍽! 미노의 깔끔한 발차기가 한 놈의 관자놀이에 명중했고, 머리에 전해져오는 충격에 거품을 물며 기절 해 버리는 놈. "이 새끼가 감히!" 그들의 대장으로 보이는 덩치가 미노에게 덤벼들었다. 비겁하게 뒤에서 덤벼든 덩치의 공격을 몸을 옆으로 움직이며 피한 미노가 팔꿈치로 반격을 하며 덩치의 명치를 정확하게 먹였다. 인상을 찌푸렸을 뿐, 쓰러지진 않는 덩치. 피식- "지방이 많은 걸 감사하라구."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앞으로 뛰어나간 미노가 발로 턱을 올리며 덩치의 면상을 걷어찼다. 덩치의 몸이 뒤로 기울어지자 몸을 한바퀴 돌면서 오른쪽 다리를 올린 미노가 덩치의 얼굴을 내리찍었다. 쿵- "몸은 단련하면 충격을 막아낼 수 있겠지만, 얼굴은 단련할 수가 없거든." 대장이 기절해버리자 무리들은 오합지졸이 되어 마구잡이로 미노에게 무기를 휘둘렀다. 마지막 한 놈이 남았을 때, 미노의 눈동자가 그를 향했다. 살짝 실소를 뿌린 미노가 놈의 복부를 주먹으로 쳤고, 놈의 허리가 굽혀지자 양손을 깍지끼고 뒷덜미를 내려쳤다. 들고있던 무기를 제대로 휘둘러보지도 못한 채, 미노에 의해 기절해버린 놈. "… 곤란한데, 이러면 치울 사람이 없잖아…" 바닥에 널부러진 덩치들을 보며 머리를 긁적인 미노. 아까의 차갑고 싸늘한 모습은 어디로 간 건지, 난처하단 표정으로 아이들을 쳐다보고 있다. "저기… 얘네들 좀 어떻게 해줄래?" 미노의 말에 일동 차렷! 자세로 얼어있던 아이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싱긋- "앞으론 조심해야겠네, 학교에서는 사람을 죽이면 안 되니까…" 그럼 다른데선 죽여도 된다는 소리냐… 란 표정으로 미노를 보고있는 아이들. 오늘 일로 미노의 인기는 더욱 하늘로 치솟게 되었다나 뭐라나…(웅얼웅얼) * 옥상으로 올라가려던 미노를 학생회실로 데려온 시혁. 네 명의 소년이 각자 뭔가를 뒤적이며 쇼파에 앉아 있다. "아… 예찬선배! 뭐 보고 있어요?!" 책상에 앉아있는 예찬에게 다가간 미노가 예찬이 보고있던 서류를 화악- 하고 빼앗았다. 어이없다는 듯 눈부시게 파란 눈동자로 미노를 보는 예찬. 빠르게 서류를 읽어나가던 미노는 어렵다! 란 말과 함께 들고있던 서류를 예찬에게 던져준다. "시혁선배, 이거(?) 뭐예요?" 미노를 턱으로 가리킨 남자. 이, 이거라니! 내가 물건도 아니고 무슨…! "우주야, 미노는 물건이 아니란다." 그렇지! 역시 시혁선배가 최고야! 엄지손가락을 들어보이는 미노를 향해 살짝 웃어준 시혁. "소개해줄게. 창가에 기대있는 녀석, 이름은 류예. 2학년이고, 의자에 앉아서 책 읽고 있는 녀석은 최은샘. 미노 너랑 동갑이네. 뭐, 예찬인 소개 안 해도 알겠고, 마지막으로 널 물건 취급했던 저 녀석은 서우주. 류예와 같은 2학년이야." 시혁은 잠깐 나갔다 와야겠다며 류예와 은샘, 예찬일 데리고 사라져버렸다. 에씨… 왜 하필 이 녀석이랑 둘이 남아있어야 하는거야! 웅얼거리며 구석에 주저앉은 미노가 옆에 보이는 상자에서 캔디 하나를 꺼내 입에 물었다. 레몬 맛이 기분 좋게 입 속에 퍼진다. "… 야." "… 우움… 에?" (캔디를 먹고있는 상태로 발음이 좋지 않다) "그거 독 들었다." "… 에엑…! 퉤…!" 급히 먹고있던 캔디를 뱉어낸 미노가 놀란 얼굴로 우주를 본다. "… 푸하하하! 너 진짜 웃긴다… 그걸 믿냐? 큭큭." 으… 저 사악한 자식. 소이현 다음으로 제일 나쁜 녀석일지도 몰라. 으아- 내가 제일 좋아하는 레몬맛 캔디였는데… 하나 남았던 건데… 이제 없잖아…! "… 뭐 찾냐?" "레몬 맛 캔디… 없잖아!" "그거 좋아하냐?" "마지막 남은 거였는데… 이제 여기 없는데…!" 휙- "아야!" 미노를 향해 뭔가를 던진 우주. 이마를 문지르며 던져진 상자를 연 미노. "마, 많다!" "… 다 먹어라." 우움… 경계하는 눈빛으로 우주를 보는 미노. 하지만 이내 하나를 입에 쏙 집어넣고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는다. "웃지 마라, 정 든다." 싱글거리고 있는 미노를 향해 쿠션을 던져버린 우주. 우주가 던진 쿠션을 얼굴에 정통으로 맞은 미노가 울상을 지었다. "… 그것도 못 피하는 게 싸움 실력은 왜 프로 급인건데…?" 10. 가방을 삐딱하게 둘러 멘 미노가 하교하는 아이들의 틈에 섞여 교문으로 향하고 있다. "잘 가, 미노야!" "내일 뵈요, 미노님!" "미노님 조심해서 가세요!" 서비스 정신으로 미소를 한방 날려준 미노가 고개를 돌렸다. 멈칫- 앞에 서 있는 사람을 본 미노의 얼굴이 서서히 굳어갔다. 바람에 흩날리는 붉은머리카락. 소유욕 가득한 눈빛. 웃고 있는 입술에 걸려있는 기분 나쁜 미소. "… 오랜만이다, 도미노." "무, 문찬혁…" 미노가 서서히 뒤로 물러났다. 찬혁을 보는 미노의 눈동자가 잿빛으로 변했다. "… 찾느라 고생 좀 했다. 근데… 앞으론 도망가지 마라, 주위 사람들 다친다." "……!!" 찬혁의 말에 미노가 눈을 크게 떴다. 대체 누굴 건드린 거야. "… 애써 찾아왔는데, 왜 자꾸 날 피하는 거지…?" 찬혁의 목소리에 미노는 온 몸에 소름이 돋아오는 것을 느꼈다. 다가 오지 마… 더 이상… 더 이상은… 탁- 미노는 등에서 느껴지는 차가움에 입술을 깨물었다. 더 이상… 뒤로 물러날 수가 없어… 젠장! "미노야… 보고싶었어…" 찬혁이 검지로 미노의 턱을 들어올렸다. "부탁이야… 다가오지 마… 제발… 흐흑…" "후후, 천하의 도미노가 내게 애원을 다 하다니… 찾아온 보람이 있는데?" 미노의 눈에서 맑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찬혁이 미노의 눈에 맺혀있는 눈물을 핥았다. 움찔- "울지 마, 우린 곧 결혼할 사이가 아니던가…?" "시, 싫어… 놔 줘… 놓으란 말이야! 합!" 미노의 허리에 팔을 두른 찬혁이 나머지 손으로 미노의 입을 막았다. 미리 세워두었던 차의 문을 열고 미노를 밀어넣은 찬혁. "출발해." 짧게 한마디를 던지자 차는 곧 속력을 높이며 자리를 떠났다. "네가 잊혀지지가 않았어…" "저리 가… 오지 마! 오지 말란 말이야!" 미노가 소리치자 찬혁은 입술을 옆으로 그으며 웃었다. 그 모습에 몸을 떠는 미노. 끼익- 차가 세워지자 미노는 바로 문을 열고 달렸지만, 곧 찬혁의 손에 의해 잡히고 말았다. 풀썩- 쌓여있던 매트 위로 미노를 던진 찬혁이 미노의 위에 올라탔다. "넌 내꺼야, 도미노." 찬혁의 손이 미노의 와이셔츠 단추를 풀어나갔다. "이러지 마, 제발… 놓아 줘, 부탁이야!" 미노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아랑곳하지 않고 미노의 와이셔츠를 벗긴 찬혁이 미노의 입술을 탐했다. "윽-" 미노가 찬혁의 입술을 깨물었고, 황급히 입술을 뗀 찬혁의 입술에서 피가 새어나왔다. 미노의 행동에 화가 난 찬혁이 미노의 몸을 누르고는 목덜미에 입을 맞춘다. "찬혁아… 부탁이야! 제발 놓아줘! 이러지 마!" 미노가 울부짖었다. 이런 거 싫어… 제발 누가 좀 도와 줘… 소이현… 제발, 제발 나 좀 구해 줘… 이현아… 흐흑… 퍼억- "으윽… 씨발, 뭐야!" 찬혁이 옆구리를 부여잡고는 미노의 위에서 떨어져 나갔다. "넌 뭐야, 이 새끼야!" 온 몸을 휘감고 있는 살기. 섬뜩한 눈빛이 찬혁을 향했다. "… 더러운 새끼, 싫다는 여자를 범할 정도로 형편없는 쓰레기일 줄이야…" "… 이현아…흐흡… 으흑…" 울고 있는 미노에게 쟈켓을 걸쳐 준 이현. "미노야, 잠깐만 눈 감고 있어…" "싫어… 나, 나…" "… 미안하다." "무…!" 스르륵- 이현의 품으로 쓰러진 미노. 미노가 눈치채지 못하게 뒷 목을 쳐 기절시킨 이현이 미노를 안아 옆에 있던 남자에게로 넘겼다. "차에 태워." "네, 총수님." 미노를 데려가는 것을 확인한 이현이 싸늘한 표정으로 옆구리를 부여잡고 있는 찬혁을 내려다본다. "어디로 데려가는 거야! 간신히… 간신히 찾았는데! 왜… 컥!" 퍼억- 이현의 구둣발이 찬혁의 목을 밟았다. 인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이현의 눈동자. "… 네 까짓게 감히… 누굴 건드려…" "켁… 너, 넌 뭐야! 이 새끼야! 컥!" 이현이 찬혁의 목을 밟고 있는 발에 힘을 주자 숨쉬기가 곤란한 듯 켁켁대는 찬혁이었다. 으드득- "으아아악- !" 이현이 찬혁의 옆구리를 밟자, 듣기만 해도 소름끼치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끔찍한 비명을 지르며 숨을 헐떡이는 찬혁. 처음에 이현에게 걷어차인 옆구리는 이미 갈비뼈가 나가버린 상태였기에 이현의 발이 닿자 고통이 더해진 것이다. 아픔을 참지 못한 찬혁이 고개를 떨구며 기절했다. 찬혁이 기절한 것을 본 이현은, 싸늘한 표정을 지으며 뒤에 있는 남자들에게 명령했다. "… 깨어날 때까지 가둬 놔. 미친 놈의 최후가 어떤 것인지 뼈저리게 느끼게 해 줄 테니." * 미노를 안고 집으로 온 이현은 조심스럽게 침대 위에 미노를 내려놓았다. 하얗게 질린 채, 무서움에 떨고 있던 미노의 모습. 어째서 조금 더 빨리 알아차리고 구해주지 못했을까… 이현은 자신의 어리석음을 꾸짖었다. 흑월회의 일을 처리하기 위해 잠시 학교를 떠난 사이, 이런 일이 벌어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혹시나 해서 미노에게 붙여놓은 부하가 알려주지 않았더라면… 미노는… 더 이상은 생각하고 싶지 않다는 듯 머리를 세게 흔든 이현이 손을 들어 미노의 머리칼을 쓸어넘겼다. "더 없이 소중하기만 한 너인데… 어떻게 널 건드릴 수 있었겠어…" 조용히 중얼거린 이현이 슬픈 미소를 지으며 방을 나갔다. 달칵-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잠에서 깬 미노. 이현의 방이라는 것을 알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하지만 미노의 눈동자는 두려움에 떨리고 있다. "… 현아… 이현아…" 달칵- 미노의 목소리를 들은건지, 밖에 있던 이현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와락- "으아앙- 무서웠어… 흐흑… 미치는 줄 알았어…! 으흐흑…" 이현의 목을 끌어안은 미노가 목놓아 울었다. 그런 미노를 꼭 끌어안은 채 등을 토닥이는 이현. 어째서… 어째서 이 녀석이 생각난 것일까… 항상 못 되고 제멋대로 굴던 녀석인데… 왜 무서웠던 순간에 생각난 얼굴이 이 녀석이었을까… "많이 무서웠지…? 늦게 가서 미안해…" 이현의 따뜻한 목소리에 와앙- 하고 울어버리는 미노였다. 한참동안 이현의 품에 안겨 울던 미노는 지쳐 잠이 들었고, 그런 미노의 이마에 가볍게 입맞춘 이현. "이젠… 무서워하지 않게, 다신 혼자 두지 않는다고 약속해." 문을 닫고 나온 이현이 핸드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신호음이 가자 상대편에서 전화를 받는다. - 초, 총수님이 어떻게… "네 정보망을 좀 빌리고 싶군. 문찬혁이라는 녀석에 대해 최대한 많이 알아 봐. 과거, 집안 전부. 모든 걸 확실하게 조사해." - 네, 알겠습니다. "알아내는 즉시 내게 연락하도록 해." - 네, 총수님. 전화를 끊은 이현의 눈이 매섭게 빛났다. "… 미노를 괴롭힌 값, 몇 배로 네 녀석에게 되갚아주겠어… 흑월회의 명예를 걸고서 확실하게 밟아주지." 댓글 195 인쇄 | 스크랩(0)▼ 눈망울™ 'ㅁ' 잘보고가효! 08.04.13 22:04 답글 윤갱ㅇ♥ 이현이멋쟁이 '----- ' ♥ 08.04.18 18:59 답글 너만의반려자 언제나 읽어도 역시나 재미있어 굿 ㅋㅋ 08.05.02 03:08 답글 백흑의소녀 아~앙완전재밌어용+ㅁ+다음편보러고고싱>///< 08.05.06 10:23 답글 류마꼬꼬♡ 와우~ 정말 재밋네요~ 담편기대~ 08.05.06 22:29 답글 혼도미 재미있어요 >_< 08.05.22 16:34 답글 하마돌려 잼잇어요 !! 08.06.06 17:44 답글 風猫 와~ 엄청재미있어요> -ㅡ < 08.06.15 16:08 답글 as친구as 중간에 잔깐식 나오는그여자는뭐야?아현이도 그여자를 안말리던데 ? 혹시 그여자랑 안좋은 과거가 있어서 그냥 나두는 건가? 08.07.16 21:24 답글 96816 근데 이거... 진도가 빠르다는 .. 여기서 강간 당할 뻔 하고 또 2명이 남장한 주인공에게 반하고 =_=??? 또 빨간대갈통도 등장하고 .. 08.07.27 03:35 답글 ┗ 루아젤 빨라도 재미만 있잖아요? 08.10.04 15:47 이쁜가을 또봐도재밌어요~~~~~~ㅎㅎ 08.07.31 00:57 답글 행이 멋있어!!!!!!!!!!!!!!! 08.07.31 11:47 답글 행복찾아삼만리 재밋당ㅋ 08.08.03 16:49 답글 넘이뿐콩콩이 둘다 넘 맘에 들어요~ 멋쪄요~ 08.08.03 17:10 답글 개구장히 글씨가너무작아여 ㅡㅡ 08.08.04 02:43 답글 크라잉 게임 잘보고가여~ 08.08.04 11:49 답글 마렌 이현이 너무 멋있어요 ㅋㄷ 08.08.07 23:07 답글 노랑 머..머싯다 +_________+ 08.08.10 21:14 답글 goddess 우아..ㅠㅠ 짱 멋져요..ㅠㅠㅠㅠㅠㅠ 08.08.11 09:13 답글 마늘이좋아 ㅋ 08.08.12 01:12 답글 LaTale 이현이 짱이야 ㅎㅎ 계속 미노 지켜주기~! 08.08.22 15:22 답글 내남자이승현 재밌어용*0* 08.08.29 23:20 답글 레이♥ 재밌어요~~ 08.09.03 18:16 답글 Cielo 이거 .. 관계가 좀 복잡할듯 한데?ㅋㅋㅋ 08.09.03 22:04 답글 잠온다ㅜ 재밌어요~~ㅋ 08.09.12 11:43 답글 입흔꼬맹oi 미노야 복이 참 많쿠나 -0- 부럽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 09.03.02 20:46 답글 lemon tree 이현오빠 넘멋지당>_< 08.10.10 23:25 답글 별빛아랜 진짜로 많이 읽었당 그래도 잼잼있어요...... 08.10.16 19:19 답글 달콤한-Girl 남소카에서는 이게 명물인거 같아요>< 08.10.26 17:36 답글 suju-성민ㅎ 너무 잼써요 ㅠㅠ.. 미노 부럽..!! 08.11.15 20:36 답글 두아 너무재밌네요 기대하겠습니다~ 09.01.07 19:40 답글 매력적인 재미있어요 09.01.14 14:11 답글 S2oc날나리ocS2 09.01.20 20:25 답글 노랑 몇번을봐도재미있다 키키 09.01.29 12:32 답글 wkddmsgP 이현짱짱짱 머싰 다!!!!!111 09.02.02 17:09 답글 남장중 ㅋㅋ 짱이예요!!! 09.02.08 23:43 답글 †.피노키오 .. 글씨 어떻게 하는건가요..? ;;>_< 09.02.27 11:31 답글 윈윌 와아 재밌어요-아현 짱짱짱>< 09.05.30 14:06 답글 娥玄 꺄아------------------------캡임 09.06.21 11:28 답글 네모박스① 잘봤어요^^ 09.07.06 04:20 답글 이병현미오 으~~~~~~~~~너무잘봣서용 ㅠㅠ넘넘재밋네용 09.07.25 18:30 답글 곰도리다 완전재밌어요!!!!!!!!>_< 09.08.01 18:56 답글 미묘천설 흐미... 남자가 몇이니, 미노야. 09.10.05 15:05 답글 월햐소설 와 나 이런류 너무 좋아 잼있어요 작가님넘 멋쪄요 ^^ 09.10.14 09:01 답글 ◀이전 1 2 3 4 다음▶ 등록 텍스티콘 0 / 300자 회원은댓글을 쓸수 없습니다. 등록 텍스티콘 0 / 300자 글쓰기 답글 최신목록 | 목록 | ▲윗글 | ▼아랫글 ▲윗글 | 남장† 위험한 도발, 미치도록 차가운 그 녀석의 키스에 길들여지다 11~20 2008.02.10 ▼아랫글 | [남장] 인.형[人形]-번외 2008.01.04 ▲top 서비스 약관/정책 | 권리침해신고 | 카페 신고 | 이용약관 | 카페 고객센터 | 검색비공개 요청 Copyright (c) Daum Communications Corp. All rights reserved. ------------------------------------------------------------------------------------ 남장소설ㄲt페boy (http://cafe.daum.net/boyhamr) 제목 : 남장† 위험한 도발, 미치도록 차가운 그 녀석의 키스에 길들여지다 작가명 : H. 체리비。 메일 : moon-sters@daum.net">moon-sters@daum.net 연재장소 : 남장소설카페 총 편수 : 60편 장르 : 남장소설 ------------------------------------------------------------------------------------ - 위험한 도발, 미치도록 차가운 그 녀석의 키스에 길들여지다 11. "으윽-" 찬혁은 옆구리에서 느껴지는 미칠듯한 고통에 입술을 깨물었다. 주위를 둘러보는 찬혁의 눈에 띈 문양. "검은…달?" 흑월회의 문장. 뒷세계의 사람들에게 흑월회는 곧 죽음을 의미했다. 찬혁도 아버지를 통해 어느정도 들은 적이 있었던 지라, 느껴지는 두려움은 배가 되었다. 철컹- 문이 열리고, 빛을 등지고 들어서는 남자의 모습에 찬혁의 시선이 머물렀다. 날카로운 눈매에서 느껴지는 섬뜩함. 코트에 새겨진 흑월회의 문장에 찬혁의 눈이 커졌다. "총수님." 옆에 서 있던 남자가 들고 있던 파일을 건넸다. 파일을 훑어보던 이현의 얼굴이 점점 싸늘하게 굳어갔다. "… 다, 당신 뭐야! 왜 날 이리로 데려 온 거지?" 탁- "너도 뒷세계의 아버지를 둔 놈이니… 얘기가 잘 통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파일을 건네준 이현이 찬혁을 보았고, 찬혁은 이현의 눈에서 느껴지는 살기에 몸을 움츠렸다. "지난 3년간… 미노를 따라다녔더군…?" "그, 그게 너랑 무슨 상관이지?! 도미노, 미노를 내 놔!" 퍼억- 이현에게로 달려들던 찬혁이 이현의 발길질에 나가떨어졌다. "너 따위 놈에겐… 미노를 주지 않아." "크윽… 걘 내 꺼야! 당장 내 놔! 도미노를 돌려 줘!" 찬혁이 이현을 향해 발악하고 있을 때, 문이 열리고 미노가 들어섰다. 이현이 손을 내밀자 그 손을 잡고는 이현의 뒤에 선 미노. "도미노! 야, 도미노! 넌 내꺼야! 누구한테도 안 뺏겨! 당장 이리오지 못 해?!" "… 미노가 왜 네 놈 것이지?" "그건 당연하잖아? 내가 아니고는 도미노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놈이 없어! 그러니 내 놔!" 미노를 향해 손을 뻗는 찬혁. 하지만 그의 손은 이현에 의해 차단되었다. "여전히 벌레같은 놈이군." 퍼억- 이현의 다리가 찬혁의 얼굴을 정확히 쳐올렸다. 켁켁대며 뒤로 물러난 찬혁이 독기어린 눈으로 이현을 쳐다본다. "도미노가 누구의 것인지, 똑똑히 보여주지." 이현이 미노의 손을 끌어당겨 키스했다. 한 손으로 미노의 양 손을 결박한 이현이 미노의 와이셔츠의 단추를 두 개 푼 다음, 목덜미부터 아래로 내려가며 차례로 입을 맞추었다. "… 아, 안 돼… 걘 내 꺼야! 도미노는 내 꺼라고!" 찬혁이 이현을 향해 손을 뻗었지만, 조직원들에게 붙잡혔다. 이현의 손이 미노의 허리를 감고 더욱 깊숙히 미노의 입술을 탐했다. "… 미노에게 닿았던 네 놈의 썩어빠진 손목을 끊어버리지 않은 걸 감사하는 게 좋을거야." 너무나도 차가운 말투. 이현이 던진 말에 찬혁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자신을 보고있는 눈동자에 떠오른 싸늘함과 이현의 몸에서 느껴지는 위압감. 흑월회의 총수, 소이현… 말로만 듣던 그의 진정한 모습이었다. * 이현의 품에 안겨 집 안으로 발을 들여놓은 미노. 자신이 원해서 키스를 한 게 아닌데도, 찬혁에서 느껴지는 거부감이 이현에게는 느껴지지 않았다. "조금 전의 일… 사과하지 않아." "… 응?" "소독이라고 생각해도 괜찮으니까…" 희미하게 웃은 이현이 미노를 쇼파에 앉혔다. 항상 악마 놈이라고 미워하고 나쁜 놈 취급했었는데… 이현은 어떤 상황에서도 미노의 편이 되어주고 있었다. "… 저기…" "……?" 나가려는 이현의 팔을 잡고는 조심스럽게 이현을 보는 미노. 아기같은 눈망울이 귀엽게만 보인다. "… 고마워…" 작은 목소리지만 이현의 귀에 분명하게 들리는 미노의 말. 이현은 한 쪽 무릎을 꿇은 채 미노를 끌어안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난 언제나 네 편이야." "… 이현아…" 미노가 팔을 올려 이현의 허리에 감았다. 이 녀석, 생각보다 나쁘지 않을 지도… 작게 미소지은 미노가 갸르릉거리며 이현의 품에 파고들었다. "… 이건… 고마움의 표시야." 이현의 볼에 살짝 입맞춘 미노가 쑥쓰러운 듯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런 미노를 보며 피식- 하고 웃은 이현이 손을 올려 미노의 얼굴을 감싸고는 시선을 맞추었다. 여전히 미노를 숨막히게 하는 이현의 눈동자. "네가 먼저 유혹한거야." "……!!" 미노의 입술에 이현의 입술이 닿았다. 강하게 파고드는 거친 키스가 아니라, 소중한 것을 어루만지는 듯한 부드러운 키스. "… 잠깐만, 키스해도 된다고는 안했… 읍!" 이현이 미노의 허리를 감아 끌어당겼다. 싸늘함을 담은 눈동자, 반항아 같은 거친 키스… "도미노, 넌 대체 정체가 뭐길래 날 이렇게 미치게 만들 수 있는거냐…" 12. 쾅- 문을 박차고 들어온 미노. 놀란 눈으로 미노를 쳐다보는 아이들을 향해 싱긋- 웃어 준 미노가 자리에 앉았다. "… 미노야, 담임이 너 교무실로 오래." "응, 알았어! 고마워!" 반장에게 샤방- 한 미소를 날린 미노가 교무실에 가기 위해 밖으로 향했다. 드르륵- "미노야, 너 이리 좀 앉아보거라." 제법 심각한 표정으로 미노에게 자리를 권하는 담임. 그런 담임을 의아하게 바라보며 맞은 편에 풀썩- 하고 주저앉은 미노. "너, 불량배들이랑 어울리고 다니는 거니?" "… 불량배? 누구요?" "얼마 전에 딴 학교 학생들이 찾아왔었다며, 애들한테 들었어." "아, 네! 맞아요, 걔네들 괜찮대요?" 미노의 반응에 담임은 어이없다는 듯 눈을 깜빡였다. 한숨을 푹- 내쉬고는 미노를 보는 담임. "자그마치 전치 12주야, 12주! 대체 왜 그런거니?" "… 우움… 잘은 모르겠는데요…" "모르겠다니! 전부 네가 한 일이잖아!" "… 그냥, 자고 있었는데 걔네들이… 내가 같이 놀자고 했는데… 혼자 놀아달라고…"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미노를 보고 있는 담임. "… 저기, 음… 미노야, 정확하게 얘기해줄래? 그래서는 선생님이 어떻게…" "얘 잘못 없어." 옆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미노는 고개를 들었다.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서 있는 우주. "잠이 덜깨서 헛소리하는 애 붙잡고 뭘 물어보려는 거야?" 헛소리라니! 잠이 오긴 하지만… 분명히 눈 앞이 흐릿할 정도로 잠이 오긴 오는데! 헛소리를 한 건 아닐거야…(앞에서 무슨 말을 했는 지 기억하지 못함) "그 일은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얘는 내가 데려간다." 탁- "자, 잠깐만, 서우주! 이건 학교의 명예가 달린 일이야! 그렇게 간단히…" "교칙 제 1조, 교사는 학생회가 정한 의견을 따른다." 우주의 말에 담임은 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밍숭맹숭(?)한 표정의 미노를 데리고 교무실을 나온 우주가 향한 곳은 학교 옥상. 시원하게 부는 바람을 맞던 미노가 구석에 앉아 눈을 감은 우주를 쳐다본다. "뚫어지겠다, 그만 봐." 미노의 시선을 느낀 우주가 눈을 사르르- 떴다. 휙- 하고 급히 고개를 돌린 미노. 미노를 보던 우주가 자리에서 일어나 난간 쪽으로 향했다. 우주의 시선이 미노에게 닿았다. 투명하다고 봐도 무색할만큼 예쁜 눈동자, 새까맣고 긴 속눈썹. 희고 깨끗한 피부에 깨물고 싶을만큼 탐나는 촉촉한 입술. "내가 왜 싸움을 잘하는 건지 안 물어 봐…?" "난 남의 사생활에 관심없어. 얘기하면 듣는거고, 안 하면 안 들으면 그만이니까." 싱긋- "… 나는 어렸을 때, 조폭인 큰아버지 손에서 자랐어… 매일매일 특훈을 하며 싸움을 배웠지. 하지만 날 조폭의 손에서 자라게 할 수는 없다며 부모님은 강하게 반대하셨고, 큰아버지는 그런 부모님께 조건을 거셨어." "… 조건?" "응, 조건. 그 당시, 부모님은 큰아버지의 도움으로 자그마한 사업을 하고 계셨는데, 그 사업에 최대 투자자가 바로 큰아버지였어. 큰아버지는 날 조직의 후계자로 점찍어 놓으신 상태였기에 부모님의 반대를 어떻게 해서든 꺾어야 했을 거야. 그래서, 큰아버지는 회사와 나 둘 중에 선택하라고 조건을 건 것일테지. 물론 큰아버지는 자신의 도움으로 억지로 살아나가고 있는 부모님이 회사를 선택하실 줄 알았겠지만, 아버진 당당하게 날 선택해주셨어. 화가 나신 큰 아버지는 아버지가 운영하던 회사를 부도나게 만들어버리셨지. 그 덕분에 우린 빚더미에 앉게 되었고, 지금 한 사람의 도움으로 빚은 갚았지만, 아직 내겐 그에게 갚을 돈이 남아있어." "… 넌, 부모님을 위해 조직을 이을 생각은 없었어?" 우주의 말에 미노는 고개를 저었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흐를 것 같은 젖은 눈동자. "말을 할 수가 없었어… 그 분들의 눈에는… 나를 향한 사랑이 넘쳐흐르고 있었으니까…" * 어째서인지, 수업을 듣지 않는 이현은 할 일이 있다며 학교를 나갔고, 혼자 남겨진 미노는, 교실을 쓰윽- 둘러보고는 학생회실로 향했다. 드르륵- 쇼파에 누워 잠이 든 시혁이 보인다. 살금살금 다가간 미노가 시혁의 곁에 앉았다. 매끈하게 뻗은 턱선이 보는 사람을 설레게 만든다. 탁- 시혁이 미노의 손목을 낚아챘다. 그 바람에 꺄앗- 하는 비명과 함께 소스라치게 놀란 미노. 뭐, 뭐야… 자고 있었던 거 아니었어? "… 자는 사람 훔쳐보는 취미도 있었어?" "아, 아니요! 그게 아니고, 전 놀러왔는데 선배가 자고있길래…!" 싱긋- 미노를 향해 눈부신 미소를 지은 시혁이 미노를 끌어당겨 쇼파에 눕혀버린다. 으, 으에에…! 당황한 미노가 눈동자를 굴리며 시혁을 쳐다본다. "… 전에 말했을텐데, 너 갖고 싶다고…" "아, 아니! 저는 선배랑 같은 남자! 거든요?! 그러니까 그런 장난은…!" "… 다른 얼간이들이 속는다고 나도 속을 줄 알았어?" "네! 으엑- ! 아니, 그게 아니고 그러니까! 무, 무슨 소리에요?!" 으으윽… 바보같은 도미노, 넌 정말 바보야, 바보천치야! "너 비 맞았을 때, 내가 했던 말 기억 나…?" "에…?" [옷은 메이드 아가씨가 갈아입혔으니까, 걱정하지 마] 메이드 아가씨가 갈아입혔으니까… … 메이드 아가씨가 갈아입혔으니까… …… 메이드 아가씨… 메이드 아가씨…… 아가씨?! "…!!" 미노의 눈이 커졌다. 놀란 토끼눈으로 시혁을 보는 미노. "너와 키스했을 때, 이미 알고 있었어." 문득 그 때의 일이 생각나 얼굴이 붉어진 미노. 피식- 하고 웃은 시혁이 미노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 다음 번에는, 진짜 너 가질 지도 몰라…" 싱긋- 하고 웃은 시혁이 미노의 머리를 흐트리고는 문을 열고 나갔다. 시혁이 나간 곳을 멍하니 보고있던 미노는 복잡해오는 머리를 도리도리- 하며 좌우로 흔들었다. 우움… 벌써 두 명이나 내 정체를 눈치 채 버렸으니… 이 학교를 떠날 날도 얼마 남지 않았구나. 드르륵- 문을 열고 들어오던 예찬은 쇼파에 앉아있는 미노를 힐끔- 보고는 들고 있던 상자를 내려놓았다. 의자를 빼 앉은 예찬이 미노를 향해 손짓했다. "이리 와, 케익먹자." 케익이라는 말에 귀를 쫑긋- 세우고는 예찬의 옆에 주저앉은 미노. 예찬이 포장을 풀고는 케익을 적당히 잘랐다. 한 조각을 접시에 담아 미노의 앞에 놓아준 예찬. "먹어 봐." 예찬의 눈을 보던 미노는 포크로 케익을 살짝 떠 입에 넣었다. 달콤하게 퍼지는 맛에 미노는 기분 좋게 미소를 지었다. "되게 맛있다!" 피식- 살짝 웃은 예찬을 본 미노가 케익을 떠 입에 넣었다. 미처 들어가지 못한 생크림이 미노의 입 가에 묻어있었지만, 눈치를 못채는 미노. 피식- 하고 웃은 예찬이 미노의 입가에 묻은 케익을 핥았다. "으아… 선배, 지금…" "생크림, 묻어있었어." "아! 그랬구나." 씨익- 하고 웃은 미노가 진짜 맛있다며 즐겁게 웃는다. 그 모습을 보던 예찬의 눈동자가 시리게 빛났다. "… 나도 줘." "에?" 예찬의 입술이 생크림이 묻어있는 미노의 입술을 덮었다. 달콤함이 묻어나는 키스. 갑작스러운 예찬의 돌발행동에 당황해버린 미노가 그대로 얼어버렸고, 입술을 뗀 예찬이 혀로 자신의 입술을 훑었다. "… 혼자만 먹은 벌이야." 13. 이현은 피곤한 듯 인상을 찌푸리며 관자놀이를 손바닥으로 지긋이 눌렀다. 노트북을 끈 이현은 쓰고있던 무테 안경을 벗고는 쇼파에 기대었다. "제길… 왜 이렇게 불안한 거야." 이현은 눈을 감은 채 이마 위에 한쪽 팔을 올려놓고는 중얼거렸다. 미노가 없는 집은 썰렁하기만 하다. 언제부터 미노가 있다는 게 당연하게 느껴진 이현. 이젠, 눈 앞에 보이지 않으면 불안하기까지 하다. "… 소이현, 미쳐도 단단히 미쳤어." 어쩔 수 없다는 듯 피식- 하고 웃은 이현이 침실로 걸음을 옮겼다. 지이잉- 이현의 핸드폰이 울렸다. 인상을 쓴 이현이 핸드폰의 슬립을 열었다. "무슨 일이야." - 이현아, 나 채희야. "용건 없으면 끊어." - 자, 잠깐만! 나 내일 너희 학교로 전학 가! "… 뭐?!" - 이현이 네가 너무 보고싶어서 너희 학교로 전학가기로 했다구! "누구 멋대로 여길 와? 당장 취소해." - 그럴 수가 없는 걸? 전학수속 이미 다 마쳤구, 나 지금 한국인데 잘 곳이 없어… 이현아… 데리러 오면 안돼? "닥쳐." 뚝- 전화를 끊은 이현이 핸드폰을 쇼파로 던져버린다. 나채희, 이현이 끔찍하게 싫어하는 여자. 악독하고 끈끈이처럼 질긴… 채희가 자신과 같은 하늘 아래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나빠지는 이현이었다. 미노가 필요했다. 이현에게 있어서 미노는 편안한 안식처이자 가지고 싶은 환상이었다.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미노의 환한 미소와 예쁜 눈동자. 당장이라도 달려가 미노를 품에 안고 싶은 이현이었다. 할 수만 있다면 미노를 작게 만들어 언제나 함께 있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현은 가슴벅차게 미노의 모든 것을 원하고 있었다. 피식- "어째서 이렇게 두근거릴까… 단지 너를 생각하는 것만으로." * 옥상 난간에 아슬아슬하게 발을 걸고 앉아있는 미노. 바람을 느끼며 노래를 흥얼거린다. 코코쟈나이도코카오사가시테이루 <이 곳이 아닌 어딘가를 찾고 있어> 세나카니카쿠시테타츠바사히로게 <등에 감춰둔 날개를 펼쳐> 코노소라에하바타쿠유우키가호시이 <이 하늘로 날아 오를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해> 에이엔노카나타에츠즈쿠소라 <영원의 저편으로 이어지는 하늘> 카제가후카나이히와 <바람이 불지 않는 날은> 스코시다케이소게바이이 <조금만 서두르면 좋아> 아라시가토마라나이요루니와 <폭풍이 멈추지 않는 밤에는> 후라카에라즈니하시레바이이 <뒤돌아 보지 않은 채 달려가면 좋아> 아나타가이키루토키오이키루 <니가 살아가는 시간을 살아가> 우시로스가타오오이카케루 <뒷모습을 쫒아> 타토에유우히가시즈마나쿠테모 <가령 석양이 지지 않아도> 타토에스베테오나쿠시테모 <가령 모든 걸 잃어도> 이츠노히모아나타오사가시테이루 <언제나 너를 찾고 있어> 코레쟈나이나니카오사가시테이루 <이것이 아닌 무언가를 찾고 있어> 미카즈키노코부네오우미니우카베 <초승달의 작은 배를 바다에 띄워> 쿠라야미에타비다츠유우키가아레바 <어둠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용기가 있다면> 오와리노나이아이니타도리츠크 <끝이 없는 사랑에 도달해> 아메가후라나이히와 <비가 내리지 않는 날은> 테오츠나기아루케바이이 <손을 잡고 걸으면 좋아> 아라시가토마라나이요루니와 <폭풍이 멈추지 않는 밤에는> 소노테오하나사나케레바이이 <그 손을 놓지 않으면 좋아> 아나타가이키루토키오이키루 <니가 살아가는 시간을 살아가> 우시로스가타오다키시메루 <뒷모습을 껴안아> 타토에아사히가노보라나쿠테모 <가령 아침해가 떠오르지 않아도> 타토에스베테오나쿠시테모 <가령 모든 걸 잃어도> 이츠노히모아시타오사가시테이루 <언제나 내일을 찾고 있어> 아나타가이키루토키오이키루 <니가 살아가는 시간을 살아가> 우시로스가타오오이카케루 <뒷모습을 쫒아> 타토에유우히가시즈마나쿠테모 <가령 석양이 지지 않아도> 타토에스베테오나쿠시테모 <가령 모든 걸 잃어도> 아나타가이키루토키오사마요우 <니가 살아가는 시간을 떠돌아> 우시로스가타오오이카케루 <뒷모습을 쫒아> 타토에유우히가시즈마나쿠테모 <가령 석양이 지지 않아도> 타토에스베테오나쿠시테모 <가령 모든 걸 잃어도> 이츠마데모아나타오사가시테이루 <언제까지나 너를 찾고 있어> song by_ 나카시마 미카 : 영원의 시 ~ ♪ 짝! 짝! 짝! 짝! "노래, 잘 부르네?" 어느 틈에 올라온 건지 여자애 4명이 미노의 앞에 서 있다. "… 너, 요즘 학생회 사람들이랑 어울려 다니는 것 같던데…" "응? 맞아. 왜? 너희들도 친구할려구?" 미노의 말에 푸하하- 하고 웃음을 터트리는 여자애들. "경고하겠는데, 그 잘난 얼굴가지고 학생회 간부들 건드렸다가는 알아서 해." "… 건드린 적 없는데? 그냥 알고 지내는 것 뿐이고." "너 우리가 우습게 보여? 학생회 간부들에게서 떨어져. 그들과 어울리지 말란 말이야!" "… 싫어, 재미있는 걸. 내가 왜 너희들의 말에 따라야 하지?" 미노의 표정에 얼굴을 구긴 여자애. "야, 은비야… 얘 짜증난다." "역시, 말로 해서는 안될 줄 알았어. 잘가라, 도미노." "뭐… 으앗- !" 비릿하게 미소지은 명은비의 얼굴이 점점 멀어져간다. 미노의 몸이 빠르게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 명은비야… 아무리 그래두 옥상에서 밀면 어떡해…" 14. 분명 옥상에서 떨어졌을텐데… 미노의 몸에는 아무런 아픔도 느껴지지 않았다. 헛… 설마, 아픔을 느낄 틈도 없이 그대로 죽어버린 건 아니겠지? "… 괜찮니?" 감았던 눈을 뜨니, 바로 앞에 보이는 얼굴. "… 왜 그래? 어디 아프니? 다친거야?" 걱정스러운 얼굴로 묻고 있는 남자. "괘, 괜찮으니까… 내… 내려주셔도…" 남자를 보던 미노는 얼굴을 발그레- 하고 붉히며 말을 더듬었다. 푸른색이 감도는 머리카락, 갸름하고 분위기있는 얼굴. 곧게 뻗어있는 코와 선홍빛으로 빛나는 입술. 비록 자켓은 입지 않았지만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맨 범생스타일, 은샘이었다. "다행이다, 다치진 않은 모양이구나." 은샘이 미노를 안았던 팔을 풀며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미노의 다리가 바닥에 닿는 순간, 앗- 하는 비명과 함께 주저앉은 미노. 아마도 옥상 난간에 다리를 부딪혀 다친 것 같다. 인상을 찌푸린 미노에게로 허리를 숙인 은샘. "안 되겠다, 이 상태로는 못 걸어." 미노를 안아올린 은샘은 미노에게서 느껴지는 무게감에 인상을 찌푸렸다. 가벼워도 너무 가볍다. 어떻게 이런 몸을 하고서… 그렇게 밝게 웃을 수 있었던 거지? 고개를 떨군 채 말이 없는 미노를 힐끔- 본 은샘이 걸음을 옮겼다. "아, 저기… 괜찮으니까…" 미노의 말을 무시하고는 건물 안으로 걸어가는 은샘이었다. 은샘에게 안겨버린 미노가 은샘을 쳐다봤지만, 눈도 마주치지 않는다. 하는 수 없이 미노는 은샘의 어깨에 붉어진 얼굴을 파묻은 채, 목에 팔을 감았다. "꺄아! 은샘아, 은샘이가 미노를 구해냈어!" "너무 멋있어! 은샘아, 사랑해!" "제기랄! 나의 미노를 옥상에서 떨어뜨린 사람, 대체 누구야?!" "뭐?! 실수해서 떨어진 게 아니라, 누가 밀었단 말이야?" "그래! 분명 여자였던 것 같은데… 나, 아까 잠깐 본 것 같았거든." "미노 죽이려고 했던 거잖아, 세상에! 은샘이 아니었으면 미노 어떻게 됐을까!" 은샘의 품에 안겨 학생회실로 들어온 미노를 보고 놀란 시혁과 예찬. 쇼파에 조심스럽게 미노를 내려놓은 은샘이 미노의 바지를 걷었다. 남자치고는 가늘기만 한 미노의 발목. "은샘아, 얘 왜 이래?" "미노야, 다친거야?" 시혁이 미노의 발목을 보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꽤 많이 부어오른 상태. 미노의 상태를 보고 한숨을 내쉰 은샘이 시혁을 쳐다봤다. "누가 얘 옥상에서 밀었다나봐요." 은샘의 말에 시혁의 눈빛이 짙어졌다. 그와 동시에 앉아있던 곳에서 벌떡- 하고 일어난 예찬과 우주. "밀어? 밀다니, 누가 그런 위험천만한 짓을 해?" "근처에 있던 애들이 봤나봐요…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여자라던 것 같아요." 은샘의 말을 들은 시혁의 표정이 굳어지더니, 밖을 향해 뛰어나갔다. 시혁의 뒤를 이어 뛰어나간 예찬과 우주. "… 회장의 저런 모습은 처음보는 걸…?" 류예가 읽고있던 책을 덮으며 미노에게로 다가왔다. "그만큼… 저들에게 네가 소중하다는 의미겠지…?" * 이현의 등장으로 인해 조용해진 교실 안. 얼음처럼 차가운 눈동자, 무표정한 얼굴에서 느껴지는 싸늘함에 아이들의 표정이 굳었다. "… 분명히 경고했을텐데… 도미노 건드리지 말라고…" 낮게 깔린 음성이 조용해진 교실 안을 울렸다. 파앗- ! 교탁에 꽂힌 날이 선 칼. (이현아! 학생은 그런 위험한 물건 가지고 다니는 거 아니야!) 이현의 표정만해도 얼어버릴 것만 같은데, 시퍼렇게 날이 선 칼까지 교탁에 꽂혀있는 모습이라니… 충분히 경악할만한 광경이었다. "아, 저기… 우린 정말 몰라! 그러니까…! 히익!" 이현의 눈동자가 자신에게 닿자 이상한(?)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나는 남자애. 그를 보고있던 이현이 교탁에 꽂혀있던 칼을 빼들어 남자애가 서 있는 방향으로 던졌다. 타악- ! 정확히 관자놀이 옆에 명중한 칼. (이현아, 너 엄청 화났구나.) 자신의 옆에 박혀있는 칼을 보고는 다리를 벌벌 떠는 남자애. "미노 함부로 건드렸다가, 바로 저승길 가기 싫으면 다들 조심하라구." 살벌하게 경고를 던진 이현이 문을 박차고 나갔다. 그제서야 다리에 힘이 풀어진 건지 풀썩- 하고 바닥에 주저앉은 남자애. "미노도 그렇고… 저 녀석도 그렇고, 대체 정체가 뭐야…" 얼마나 무서웠으면 눈물까지 글썽거리겠나… 거의 실신 지경의 남자애를 부축해 의자에 앉혀 준 아이들은 이현의 살벌함을 새삼스럽게 느꼈다. 그저 섹시하고 소유욕 강한 멋진 남자라고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온 몸에서 뿜어져나오는 카리스마와 남자다움은 아이들의 머릿 속에 강한 인상을 남겨주었다. 이번 일로 인해, 이현은 마왕이라는 별명을 얻었고, 인기는 더욱 상승되어 주체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는 후문이다. 삐익- 방송을 알리는 전자음에 아이들의 시선이 모두 스피커로 향했다. [학생회장 차시혁이다. 방금 있었던 사건에 대해 조사할 것이 있으니 모두 강당으로 모이기 바란다.] 방송 내용에 아이들의 표정이 찌푸려졌다. 마린고는 학생회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는 학교, 그렇기에 교사들보다 학생회의 힘이 더 강했다. 아이들은 선생님들보다 학생회를 더욱 경계했고, 학교에서 절대적인 존재인 다섯 명의 간부들은 최고급. 그런 학생회가 이번 사건에 나선다고 하니… 아이들의 표정은 울상이 되었다. "… 제기랄! 도미노 건드린 놈 잡히기만 해 봐! 내가 가만 안 둬!" 아이들의 한결같은 외침. 그들의 괴로움에 찬 절규가 마린고에 울려퍼지고 있었다. 15. 미노의 발목에 붕대를 감아주고 있는 은샘. 나랑 같은 학년인데… 학생회 간부라니… 이 녀석 대단하잖아? "자, 다 됐어." "… 고, 고마워." 얼굴이 붉어진 미노를 힐끔- 하고 바라본 은샘이 구급상자를 닫아 캐비넷 안에 넣었다. 양호실에서 가져온 건데… 안 가져다 줘두 되나… "저기…" "걱정하지 마, 지금 선배들이 너 이렇게 만든 녀석들 찾느라 혈안이 되어 있으니까." 눈을 살짝 가리는 앞머리를 쓸어올리며 말하는 은샘. 은샘의 모습에 붉어진 얼굴로 작게 고개를 끄덕인 미노가 뾰루퉁- 하게 입술을 삐죽 내밀고 앉아 다리를 까딱거린다. 문득, 미노의 시선이 은샘의 등에 닿았다. 뒷모습이 무척이나 슬퍼보인다. "… 저기, 있잖아…" "최은샘이다, 자꾸 이상한 수식어 갖다 붙이지 마." 움찔- 밉지 않은 눈으로 살짝 미노를 노려본 은샘이 피식- 하고 웃는다. 반성하는 듯,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미노에게로 다가온 은샘. "그렇게 풀 죽을 것까진 없잖아, 괜히 미안해지네." 은샘의 말에 세차게 고개를 젓는 미노. "아니! 미안해 하지 않아도 되는 걸…! 으, 은샘아… 구해줘서 고마워." "… 안면이 있는 사람이 사고를 당하도록 방치해 둘 수는 없잖아…?" 찡긋- 한쪽 눈을 찡긋- 한 은샘이 미노를 향해 웃어보이고는 밖으로 나갔다. 너무나도 예뻤던 그 모습에, 미노는 고개를 갸웃- 했다. 엄청 슬픈 눈을 하고 있는데… 어째서 저렇게 웃을 수 있는거지…? 드르륵-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 고개를 든 미노. "넌 운이 정말 좋구나? 멀쩡하게 살아있는 걸로도 모자라 학생회 간부에게 도움까지 받다니 말이야…?" "재수가 없다고 말해야 좋으려나? 난 네가 정말 싫거든? 그러니까 얼른 우리학교에서 꺼져줄래?" "소이현이랑 학생회 간부들이 지켜주니까 엄청 좋겠다, 하지만 그것도 오늘로 끝일껄?" "맞아, 곧 이현이 약혼녀가 이 학교로 전학을 온다지? 아마, 내일이라고 한 것 같은데…" 야, 약혼녀…? 소이현한테… 약혼녀가 있었단 말이야? 전혀… 전혀 몰랐는데… "아하하, 너 모르고 있었나 봐? 역시… 소이현이 뭘 보고 널 사귀겠니? 그저 갖고 논 것 뿐이라니까…?" "어머, 이렇게 보니까 너무 불쌍해… 이현이가 네 외모에 반해서 널 여자로 착각한 것 같은데, 이제 그것도 끝이니…" "불쌍하긴 뭐가 불쌍해? 그 반반한 외모로 남자 꽤나 꼬셨잖아? 그걸로 된 거 아냐?" "하긴, 그만하면 꽤 즐긴거지, 어디서 굴러먹다가 돈 많은 남자 하나 꼬시려고 여기 온 것 같은데… 어머머, 가엽기도 해라!" 미노의 얼굴을 손으로 쓸며 말하는 여자들.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미노의 곁에 앉아있는 명은비. "너도 남자잖아? 남자면 당연히 여자가 탐나지 않아? 어디, 덮쳐 봐… 반항하지 않을테니… 응?" 앉아있던 은비가 미노를 힐끔- 보더니 자신의 블라우스 단추를 하나씩 풀어나간다. 미노가 아무런 반응이 없자 기분 나쁜 웃음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등신새끼, 여자는 싫은가보지?" "어머, 그럼 뭐야? 게이란 거야?" "세상에- 징그럽다! 얼른 여기서 꺼져, 그런 외모로 뭘 어쩌려는 거야?" "우린 계속 학생회 간부들을 지킬거야! 간부들은 다가오는 아이들을 싫어하는 눈치였지만, 도미노… 너만은 꽤 친하게 지내는 것 같아서 속이 뒤틀렸거든? 여긴, 너 같은 녀석이 들어와서 설쳐도 될…!" 훗- "너희… 참 뻔뻔하구나…"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명은비 일행의 고개가 돌아갔다. 그와 함께 미노의 시선도 소리가 난 쪽으로 향했고, 언제 온 건지 문 앞에 기대 선 류예가 보인다. "… 류, 류예… 선배…" 짙은 회색빛의 눈동자로 명은비 일당을 보고있는 류예. "게이라… 그럼 너흰 뭐지?" "우, 우린 정말 선배들을 좋아해요! 그래서… 그러니까!" 탁- 들고 있던 책을 접은 류예가 싸늘한 표정을 짓고는 미노에게로 향했다. 조금은 떨리는 모습으로 류예를 쳐다보고 있는 미노. "방금 이 아이에게 한 말, 모두 사과해." "… 선배! 우린 올바른 일을 했을 뿐이라구요! 선배들을 지키고 싶었을 뿐이에요!" "지킨다…?" 피식- "누가 너희 따위에게 그런 직책을 맡겼지?" "… 서, 선배… 그건…" "자기 자신도 지키지 못하면서… 남을 지키니 어쩌니… 그런 말 하는 거 아니야." "선배… 저희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이 아이의 곁에서 멀어지지 못하겠다면…" "못해요! 절대, 이 학교에서 쫒아내고야 말겠어요!" 류예의 눈썹이 찌푸려졌다. 잠시 그들을 보던 류예는 미노의 손목을 당겨 품에 안았다. "서, 선배!" "이 아이에게… 상처를 준다면… 학생회의 힘을 총동원해서라도 지켜낼 거야." "어째서… 어째서… 우리들은…! 한결같이 선배들을 존경하고 따라왔어요! 그런데, 그런데 어째서 저런 것 따위에게 모두들…!" 씩씩대며 화를 내는 명은비. 그녀의 뒤에서 울음을 터트릴 듯 울먹거리고 있는 일당들. 하지만 그들을 보는 류예의 표정은 살벌하기만 하다. 마치 못 볼 것을 봤다는 듯, 인상을 찌푸린 류예가 미노를 따뜻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 그 누가 뭐래도… 이 녀석은 우리에게 특별한 존재니까." * 절뚝거리며 계단을 올라가고 있는 미노. 옥상에 가고 싶다. 하지만, 다리가 불편해 빨리 올라갈 수가 없는 탓에 짜증을 부리고 있는 미노. "제길… 가만두지 않아, 다리만 아니라면… 벌써…" 번쩍- 몸이 부웅- 하고 뜨는 느낌에 놀란 미노가 꺄앗- 하고 비명을 질렀다. 황급히 고개를 올려보니, 미노를 안아든 이현이 보인다. "… 미리 말하라구, 그럼 데려가 줄 테니까." 미노를 보고는 살짝 웃은 이현이 옥상을 향해 올라갔다. 철컹- 하고 문을 연 이현이 미노를 바닥에 조심스럽게 앉혀놓았다. "… 고, 고마워…" 명은비에게 전해들은 말 때문에 미노는 이현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다. 그런 미노의 행동을 의아한 눈빛으로 보는 이현. "왜 그래? 기분나쁜 일 있었어?" "… 아니." "표정이 안 좋은데? 다른덴 괜찮은거야?" … 끄덕. 작게 고개를 끄덕인 미노가 이현이 있는 방향의 반대로 고개를 돌려 벽에 기대었다. 명은비가 했던 말이 머릿 속에서 떠나지를 않는다. 고개를 세차게 저어봤지만, 여전히 머릿 속에 박힌 듯 사라지지 않는 목소리. 이현이의 약혼녀가 내일 이 학교로 전학온대… … 이현이의 약혼녀가 내일 이 학교로 전학온대… …… 이현이의 약혼녀가 내일 이 학교로 전학온대… 그저 가지고 논 거라니까… … 가지고 논 거라니까… …… 가지고 논 거라니까…… … 가지고… 놀아…? 아냐, 아닐 거야… 이 녀석, 생각보다 좋은 녀석이고… 사람을 가지고 놀다니… 그런 일… 할 리가 없잖아. 약혼녀라니… 그런 거… 있을 리 없잖아… 미노의 시선이 이현의 옆 모습에 닿았다. 그런 미노의 시선을 느낀 이현이 고개를 돌려 바라보자 그 시선을 피하지 않는 미노. "… 내일… 네 약혼녀가 이 학교로 전학온다는 거… 사실이니?" "… 응." 아닐 거라고 생각했는데… 날 가지고 놀았을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는데… "너한테, 약혼녀가 있다는 말은 듣지 못했는데…" "… 묻지 않았으니까, 대답하지 않은거야." 묻지 않았으니까… … 묻지 않았으니까… …… 묻지 않았으니까…… "묻지… 않았으니까…" "도미노, 나한테 약혼녀라는 거 아무런 의미가 없어." 싫어… 아무런 말도 듣고 싶지 않아… 너한테, 그런 변명이 섞인 말 따위… 듣고 싶지 않아. "… 당분간, 친구 집에서 지낼게." "무슨 소리야, 도미노." "네 약혼녀가 온다며… 당연히 너희 집에서 같이 살테니까, 내가 있으면 불편하잖아." 슬픈 미소를 지으며 일어나는 미노의 손목을 잡아 앉힌 이현. 미노를 보는 이현의 눈이 화가 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화가 난 표정으로 미노를 보던 이현이 거칠게 미노의 입술을 탐했다. 미노가 저항하자 손을 잡아버리고는 미노의 목에 걸려있던 넥타이를 풀어 바닥에 던져버린다. 미노에게로 파고든 이현이 미노의 목덜미에 입을 맞추며 쇄골로 내려왔다. "더 이상은… 이제는… 네 놀이감이 되고 싶지 않아… 그러니까, 이러지 마…" 미노의 말을 무시한 이현이 미노의 와이셔츠를 벗겨내렸다. 화들짝- 하고 놀란 미노가 이현을 밀어냈다. "너… 무, 무슨 짓을…!" "…… 도미노." "……!!" 이현의 눈동자에 담겨있는 진심에 미노는 숨을 들이켰다. 보고있어도 괴로울 정도로 숨막히는 이현의 눈동자. 미노의 눈에서 한방울의 눈물이 또르르- 하고 흘러내렸다. "… 나 소이현한테는… 도미노만이 여자야…" 16. 마린고 3학년 11반. 시혁은 시끄러운 소리에 한쪽 귀를 막으며 인상을 찡그렸다. "안녕! 내 이름은 나채희! 반가워, 앞으로 잘 지내보자! 아, 참고로 난 이 학교에 약혼자를 만나러 온 거야! 모두들 잘 부탁할께!" 긴 생머리가 채희를 우아하게 보이도록 만들어 주고 있었다. 한 외모 한다고 자부하는 채희였기에, 남학생들의 환호성이 당연하다는 듯 웃고만 있다. "아, 자리는 어떻게 할래?" "음… 그럼 전 저기 앉을래요." 생긋- 하고 웃은 채희가 가리킨 곳은 바로 시혁의 옆자리. 얼마 전에 전학을 가 버린 이유로 유일하게 비어있는 자리였다. 생글생글 웃으며 시혁에게로 다가간 채희가 손을 내밀었다. "잘 부탁해, 나채희라고 해." "그래." 시혁의 짤막한 대답에 채희의 눈썹이 살짝 꿈틀거렸다. 내민 손을 잡지 않았을 뿐 아니라, 시선도 채희를 향해 있지 않았다. 자존심이 상한건지 입술을 살짝 깨문 채희가 도도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채희라고 했지? 약혼자라니, 이 학교에 있는거야?" "응! 우린 부모님께서 정해주셔서 결혼까지 약속한 사이야." "우와- 그렇구나! 그럼 네 약혼자도 대단한 사람이겠네? 너희 집 엄청 부자라며!" "아, 별 거 아냐. 그냥 빌딩 몇 개 가진 것 뿐인데, 뭐." "잘난 집에 태어난 애라서 뭐가 달라도 다르구나- 너 그 시계도 명품이잖아?" "아, 이거… 파리에 갔을 때, 아버지가 사다주신거야." 시혁은 인상을 찡그리며 일어났다. 처음부터 맘에 들지 않은 인상. 도도하고 예쁘게만 보이지만 눈동자 속에 깊이 묻혀있는 사악한 기운이 느껴졌다. 조용히 문을 열고 나온 시혁은 학생회실로 걸음을 옮겼다. 드르륵- "미노야, 여기서 뭐하니? 다리는 좀 괜찮아?" " … 응. 괜찮아요, 선배. 걱정하게 해서 미안해요." 정말 미안하단 표정으로 사과하는 미노. 시혁은 그런 미노의 옆에 주저앉았다. 시끄러운 걸 싫어하는 시혁이라, 아침의 소란은 시혁의 기분을 불쾌하게 만들었다. "선배… 어디 불편해요?" "전학생이 왔는데, 시끄러워서." "… 아, 그래요?" 미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하지만 이내 밝게 웃으며 시혁을 본다. 착각인가…? 란 생각과 함께 미노의 손에 캔디를 쥐어준 시혁. "류예에게 얘기 들었어, 걔네들은 학생회 규칙대로 처리할거야." "미안해요, 선배. 괜히 신경쓰게 만들어서." "아냐, 그런 건." 짤막하게 대답한 시혁이 미노의 무릎을 베고 누웠다. 멍하니 그런 시혁을 쳐다보는 미노. "미노야…" "… 네?" "무슨 일이야…?" "네? 무슨 일이라니요? 뭐가요…?" "… 네가 그렇게 힘겨워 보이는 이유…" 시혁의 눈동자가 미노에게 닿았다. 마치 블랙홀처럼 사람을 빨아들이는 것 같은 마력을 지닌… 시혁의 눈동자는 한없이 깊게만 느껴졌다. "히, 힘들다니요! 하, 하나도 안 힘든데! 아하하! 선배도 참, 나 괜찮아요!" "…… 그래, 괜찮다면… 다행이야…" 슬프게만 들리는 시혁의 목소리. 진심으로 자신을 걱정해주고 있는 시혁의 모습에 미노는 눈물이 나올 것만 같다. "있잖아요… 선배, 나…!" "괜찮아, 때가 되면… 바라지 않아도 알 수 있을테니까…" 시혁의 말에 작게 웃으며 살짝 고개를 끄덕인 미노를 가만히 안아준 시혁. 조금이라도 미노를 안은 손에 힘을 주었다가는 부서져버릴 것 같은 느낌… 시혁의 품에 안겨있던 미노가 많이 피곤했는 지, 그대로 잠이 들었다. 이대로 놓아두는 게 좋을 거라고 생각한 시혁은 쟈켓을 벗어 미노에게 덮어주었다. 미노를 보는 시혁의 눈은 이미 후배를 보는 눈이 아니었다. 소중한 것을 지켜주고 싶다는… 애정이 담긴 눈동자. 낮게 웃던 시혁은 자고 있는 미노를 놓아두고 안건을 보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가까이 있지만, 가질 수 없고… 만질 수 조차 없는… 시혁의 눈에 슬픔이 깃들었다. "차시혁… 뭘 망설이는 거냐, 미노를… 원하고 있잖아." * 와락- "이현아- 보고싶었어!" 이현의 목에 팔을 감은 채희. 그런 채희의 팔을 거칠게 떼어낸 이현이 화가 난 표정으로 채희를 본다. "무슨 짓이야?!" "그치만, 엄청 보고싶었는 걸?" 이현의 품에 안긴 채희. 생글거리며 안겨오는 채희를 뿌리친 이현이 차리에서 일어났다. "이현아, 어디가려구? 응?" 이현의 팔에 매달린 채희. 밖으로 향하자 채희는 더욱 이현의 팔을 꽉 잡고는 따라나선다. 우뚝- 옥상으로 올라가려던 이현의 걸음이 멈췄다. "… 도미노." 시혁의 품에 안겨있는 미노를 보고 얼굴을 굳힌 이현. 이현의 목소리에 고개를 든 미노는 이현의 팔에 매달려 있는 채희를 보고는 시혁의 품으로 고개를 묻었다. "왜 그래, 이현아? 아는 사람이야? 저기, 안녕! 나는 나채희라고 해, 이현이 약혼녀! 반가워!" "안녕, 소이현 약혼녀 나채희씨. 나 소이현 짝." "아아, 그랬구나! 이현이의 짝이었구나, 그런데 내 짝이랑은 어떻게 알아? 우리 정말 인연 기막히다!" 시혁의 짝은 채희. 이현의 짝은 미노. 피식- 웃음을 터트린 미노가 시혁의 목에 팔을 감았다. 살짝 감은 눈은 졸리는 듯이 풀려있다. 마치, 나 덮치세요~ 라고 하는 것 같은 눈빛에 이현의 표정이 굳었다. "선배… 우리 아지트로 가요. 나 졸려…" "응, 그러자." 미노에게 따뜻하게 대하는 시혁을 보고는 눈썹을 꿈틀거린 채희. 이현의 눈은 어느새 차갑게 변해있었다. "악마 놈, 약혼녀랑 잘해 봐!" 이현에게 소리친 미노는 시혁의 품에 더욱 파고들었다. 울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들키지 않으려는 듯… 주먹을 쥔 이현의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이현아, 우리 어디…! 꺄앗!" 채희를 거칠게 밀어낸 이현이 시혁이 간 방향으로 달렸다. 바닥에 주저앉은 채, 이현이 간 곳을 바라보고 있는 채희의 눈이 얄밉게 빛난다. 교복에 달려있던 명찰에 써 있는 이름. "아무도 내게서 이현이를 빼앗아 갈 수 없어… 소이현은… 내 꺼니까." 17. 탁- 계단을 올라가고 있는 시혁을 잡은 이현. 갑자기 나타난 이현의 모습에 놀란 미노였지만, 이내 상관없다는 듯 시혁의 품에 고개를 묻어버린다. 벌써 세 번째… 운동장에서… 집에서… 이번에는 교실 앞에서… 네 곁에는 항상 여자가 많구나. 미노의 아픔을 읽은 시혁이 차가운 눈으로 이현을 본다. "얘기 좀 하자, 도미노." "… 너랑 할 얘기 없어. 약혼녀가 기다리잖아, 그만 가 봐." "그런 거 아니라잖아!" "… 선배, 나 좀 내려주세요." 미노의 말에 잠시 망설이던 시혁이 미노를 안았던 팔을 풀었다. 땅에 한 발을 디딘 미노가 시혁에게 기댄 채, 이현을 본다. "… 맞든, 아니든… 나와 상관없어." "도미노." "나 도미노 맞아, 맞는데…" 탁- 이현이 미노에게로 손을 뻗었지만, 그 손을 막은 시혁. 시혁의 차가운 눈이 이현에게로 향했다. "더 이상… 미노를 상처입히지 마." 싸늘하게만 느껴지는 시혁의 음성. 이현이 입술을 깨물었다. "말해야 해요… 무슨 일이 있어도… 얘기해야만 해요." "약혼녀까지 둔 주제에… 미노에게 무슨 할 말이 남았다는 거지?" "아니야… 채희는! 채희는 약혼녀 따위가 아니야…!" 피식- "양가에서 허락받고 결혼까지 약속한 사이라고 들었는데… 그 말이 거짓이라는 거냐?" "그래, 약속했어! 하지만 난 채희와 결혼할 생각 따위 없어…그러니까…" 타닥- "어머, 이현아! 여기 있었구나! 한참 찾았다구!" 생글거리며 이현의 팔을 낚아채는 채희. 그와 동시에 미노의 입술에는 잔인한 미소가 걸렸다. 이제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이… 미노의 표정에는 감정이 없었다. "나채희, 분명히 들어. 난 너랑 결혼할 생각 없어!" "안돼- 난 너 보려구 일부러 한국에 들어온 거잖아? 그리고 이번에 부모님이 널 보고싶어 하셔서…" "너희 집 사정이 어떻든 나와 상관없다잖아! 귀찮게 하지말고 꺼져버리란 말이야!" 머리가 아픈 듯, 이현이 손으로 이마를 받쳤다. 그런 이현을 보며 채희가 급히 이현을 붙잡는다. "거 봐, 갑자기 그렇게 화를 내니까 그렇잖아… 자, 양호실로 가자. 응?" "치워. 죽고싶지 않으면…" 이현의 말에 눈물을 글썽이는 채희. 그녀도 이현의 무서움을 알고 있는 걸까… 아니면, 그저 연기일 뿐일까… "흐흑… 이현아, 나는…" 울고있는 채희를 보던 시혁은 싸늘한 눈동자를 이현에게로 향했다. 차갑게만 보이는 눈동자. 블랙홀같이 깊은 눈동자가 섬뜩함을 발하고 있었다. "악마라는 별명이 딱 어울리는 군…" "… 뭐?" 이현이 무슨 소리냐는 뜻으로 바라보자, 시혁은 그저 낮게 웃었다. 소름끼칠 듯이 차가운 미소. 어쩌면, 진정한 악마는 시혁일 지도 모른다. 심장이 얼어붙을 정도의 차가운 냉소를 지으며 이현과 채희를 번갈아보던 시혁의 시선이 이현에게로 닿았다. "미노를 아프게 한 네 녀석을… 용서하지 않을 지도 모르겠어." * 시혁의 힘을 빌어(?) 학생회실에 머물 수 있게 된 미노. 얘기를 나누며 웃을만큼 류예와도 친해진 상태였고, 우주는 여전히 사악하지만 최고의 무드메이커다운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시릴듯이 푸른 눈동자로 가끔 미노를 보며 예쁜 미소를 짓는 예찬과, 바쁜 와중에도 꼼꼼하게 미노를 챙겨주는 시혁. 분위기 있는 소년인 류예는 축제실행위원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1학년 간부인 은샘은 물품을 챙기러 간다며 미노에게 살포시 윙크를 날려주고는 밖으로 나갔다. "… 아, 선배 이번에 학생회가 주최하는 연극 주인공… 어떡하죠?" "지난번에는 류예가 맡았었지?" "……끄덕." "류예는 지난번에 했으니까 일단은 패스, 예찬이와 나는 손님들을 안내해야 하니까… 안되고… 우주는 이미 역활이 정해졌으니…" 고민하던 시혁의 시선이 미노에게 닿았다. 에? 뭐야, 뭐야? 그 눈빛은? 시혁의 뒤를 이어 미노를 쳐다보고 있는 예찬. 헙…! 그런 시린 눈동자로 날 보지 말란 말이야… 바다에 빠질 것 같다구… 아무런 표정도 없지만, 진지한 눈동자로 미노를 보는 류예. "아… 저, 저기 제 얼굴에 뭐라도 묻었나요…?" 피식- "꽤 잘 어울릴 것 같지 않아?" 의미심장한 예찬의 말에 미노가 고개를 갸웃- 한다. 뭐가 잘 어울린다는 거야…? "주인공… 해볼래?" 시혁의 말에 미노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쇼파 위로 팔짝- 하고 뛰어올랐다. 주, 주인공이라니… 설마 학생회가 주최한다는 그 연극을 말하는 건…? "설마… 아니죠?" 후훗- 그래, 웃는 걸 보니 내가 착각한 거야. 암, 그렇게 중요한 연극에 날 택할 리가 없잖아? 그래! 맞아. 괜한 걱정이야. "맞아." 순간의 정적. 돌처럼 굳어버린 미노의 모습에 예찬이 푸른 눈으로 미노를 주시했다. 아닐거라고 생각했는데, 어째서 그런 큰 행사에 나를…? "괜찮아, 어차피 여자주인공 역이고… 난, 네가 드레스 입은 모습을 보고싶은 걸?" 시혁이 허리를 숙여 미노의 귀에 속삭였고, 그의 말에 귀까지 빨개진 미노. 그 모습을 보며 쿡쿡- 대며 웃은 시혁이 주인공 이름에 미노의 이름을 써넣었다. "내일부터 연습들어간다, 대본은 연극부 부장이 쓴 거고, 하나씩 가져가." 울며 겨자먹기로 대본을 챙겨든 미노. "아, 미노 상대역은 우주구나. 꽤 잘 어울리겠는데…?" 으아… 저 악마녀석이랑 연극을 같이…? 대본을 훑어보던 미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간다. 이, 이게 뭐야…! "왜, 왠 키, 키스신이 이렇게나 많아요? 한 장면에 세 번의 씬이 넘잖아요!" "걱정 마, 진짜로 하는 게 아니니까. 부장 성격이 워낙 까다로워서, 우리도 부장한테는 꼼짝도 못한다구. 그러니까 맘에 안 들더라도 거기에 써 있는 대로 따르도록 해." 울상이 된 미노. 재미있다며 웃고있는 예찬과 시혁. 나쁜 기분은 아닌 듯 보이는 우주가 류예와 마주보며 웃는다. "아, 학생회 간부가 아닌 녀석들도 참여시킨다더라. 뭐, 악역이지만." "… 악역이요?" "응, 아무래도 연극은 악역이 있어야 재미있다고, 부장이 그랬어." "… 으음, 누가 나오는데요?" "보자… 1학년 명은비, 소이현, 방금 전해들은 소식으로는 전학생 나채희도 참가한다고 하더군." 미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를 눈치 챈 시혁이 미노의 곁에 앉아 어깨를 두드렸다. "괜찮아, 어차피 이들이 나오는 장면은 거의 없으니까." "기사인 은샘이가 공주님인 너를 지키는 역활이구, 왕자인 우주가 공주인 널 나쁜 녀석들에게서 구해내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 후 진한 키스를 하면서 장면이 끝나." 지… 진한 키스라니… 어차피 하는 시늉만 할텐데 그렇게 노골적인 표현을 넣을 필요는 없잖아요! 부장! "역시 여자라서 그런가…" "에? 뭐가요?" "부장의 글솜씨… 전보다 농도가 짖어졌어." "그게 무슨 소리에요?" "예전엔 류예가 괴롭힘을 당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그때의 노출이 과감했거든." 인상을 찌푸리며 짖궂은 표정을 짓고 있는 시혁에게로 읽고있던 책을 던진 류예. 그런 류예의 반응이 재미있는 듯 웃는 세 사람. "소이현은 극중에서 유로인 이라는 남자 역활을 맡을거야. 넌 공주인 신예리 역을 맡을거고." "… 그럼 우주선배는요?" "왕자인 화시아 역을 맡았어. 연습은 내일부터 시작될거니까, 모두 우리 집으로 모이도록 해." "어쩔 수 없군, 화시아를 연기하기 위해서는… 싫어도 저 녀석을 사랑하는 척 해야 한다는 말인가?" 중얼거리며 학생회실을 나온 우주. 걷던 걸음을 멈추곤 벽에 기대 고개를 위로 향한 채 한숨을 내뱉는다. "… 좋아하는 주제에 싫어한다는 말이나 하고, 서우주… 너 최악이다." 18. 연극준비로 한창 바쁜 학생회실. 서로 대사를 맞춰보며 시끌벅적한 분위기다. 안내를 맡은 예찬과 시혁도 연극에는 참여하기 때문에, 대본을 들고는 외우고 있다. 드르륵- "우와, 나 학생회실은 처음 들어 와! 신기하다!" 이현의 팔짱을 낀 채로, 학생회실로 들어온 채희. 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든 미노의 눈에 다정한 모습(?)의 이현과 채희가 보인다. 싱긋- "안녕…?" 미노가 이현과 채희를 보고 웃었고, 그런 미노의 모습에 이현의 표정은 차갑게 굳어있다. "미노야, 여기… 이 부분 대사 좀 고쳐야 할 것 같지 않냐?" "아! 맞아, 나도 여기 좀 그랬는데… 저기… 부장…!" 탁- 탁- ! 말도 꺼내기 전에, 부장의 손에 들려있던 대본으로 한 대씩 얻어맞은 미노와 우주. 뚱- 한 표정으로 시혁의 팔을 잡은 미노의 입에 캔디를 넣어준 시혁. 환하게 웃는 미노를 보고는 하는 수 없다는 듯이 피식- 하고 웃어버리는 시혁이었다. "대본 고친다거나, 멋대로 대사 빠뜨린다거나… 그랬다간 다들 알지? 응?!" 검은 오로라가 풀풀- 풍겨오는 부장의 분위기에 미노가 겁 먹은 표정을 짓는다. 저기요… 열정이 넘치는 건 알겠지만… 이 대사는 좀… "아,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라고!" 찌릿- 우주의 불만에 눈에 힘을 주고 우주에게로 다가온 부장. "화시아 왕자님- 어디가 문제이신데요오- 네에- ?" "아, 저기… 부장, 거리가 너무 가까운 것 같지 않아…?" "그건 왕자님께서 상관하실 일이 아니구요, 대체 어.디.가.문.제. 라는거지?" 허리를 굽혀 우주에게로 얼굴을 들이민 부장. 탐탁치 않은 표정으로 손을 올려 대본의 한 곳을 가리킨 우주가 버럭- 하고 소리를 쳤다. "생각을 좀 해 봐! 겨우 고등학생이 하는 연극이라구! 그런데 이런 게 왜 필요해?!" "아하- 그건 말이지, 여주인공이 맘에 드니까 그런거야." 여주인공이라니… 나 말이야? 왠지 음흉한 눈빛으로 미노에게로 다가온 부장. "이렇게 섹시하고 요염한 공주 봤어?" 세, 섹시…? 요, 요여엄?! 그런 게 연극이랑 무슨 상관이냔 말이지! "달이 밝은 밤, 술에 취한 건지 공주에게 취한건지… 왕자인 화시아는 공주에게로 찾아가고, 마침 자려고 했던 공주는 왕자의 등장에 한편으로는 놀라며 기뻐하지." "아, 그러니까! 연극에 그런 씬은 좀 빼면 안되? 가뜩이나 키스신이 많아…!" 탁- "아, 아퍼! 그만 좀 때려, 이러다가 대사 외운 거 다 까먹겠다!" 우주의 엄살에 대본으로 머리를 한 대 더 때려 준 부장이 이현과 채희에게로 향했다. 둘을 보는 부장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꺄, 부장언니! 전 뭘하면 되나요?" "… 아아, 너…?" "네네! 전 뭘하면 되요? 저 이런 거 처음 해봐서 엄청 떨리는데! 잘할 수 있을 지 모르겠어요!" 부장의 팔을 잡고 눈을 빛내며 말하는 채희. 하지만 부장은 그런 채희의 팔을 매정하게 떼어낸다. "… 너, 방금 뭘하면 되냐고 물었지?" "네! 물었어요!" "그냥 찌그러져 있어라." … 에? 부장의 말에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바라보는 채희. "에이, 부장언니! 저 그 역활이죠, 그쵸!" "… 무슨 역활?" "공주 대신에, 왕자의 사랑을 받는 거요!" "…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왜, 그런 거 있잖아요? 연극에 보면, 주인공은 공주였지만 왕자가 공주를 버리고 딴 사랑을 찾아서…!" "아쉽겠지만 내 대본에는 그런 역활 따위 없어." 딱 잘라 말한 부장이 채희에게 그만 좀 쫑알대라는 핀잔을 주고는 이현을 본다. "아… 분위기가 딱 좋은데?" "… 뭐가." 부장에게도 딱딱한 이현.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이현은 미노가 아닌 다른사람에게 다정하게 대하는 법을 못 봤다. 에잇,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람!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어 쓸데없는 생각을 날려버린 미노가 대사를 외우는데 집중했다. "미노야, 이리 좀 와." 부드럽게 미노의 이름을 부르는 류예. 류예에게로 다가간 미노. "네, 선배! 부르셨어요?" "이제 연극 연습 스탠바이 해야지." "아! 그렇구나!" 주먹을 쥐고 손바닥을 탁- 하고 내리친 미노가 부장에게 다가왔다. 미노가 가까이 오자, 이현의 시선이 자연스레 미노에게로 향한다. "부장, 시작하쟤요!"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어? 얼른 시작하자!" "네에-" 너무나 예쁜 미소를 지으며 부장과 함께 구석진 자리로 가는 미노. 그런 미노를 보는 이현의 표정에 쓸쓸함이 겹쳤다 사라졌다. "이현아, 뭐해? 얼른 시작해야지." 채희가 이현의 팔을 끌었다. 마지못해 자리에 선 이현. 시간이 흘러 미노가 맡은 예리가 채희가 맡은 란파역의 여자애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장면. "천박한 계집애 주제에! 어딜 감히 왕자님을 넘보는 거야?! 너 따위, 죽어버려! 죽어버리라구!" 채희는 표독스러운 얼굴을 하고서 미노를 밟았다. 그런 채희의 행동에 미노의 입술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짜악- 채희의 고개가 돌아갔다. 화가 난 듯 보이는 부장의 얼굴. "너, 뭐하는 거야! 이건 연습일 뿐이야! 사람을 그렇게 짓밟다니, 무슨 짓이야!" 미노의 곁에 있던 시혁과 예찬이 미노를 일으켜 세웠다. 채희를 보는 이현의 얼굴에 차가움이 묻어났다. "나채희, 너 연습이랑 실제랑 구별 못하니? 지금은 연습하는거야! 연극 시작하기도 전에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이래? 너 미노한테 무슨 감정있니?" 부장의 말에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우는 채희. "죄, 죄송해요… 흐흑… 전, 연극이 처음이라서… 조금 더 실감나게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모두 열심히 하고 있는데… 저만 건성으로 하면 안되잖아요… 흐흑… 그래서… 그래서…! 흐흡… 미노야, 미안해… 그러려던 건 아니었는데… 흐흑…" 채희의 말에 부장은 조금 쉬었다 하자며 밖으로 나갔다. 얼굴을 감싸고 있던 손을 내린 채희. 눈물은 커녕, 눈동자에는 표독스러운 집착만이 깃들어있다. 부장과 모두가 나간 곳에서 주저앉은 채, 기분나쁜 미소를 짓는 채희. "도미노… 이번에는 운이 좋았어. 앞으로의 연습… 기대하는 게 좋아. 특히… 아무도 널 도와줄 수 없는 실제 연극 날에는 말이야. 후후…" * 오후에도 연극 연습은 계속되었다. 명은비가 합세해, 중간 정도까지 연습을 끝낸 일행들은 모두 지친 표정으로 앉아있다. "이현아, 나 다리 아파…" 이현의 어깨에 기댄 채희가 콧소리를 내며 이현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현의 시선은 쇼파에 누워 잠자고 있는 미노에게 고정되어 있다. 당연하다는 듯, 미노의 옆에 앉은 시혁과 예찬, 쇼파 옆에 기대 선 류예와 우주. "… 이현아, 왜 그래?" 채희의 말에, 시혁의 눈동자가 이현에게 닿았다. 차갑기만 한 눈동자. 시혁의 시선을 피해버린 이현이 채희에게 붙들려 있던 팔을 빼고 밖으로 나갔다. "… 도미노, 언제나 너 때문에 되는 일이 없어."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말하는 채희. 하지만, 이내 표정을 싸악- 바꾸며 시혁을 향해 웃는다. "학생 회라는 거, 대단하다고 들었어. 선생님들도 함부로 못 건드린다며?" "……" "학생회에 지원할 수 없을까?" "간부들이 모두 찬성하지 않는 한, 들어올 수 없어." 날카로운 시혁의 말투에 아쉽다는 듯 표정을 찌푸린 채희가 미노를 본다. "미노라고 했었나? 남자치고는 굉장히 예쁘다… 이현이랑 짝이라던데… 넌 어떻게 알고 있는거야?" "그게 왜 궁금한데." "… 그냥! 난 이현이 주변인물에도 관심이 많거든! 게다가 우린 지금 연극도 같이 하고… 그러니까…!" "부장이 멋대로 결정한 거지, 너 따위… 연극에 참여시킬 생각 없었어." "어, 어떻게 그런 심한 말을… 난 겨우 어제 전학왔구… 친구도 없이 이현이 하나 찾으려고 여기 온 건데… 반 친구인 네가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 "네 사정따위 나와 상관없어." "너무해… 너무하다구!" 손으로 입을 막고 밖으로 뛰쳐나간 채희. 그런 채희가 간 곳을 바라보는 시혁의 눈이 얼음처럼 차갑다. "… 정말 마음에 안 드는 군." 탁- 책을 덮은 류예가 채희가 나간 자리를 회색빛 눈동자로 바라본다. "저 애, 느낌이 안 좋아." 류예의 말에 시혁의 시선이 미노에게 닿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채, 새근거리며 잠들어 있는 미노. 시혁의 손이 미노의 앞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 미노에게 상처를 줄 생각이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지켜보이겠어." 19. 달칵- 미노의 방 문을 열고 들어오던 이현이 미노의 모습에 얼굴을 굳혔다. "… 뭐하는 거야." "아, 방 비워주려구. 네 약혼녀씨 들어오라구 연락해 둬." "… 도미노." "아무래도 내가 있으면 불편하겠지? 원래 너희 집이니까, 상관없는 사람은 나가줘야 하잖아. 그럼 바이바이!" "이 집에서… 나 소이현에게서… 떠난다는 말이냐?" "…… 너희 둘, 약혼한 사이잖아. 괜히 쓸데없는 방해꾼이 되고 싶지 않아…" 이현을 향해 희미하게 웃어보인 미노는 이현을 지나쳐 현관을 향해 걸었다. 탁- "……" 미노의 손목을 잡은 이현. 그와 동시에 문틈이 벌어지는 가 싶더니 이내 문이 열린다. 달칵- "어머! 이현이 찾았다!" 채희의 등장에 표정을 구긴 이현. 미노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다른 한 손을 들어 이현의 손을 떼어낸 미노가 문을 열었다. "… 미노야…" 그렇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부르지 마… 이젠… 난 네게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잖아… 네 입에서 나올 이름은 도미노가 아닌 나채희잖아… "미노랑 같이 살았던 거야? 근데, 나가는 모양이네?! 잘 됐다! 그럼 내가 지낼 방이 생긴거잖아!" 손뼉을 치며 좋아하는 나채희. 그래, 이젠 너희 둘 만의 보금자리야. 채희가 없던 빈자리, 잠시나마 나를 이용해 채웠으니… 이제, 제자리로 돌아 가… 소이현이 사랑해서 약혼한 사람은 도미노가 아니라 나채희니까… 달칵- 문을 닫고 나온 미노. 떨구고 있던 고개를 들었을 땐, 이미 미노의 눈동자에서 감정은 지워져 있었다. "도미노, 이제 어디로 갈까…?" 예전에 살고있던 집은 이현이 멋대로 처분해버려, 갈 데 조차 없다. 하늘을 보는 미노의 눈에 밤하늘에 떠 있는 별들이 비쳐 반짝인다. "왠지 짜증나는 걸…" 툴툴대며 이현의 집을 나온 미노는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중심가로 걸었다. 네온사인이 반짝이는 거리를 옅은 미소를 지으며 걷고 있는 미노. 그런 미노의 곁으로 여자들이 모여들었다. "얘, 너 어느 고등학교니?" "마린고등학교요-" "세상에, 너무 예쁘다!" "누나도 예뻐요-" "어머, 나보고 예쁘댔어! 너 집이 어디야?" "없어요-" "응? 에이, 거짓말. 집이 없다니… 집 나온거야?" "아니요-" 여자들이 묻는 말에 건성으로 대답하며 걷고있는 미노. 표정만 봐도 관심이 없다는 걸 알텐데, 여자들은 미노의 곁에서 떠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너 연상 좋아해?" "싫지는 않아요-" "꺄아- 그럼 나랑 사겨줄 수 있어?" "싫어요-" "왜에- 누나가 예뻐해줄게, 응?" "아무튼 싫어요-" "예쁜데다가 귀엽기까지 하잖아? 있지있지, 지금 어디 가는 거야?" "몰라요-" "에? 가는 곳을 모른단 말이야?" "네-" "그러지말구, 갈 데 없으면 누나가 하룻밤 재워줄 수도 있는데…" 피식- 미노의 입술에 차가운 미소가 걸렸다. 얼음처럼 냉정한 미노의 눈빛이 여자를 향했다. 새빨간 루즈, 짧은 미니스커트와 롱부츠… 그녀를 본 미노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져." "… 응? 뭐라구 한 거야? 좋다구?" "닥치고 꺼지라구." "어, 어머… 얘 갑자기 왜 이래?" 놀란 여자가 미노에게서 한 발 떨어지며 말한다. 그런 여자를 회색빛 눈동자로 주시하는 미노. "여자만 아니었다면, 죽었을 거야. 땅 속에 묻히고 싶지 않으면 조용히 꺼져." * 교복을 입었지만, 가방은 들고있지 않은… 반항아 특유의 모습을 지닌 미노. 미노의 실력을 본 아이들은 심기가 불편 해 보이는 미노의 모습에 슬금슬금 물러난다. 그런 아이들을 쓰윽- 둘러본 미노가 무표정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나, 잘 때 건드리면 저승길 직행인 거 알 거야… 부디 살인하지 않게 해 줘…" 말을 마친 미노가 책상에 엎드리며 잠을 청했다. 미노가 잠든 것을 확인하고서야 아이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다들 조용히, 미노 깨면 우린 다 죽은 목숨이야…" 소근거리며 이야기를 나누던 아이들은 이내 자리에 앉았고, 예전 같았으면 시끄러워서 수업을 못 할 지경이었던 교실이 조용하자 선생들은 목청을 돋우며 소리쳤다. "자- 페이지 41쪽 펴고, 허리 쭉…!" "쉿…!" 앞 자리에 앉았던 애가 검지를 입에 대며 말한다. 의아함을 느낀 선생님은 남학생이 가리킨 곳을 보고는 급히 입을 다물었다. 자고 있던 미노를 건드린 패거리들이 전치 12주가 나왔다는 것을 전해 들었기 때문이리라. "자… 수, 수업을 시작해야지…" 목소리를 한껏 낮추고는 수업을 진행하는 선생님. 학생의 잠을 깨우지 않기 위해 목소리를 낮춰서 수업하다니… 말도 안 된다고 생각지마라. 다른 학생이면 몰라도, 자고있는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목숨 부지 하려면 조심, 또 조심해야만 한다. 미노도 미노지만, 미노의 뒤에 버티고 있는 학생회는 선생님들도 감히 교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최고급이니, 더욱 경계할 수 밖에 없다. 더군다나 소문이지만 칼을 지니고 다닌다는 소이현마저 도미노의 뒤에 있다고 하니, 선생님들은 미노를 건드리고 싶어도(?) 건드릴 수가 없는 노릇이다. "… 조용하게 수업하자… 대답도 조용히… 알았지?" "네에…" 이로써 기상천외한 수업이 시작되었다. 살벌한 경고를 던져놓은 미노는 세상모르게 잠에 빠져들었고, 일어났을 때는 이미 점심시간. 옆자리를 보니 이현은 학교에 오지 않는 듯 하다. 피식- "약혼녀씨와 밤새 뜨거웠나보군." 이현의 책상에서 시선을 거둬버린 미노가 옥상으로 향했다. 시원하게 부는 바람이 잠을 달아나게 만든다. 난간에 팔을 걸친 채,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눈을 감은 미노. "기분이… 좋아." 책상에 누워 잠을 잔 탓에 미노가 뻐근해진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고는 문을 열고 밖으로 향했다. 건물 밖으로 나온 미노가 학교를 둘러보며 걷고 있을 때, 누군가가 미노의 팔을 잡아당겼다. 뒤에서 잡아당기는 힘에 의해 미노의 몸이 뒤로 기울어졌고, 그와 동시에 위에서 화분이 떨어져 내렸다. 쨍그랑- "하아… 조금 더 조심할 수는 없는거야?" "… 은샘아…" 미노를 뒤에서 잡아당겼던 사람은 다름아닌 은샘. "역시나 안심할 수가 없는 녀석이라니까…" "또… 도움을 받아버렸네." 미노가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고, 잠시 미노를 보던 은샘은 화분이 떨어졌던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우연이라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치밀하게 계획된 행동… 분명히 미노를 노렸을 것이다. 은샘의 눈빛이 짙어졌다. 탁- 하고 미노의 팔을 낚아 챈 은샘이 학생회실로 미노를 밀어넣었다. 갑작스런 미노의 등장에 시혁과 예찬이 놀란 눈을 하고는 은샘을 쳐다본다. "너 앞으로 여기서 한 발자국도 못 나가." "최은샘, 무슨 일이야? 미노를 왜 가둬놓으려는 거야?" "… 방금, 또 어떤 녀석이 미노를 노렸어요. 이대로 뒀다간 정말… 목숨이 몇 개라도 모자란다구요." 미안한 표정으로 서 있는 미노를 향해 다가 온 시혁. 미노의 눈에 초점이 없는 것을 본 시혁의 눈이 슬프게 빛났다. "네게 한 발자국 다가가기가 어려워… 뒤에서 지켜줄 수 밖에 없구나." 20. "나가게 해줘- !" "안돼." "왜 안되는데!" "… 안된다면 안되는 거야." "나갈래!" "못 나가." "나갈거야!" 30분 전부터 나간다는 말만 하고 있는 미노. 시혁에게도 애처로운 눈빛을 던져봤지만 무참히 무시당하고, 자신을 이리로 데려온 은샘에게도 부탁해봤지만, 또 무시당했다. 울상이 된 표정으로 풀썩- 하고 주저앉은 미노를 향해 우주가 다가왔을 때, 잠시나마 눈을 빛낸 미노였지만, 우주는 나갈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라며 경고를 던진 상태. 거의 포기 직전이었던 미노는 마지막 희망인 류예에게 다가갔다. "류예선배- 나…" 탁- "잠깐 바람이나 쐬러 갈까?" 미노를 보며 눈부시게 웃는 류예. 역시, 이 사람은 천사였어! "응, 갈래요!" "그래, 대신 옆에 꼭 붙어다녀. 알았지?" "당연하죠!" 시혁에게 눈을 찡긋- 해 보인 류예가 미노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미노가 류예와 함께 도착한 곳은 옥상. "고마워요, 선배." "… 응? 뭐가?" "저 데리고 나와주셔서…" "… 아냐, 대신 내일 연극 연습은 열심히 해야한다?" "응응! 그럴게요!" 류예를 향해 활짝 웃어보인 미노. 한참동안 밖을 보고 웃던 미노는 이제 됐다며 난간에 기댄 채 바닥에 주저앉았다. 잠깐 어깨를 빌려달라며 기댄 미노는 따사로운 햇살을 맞으며 잠이 들었다. 철컹- 옥상 문이 열리고 들어온 이현. 류예의 어깨에 기대어 잠든 미노를 보고는 멈칫- 한다. 편안해 보이는 얼굴. 하지만… 처음 봤을 때보단 한없이 야윈 얼굴. 이현의 시선을 느꼈는 지, 미노가 눈을 떴다. 눈 앞에 서 있는 이현을 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노를 따라 일어난 류예가 비틀거리는 미노를 부축했다. "왜 그래, 어지러워?" "괜찮아요, 선배. 그만 내려가요. 은샘이가 또 난리치겠다." 희미한 미소를 지어보인 미노가 이현의 곁을 스칠 때, 탁- 하고 미노의 손목을 잡은 이현. "… 선배, 미안해요. 먼저 내려갈래요?" 힐끔- 하고 이현을 본 류예가 알았다며 미노를 향해 미소를 지어주고는 문을 열고 내려갔다. 싱긋- "무슨 할 말 있어?" "… 내가 하는 행동에 반항하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었나…?" 차가운 목소리. 이현의 눈은 싸늘함이 깃들어 있다. 그런 눈으로 날 보다니… 내게 무슨 대답을 바라고 있는거야? "그래, 맞아." 난 아직 네가 우리 집에 쏟은 돈을 갚지 못했어. 그걸 갚기 전까지… 난 네 곁에서 떨어질 수 없을거야. "돌아 와." "……" "싫다고 한다면… 억지로라도 데려가겠어." "……!!" * 이현의 손에 이끌려 집으로 들어온 미노. "이, 이거 놔! 아프잖아!" "오늘은… 널 고이 둘 수 없을 지도 몰라." 차가운 목소리. 방으로 데려간 이현이 미노를 침대 위에다 던져버린다. 리모컨 버튼을 눌러 블라인드를 친 이현이 자신에게서 멀어지는 미노를 붙잡아 벽에 밀어붙였다. "소, 소이현 이거 놔! 너 미쳤…읍!" 이현의 입술이 미노의 입술을 파고들었다. 미노의 입술을 깨문 이현이 벌어진 입술 사이로 들어가 입 안 곳곳을 탐한다. 미노를 한 팔로 껴안은 채 침대에 눕힌 이현이 미노의 와이셔츠 단추를 풀어나간다. "이, 이러지 마! 더 이상…내게 상처를 주지 말아 줘…" 미노의 음성에 이현의 손이 멈췄다. 허리를 감았던 손을 침대에 짚은 채, 미노를 보는 이현. "미치도록 널 가지고 싶어, 미노야…" "… 네겐 약혼녀가 있어. 넌… 그녀에게 몹쓸 짓을 하고 있어." "내가 진짜 좋아하는 건… 진짜 미치도록 원하는 사람은… 너야." 미노의 눈동자가 떨렸다. 두근거리는 심장소리가 이현에게 들릴까 겁이 난다. 따뜻한 목소리… 눈부시게 예쁜 미소를 지었던 이현이 맞았다. 와락- "흐흡…소이현, 이 나쁜 놈아!" 미노가 이현의 목을 끌어안고 울음을 터트렸다. 그런 미노를 꼬옥 안아주는 이현. 보고싶었다. 이현은 미치도록 미노의 온기가 그리웠다. 신선하게 풍겨오는 플레져 향기를 느끼며 이현은 눈을 감았다. 마지막까지 함께하고픈 사람… 그 한사람을 고르라면 이현은 망설임 없이 미노를 선택할 것이다. 후훗- "도미노, 넌 내게서 이현이를 뺏어가지 못 해." 문 밖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들은 채희가 입술에 비릿한 미소를 걸었다. 독하게 치켜올라간 눈꼬리, 표독스럽게 반짝이는 두 눈에는 한 사람을 부시고 말겠다는 욕망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댓글 124 인쇄 | 스크랩(0)▼ 행복찾아삼만리 채희야찌그러져 용 ㅋㅋㅋㅋㅋ ㅋㅋㅋ부장굿굿 08.08.03 17:06 답글 마렌 하아이거 정말....채희뇬...성질나오게한다아 08.08.07 23:27 답글 까꿍이Rh ......................................훗...... 난 광적으로 집착하는 남자가 좋더라~ 08.08.08 15:45 답글 노랑 아........미노가부럽다......... 채희년쳐버려 ㅋㅋ 08.08.10 21:49 답글 마늘이좋아 ㅋ 채희 08.08.12 01:55 답글 goddess 채희 살벌하네욥..ㅜㅜ 08.08.12 22:23 답글 LaTale 채희 나쁜년...나중에 결말 어떻게 되나 보자 네가 잘 될 것 같애!? 08.08.22 15:45 답글 레이♥ ㅋㅋ 08.09.03 18:44 답글 lemon tree 채희 언니 나 빠~~미노어니 이현오빠랑 다시 이어져서 다행이당~~^.^ 08.10.11 00:21 답글 별빛아랜 역시 악녀는 질투가 심해 미노야 꼭 이기렴 내용은 다알지만 그래도 머............ 08.10.16 19:37 답글 내남자， 채희진짜.. 성질짱 ㅋㅋㅋㅋㅋㅋㅋ 08.11.15 21:21 답글 두아 ㅋㅋㅋㅋㅋ너무재밋네염 09.01.07 20:07 답글 S2oc날나리ocS2 09.01.20 20:46 답글 노랑 역시..재미있어 +_+ 몇번봐도질리지가않아 09.01.30 09:49 답글 wkddmsgP 채희..........진짜 짜증이다..... 부장말처럼 찌그러져있어!!!!!! 09.02.02 17:44 답글 겸댕이경즈 이거 애니로표현하자면 역하렘인가용 ㅋㅋ 09.02.05 04:27 답글 탸귄소녀 채희 재수 없네.ㅋㅋ 미노가 부럽다 09.02.14 17:46 답글 우울한개프 나채 . 희 신예리(신애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름참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09.05.27 16:30 답글 네모박스① 잘봤어요^^ 09.07.06 04:41 답글 얼짱이코 채희 완전재수엄서 미노랑 이현이가 제일잘되야하는뎈ㅋㅋㅋㅋ 09.07.07 13:51 답글 곰도리다 채희멍미. 09.08.01 19:03 답글 날개 또 읽는데 넘~♡ 09.08.31 10:38 답글 미묘천설 채희야~ 죽음 출장서비스 있는데 해드릴까요? 09.10.05 15:46 답글 월햐소설 머 여준이 요렇게 인기가 마너 남자들 다 머찌고 아 부럽(_._ ) 09.10.14 10:10 답글 ◀이전 1 2 3 다음▶ 등록 텍스티콘 0 / 300자 회원은댓글을 쓸수 없습니다. 등록 텍스티콘 0 / 300자 글쓰기 답글 최신목록 | 목록 | ▲윗글 | ▼아랫글 ▲윗글 | 남장† 위험한 도발, 미치도록 차가운 그 녀석의 키스에 길들여지다 21~30 2008.02.10 ▼아랫글 | 남장† 위험한 도발, 미치도록 차가운 그 녀석의 키스에 길들여지다 1~10 2008.02.10 ▲top 서비스 약관/정책 | 권리침해신고 | 카페 신고 | 이용약관 | 카페 고객센터 | 검색비공개 요청 Copyright (c) Daum Communications Corp. All rights reserved. ------------------------------------------------------------------------------------ 남장소설ㄲt페boy (http://cafe.daum.net/boyhamr) 제목 : 남장† 위험한 도발, 미치도록 차가운 그 녀석의 키스에 길들여지다 작가명 : H. 체리비。 메일 : moon-sters@daum.net">moon-sters@daum.net 연재장소 : 남장소설카페 총 편수 : 60편 장르 : 남장소설 ------------------------------------------------------------------------------------ - 위험한 도발, 미치도록 차가운 그 녀석의 키스에 길들여지다. 21. 내일 있을 연극을 위해 마지막으로 연습을 한다며 학생회실에 모인 모두들. 제법 진지한 표정으로 연기에 몰두하고 있는 모습들이다. "신예리… 당신에게 어울리는 아주 예쁜 이름이군요." 탁- "아야! 부장, 왜 때려!" "조금 더 감정을 넣어서 할 수는 없어? 책 읽니?! 응?!" 부장의 핀잔에 건성으로 대본을 읽던 우주의 표정이 구겨졌다. 그런 우주의 모습에 쿡쿡거리며 웃는 모두들. "아, 미노야… 다 됐니?" "에? 아, 다 되긴 했는데… 부끄러워서 못 나가겠… 으에엣!" 미노의 손목을 잡고 밖으로 끌어낸 부장. 드레스를 입은 채 나타난 미노의 모습에 모두의 시선이 미노에게로 향했다. 흑진주빛의 검은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리고 드레스를 입은 미노. "세, 세상에… 정말 예쁘다!" 부장이 눈을 빛내며 미노의 주위를 돈다. 얼굴을 붉힌 채, 헤헤헤- 하며 웃고 있는 미노. 흰 피부에 잘 어울리는 핑크빛의 드레스. "내가 골라도 너무 잘 골랐다니까!" 어깨를 시원스럽게 드러낸 드레스는 미노의 잘록한 허리를 더욱 돋보이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꼼꼼하게 고급스러운 무늬로 장식된 드레스는 시혁의 어머니가 하시는 부띠끄에서 직접 맞춘 것으로 이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고급품이었다. "서우주, 여주인공이 이만하면 연극할 맛 좀 나겠지? 응?" "… 뭐, 나쁘진 않네." 퉁명스럽게 내뱉은 우주는 대본으로 얼굴을 가린 채 쇼파에 누워버린다. 자신의 모습을 거울에 비쳐보며 그렇게 이상한가… 라고 생각하던 미노는 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문 앞에 서 있는 이현과, 이현의 팔짱을 끼며 등장한 나채희. "… 얘들아, 어서 와! 이것 좀 봐, 너무 예쁘지?" 부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이현. 미노는 이현의 반응에 얼굴을 붉히고는 고개를 푹- 숙였다. 이현이 눈치채지 못하게 미노를 노려보던 채희가 부장에게 다가갔다. "이게 연극 날에 입게 될 드레스예요?" "응! 예쁘지? 너무 잘 어울린다-" 여전히 자신의 주위를 돌며 감탄사를 내뱉고 있는 부장의 행동에 미노는 고개를 푹 숙이고는 쇼파에 도도도- 하고 뛰어가 풀썩- 앉았다. "윽- 야, 도미노! 너 누구 죽일 셈이냐?!" "으에엣!" 화들짝 놀라며 일어난 미노가 시혁의 뒤에 숨었다. 우주가 누워있다는 것을 망각한 미노가 누워있던 우주의 배 위에 앉아버린 것. 화가 난 표정으로 일어나 미노에게 팔을 뻗은 우주. 하지만 미노는 그런 우주를 피해 학생회실을 빙글빙글 돈다. (드레스 입고 잘도 뛰는구나.) 어디서 그런 체력이 남아도는 지, 한참을 방방 뛰어다니던 미노가 이현의 팔을 잡고 헥헥댄다. "으아- 힘들다." "도미노, 너 잡히면 죽었어!" 우주가 미노를 향해 달려왔고, 잠시 쉬고 있던 미노는 우주를 피해 또 다시 교실을 뱅뱅 돌았다. 미노가 채희의 옆을 막 지나갈 때, 눈치를 보던 채희가 슬쩍- 하고 발을 내밀었다. 꽈당- "아야야… 아파… 읍!" 갑작스레 넘어진 미노의 위로 당황한 우주가 넘어졌고, 그 둘의 입술이 겹쳐졌다. "……!!" "… 오! 좋았어, 그 씬을 넣도록 하자!" "… 에?" 넘어져있는 미노와 우주를 보고는 부장은 빠른 손놀림으로 마지막 장면을 고쳐나간다. "뭐, 뭐야…?" "마지막에, 사랑을 확인한 왕자가 공주를 방금과 같은 장면으로 덮치는 거지!" "… 에엑-!" "뭐야?!" 당황한 우주가 벌떡 일어나 부장의 대본을 뺏어들었다. 하지만, 이미 다 손을 써놓은 상태. 절망한 듯 고개를 푹- 하고 숙인 우주. "이게 뭐냐고…" "미, 미안… 괜히 나 때문에…" 우주의 옷 끝자락을 잡고 작은 목소리로 사과하는 미노. 그런 미노가 순간 귀엽게 보인 우주. "아, 아냐! 까짓 거 한번 해보자!" "정말…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부장, 마지막 연습 시작하죠!" 그렇게, 그들의 연극연습은 막바지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 연극 날 당일. 턱시도를 차려입은 은샘은 여학생들의 밀려드는 애정공세를 받으며 땀을 흘리고 있다. 마린고 학생회에서 준비하는 연극은 해마다 가장 큰 행사로 마린고에서 진행하는 문화재보다도 더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시혁과 예찬, 은샘은 항상 미노의 옆에 대기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저번처럼 또 미노를 노리는 누군가가 접근하는 걸 막기 위해서. 시릴 듯이 푸른 눈을 가진 예찬은 흰색의 턱시도를 입고 2층 강당으로 올라가는 난간에 기댄 채 서 있다. "이제 올라가자. 너도 의상 갈아입어야지." 예찬의 안내를 받아 위로 올라간 미노는 미리 준비된 분장실로 들어가 부장이 해주는 메이크업을 받았다. 피부가 워낙 흰 미노라서 따로 화장을 할 필요가 없었기에 마스카라와 립글로즈를 바른 게 전부. 마지막으로 드레스를 입은 미노는 연극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 커튼을 걷으며 분장실에서 나왔다. "역시, 주인공을 맡기길 잘한 것 같은데? 엄청 예뻐." 시혁이 미노의 귓가에 속삭였다. 귀까지 빨개진 미노는 시혁을 향해 가볍게 웃어주었다. 시혁은 은샘과 마찬가지로 미노를 지켜주는 기사 역을 맡았다. 검은 원단에 색색의 큐빅이 박힌 로브를 걸친 시혁의 모습은 완벽하게 보일만큼 멋졌다. "선배… 의상 정말 잘 어울려요." 싱긋- "기사 카이넥스 케일, 공주님을 영접합니다." 한 쪽 무릎을 꿇고 미노의 손등에 가볍게 입을 맞춘 시혁은 장난스럽게 웃었다. 연극을 알리는 소리가 들리고, 시혁과 함께 대기실로 들어선 미노의 눈에 채희와 함께 앉아있는 이현이 보였다. 은푸른색의 로브를 걸친 이현은 비록 악역이라고는 하나, 단연 돋보였다. 이현의 옆에 앉은 채희는 가슴이 보일 듯 말듯한 의상을 입고 짙은 화장을 한 채 앉아있다. 달칵- 문을 열고 들어온 부장은 대기실을 쭈욱- 하고 둘러보더니 음산하게 낮은 목소리를 흘린다. "연극 망치면 죽을 줄 알아라…" 쭈뼛- 머리카락이 곤두서는 것 같은 느낌에 몸을 부르르 떤 미노가 무대에 올라갔고, 연극은 시작되었다. 호화로운 황궁에서 벌어지는 가면무도회. 많은 사람들이 모여 춤을 추는 가운데, 슬픈 표정으로 가만히 서 있는 여자. 그를 향해 다가온 가면을 쓴 남자. "당신은… 왜 춤을 추지 않나요, 파트너가 없다면 저와 함께 하시지 않으시겠습니까?" 망설이던 여자가 남자의 손을 잡고 함께 춤을 춘다. 황홀하게까지 보이는 장면에 관객들의 호응이 물결치듯 일렁였다. 무도회를 마친 여자는 가면을 벗고 머리를 묶고있던 리본을 풀었다. 찰랑거리며 허리까지 부드럽게 내려온 머리칼. 미노에게로 향해있던 조명이 꺼지고, 왕자역을 맡은 우주의 차례가 되었다. 잘생긴 외모로 인해, 관객들의 호응이 끊이질 않았고, 시간은 빠르게 흘러 채희의 차례가 되었다. "천박한 계집 주제에, 감히 왕자님을 넘보다니!" 기다렸다는 듯이 신나게 밟아대는 채희. 원래는 시늉만 하기로 했으나, 채희는 있는 힘을 다해 미노를 밟고 있었다. 채희를 보는 사람들의 입에서 욕이 흘러나왔으나, 그런 것들을 싸그리 무시한 채희는 미노를 실컷 밟아주고는 무대 뒤로 향했다. "당신을… 가지지 않고는 못 견딜 것 같아." 유로인 역을 맡은 이현이 신예리 역을 맡은 미노를 끌어안고 입을 맞추었다. 거칠게 미노의 입술을 탐한 이현이 미노의 허리에 손을 감았을 때, 시혁과 은샘이 등장했다. "공주님! 괜찮으십니까!" "잡아라! 놓쳐서는 안된다!" 바람처럼 사라지는 이현을 쫒아 무대 뒤로 사라지는 조연들.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연극도 클라이막스에 접어들고 있었다. "예리… 당신과 결혼하고 싶어…" "… 시아님…!" 미노가 달려가 우주의 품에 안기는 장면에서 관객들이 뜨거운 박수를 보내왔다. 미노의 턱을 살짝 치켜든 우주의 행동에 눈을 감은 미노. 그런 미노의 입술에 실제로 입을 맞춘 우주. 미리 손을 잡아 반항할 수 없게 만들어 놓은 우주였다. "… 예리, 당신을 사랑해…" "시아님…" 침대 위로 쓰러진 미노와 우주. 그와 함께 류예의 나레이션이 흘러나왔고,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관객들. "재미있었어요!" "연극 진짜 재미있었어!" "우우- 공주 최고!" "기사단들 진짜 멋있었어요!" 모든 조명이 켜지고, 출연진들이 모두 나와 인사를 했다. 그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이, 채희는 미노의 뒤에 있는 조명에 발을 걸어 미노에게로 넘어뜨렸다. 등 쪽이 뜨거워 지는 가 싶어 고개를 돌린 미노의 앞을 가로막은 검은 그림자. 파캉- 뒤에 있던 조명이 미노가 서 있던 방향으로 쓰러지며 깨졌다. 미리 그것을 알아챈 시혁이 미노를 안아 옆으로 피했고, 채희는 또 틀어져버린 일에 입술을 깨물었다. 관객들은 놀라 다급히 밖으로 피했고, 무대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출연진들 뿐. "… 다치지 않았어?" "아, 으응… 괜찮아요." 미노를 잡아 일으켜 준 시혁의 눈이 짙게 물들었다. 이현의 옆에서 어머, 어떡해, 안 다쳤을까? 란 말을 연발하고 있는 채희에게로 다가간 시혁. 짜악- 채희의 고개가 돌아갔다. 차갑게만 보이는 시혁의 눈동자. "사람의 목숨을 우습게 여기는 것도 정도가 있어…" 22. 교복으로 갈아입고 분장실을 나오던 미노의 앞을 막아선 채희. "너, 사람 참 우습게 만드는구나?" 앙칼진 목소리. "네가 잘못해서 조명을 넘어뜨린 주제에, 누구한테 뒤집어 씌우는 거야?" 채희가 손을 들어 미노의 머리를 밀었다. 미노가 아무런 반응이 없자 미노의 턱을 들어올려 빤히 보는 채희. "그 반반한 얼굴로, 어느새 많은 남자를 꼬셨더구나? 그 덕분에 난 뺨까지 맞았고, 정말 짜증나." 입술을 앙다문 채희가 미노에게 닿아있던 손을 내리며 웃었다. "네가 아무리 그래도, 이현이는 나와 약혼한 사이야. 알아?" "……" "너, 이현이와 살기 전에 지하 단칸방에서 살았다면서? 하, 웃겨! 어디서 벌레만도 못한 게 굴러들어와서는…" 미노의 눈동자가 잿빛으로 변했다. … 지하단칸방에 살든… 비좁은 옥탑방에서 살든… 그건 네가 상관할 바가 아니잖아. 내 목숨을 노린 거, 아무렇지 않게 넘길 수 있는 일이야. 그런데… 감히 내 뒷조사를 해? 너 따위가…? "그렇게 노려보면 어쩔거야? 아, 널 지켜주는 차시혁이 있어서 날뛰는거니?" "……" 팔짱을 낀 채 비아냥거리는 채희를 보는 미노의 눈에 싸늘함이 묻어났다. "보아하니, 학생회 간부라는 녀석들이 전부 네게 넘어간 것 같더라? 그 녀석들도 제정신이 아니지, 멀쩡하게 생겨가지고는 남자를 좋아하다니, 전부 미친 거 아…! 꺄앗!" 짜악- 그저… 뺨을 살짝 때린 것 뿐인데… 바닥으로 쓰러지다니… 얘 이렇게 약한 애였어? 방금 전까지만해도 입꼬리를 올리며 히죽거리던 애가… 울어…? "… 흐흑… 이현아…" 이현…? 소이현…? 뒤를 돈 미노의 앞에 화가 난 얼굴로 서 있는 이현. 차가운 눈으로 미노를 본 이현이 넘어진 채희를 일으켜 세웠다. "흐흑… 난 그저, 연극 때 정말 예뻤다고, 연기 정말 좋았다고 얘기했던 것 뿐인데… 갑자기… 네게서 떨어지라면서… 약혼녀 행세 하지 말라면서… 흐흑… 이현아… 나, 나 억울해…!" 이현의 품에 안겨 울음을 터트리는 나채희. 아니야… 아냐, 소이현… 난 그런 말… 한 적 없어… 저 말을… 믿고 있는 건 아니지? 미노의 눈동자가 떨렸다. 하지만, 미노를 보는 이현의 눈은 한없이 차갑기만 하다. 온 몸에 힘이 빠지는 것을 느낀 미노. 흐릿한 미노의 눈동자가 이현을 향했다. … 믿고… 있구나. 내가 아닌… 나채희… 네 약혼녀를 믿고 있는 거구나… "사과해." "… 뭐?" "채희에게… 사과해." 차갑기만 한 이현의 눈동자. 흐릿한 미노의 눈동자에 살기가 느껴졌다. "… 그래, 원한다면 얼마든지." "그, 그렇게나 무섭게 보면서 뭘 사과한다는 거야? 흐흑… 이현아, 나 무서워…!" 이현의 품에 더욱 파고드는 채희. 그런 채희를 한 팔로 감싼 채, 미노의 곁을 스쳐지나가는 이현. "도미노, 앞으론 이런 식의 모습은 보이지 마라." "……" 싸늘한 눈동자로 미노를 본 이현은 망설임없이 미노를 지나쳤다. 진짜로 원하는 건 나라며… 그런 말까지 해놓고서… 왜 내 말은 들으려 하지 않는거야… 내게 했던 말도 무시해 버릴만큼, 그만큼 네 약혼녀를 믿고 있는 거구나… 이제… 이제 됐어… "정말 진심으로 원했던 거라면, 그런 눈으로 날 볼 수는 없는 거잖아…" * 쏴아아- "하아… 하아…" 손등으로 입을 닦아낸 미노가 세면대를 잡은 채,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속이 뒤틀리는 느낌. "제기랄…" 기분을 전환시킬 뭔가가 필요했다. 발산하지 않으면 폭발해 버릴 것 같은 느낌. "젠장…" 나즈막히 욕을 읊조리며 교실에 도착해 자리에 앉은 미노. 비어있는 이현의 자리를 본 미노는 예상했다는 듯 피식- 하고 웃어버리고는 책상에 얼굴을 묻었다. "야, 저, 저기 좀 봐!" "왜 그래? 꺄악! 저게 뭐야?!" 아이들의 소란에 눈을 뜬 미노가 시선을 창 밖으로 던졌다. 교문에 엄청나게 몰려든 검은 차와 양복을 입은 사람들. "야, 저기 싸우고 있는 사람 소이현 아냐?!" 한 아이의 외침에 눈을 크게 뜬 미노가 벌떡- 하고 일어나 창 밖을 본다. 서른 명 남짓한 무리들의 틈에 쌓여 채희를 보호하며 싸우고 있는 이현의 모습에 미노의 표정이 차가워졌다. "무모하긴… 걸리적거리는 건 미리 치워버렸어야지." 낮게 중얼거린 미노가 망설일 것 없이 창문을 뛰어넘었다. "꺄악! 미노야!" "뛰, 뛰어내렸어!" "3층에서 뛰었는데, 상처하나 없다니… 저 녀석 대체 정체가 뭐야?!" 퍼억- 깔끔하게 한 방을 먹여준 미노가 무리의 중심으로 파고들었다. 눈으로 따라가지 못할 정도의 스피드로 움직이며 이현의 옆으로 다가간 미노가 채희의 팔을 잡았다. "놔, 무, 무슨 짓이야!" 버둥거리는 채희를 무리들의 밖으로 던져(?)버린 미노가 무리들 틈으로 섞여들어갔고, 휘둘러 오는 주먹을 뒤로 피한 미노가 남자의 미간에 발차기를 먹여주었다. 퍼억- 쓰러진 상대가 다시 일어나지 못하게끔 급소를 찍어버린 미노. 켁켁대며 숨을 내쉬던 상대가 거품을 물고는 기절했다. 그걸 지켜본 무리 중 한명이 미노의 안면을 노리며 주먹을 뻗어왔고, 뻗어오는 주먹을 허리를 굽혀 피한 미노가 남자의 가슴에 주먹을 내질렀다.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충격으로 바닥에 한 쪽 무릎을 꿇은 남자. 남자의 세워진 무릎을 발판삼아 뛰어오른 미노가 앞으로 도약했고, 달려오는 남자에게 다리를 뻗어 배를 걷어차고는 가볍게 바닥에 착지한 미노. 놀라울 정도로 빠른 몸놀림, 눈빛만으로도 상대를 제압하는 미노의 실력에 이현의 눈이 커졌다. 퍼억- 퍽! 주먹을 뻗는 남자의 옆으로 파고든 미노가 팔꿈치로 턱을 올려치며 손을 깍지껴 내리쳤다. 풀썩-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쓰러진 남자의 입에서 피가 토해져 나왔다. "너, 넌 뭐하는 놈이야!" "… 닥치고 덤벼!" 누구냐고 묻고있던 남자에게로 다가간 미노가 위로 몸을 살짝 뛰운 뒤 다리를 올려 남자의 어깨를 내리찍었고, 그대로 다리를 내려 재빨리 한바퀴 돈 다음 다른 쪽 다리로 남자의 얼굴 중앙을 정확하게 먹였다. 퍼억! 미노의 행동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깔끔하고 가볍지만, 그런 미노의 단 한 방의 주먹에도 상대방은 쓰러져 내렸다. "한번 놀아보자구…" 잿빛으로 변한 미노의 눈동자가 자신을 향해 선 남자에게 닿았다. 몸을 빠르게 회전시켜 남자의 곁으로 이동한 미노는 오른팔을 휘두르며 남자의 왼쪽 갈비뼈를 쳤다. 으드득- 짧게 신음을 흘린 남자가 반격을 해오자, 몸을 회전시킨 미노가 빠르게 오른쪽 다리를 내밀며 놈의 면상을 치고는 상대방의 얼굴에 정확히 먹혀들어간 공격의 감각이 다리에 느껴지자 앞으로 빠르게 움직여 면상맞은 놈을 앞지르면서 팔꿈치를 들어 자신의 앞에 있는 놈의 명치를 찍어준 미노가 그와 동시에 등으로 면상맞은 놈을 반대쪽으로 날려버린다. "꽤… 재미있어…" 미노의 입술에 잔인한 미소가 걸렸다. 차가운 눈동자는 인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 슬금슬금 뒷걸음질치는 무리를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지켜보고 있는 미노. "덤비랬지, 언제 도망가랬냐…?" 도망가던 한 놈의 정강이를 걷어찬 미노가 놈의 명치를 발뒤꿈치로 찍어주었다. 남자의 몸이 미노 쪽으로 기울어지자 뒤로 한 발 물러선 미노가 무릎으로 힘차게 얼굴을 올려찼고 그 바람에 남자의 허리가 뒤로 치켜지자 주먹을 뻗어 남자의 얼굴을 먹여준 미노.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으로 쓰러져 내린 남자. 자그마한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스무명 남짓한 인원이 미노에 의해 바닥에 널부러져 있다. "도미노… 너…" 이현의 눈이 미노에게로 향했고, 그런 이현의 시선을 피한 미노가 꿈틀거리는 남자를 짓밟아주고는 교실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덕분에… 시원해졌다." 하늘을 향해 활짝 미소짓는 미노. 미노의 실력을 교실에서 지켜본 아이들은 그런 미노의 얼굴을 보고는 경악을 금치못했다. 저토록 사람을 패놓고선, 활짝 웃는 모습이라니… 미노는 이 일로 인해 새로운 별명을 얻었다. [천의얼굴] 이라는… 23. 연극 때문이었을까, 미노의 인기는 날로 높아져만 간다. 매일 아침 시혁과 예찬, 우주와 류예가 여자애들에게 받은 선물들이 쓰레기통에 쌓여져만 가는 학생회실에, 미노에게 보내는 여자애들의 러브레터와 선물까지 배달되고 있다. "와아- 이겼다!" 그런 학생회실에서 종이컵 안에 동전을 넣고 여러 개의 종이컵을 섞은 뒤, 어디에 동전이 들어있을까… 하는 게임을 하고 있는 미노와 우주. 간단하게 미노가 이겨버리자, 우주는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이 녀석, 은근히 귀엽잖아!) "쳇…" "음헤헷! 얼른 천원 주세요-!" 주머니에서 꺼내진 지폐를 보지도 않고 미노의 손에 얹어준 우주는 털썩- 하고 앉아버린다. 그런 우주를 향해 눈부신 미소를 지은 미노가 손에 놓여있는 지폐를 보고는 씨익- 하고 웃었다. "뭐, 뭐야… 그 웃음은?" "… 만원이지롱!" 미노의 손에 들린 초록색 지폐. 으앗- 하며 앉아있던 자리에서 일어난 우주가 미노를 향해 손을 내민다. "다시 내 놔. 천원 줄 테니까." "싫어!" 혀를 쏙- 내밀어 보이고는 돈을 주머니에 넣은 미노가 만족스러운 웃음을 짓는다. 그런 미노를 향해 한 발자국씩 다가오는 우주. "내 놔." "시, 싫어…!" 점점 가까워져 오는 거리에 미노는 슬슬 뒷걸음질 쳤다. "좋은 말로 할 때 내 놓는 게 네 신상에 좋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으으… 이거 완전히 협박이잖아… "나, 나, 남자가 쪼잔하게! 한번 줬으면 된 거지, 그걸 도로 뺏으려고 드냐?!" 미노가 뒷걸음질치며 말했고, 그런 미노를 향해 웃으면서 다가오는 우주. 역시나 사악한 놈이었어. 그런 표정으로 뭘 어쩌려는 거냐구! "무슨 일이 생겨도… 내놓지 않을거야…?" "다, 당연하지! 절대 못 줘!" (꽤 돈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 미노에게로 점점 더 가까이 다가가는 우주. 살짝만 입술을 내민다고 해도 닿을만큼 가까운 거리. 조, 조금만 떨어질 수는 없는거냐…? "얼른 내 놔." "그러니까 싫… 꺄앗!" 쇼파에 발이 걸려 넘어진 미노. 우주의 옷자락을 잡고 넘어져 버린 미노때문에 얼떨결에 미노를 덮치는 상황이 되어버린 우주. 아, 저기…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그러니까 그게… 아니, 이게 아니지! 얼른 안 일어나고 뭐하는 거야! "… 도미노, 너 꽤 위험하다." 에? 이게 무슨 소리? 무슨 뜻이냐는 듯 멀뚱멀뚱 우주를 보고있는 미노. 그런 미노를 향해 싱긋- 하고 웃은 우주. "… 하마터면, 덮쳐버릴 뻔 했거든." * 학생회 임원들과 함께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있는 미노. "아, 선배 넌센스 퀴즈 하나 낼테니까 맞춰봐요!" "넌센스…? 그래, 해 봐." "시혁선배는 승낙했고, 다른 선배들은 어때요?" "좋아, 기꺼이 응해주지." 예찬이 눈부신 미소를 지으며 답했고, 그런 예찬을 향해 웃어준 미노가 류예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응, 좋아." "그럼, 은샘이는?" "… 끄덕." 마지막으로 남은 건 우주. 미노가 눈에 힘을 주며 우주를 쳐다보았다. 그런 미노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마주보는 우주. 그리고… 약 3분간의 정적이 흐르자,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인 우주. 이번에도 완벽한 우주의 패배였다. "그럼 문제 나갑니다! 소가 웃는 소리를 세글자로 줄이면 뭐가 되게요?" 미노가 낸 문제에 곰곰히 생각하던 시혁이 곤란하다는 듯 예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는데… 알려줄래?" 예찬마저 포기. 은샘은 고개를 저으며 모르겠다는 표시를 했고, 우주는 어깨를 으쓱한다. 그건 모르겠다는 뜻이냐,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뜻이냐…? "음… 나도 모르겠어." 모두의 시선이 미노에게로 향했다. "답… 알려줄까요?" "응, 뭐야? 궁금해…" 정말 궁금한 듯, 눈을 빛내며 묻는 시혁과 예찬. 류예와 은샘은 따뜻한 눈으로 미노를 보고 있고, 우주는 삐딱한 자세로 앉아 미노를 보고있다. "답은요… '우하하' 래요…" 순간의 정적. 잠시 미노를 향해 눈을 깜빡이던 류예가 풋- 하며 웃음을 터트렸다. 그와 동시에 재미있다며 눈물까지 글썽이는 예찬. "하하하… 아무튼 못 말려, 그런 건 또 어떻게 알아낸 거야?" 미노를 보는 시혁의 눈동자에 담겨있는 애정. 그런 시혁을 향해 베시시- 웃어보이는 미노였다. "반 친구가 알려준 거예요, 재미있지 않아요?" "풋… 재밌어, 하하하하! 진짜 재밌어." 예찬이 눈에 고인 눈물을 닦아내며 미노의 머리를 흐트렸다. 기분 좋다는 듯 웃고있는 미노. "며칠 간… 나 때문에 선배들 신경쓰이게 한 거 미안해요…" 진심이 담긴 미노의 목소리에 시혁이 미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괜찮아… 미안해 할 필요 전혀 없는 걸?"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하는 시혁. "선배… 선배는 언제나 내 편이었죠…? 항상 고맙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어떻게 갚아야 할 지 모르겠어요…" "… 미노야." 류예의 목소리에 고개를 든 미노. 그런 미노의 눈에 믿음직한 네 사람의 모습이 보인다. "우리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네 편이야. 언제나… 이대로 평생 네 편이 되어줄 수 있으니까, 앞으로 그런 말은 하지 마…" 너무나 따스한 목소리. "네가 필요없다고… 귀찮다고 하더라도… 우린 널 저버리지 않아." 예찬의 예쁜 눈동자가 미노를 향해 웃음지었다. "조금 귀찮긴 하지만, 나쁘지 않으니까… 옆에 있어도 괜찮아." 우주는 살짝 얼굴을 붉히며 말했고, 그런 우주의 말에 고개를 숙여 살짝 끄덕인 미노. 예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든 미노의 눈에, 이현의 팔짱을 낀 채 식당으로 들어온 채희가 보였다. 짓고 있던 미소를 어느새 지워버린 미노. 차갑게 변한 미노의 눈동자가 채희를 향했다. "… 미노야, 나 그렇게 무서운 얼굴로 보지 말아 줘… 무섭단 말이야…" 채희의 목소리가 들리자 시혁은 고개를 돌렸다. 미노를 보고 있지 않은 이현의 시선. 채희는 그런 이현의 팔짱을 더욱 단단히 끼며 미노에게 말했다. "저번에, 그런 일… 나 괜찮아, 다 용서할 수 있어… 이제 나 좀 그만 미워하면 안 되니?" 거짓 눈물을 글썽이는 채희. "이현아… 미노 좀 설득해 줘… 응? 부탁이야… 미노야…" 채희의 말에 이현의 시선이 미노를 향했다.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아직도 미워할 생각이냐…?" 아무것도 모르면서… 너 따위…! 누구의 말이 진짜인 지도 구별 못 하는 주제에…! 뭐가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아직도 미워할 생각이냐?" 인데…! "그만 가자." 시혁이 미노의 어깨를 감싸며 일어났고, 그런 미노의 팔을 잡은 이현. 미노의 걸음이 멈추자, 자연스레 시혁의 시선이 이현에게 닿았다. 싸늘하게 식어있는 시혁의 눈동자. "… 내게서 떨어지라고… 그렇게까지 말해서 상처입혔잖아. 그걸로 된 거잖아… 이제 그…!" 퍼억- 이현에게 주먹을 날린 시혁. 차갑게 식어있는 눈동자가 이현에게 닿았고, 채희는 놀라며 이현이 맞은 것을 보고는 울먹인다. "… 미노에게 그 따위 말을 내뱉을 자격… 네게는 없어." "차시혁! 이게 무슨 짓이야! 네가 뭔데 이현일 때려!" 얼려버릴 듯 싸늘하게 식은 시혁의 눈동자가 채희에게 닿았다. 그 시선을 마주보던 채희는 시혁에게서 느껴지는 한기에 몸을 떨었다. "더 이상… 날 자극하지 마." 시혁이 채희를 보던 시선을 거두고는 미노와 함께 밖으로 향했다. 앉아있던 예찬과 은샘, 류예와 우주가 일어났다. 시릴듯한 푸른 눈으로 채희를 주시하는 예찬. "꽤나… 애쓰는 구나…" 24. 채희는 비어있는 시혁의 자리를 보고는 입술을 깨물었다. 어떻게 하면 없애버릴 수 있을까… 마린고에서 가장 큰 힘을 행사하는 시혁이 미노의 뒤에 있다는 건 채희에게 가장 불리하게 적용되었다. "제길… 차시혁만 처리 해 버릴 수 있다면…" 손톱을 물어뜯으며 짜증을 부리고 있던 채희의 머릿 속에 문득 예찬의 눈동자가 떠올랐다. 산예찬… 그 자식도 내 눈 앞에서 치워버리겠어… "그 둘만 없으면… 도미노를 이현이에게서 떼어놓는 것도 시간문제야…" 핸드폰을 꺼내 든 채희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알아들을 수 없는 대화를 하며 내내 기분나쁜 웃음을 짓는 채희. "그래, 그렇게만 해주면 늬들에게 원하는 걸 주도록 할게." 전화를 끊은 채희의 입에 소름끼치는 미소가 걸렸다. 그들만 움직여준다면, 더 이상 자신의 앞을 가로막을 사람은 사라진 셈이나 마찬가지. 채희는 여유롭게 웃으며 플립을 닫아 주머니에 넣고는 밖으로 향했다. "이현이는, 뭐하고 있을… 뭐야, 도미노." "그 둘을 건드릴 생각이라면… 널 가만두지 않아." 싸늘하기만 한 목소리. 그런 미노를 향해 팔짱을 낀 채희가 눈을 치켜떴다. "그래…? 할 수 있으면 어디 한 번 해 봐. 재미있겠네." "… 장난이 아냐. 그저 말로만 하는 하찮은 협박 따위가 아니야… 널 망쳐버리는 수가 있어." 진심이 담긴 눈동자. 잿빛으로 보이는 눈동자에는 녹지않는 눈이 쌓인 듯, 차가움만이 감돌고 있다. 잠시 멈칫- 했던 채희가 억지 웃음을 자아내며 미노를 쳐다본다. "해보라구. 재미있을 것 같으니까… 그 녀석들, 꽤나 널 아끼는 것 같던데…? 너와 함께 어울린 댓가가 어떤 것인지 내가 가르쳐 주도록 할께, 넌 그걸 있는 힘껏 막아 봐. 그럼 되잖아?" 피식- 미노의 입에 잔인한 미소가 걸렸다. 섬뜩한 눈동자로 채희를 주시하던 미노가 채희의 곁을 스쳐가며 흘린 말에 채희는 온 몸에 느껴지는 전율에 몸을 떨었다. "날 겉모습으로 판단하지 마… 반드시 지켜내겠어. 그리고 나서 널 부숴줄테니… 부디 기다리라구." 채희의 떨리는 눈동자를 힐끔- 하고 바라본 미노가 채희를 지나쳤다.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주저앉은 채희. 그런 채희를 보며 꺅꺅대는 계집애들이 다가와 채희를 일으켰고, 그들을 차가운 눈동자로 주시하던 미노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눈부신 미소를 지으며 자리를 떠났다. 미노가 자리를 뜨고 난 후에야 떨리는 몸을 진정시킨 채희가 미노가 간 곳을 쳐다봤지만, 이미 어디로 갔는 지, 보이지 않는 미노의 모습에 채희는 잠시나마 감사를 해야만했다. "도미노, 뭘 믿고 그렇게 자신만만한지… 지켜보겠어." * 방과 후, 약속된 장소로 온 채희는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질 시혁과 예찬을 상상하며 비릿하게 미소지었다. 채희의 앞을 막아선 남자들은 각종 무기를 손에 들고, 창고의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드르륵- 문이 열리고, 수면가스에 의해 잠이 든 시혁과 예찬이 보였다. 건드리지 말라는 채희의 말에 얌전히 의자에 묶어둔 남자들. "채희야, 이 새끼들 둘 처리하라는 거 아냐?" "기다려, 곧 너희와 놀아줄 상대가 나타 날 거야." 채희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문 앞에 나타난 한 사람의 그림자. 그러면 그렇지… 란 생각과 함께 채희의 입이 열렸다. "네가 이 녀석들을 다 상대하지 못하면… 저기 있는 두 녀석의 숨통을 끊어놓을 생각이야. 분명히 막아보인다고 호언장담을 했으니, 어느 정도 예상은 했겠지?" 창고에 있는 건 70명 가량의 대 인원. 그들을 쭉- 둘러본 미노가 입술을 옆으로 그었다. "오늘… 피 좀 보겠는 걸…" 씨익- 하고 웃으며 입술을 혀로 핥은 미노. 차가운 기운을 발하고 있는 눈동자, 온 몸을 휘감고 있는 살기. 미노의 존재만으로도 창고 안은 섬뜩함이 느껴질 정도로 공기가 매섭게 변해있었다. "그럼… 축제를 시작해볼까…" 순식간에 발을 움직여 맨 앞에 있던 사내의 뒤로 이동한 미노가 남자의 목을 팔로 감아 꺾었다. 으드득- "으으…" 뼈 부러지는 소리가 섬칫하게 들리며 남자가 바닥으로 쓰러져 내렸다. 남자가 다시 일어나지 못하도록 얼굴을 밟아 뭉게버리는 미노의 행동에 서 있던 남자들이 일제히 미노를 향한 공격을 시작했다. 야구배트를 일자로 휘두르는 사내의 공격을 옆으로 살짝 피하면서 배트를 휘두르는 속도보다 더욱 빠르게 뭉툭한 부분을 친 미노가 앞으로 도약하며 사내의 턱을 팔꿈치로 찍어버린다. 자신들의 동료가 당하는 것을 본 또 한명의 사내가 미노를 향해 들고 있던 연장을 휘둘러 왔고, 그런 남자의 공격을 여유롭게 피한 미노가 남자의 배를 발로 걷어 차 거리를 유지했다. "오토바이 체인 같은 위험한 물건은, 애송이가 지닐 연장이 아니지." 미노의 도발에 손에 들었던 연장을 마구 휘두르는 남자. 남자의 공격을 허리를 땅에 닿을만큼 구부려 피한 미노가 연장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나자 재빨리 앞으로 도약하며 팔꿈치로 턱을 치고 옆으로 돌려져 있는 고개의 반대쪽으로 몸을 돌리며 자신의 오른쪽 다리로 남자의 얼굴 중앙을 정확하게 먹였다. 털썩- 위로 몸을 띄운 미노가 상대방에게 다리를 잡혔다. 인상을 찌푸린 미노가 재빨리 몸을 회전시켜 남은 쪽 다리로 남자의 관자놀이를 쳐버리자 미노의 발목을 잡고 있던 남자의 눈이 뒤집히며 쓰러져 내렸다. 풀썩- 가운데로 파고들어가 거침없이 주먹과 발을 사용하며 상대방을 제압 해 나가는 미노. 미노의 실력을 지켜보던 채희의 표정이 점점 구겨졌다. "뭐하는 거야! 이 따위로 했다간 아무 것도 없을 줄 알아!" 채희의 말에 남자들은 더욱 열심히 미노를 향해 연장을 휘둘렀고, 그런 남자들을 여유롭게 피하며 정확한 공격을 먹여주는 미노였다. 1시간 째 많은 인원을 상대하고 있다보니, 미노의 체력도 점점 바닥을 보였다. 퍼억- 거친 숨을 몰아쉬는 미노의 등을 내려친 남자. 그런 남자를 발을 걸어 넘어뜨린 미노가 소리를 지르지 못하게끔 입을 밟아버리고는 팔을 부러뜨렸다. "…끅…" 짧은 신음과 함께 정신을 잃은 남자. 이미 상당한 인원이 바닥에 쓰러져 있고, 남은 인원은 40명 가량. 미노의 눈동자가 찬찬히 그들을 살폈다. "이제, 너도 점점 지쳐가는 것 같은데… 이쯤에서 그만두지 그래?" 채희의 말에 얼굴을 차갑게 굳힌 미노가 발목에 묶어두었던 모래주머니를 풀었다. 무게로 친다면 하나에 5kg 이 넘게 보였다. 채희의 얼굴이 놀라움으로 물들었다. 저런 걸 차고도… 그렇게 빠르게 움직였단 말이야…? "시시하잖아… 좀 더 날뛰어보라구." 미노의 도발. 섹시하게만 보이는 미노의 모습에 남자들은 침을 삼키면서도 미노에게로 연장을 휘둘렀다. 공격해오는 놈들을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막아내며 상대방의 급소를 정확하게 먹여주는 미노. 다시 일어나지 못하도록 팔과 다리를 거침없이 부러뜨리는 미노. 제대로 타격도 못 입히면서 끊임없이 덤벼오는 남자들을 지루하게 느낀 미노가 잔인한 공격을 퍼부었다. 살극무. 상대방을 죽일 때 말고는 사용하지 않는 방법. 미노의 잔인함이 극에 달했다. 팔이 부러지고, 목이 부러지고, 갈비뼈가 으스러졌으며 어깨뼈가 빠지는 등… 미노의 공격에 상대방의 피해는 늘어만 갔다. 남자들이 모두 바닥에 쓰러졌을 때, 힘이 빠진 미노가 바닥에 털썩- 하고 쓰러져 내렸다. 이미 나채희는 언제 도망을 갔는 지, 보이지 않는다. "쥐새끼처럼 빠져나가봤자… 내게서 벗어날 수 없어." 차가운 말을 내뱉은 미노가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수면가스의 효과가 떨어졌는 지, 잠에서 깨어난 시혁과 예찬은 앞에 보이는 광경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 미노야!" 시혁이 남자들의 가운데 쓰러져 숨을 몰아쉬는 미노를 부축했다. "다, 다쳤어?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 하아… 안 다쳤어요… 그냥, 선배들 구하러 온 것 뿐이야…" "…… 미노야… 정말 괜찮아?" "응, 괜찮아요." 끙- 하며 몸을 일으킨 미노가 시혁과 예찬을 보고는 씨익- 하고 웃었다. 흙투성이가 된 얼굴로 웃다니… 이보다 사랑스러운 아이가 어디 있을까… 이보다 더 예쁜 아이가 이 세상 어디에 있을까… 시혁이 팔을 뻗어 미노를 끌어안았다. "… 네가 싫다고해도, 날 위해서라도 널 사랑해야겠어…" 25. 며칠 째 학교에 나가지 않은 이현. 상처받은 미노의 눈동자가 잊혀지지가 않는다. 분명히 채희를 때린 게 맞는데… 어째서 그런 슬픈 눈을 하고서 자신을 봤던 걸까… 이현의 앞에 어질러져 있는 술병들. 이미 많은 양의 술을 마신 듯, 이현의 동공은 풀려있었다. 딸랑- "이현… 이현아!" 채희가 이현의 옆에 놀란 눈을 하고 앉았다. 이렇게 취한 적이 없었는데… 흐릿한 이현의 눈이 채희를 향했다. 미노… 미노야…? 눈을 몇 번 깜빡이니, 흐릿했던 시야가 맑게 보인다. 놀란 눈을 하고서 이현의 앞에 앉아있는 채희. 이현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미노가… 미노가 아니야… "이현아, 무슨 술을 이렇게나 마신거야? 응?" "… 가라." "이현아… 그러지 말고 이제 일어나…! 꺅!" 파앗- "가라고 했잖아!" 이현이 거칠게 채희를 밀어냈다. 그런 이현의 행동에 울먹이며 이현을 쳐다보는 채희. "이현아… 왜 그래, 내가 뭐 잘못했어? 잘못했으면… 사과할게… 그러니까, 제발 밀어내지는 마…" "… 모르겠어,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어…" "이현아…?" 테이블 위로 쓰러진 이현. 이현을 흔들던 채희가 순간 표정을 바꾸더니 어디론가 전화를 건다. "나야, 여기 Pull인데, 데리러 와." 잠시 후, 도착한 차에 이현을 태운 채희. 근처에 있는 호텔로 이현을 데리고 들어온 채희. "이건 팁이에요, 그만 나가봐요." 채희가 내민 돈을 받은 남자가 고개를 꾸벅- 하고 숙인 뒤 밖으로 나갔고, 침대에 누워있는 이현을 보는 채희. 들고있던 핸드백을 의자에 놔두고는 이현에게로 다가간 채희가 손을 들어 이현의 볼을 쓰다듬는다. "소이현… 널 반드시 가질거야." 조심스럽게 이현이 입고있던 쟈켓을 벗기고 와이셔츠 단추를 푸는 채희. 탁- 술에 취해서도 자제력은 남아있었던 듯, 이현이 채희의 손을 막았다. 단추를 푸는 것을 그만두고, 이현의 얼굴을 매만지는 채희. 보는 것만으로 황홀할 정도의 외모. 흰 피부에 굳게 다물어진 선홍빛의 입술. 날카롭고 곧게 뻗은 콧대와 매끄러운 피부. 갸름하게 매끈하게 잘 빠진 턱선은 군침을 삼키게 만들 정도로 섹시하다. "누구도 널 가로채게 놔두지 않아… 넌 내 거야. 영원히 나채희의 것이라구…" 표독스럽게 빛나는 채희의 눈, 반짝이는 두 눈에 가득히 맺힌 집요한 집착심. 채희는 이현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아침이 되면… 도미노에게 전화를 해 네 옷을 여기로 가져오라고 할 거야… 그 녀석의 표정이 기대되는 걸…?" 소름끼치게 웃은 채희가 조심스럽게 이현이 누워있는 옆자리로 가 이현의 팔을 베고 누웠다.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어… 이현아…" * 핸드폰이 울리는 소리에 눈을 뜬 미노. "여보세요?" - 여기 L 호텔인데요, 302호에 묶고 계시는 소이현씨 동거인 되십니까…? "도, 동거인이라니… 왜 그러시죠?" - 옷을 좀 보내달라고 부탁하셔서요… 가져다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네, 알겠어요. 위치 좀 알려주시겠어요?" 전화를 끊은 미노가 급히 옷을 챙겨입었다. 며칠 간 학교에 나오지 않는다 싶더니… 밖으로 나가려던 미노를 잡은 시혁. 일찍 일어났는 지, 깔끔한 모습이다. "어디 가? 아직 아침이야." "아, 잠시 다녀올 데가 있어서요!" "이렇게 아침 일찍?" "네, 잠시만 다녀올게요!" 문을 열고 뛰어나간 미노. 미노가 간 곳을 보던 시혁은 고개를 갸웃- 하고는 방으로 들어갔다. 이현의 집에 도착한 미노는 간단한 옷가지들을 챙겨 택시를 잡아탔다. "L 호텔로 가주세요." 택시가 호텔 앞에 도착하고, 호실을 확인한 미노가 초인종을 눌렀다. 이현이 나올 것을 예상했던 미노는 안에서 나온 채희의 모습에 얼굴을 굳혔다. "어머, 네가 올 줄은 몰랐는데…" 물기가 채 마르지 않는 머리칼을 틀어올린 채희가 웃고있다. 그런 채희의 뒤로 침대에 누워 잠들어있는 이현이 보인다. "아, 그러지말고 들어 와." 미노의 손목을 붙잡고 안으로 들여놓은 채희. 채희의 손에 이끌려 들어온 미노는 천천히 탁자에 다가가 옷이 들어있는 가방을 내려놓았다. "아… 저기, 이런 모습을 보이게 되서 미안해… 어제… 이현이가 많이 취해서…" 마치 뭔가를 말하려는 듯 손을 올려 자신의 몸을 감싸는 채희. 그런 채희를 보던 눈을 돌린 미노가 침대에 누워 잠들어있는 이현을 본다. 학교에… 나오지 않았던 이유가… 이거였구나… 나도 참… 바보야. 나름대로 꽤 즐기고 있었을텐데, 걱정이나 하고 있었다니… 미노가 굳은 얼굴을 한 채, 채희를 보고는 밖으로 나갔다. 탈칵- 문이 닫기는 소리가 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 표독스럽게 입꼬리를 올리며 웃는 채희. "하하, 표정이 가관이군… 혼자보기 아까울 정도야…" 채희의 웃음소리에 잠이 깬 이현. 눈 앞에 있는 채희의 모습에 눈을 크게 뜬다. 이현은 탁자 위에 놓여있는 옷과 채희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누가 가져다 준 거지? 부하직원인가?" "아니, 미노가 왔다갔어…" 이현의 눈이 놀라움으로 커졌다. 채희는 수줍은 듯이 수건을 걸치고 있는 몸을 양 팔로 감싸며 이현을 보고있다. "어제, 우리 둘 다 많이 취해서… 그만…" 이현은 어제의 일을 기억하려 애썼다. 바에서 혼자 술을 마신 것 까진 기억한다. 하지만 그 뒤로는 기억이 없었다. "너, 많이 괴로워보였어… 그래서…" 아니었다. 이현은 누구보다 자신을 잘 알고 있었다. 아무리 괴롭다고 해도, 여자를 안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 모습을 미노가 봤다는 생각에까지 미치자, 이현의 표정은 사정없이 구겨졌다.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았을까… 그렇게 약하고 여린 아이가… 얼마나 큰 상처를 받았을까… 사과하려고 했는데… 미안하다고… 네 말을 듣지 않고 몰아세워서 미안했다고… "이현아… 나, 너한테 준 거 후회하지 않아… 그러니… 꺅!" 이현이 채희의 어깨를 잡고 벽에 밀어붙였다. 싸늘하기만 한 두 눈동자. 차가움만이 가득한 이현의 얼굴을 본 채희가 흠칫- 하고 떨었다. "웃기지 마. 내가… 내가 널 안았다고…?" "이현아… 네가 졸업하면 우린 곧 결혼할 사이고…" 퍼억- 이현의 주먹이 채희의 옆에 위치한 벽에 뻗었다. 그 모습에 겁을 집어먹은 채희가 몸을 떨었다. 이현의 시선이 채희의 얼굴에 닿았다. "내가 너의 어딜 만졌지? 여기? 아니면 여기? 어땠어, 기분이 좋던가? 아니! 아마 뱀껍질을 만진 것 같은 역겨운 기분이었을거야!" 이현의 손이 채희의 입술과 목 쇄골과 어깨를 훑었다. 자신을 보고있는 눈동자가 정말 이현의 것이 맞을 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차가운 이현의 모습에 채희는 몸을 떨었다. "이제까지의 너의 거짓 연극에 놀아난 내가 저주스러울 뿐이야. 죽고 싶지 않으면 앞으로 내 눈 앞에 나타나지 마." 쟈켓을 집어든 이현이 급히 밖으로 뛰어나갔다. 아직 멀리가지는 못했을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 해명해야만 했다. 상처받은 그 녀석을 무슨 일이 있어도 감싸줘야만 했다. "도미노! 미안해! 미안해, 미노야! 하지만… 하지만 네가 생각하는 일 따위, 없었어! 하늘에 맹세할 수 있어! 미노야… 전부 내가 미안해! 상처주지 않겠다고 하고선, 널 가장 많이 상처입혔어! 미안해, 정말 미안해!" 호텔 로비에 있는 기둥에 숨어 이현이 외치는 소리를 듣고 있는 미노. 듣기싫다는 듯 두 손을 들어 귀를 막았다. 더 이상, 네게 변명 따위는 듣고 싶지 않아! 이제, 이제 네 말은 믿지 않아! 네 입에서 나오는 미안하다는 말 따위 듣고 싶지 않아! 흐흑… 듣기싫어… 네 입에서 나오는 말… 아무것도 믿지 않아…! "이제는… 더 이상 상처받고 싶지 않아…" 26. [지금은 고객님의 전원이 꺼져있어, 소리샘으로 연결…] 이틀부터 연락두절인 미노. 수없이 전화를 걸어봤지만 한결같이 전원이 꺼져있다는 안내음만 들려온다. "미노야… 어디로 가 버린 거야…" 고개를 숙인 시혁에게서 흘러나오는 음성이 아프게만 느껴진다. 미노가 행방불명이라는 소리에 부리나케 달려온 예찬과 은샘, 류예와 우주. "… 제발… 무사하기만 해줘…" 손을 모으고 있던 시혁은 앞에 놓여있던 전교생의 연락처 중 하나를 집어내고는 번호를 눌렀다. 몇 번의 신호가 가더니, 메마른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나 차시혁이다, 미노 거기있나?" - 무슨 소리야? 미노가 여기 있냐니, 당신과 함께 있는 거 아니었어? "엊그제부터 연락이 안돼. 아침에 나간 뒤부터 행방불명이란 말이야, 어디 갈만한 데 없어?" - 갈만한 데라니… 미노가 없어졌단 말이야? "대체 미노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만약이라도… 만에 하나라도… 미노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절대 네 녀석을 용서하지 않아!" 전화를 끊은 시혁이 쟈켓을 들고 밖으로 뛰어나갔다. 어떻게 해서든 찾아야만 했다. 혼자두면 무슨 짓을 저지를 것만 같았다. 항상 밝은 척 하고 강한 척 하고 있지만, 마음이 가장 여린 건 다른 누구도 아닌 미노인 걸 알고 있는 시혁이었기에 이대로 지켜만 볼 수는 없었다. "이 비서, 나예요. 지금 사진을 보낼테니, 그 아이를 본 사람이 있거든 나에게 연락해줘요." 미노의 사진을 전송한 시혁. 그와 동시에 예찬과 류예는 자신들의 집 전용 사설 경찰들을 출동시켰다. "반드시, 반드시 찾아야만 해…" 한편, 미노가 사라졌다는 말을 들은 이현은 흑월회의 인원을 모두 소집했다. 그 중에서도 움직임이 빠르고 정보망이 넓은 자들로 나누어 놓은 이현. "긴 말은 사기를 떨어뜨릴 뿐이니, 한마디만 하겠다. 죽을 힘을 다해서 찾아라. 어떠한 일이 있어도 찾아 내!" "알겠습니다, 총수님." 남자들이 밖으로 뛰어나갔고, 그와 동시에 밖으로 나간 이현이 급하게 차를 몰았다. 모든 추적장치를 작동하고, 혹시나 있을 비상사태도 대비해 놓은 상태. 팟- 이현이 주먹을 쥐고 핸들을 내리쳤다. 제길… 어째서 이렇게 어리석을까… 그저 내 전화만 받지 않으려 전화를 꺼놓은 것으로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행방불명이라니… 이현은 입술을 깨물었다. "제기랄!" 욕설을 내뱉은 이현은 차의 속력을 높였고, 거칠게 핸들을 꺾었다. * 한편, 머나먼 바다를 바라보며 앉아있는 미노. 철썩거리며 맞부딪혀 부서지는 파도에 녹아들고 싶었다. 아련한 미노의 눈동자에 바다가 비춰져 파랗게 빛나고 있다. "무슨 고민있니?"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도 고개를 돌리지 않는 미노. 미노를 잠시 쳐다보던 남자가 미노의 옆에 앉았다. "안 좋은 일이 있었다면, 잊어버리는 게 좋아." "… 잊었어요. 다만… 지우지 못할 뿐." 흔들리는 미노의 눈동자가 남자를 향했다. 연한 갈색의 머리카락이 바닷바람에 의해 흩날리고 있다. 아기같이 흰 백색의 피부, 갈색의 눈동자… 미노를 보는 남자의 눈빛은 한없이 따스하기만 하다.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인데, 나 기억 안 나?" 피식- "작업거는 거예요?" 미노의 말에 작게 고개를 저은 남자. "정말이야, 많이 봤던 얼굴이야…" 미노의 얼굴을 물끄러미 보는 남자. 이내, 생각이 났다는 듯 손바닥을 탁- 하고 친다. "미노… 도미노 맞지?" "…… 날, 알아요?" 싱긋- "물론이지, 잊을 리가 없잖아." "그게 무슨…?" 미노의 말에 남자는 싱긋- 하고 웃었다. 여자라고 해도 믿을만큼 예쁜 미소. 내가 이런 사람과 어떻게 알고 있다는 거지…? 탁- 미노의 손을 잡고 팔을 걷은 남자. 손목에 새겨진 십자가 모양의 상처를 보고는 웃는다. "예전에, 산에서 길을 잃어버렸었지? 7살 때였나?" "……!! 아! 그럼 그때 날 구해준… !" "응, 나야. 류환희. 너무 많이 변해서 못 알아보려나?"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잘생겨졌다면 잘생겨진 거겠지. 동네 꼬마의 집에 놀러갔다가 집에 오는 길을 잃어버려 산 속을 헤메고 있을 때, 날 구해준 사람. 그때와 똑같은 옅은 갈색 머리카락, 한없이 부드러운 목소리. "미노야!" 멀리서부터 시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차에서 내려 뛰어오는 모습이 보인다. 하여간… 나 찾는데는 귀신이라니까. "선배…" 와락- "바보같이… 누가 멋대로 사라지래!" "걱정… 했어요?" 미노의 머리카락을 쓰다듬던 시혁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야… 아무 일도 없어서… "서, 선배…" "얼마나 찾았는 지, 알기나 해?" "… 미안해요. 그냥… 조용히 생각하고 싶었던 게 있었어요." 고개를 숙인 미노를 꼬옥- 안아준 시혁. 그런 시혁의 눈에 미노의 옆에 있는 환희가 보였다. "누구야…? 소개 좀 해 줘." "아, 선배… 이쪽은 제 생명의 은인이에요." 생명의 은인이라는 말에 눈을 크게 뜬 시혁이 미노의 어깨를 잡았다. "너, 너 생명의 은인이라니 설마…!" 피식- "선배 바보예요? 그런 거 아니에요, 나 7살때 길 잃어버렸는데, 이 오빠가 구해줬어요." 미노의 설명을 듣고서야 안심한 듯 웃는 시혁. 환희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는 시혁. "안녕하세요, 미노 학교 선배인 차시혁입니다." "반갑습니다, 류환희예요." 웃으며 시혁의 인사를 받은 환희가 미노에게 물었다. "미노야, 마린고등학교가 어디야?" "… 내가 다니는 학교인데, 그건 왜?" "네가 다닌다고?" "응! 왜 그래?" "내일… 그 학교로 전학가거든." 27. 다음 날, 교실로 부리나케 뛰어들어온 이현의 눈에 자리에 앉아 눈을 감은 채 벽에 기대있는 미노가 보였다. 탁- 손목을 붙잡는 느낌에 감고있던 눈을 뜬 미노. 많이 여윈 이현의 모습에 인상을 찡그린다. 뭐야… 약혼녀랑 잘 되고 있는 주제에 그렇게 야위어 진 모습은… "아파, 놔 줘." "잠깐만… 할 얘기가 있어." "너와 할 얘기 없어." "미노야… 오해야. 전부… 전부 오해야." 간절한 목소리. 너무나 많이 아파보이는 눈망울. 미노는 그런 이현을 안아주고 싶다는 생각을 억지로 짓눌렀다. 더 이상… 이 녀석의 방식대로 놀아나진 않을거니까. "화분을 떨어뜨린 것도, 조명을 넘어뜨린 것도, 시혁 선배가 네 약혼녀 뺨을 때린 것도, 내가 네 약혼녀의 뺨을 때린 것도… 모두… 내가 만든 거라고 생각하고 있잖아. 그런 주제에…!" "아니야… 아니야, 그렇지 않아…" 파앗- "더 이상 네가 하는 말을 믿지 않아." 이현을 밀어낸 미노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향했다. 탁- 나가려는 미노를 잡은 이현. "믿어야 해. 미노야…" "……" "모두 내가 오해한 거야… 널 괴롭히고 못 살게 굴었던 건 채희였는데… 난 그런 너를 감싸주진 못할망정 널 상처입혔어…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눈 앞에 보이는 것만을 믿어버려서… 귀에 들려오는 것만 믿어버려서… 그래서 내가 널 상처입히고 말았어. 미안해… 미안해, 미노야." "싫어… 그런 말… 더 이상 그런 말에 속지 않아!" 와락- "미안해… 나만은 무슨 일이 있어도 네 편이 되어줬어야만 했는데… 그렇지 못하고 널 아프게만 만들어서 정말 미안해… 그리고… 진심으로 좋아해… 다른 건 몰라도 널 사랑하는 내 마음은 진짜야…" "……" "미노야… 말도 안 되는 욕심이라고 해도 좋아. 나 정말 네가 미칠듯이 보고싶었어… 너 없이는 하루도 힘들어… 내게 와 줘…" "…… 왜… 왜 항상 이런 식이야… 어째서…!" 이현의 품에 안긴 미노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바보같은 소이현… 어째서 날 좀 더 믿어주지 않았어…! 왜 내 말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어…! 내 맘을 조금 더 헤아려 주길 바랬단 말이야… 항상 내 옆에 있겠다고 했잖아! 무서워 하지 않도록… 옆에 있어주겠다고 해놓고선…! "네가 받은 그 상처 감싸주지 못해서 미안해… 네 아픔… 몰라줘서 정말 미안해…" 눈물을 머금은 미노의 눈에 시선을 맞춘 채, 미노의 얼굴을 감싼 이현. "많이 아팠지…? 미안해…" 미노의 입술에 살짝 입맞춘 이현. "그래… 이제서야 내 몸의 피가 흐르는 것 같아." *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났다. 모든 오해가 사라진 후, 시혁과 이현은 서로를 조금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 (하지만 서로 미노를 양보하지 못하겠다고 싸우는 상태) "으아- 마지막 시험엔 조금 자신이 있었는데 망쳐버렸어!" "난 꽤 잘 친 것 같은데? 봐, 등수 올랐잖아!" "뭐야! 너 지금 누구 염장지르냐? 엉?!" 전교생의 시험 성적이 걸려있는 게시판 앞에서 시끌벅적하게 떠들어대는 아이들. 그런 아이들에게 미노의 시선이 닿자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해진다. (그랬다, 미노는 어느새 학교를 장악하고 있었다.) 역시 학생회장이라는 건가… 전교 1등은 따놓은 당상이구만. 3학년은 당연히 시혁선배겠고, 2학년은… 캬, 류예선배와 우주선배, 환희선배까지! (뭘 해도 완벽한 녀석들.) 1학년의 성적을 본 미노의 눈이 커졌다. 이건 말도 안 된다. 늘 1등만 해오던 내가 지다니! 수업도 맨날 땡땡이치고 놀고먹던(?) 소이현에게 지다니! 찌릿- "… 왜 그렇게 봐…? 무섭게…" 악마 놈아, 네가 날 안 무서워 하는 건 이미 알고 있는 데 말이다. 제발 표정 관리를 좀 하지 그러니! 말은 무섭다고 하면서 그렇게 싱글거리며 웃고 있는 모습이라니! "너, 너…!" "… 말도 안 돼! 라고 하고 싶었던 거지?" 으으… 그래, 당연히 말도 안되지! 게다가 저렇게 싱글거리면서 웃고 있는 모습이라니… 보는 사람 열받게 잘생긴 놈이 머리 조차 좋으면 대체 다른 사람은 어쩌라는 건지… "생각지도 못한 결과가 나왔던데? 미노가 네 녀석에게 질 줄이야." "아, 시혁선배!" 꿍- 한 표정으로 이현을 보던 미노가 시혁을 보고 쪼르르- 달려간다. (어쩜 이리 귀여울까.) 다가온 미노를 웃으면서 어깨를 감싼 시혁을 보고는 이현은 인상을 찌푸렸다. "야, 도미노… 너 이리 안 오냐?" "남자의 질투는 유치하네." "뭐야- ?!" 발끈하며 시혁에게 달려드는 이현. 그런 이현을 막은 미노가 이현을 찰싹- 하고 때린다. 쳇- 하는 말과 함께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삐딱하게 시혁을 보는 이현. "아, 미노야! 여기 있었어?" 예찬이 웃으며 미노의 머리칼을 흐트렸다. 기분 좋다는 듯 베시시- 웃는 미노. "… 뭐야, 다들 여기 있었던 거야?" 류예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다가왔다. 미노를 향해 녹을 듯한 미소를 지어주고는 시혁에게 뭔가를 내민다. "이게 뭐야?" "학교 축제, 기말고사도 끝났으니 슬슬 준비해야 하잖아?" "아, 맞다… 요즘 정신이 없다니까." 시혁이 허리를 숙여 미노의 이마에 짧게 입맞춤하고는 류예와 함께 학생회실로 걸음을 옮겼다. "야, 도미노… 너 적당히 안하냐?" "메롱이다!" 쪼르르- 뛰어 저 멀리로 도망 가 버리는 미노. 그런 미노를 보기만 할 뿐,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는 이현이었다. 풀썩- "으앗- ! 갑자기 무슨 짓이야!" 학교가 파하기 무섭게 집으로 미노를 끌고 들어온 이현이 미노를 침대 위에 던져버리곤 위에 올라탔다. 무, 무, 무슨 짓을 하려고! 잠잠하다 했더니 또 늑대본성을 들어내는 거냐?! "저기… 마, 말로하지 않을래? 응?" "그래, 신체적 언어소통을 하자는 건데…" 히엑- ! 이런 변태녀석을 보았나! "학교에서 날 자극한 벌이야." 이현이 미노를 부드럽게 감싸안고는 입을 맞추었다. 버둥거리는 미노를 가볍게 눌러버린 이현이 와이셔츠 단추를 푼다. 에, 자, 잠깐! 이건 아니잖아! 소이현, 너 정말 일(?)을 치룰 셈인거냐?! "자, 잠깐… 읏!" 이현이 미노의 목덜미를 살짝 깨문 바람에 미노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놀라 급히 입을 틀어막은 미노를 보고는 피식- 하고 웃은 이현. "뭐야… 그 반응은." "아, 아니 이건… 으읍!" 미노의 말을 가볍게 훔친 이현의 입술이 거칠게 미노의 입 속을 탐했다. "저, 저기 잠깐…! 흣!" 이현이 미노의 등을 가볍게 쓰다듬자 미노의 등이 활처럼 휘었다. 피식- 하고 웃은 이현이 미노를 지긋이 내려다 본다. "도미노, 오늘은 너 고이 놔두지 못할 것 같다." 28. "저, 저기… 아직은 아니고… 그리고… 바, 밤도 아니고…!" 피식- "그럼 밤이면 해도 된단 소리냐?" "미쳤냐! 그게 아니라…! 내 말은…!" "… 걱정 마, 싫다는 여자를 덮칠 정도로 굶주리진 않았으니까…" 미노의 위에서 물러난 이현이 피식- 하고 웃는다. "뭐… 뭐야, 그 웃음은!" "도발하지만 않는다면… 널 강제로 범할 생각은 없어. 그러니까 안심해…" 도, 도발이라니! 내가 언제 그런 것을 했단 말인가? 벌떡- 하고 일어나 이현의 앞에 척- 하고 선 미노. "내가 언제 도발했는데!" 당당하게 외친 미노. 그런 미노를 보며 싱긋- 하고 웃은 이현이 미노의 팔을 끌어당겨 안았다. "잡아먹히고 싶지 않으면 밤에는 내 방에 오지 마라, 피식." 미노의 귀에 위와 같은 말을 속삭여 준 이현이 싱긋- 하고 웃으며 방을 나갔다. 내가 언제 찾아왔냐고요! 네가 멋대로 끌고 들어온 거잖아! 게다가…! 난 도발한 적이 전.혀. 없다고! 하아… 이제 하나하나 꼬집어서 따지는 것도 힘겨워… 달칵- 문을 열고 나가니,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마시고 있는 이현이 보인다. 냉장고 문을 닫은 이현이 미노에게 다가왔다. "미노야… 나 내일부터 잠시 집을 비워야 할 거야." "내일부터…? 왜? 무슨 일 있어?"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니고, 잠깐 일본에 다녀와야 해." 이, 일본…?! 역시… 넌 돈 많은 집안 도련님이었구나… "일주일 정도… 혼자 있어야 할텐데… 괜찮겠어?" "바, 바보!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마!" 피식- "이 몸의 키스가 그리울텐데도…?" "바, 바보냐?! 누가 네 키, 키스를 그리워 한다고 그래!" "… 자신있어?" 저, 저기요…? 자꾸만 다가오지 말아주실래요…? 그런 눈빛으로 다가오다니… 뭘 어쩔 셈이냐고…! "거, 거리가 너무 가까운 것 같은데… 이현…아?" "말 돌리지 말고 내가 묻는 말에 답이나 해." 대, 대답할테니까 그만 좀 다가오면 안되겠니…? "자, 자신있어! 그러니까… 읍!" 미노를 끌어안고 입을 맞춘 이현. 싱긋- "넌 자신있을 지 모르겠는데… 난 아니라서." * "꺄악- 미노님! 저의 정성이 들어간 쿠키에요!" "미노님… 읽어주세요!" "내 마음이 담긴 선물이야! 제발 받아 줘!" 선물공세를 해대는 아이들을 빠르게 뚫고 학교 안으로 들어온 미노. 일단 학교 안으로 들어오기만 하면, 팬클럽인 [미노홀릭] 회원들이 외부인들의 선물공세를 막아준다. 오늘도 언제나처럼 미노의 등교시간에 맞추어 방어태세(?)를 갖추고 있는 팬클럽 회원들에게 샤방한 미소를 날려준 미노. "꺄아- 미노님! 저희는 미노님을 지켜드리겠어요!" "응! 고마워-!" 회원들에게 손을 흔들어 준 미노가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복도를 걸어가고 있다. "미노야!" 언제들어도 감미로운 목소리, 환희였다. 오늘따라 더욱 빛나보이는 환희에게 활짝- 웃어보인 미노. "아, 선배!" "전학오자마자 시험이라니… 정말 최악이야." "선배, 전교 3등이라는 능력을 갖추고 있으면서 그런 말 하는 거 실례라구요." "아, 그런가…" 피식- "오늘은 왜 혼자야? 그 녀석은?" "아, 오늘부터 일주일간 학교에 못 와요. 일본에 간대요." "일본…?" "응, 학교에는 이미 손을 다 써놨으니까 신경 쓸 필요 없다나 뭐라나…" 어깨를 으쓱- 해보인 미노. "밖에 네 팬클럽 애들 고생하더라. 아침마다 보기 안쓰러워…" "그래서 걔네들이 주는 선물은 매번 받아주고 있어요. 한 달에 한 번씩 하는 파티에도 참석해주고 있구요." "헤에- 꽤나 매너있게 행동하고 있잖아?" "뭐, 남자가 된 이상 그래야 되지 않겠어요?" 환희보다 앞서 걸어가던 미노의 뒷덜미를 낚아 챈 우주. "으에에- 숨 막혀!" 미노의 반응이 재미있다며 쿡쿡거리는 우주. "뭐예요, 선배! 아직도 저번에 만원 사건으로 나 괴롭히고 싶은 거에요?!" "바보냐? 그런 거 아냐." "쳇, 아니면 말구…" "아, 그것보다 그 녀석은 오늘 왜 안 보이냐?" "환희선배~ 나 두 번 말하는 거 싫으니까 대신 좀 얘기해주세요-" 몸을 홱- 하고 돌려 교실로 가려는 미노의 팔을 잡아 챈 우주. "난 네가 얘기해줬으면 좋겠는데?" "쳇, 어차피 환희선배랑 같은 반이잖아요! 반에 가면서 들으면 되지!" "시끄러, 얼른 말해." 우주의 눈빛에 입술을 삐죽- 내민 미노가 귀여운 표정으로 웅얼거린다. "일주일 동안 학교 안 나온대요, 일본간다구." "일본…?" "으아- 또 똑같은 질문 받았다! 이것도 대답해야 해요?" "당연하지." "… 학교에는 손을 다 써놨으니까 신경쓸 것 없다나 뭐라나~ 하면서 갔어요!" 피식- "환희야, 얘 좀 빌린다." "에… 에에?!" 우주의 손에 이끌려 학생회실로 끌려온 미노. 문득, 미노의 입술을 본 우주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너… 그 녀석이랑 키스했냐?" 29. 파앗- 대답을 하지 않고 있는 미노를 잡아 벽에 밀어붙인 우주. 왠지… 화가 난 얼굴이다. 미노의 얼굴을 보고있던 우주의 눈이 미노의 목으로 향했다. 이현이 깨무는 바람에 생긴 키스마크. "이건, 또 뭐냐…?" 우주의 말에 붉어진 얼굴로 황급히 손을 올려 가린 미노. "아, 아무것도…" 피식-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면, 내가 물러날 줄 알았어?" "… 에?" 우주의 입술이 미노의 입술에 겹쳐졌다. 당황한 미노가 우주를 밀어내려 했지만, 그런 미노의 팔을 잡아버리는 우주. "서, 선배… 잠깐만요…!" 힘겹게 우주를 밀어낸 미노가 가쁜 숨을 몰아쉰다. "… 뭐야." 우주의 눈동자가 미노를 향했다. 뭔가를 간절히 바라고 있는 듯한 우주의 눈빛에 미노가 숨을 훅- 하고 들이켰다. 왜… 어째서 날 그런 눈으로 보고 있는 거예요…? 선배… "서, 선배…?" 피식- "미쳤다고 해도 좋아… 아니, 분명히 미친 거겠지… 나도 이런 내가 이해가 안 돼… 근데, 이런 내가 널 보면 여기가 미친 듯이 뛰어버려." 우주의 손이 자신의 왼쪽 가슴에 닿았다. 심장… 가슴이 뛴다는 거예요…? "선배…" 피식- "남자를 좋아하게 된 나는… 어쩔 수 없는 녀석인건가…?" 미노는 우주의 목소리에 묻어나오는 간절함에 눈을 감았다. 자신을 보고있는 우주를 향해 싱긋- 하고 웃어보인 미노. "선배… 저는요… 그런 선배의 감정이 특별히 별 수 없다거나 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사람을 좋아하게 되는 건 아주 좋은 일이니까, 그 기분은 소중하게 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 "… 하지만 지금 이대로도 나쁠 건 없잖아요? 모두가 사이좋게… 즐겁게 생활하고 있고, 또 저도 선배가 싫지 않으니까요…" "도미노…" "… 선배에게 고맙다는 말을 해주고 싶어요. 용기내서 말해주었으니까… 많이 힘들었을텐데도…" 미노의 얼굴을 보던 우주가 하는 수 없다는 듯 피식- 하고 웃었다. …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렇게 예쁜 마음을 가진 아이를… 알게 된 것만으로도 기뻐하고 감사해야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한 우주였다. "그럼… 내 라이벌은 소이현 녀석이 되는건가…?" 똑똑- "라이벌이 너무 적은 것 같은데…?" 문쪽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미노와 우주가 고개를 돌렸다. 언제 온 건지, 각자 상당한 서류를 들고 서 있는 시혁과 류예, 은샘과 예찬. "우릴 빼놓으면 섭섭하지, 서우주." "… 에?" 미노의 얼굴이 놀라움으로 물들었다. 그런 미노의 표정을 보던 시혁이 싱긋- 하고 웃는다. "미안하지만, 난… 녀석들에게 널 양보할 생각이 전혀 없거든." 시혁이 눈부시게 미소지으며 미노의 머리를 흐트리고는 의자에 앉았다. 그런 시혁을 보고는 주먹을 꽉- 쥐는 우주. 저, 저기… 우주선배…? 설마 그 주먹을 시혁선배에게… "나도야." 웃음을 짓고 있는 류예의 말에 우주가 놀란 듯 류예를 쳐다본다. 그런 우주를 향해 샤방- 한 미소를 날려준 류예. "… 류예… 너까지…" "넘겨주지 않을 생각이야, 시혁이에게도 소이현 녀석에게도."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류예가 우주를 향해 말했고, 그런 류예를 본 우주가 설마… 하는 표정으로 예찬과 은샘을 본다. 시릴 듯이 푸른 눈동자. 예찬의 눈은 보면 볼 수록 신비롭게만 느껴진다. "이러면… 내 라이벌이 너무 많잖아… 5명이라니…" 헙…! 우주 선배의 등에서 살기가…! 소, 손에 칼은 왜 들고 있는 거예요…! 아니, 그것보다 학생회실에 왜 칼이 있는 거냐고! 탁- 들고있던 서류를 내려놓은 은샘. "미안하지만… 6명이에요. 선배." * 축제 준비로 바쁜 학생회실. 각 반에서 내놓은 의견들을 검토하느라 엄청 시끌벅적한 분위기다. 관자놀이를 지긋이 누른 시혁이 대충 다 됐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시혁선배의 일 처리 속도는 알아줘야 한다니까!" "진짜… 5교시 내내 이것들 붙잡고 씨름했잖아. 하여간 못 말려…" "학생회장이라는 것도 꽤나 골치아프구나." "참나… 감탄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야, 너희들." 시혁이 뻐근해져 오는 어깨를 주무르며 말했고, 그런 시혁의 어깨를 두드려주는 미노. "아, 고마워." 미노를 향해 싱긋- 하고 웃어준 시혁이 책 한 권 분량의 문서를 탁자에 올려놓았다. "이게… 뭐예요?" "전교생들이 추천해 준 것들." "… 뭘 추천했는데요?" "이번 축제에서 학생회가 준비해야 할 것들." "학생회가 준비해야 할 것들이라니요?" 미노의 물음에 시혁이 미노에게 미소를 지어주며 말한다. "우리 마린고 축제는 다른 학교 축제와는 달리, 학생회의 활동이 활발한 곳이야. 그래서 축제말고도 매년 많은 행사를 학생회가 주최하고 또 학생회 간부들이 출연하는 공연을 보여주기도 하지." "아… 그래서 저번의 연극도!" "그래, 1학기 기말고사가 끝난 후 부터가 학생회가 본격적으로 활동하는 시기야. 물론, 거기에 나는 참여하지 못할테지만." "… 에? 회장인 선배가 참여를 왜 안 해요?" "시혁선배는 댄스배틀에 나가야 하거든. 2년 연속의 우승기록을 가졌을 정도로 뛰어난 실력이라서 외부에서도 섭외가 많이 들어왔었어. 덕분에 마린고 축제 때만 되면 방송국에서 시혁선배를 취재하러 오지." 예찬의 설명을 들은 미노가 입을 헤에- 하고 벌리며 놀랐다. 대, 대단…! 이 사람 대단하잖아! 방송국에서도 취재를 올 만큼 유명한 사람이었던거야? "뭐, 백댄서로도 활동했었는데… 학생이 더 좋다면서 관뒀어. 그때가… 미노가 학생회에 처음 온 그 다음 날이었지?" 에…? 미노의 놀란 눈을 본 시혁이 피식- 하고 웃는다. "춤보다 더 소중한 걸 발견했기 때문일지도…" 아리송한 말을 남기고 손에 든 서류에 집중하는 시혁. 뭐야… 방금 그 말 뜻은… (얘 둔해도 너무 둔하다.) "시혁선배, 꽤 괜찮은 안건이 나왔는데요?" 예찬의 말에 시혁은 서류에 향해 있던 시선을 예찬에게 던졌다. 뭐냐는 궁금증을 담고있는 시혁을 향해 입을 연 예찬. "호스트 클럽… 이라는데요?" 30. "좋아. 그걸로 해." 에엑-! 시혁선배 그거 진심이에요?! 강한 의심을 담은 미노의 눈동자가 시혁을 향했다. 그런 미노의 시선을 느낀 시혁이 왜? 라는 눈빛으로 미노를 본다. 싱긋- "응…? 왜 그런 눈으로 보는거야?" "저기… 선배라면 단번에 거절할 줄 알았는데… 왜…?" "아… 뭐, 재미있을 것 같아서." 다, 단지 재미인가요…(;) 아방한 표정으로 있는 미노의 이마를 톡- 쳐주고는 자리에서 일어난 시혁. "아, 시혁선배 포스터 만들어야 할텐데 의상은 어머니께 부탁드려도… 되겠죠?"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 해보이는 시혁이었다. 어이어이, 그렇게 간단히 승낙해도 되는 거예요? "잠깐만요, 시혁선배! 어머니께 연락드리지도 않고 그렇게 허락해버리면 어떡해요!" 탁- 미노의 어깨를 잡아 자신의 쪽으로 돌린 우주. "괜찮아, 시혁선배 어머니라면 당연히 ok하실테니까." "어째서요? 왜들 그렇게 확신해요?" 미노의 물음에 우주의 눈빛에 장난스러움이 깃들었다. 슬쩍- 시혁을 본 우주가 미노의 귀에대고 소근거렸다. "… 그건 말이지…!" 퍽- 우주의 머리를 주먹으로 가볍게 내리친 시혁. "아야, 아파라…" 인상을 찡그린 우주가 시혁을 올려다봤다. 그러자 무표정하던 시혁이 싱긋- 하고 웃는다. 으… 왠지 저 웃음 무섭다… "우주야…? 인쇄실에 좀 다녀와야 하지 않을까…?" "아… 네!" 시혁의 웃는 얼굴을 본 우주가 무엇에 쫒기듯이 후다닥- 학생회실 밖으로 달려나갔다. 우주가 나간 곳을 밉지않게 노려봐 준 시혁이 미노에게 산뜻한(?) 미소를 날린다. 하지만 미노는 그런 시혁의 미소가 무섭게 느껴졌다. "미노야…?" "에…에… 그러니까… 아앗! 선배 저 잠깐만 교실에 좀 다녀올…!" 탁- 후다닥- 하고 밖을 향해 달려나가는 미노의 뒷덜미를 붙잡은 시혁. 경직된 움직임으로 그런 시혁을 향해 고개를 돌린 미노가 아하하- 하고 겸연쩍은 웃음을 짓는다. "도미노… 도망가기엔 이미 늦어버렸는데 어쩌지…?" "에… 에에-!" 드르륵- "그럼 우리들은 학생회의 의견을 각 반에 전달하고 오도록 하지. 그래도 괜찮겠지? 회장?" 싱긋- "그래, 다녀오도록 해." 아, 저기…! 그렇게 웃으면서 보내지 말라구요! 아니, 저기요…?! 나도 좀 데리고 가주지 않을래요…?! 선배님들! 살려줘요…! 은샘아…! 나를 잊어버리지 말라구…! "그럼, 수고해." 애처로운 눈으로 쳐다보고 있는 미노를 외면하고 밖으로 나가버리는 예찬과 류예, 그리고 은샘. 류예에게 한가닥의 희망을 걸었던 미노로써는 미소를 지어주고는 밖으로 나가버리는 류예를 보고선 고개를 숙였다. "서… 선배…" 씨익- 시혁의 손에 잡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눈망울로 시혁을 보고 있는 미노. 간절하게 자신을 쳐다보는 미노를 보던 시혁이 미소를 짓자 미노의 얼굴이 금방 울상으로 변한다. "아무도… 없네…" 으으… 선배, 나한테 뭘 바라는 거예요! 왜 그런 눈으로 쳐다보는 거죠?! 저기요…? 손을 놔준 건 고마운데… 왜 옷은 안 놔주나요…? 에… 그리고 무섭게 다, 다가오지 좀 말아달라구요…! "조바심이 생기기 시작했어…" "… 에? 그게 무슨…! 읍!" 미노의 손을 잡아당긴 시혁이 미노의 허리를 안고 입을 맞추었다. 살짝 벌어진 미노의 입술 사이로 파고든 시혁. 몇 분 후, 깊고 달콤한 키스를 선사하던 시혁의 입술이 떨어졌다. "무슨 일이 있어도… 널 녀석들에게 넘겨주지 않아." "서, 선배… 갑자기 그런…! 흣!" 시혁이 미노의 목덜이에 입을 맞추었다. 갑작스러운 시혁의 행동에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흘려버린 미노. 피식- "귀엽긴…" * 오랜만에 옥상에 간다는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아진 미노가 눈부시게 예쁜 미소를 짓는다. 계단을 박차고 뛰어올라 옥상 문을 걷어찬 미노. (미노야, 아무리 좋아도 그런 거친행동은 하는 게 아니란다.) 멈칫- 미노의 시선이 난간에 팔을 걸치고 있는 남자의 등에 머물렀다. 어디선가 많이 본 것 같은 뒷모습에 미노가 고개를 갸웃- 했다. 그런 미노의 시선을 느낀건지, 난간 아래를 보고있던 남자가 미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남자의 얼굴을 본 미노의 눈이 서서히 커졌다. "… 오랜만이야, 미노야." "새휘… 오빠…" 민새휘. 큰아버지 집에 있을 때, 자신을 가장 잘 챙겨주던 사람. 조폭이라는 배경을 지니고 있는 미노의 큰아버지 앞에서도 한번도 주눅이 든 적이 없었던 사람. "여길… 어떻게…" "그런 모습을 하고 있었으니, 큰아버지가 널 못 찾으시는 게 당연하지." 흠칫- 방금… 방금 뭐라고… 날 찾고 있다고… 큰아버지가… 나를… 찾고있다고…?! "… 3달 전부터 널 찾기 시작하셨어." 새휘의 말에 미노가 새휘의 옷깃을 붙잡았다. 무척이나 싸늘한 얼굴. 제대로 화가 났을 때만 보이는… 그런 얼굴을 하고서 새휘를 보는 미노. "아, 아빠랑 엄마는…? 괜찮지…? 응?! 괜찮은 거지?!" "… 아직은. 하지만… 언젠가는 찾아내실거야. 너도, 너희 부모님도." 미노가 가장 무서워하는 남자. 도설현. 미노의 큰아버지. 조폭계의 우두머리인 사람. 미노의 눈에 맺혀있던 초점이 사라졌다. "설마… 말… 한거야…? 나, 여기 있다고…!" 새휘가 미노의 떨리는 몸을 꼬옥- 하고 안았다. 시원하게 풍겨오는 로디세이 향. "말할 리가 없잖아… 널 지켜주겠다고 했잖아… 약속했었잖아…" "그, 그럼 여긴… 여긴 왜 온 거야…?" "그걸 말해주러 왔어… 미리 알려주러 온 거야…" "아직은… 아직은 아니잖아… 아직 18살이 되지 않았어!" "… 괜찮아… 괜찮아, 미노야…" 새휘가 미노를 안고 있던 팔을 풀고 바라보았다. "아니잖아… 아직은… 아직은 안된단 말이야!" 너무나 슬프게 울부짖는 미노를 보는 새휘의 얼굴에 슬픔이 묻어났다. 문득, 핸드폰을 꺼내든 미노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 그새 보고싶어서 전…! "흐흑… 이현아… 나 좀… 나 좀 도와 줘…" - … 왜 그래? 미노야, 무슨 일 있어? "이현아… 우리, 우리 엄마랑 아빠… 지켜 줘… 부탁이야…흐흑" - 너희 부모님…? 부모님이 왜…! "제발… 제발 다치지 않게 해 줘… 이현아…" - … 알았어, 그렇게 할게. 저녁에 얘기해. 바로 갈게. 뚝- 전화를 끊은 미노가 흐르던 눈물을 닦았다. 세상 모든 것을 얼려버릴 듯 차가운 미노의 회색빛 눈동자. "미노야…" "고마워, 오빠… 근데, 나 아직은 갈 수 없어… 아직은 갈 수가 없어…" "데리러 온 게 아니야… 난 네가 행복하길 바래…" "… 전해 줘." "… 뭐?" "곧… 찾아간다고." 탁- "안 돼! 그건 너무 위험해! 어떻게 할 지 알잖아!" "… 알아. 그렇기 때문에 가야만 해." "도미노!" "안 가면… 안 가면 내 주위의 사람이 다쳐…! 소중한 사람들이 다친단 말이야…! 안 돼… 그렇게 하게 내버려 둘 수는 없어!" "미노야… 너…" "지킬거야… 7살의 힘 없고 어리기만 했던 내가 아니야…" 차가운 말을 흘리는 미노. 불어오는 바람에 미노의 검은 흑발이 날렸다.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을 건드린다면… 가만두지 않아. 절대… 절대 용서하지 않아!" 댓글 127 인쇄 | 스크랩(0)▼ 제신 아. 제발.... 너무 부럽다- 연적이 얼마나 있는거야... 정말 너무 부러워어!!!! 대체 무엇이 미노에게 남자가 꼬이게 만드는거지..?! 외모인건가....? 08.03.18 21:55 답글 아픈스크림♣ 네..외모인듯.. 또한, 귀여움, 순진함..ㅇ_ㅇ.. 아나.. 이현이 같은 남자 내 주위에 있으면.. 캬..- 08.03.23 14:31 답글 나물이사랑 ㄴㅓ무재밌어요? +_+ 08.03.26 18:46 답글 눈망울™ 'ㅁ'재미있게 보고가효!! 흥미진진!!!'ㅁ'!! 08.04.13 23:29 답글 피치사랑 재미있어요 08.04.17 15:20 답글 윤갱ㅇ♥ 이힝, 미노의남 편은누가될ㄲㅏㅇ_ㅇ?♥ 08.04.19 12:27 답글 CRDRE11 쫌 늦었지만 저두 갠소 하구 싶어요요ㅠㅠㅠㅠ qkql-12@hanmail.net 로 보내주심 안되나여????ㅜ 08.05.04 10:45 답글 류마꼬꼬♡ 복잡하군아... 08.05.08 22:27 답글 지소유 미노가 부러버요 08.07.22 15:08 답글 행복찾아삼만리 재밋어욤~ 08.08.04 16:53 답글 마렌 불쌍해라~//이제 어떻게 되는건가요~?? 08.08.07 23:51 답글 노랑 내가 미노였으면 좋것다 라이벌이 6명.... 부럽소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08.08.10 22:12 답글 마늘이좋아 ㅋ 재밌어용 08.08.12 02:34 답글 goddess -0- ㅎ 완전 재미있어요...////ㅋ 08.08.13 22:41 답글 LaTale 미노화이팅! 08.08.22 16:10 답글 레이♥ 어떻게되지?? 08.09.03 20:54 답글 lemon tree 미노어니 힘내세요...홧~~~~~팅 08.10.11 01:18 답글 내남자， 흑..ㅠㅠㅠ 넘잼써요! 08.11.15 22:00 답글 은빛악마♥ 미노야~~니가 부럽다~ㅠㅠ 08.11.19 22:50 답글 쇼타콤소녀ㅋ 여섯명 우왕 08.11.23 10:59 답글 wkddmsgP 미노멋지다!!!!!!!!학생회들을 이끄는 매력!!히히ㅛ 담편이 기대된다♡ 09.02.02 18:23 답글 염쇼 봤던거지만재미있어서 다시봅니다 ㅋ 09.02.19 12:18 답글 구르메렌♥ 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짱 멋있어.지킨데.나도 지켜줘!!!아악! 09.05.22 21:06 답글 네모박스① 잘봤어요^^ 09.07.06 05:04 답글 이병현미오 꺆~~~~~~~~잘봣서용 ㅋㅋㅋㅋㅋㅋㅋㅋ 09.07.25 21:27 답글 미묘천설 어디보자... 일단 조폭 1명에 학교 권력자 5명, 어릴적 생명의 은인 1명... 어이쿠... 자그마치 7명이네? 인기많아도 피곤하겠다. 09.10.05 20:39 답글 월햐소설 어쩜 이렇게 잼있는글이 있었나요 이제껏 몰랐다는게 너무나 억울해요 넘 잼써요 09.10.14 11:36 답글 ◀이전 1 2 3 다음▶ 등록 텍스티콘 0 / 300자 회원은댓글을 쓸수 없습니다. 등록 텍스티콘 0 / 300자 글쓰기 답글 최신목록 | 목록 | ▲윗글 | ▼아랫글 ▲윗글 | 남장† 위험한 도발, 미치도록 차가운 그 녀석의 키스에 길들여지다 31~40 2008.02.10 ▼아랫글 | 남장† 위험한 도발, 미치도록 차가운 그 녀석의 키스에 길들여지다 11~20 2008.02.10 ▲top 서비스 약관/정책 | 권리침해신고 | 카페 신고 | 이용약관 | 카페 고객센터 | 검색비공개 요청 Copyright (c) Daum Communications Corp. All rights reserved. ------------------------------------------------------------------------------------ 남장소설ㄲt페boy (http://cafe.daum.net/boyhamr) 제목 : 남장† 위험한 도발, 미치도록 차가운 그 녀석의 키스에 길들여지다 작가명 : H. 체리비。 메일 : moon-sters@daum.net">moon-sters@daum.net 연재장소 : 남장소설카페 총 편수 : 60편 장르 : 남장소설 ------------------------------------------------------------------------------------ - 위험한 도발, 미치도록 차가운 그 녀석의 키스에 길들여지다. 31. 미노의 연락을 받고 바로 귀국한 이현이 집으로 돌아왔다. 원래 일정대로라면 일주일동안 일본에 있어야 했지만, 일찍 일을 처리해 놓은 이현이기에 내일쯤 귀국해 미노를 놀래켜 줄 생각이었다. 마지막 서류에 결재를 하려던 차에 걸려온 미노의 전화. 울먹이는 미노의 목소리에 이현은 급히 한국에 있는 흑월회 사람을 미노의 부모님 집으로 보냈다. "미노야! 도미노! 어디 있어…!" 이현의 목소리에 방에 있던 미노가 뛰쳐나왔다. 뛰어나온 미노를 품에 안은 이현. "울었니…?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응?" "… 이현아, 나… 어쩌면 네 곁을 떠나야 할 지도 몰라…" 미노의 말에 놀란 눈을 하고 미노를 보는 이현. 그런 이현에게서 몸을 돌린 미노가 쇼파에 털썩- 하고 앉았다. "… 혹시 혈한이라고… 알고있니…?" 미노의 입에서 나올 법한 말이 아니었기에 이현의 눈이 커졌다. "어째서 네가 그 조직을…" 피식- "도설현. 우리 큰아버지가 우두머리인 조직이야." 슬픈 미노의 눈빛이 이현에게 닿았다. 약간씩이지만, 몸을 떨고있는 미노에게로 가까이 다가간 이현. "난… 10살 때까지 큰아버지의 손에 자랐어. 그래서 싸움도 꽤 하는 편이야… 큰아버지는… 날 혈한의 후계자로 미리 정해놓으셨었던 것 같아… 그리고… 난 그것도 모른 채, 매일 큰아버지에게 특훈을 받았지. 나중에서야 알았어. 내게 조직을 잇게 하시려던 생각이었다는 걸… 그걸 아신 부모님은 강하게 반대하셨지. 당시, 우리 부모님은 큰아버지의 도움으로 작은 사업을 하고 계셨어… 그런데, 부모님이 큰아버지의 뜻에 반대하시자 조건을 거셨어. 그 조건은… 나와 회사…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거였어." 미노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손을 들어 눈물을 훔친 미노가 옅은 웃음을 입술에 건 채, 말을 이었다. "부모님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나를 선택하셨고… 난 그 때 부모님을 따라 큰아버지의 집에서 나왔어… 하지만, 노하신 큰아버지는 아버지의 회사를 부도내셨고… 그 바람에 우리는 빚을 지게 되었던 거야… 그 빚을… 네 도움을 받아 갚긴 했지만… 하지만, 그것말고도 부모님은 나 모르게 큰아버지와 약속하신 게 있었던 거야." "… 약속이라니…" "눈에 띄지 않게 꼭꼭 숨어살라고… 만약… 눈에 띈다면… 그 즉시 저 세상으로 보낸다고… 정말 말도 안 되는 조건이었는데, 조직에 연관시키지 않으시려고 부모님은 그 조건에 승낙하셨어… 난 그걸 16살에 알게 되었고… 그때부터 이런 모습이었던 거야." "……" "그런데… 그런 큰아버지가 아버지와의 약속을 어기고… 사람을 풀어 부모님을 찾고 있어…" "……!!" "싫어… 부모님을 잃게되는 건… 평생을 날 위해 희생하면서 살아오신 분들이야… 잃고싶지 않아… 흐흑…" 이현을 팔을 뻗어 미노를 끌어안았다. 이런 작은 몸으로 감당할 수 있는 무게가 아니었다. "흐흑… 부탁이야, 이현아… 제발… 제발 우리 엄마아빠… 지켜 줘…! 흐흑…" "다치게 하지 않아… 절대로…" "큰아버지가 부모님을 먼저 찾아내게 되면… 그걸로 끝이야.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한번만 더 도와 줘…!" 미노의 애절한 목소리에 이현은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지켜줄게… 무슨 일이 있더라도… 지켜줄게… 미노야…" * 그 후로 3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학교는 축제준비로 한창 떠들썩했고, 이현은 미노의 부모님에 대한 감시를 늦추지 않고 있었다. "진짜… 가야만 해?" "응. 나 때문에 벌어진 일이야. 그러니까 끝내는 것도 나여야만 해." "미노야…" "미안해… 오빠. 나 말리려고 해도 소용없을거야. 이미 마음은 정했어." 새휘의 만류를 뿌리친 미노의 눈은 차갑게 변해있었다. 하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쉰 새휘. "좋아, 그럼 나도 가겠어." "… 안 돼." "너 혼자 보낼 수는 없어…!" "혼자가 편해." "바보같은 소리 하지 마!" 새휘의 말에 미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 이상 오빠를 위험에 빠트리고 싶지 않아." "그런 것 따위 상관없어, 난 이미 너와 함께 가겠다고 정했으니까." "오빠…!" "… 혼자 보낼 수가 없어… 어떻게… 어떻게 혼자 보내!" 꼬옥- "나 괜찮아, 나 강하잖아… 오빠도 알잖아…" "그래, 너 강해. 나보다 훨씬 강한 거 알아! 안다구! 하지만 절대 혼자는 못 보내!" "… 나 소중히 여기는 거 알아, 오빠가 나 걱정하는 마음도 알아… 근데… 정말 혼자가 편해…" "미노야…!" "오빠가 오면… 나 실력발휘 제대로 못할 지도 몰라." "… 미노야…" "그럼… 나 다칠거야…" "……!!" "……" 슬픈 미소를 지으며 새휘에게서 멀어져가는 미노. 그리고 다음 날, 마린고 축제가 시작을 알렸다. 흰색 턱시도를 입고 팔짝거리며 뛰어다니는 미노. "어서오세요!" 얼떨결에 손님을 접대하고는 있는 미노였지만, 학생회 간부도 아닌 자신이 왜 여기에 있어야 하는 지 모르는 상태다. "어머, 쟤 귀엽다!" "너무 예쁘다- 너 정말 남자맞니? 어쩜, 피부도 이렇게 부드러울까!" 일반인들에게도 공개하는 행사인지라 학생들의 부모님도 참가하고 있는 호스트클럽. 물론, 실제 호스트클럽처럼 돈이 그렇게 많이 드는 것도 아닌, 그저 단순한 아이들의 유희.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인기를 끌고 있는 행사였다. "어머, 시혁군! 너무 멋있잖아!" "꺄아! 시혁선배님- 너무 멋지세요!" 미노도 미노였지만, 시혁 또한 만만치 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상태. 물론, 앉아있는 사모님(?)들에게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주고 있는 류예도 환호성이 끊이지 않을 정도로 높은 인기를 끌고있다. "류예야- 이쪽 좀 봐줘!" "류예야, 5번 테이블 지목이야!" "선배! 멋있어요!" 깍듯한 매너를 소유한 류예와 시혁. 귀여움으로 승부하는 미노와 소악마적인 매력을 발산하고 있는 우주. 무뚝뚝하고 말이 없지만 신비스러운 분위기로 사람들의 인기를 끌고있는 예찬과 은샘까지. "시혁군과 말을 나눌 수 있다니… 앞으로는 마린고 학생회에 더욱 더 많은 기부를 하도록 하겠어요! 오호호호-" "후후… 감사합니다. 마담." 저, 저, 저, 저런 익숙한 동작은 뭐란 말이더냐! 다들 왜 저렇게 능숙한 건데? "미노야- 6번테이블 지목! 12번도! 아아, 17번도!" 환희선배… 그렇게 한꺼번에 받아버리면 나보고 어쩌란…! 문득, 12번 테이블을 본 미노의 표정이 굳어졌다. "어머, 꽤 잘 지내고 있던 모양이다?" "나채희, 기윽고 내 손에 죽고싶은 가 봐? 제 발로 찾아오다니." "후후, 글쎄… 내가 왜 찾아왔을까…?" "죽고싶지 않으면 당장 꺼져." 싸늘한 미노의 눈빛에 자리에서 일어난 채희. "네가 뭘 믿고 그렇게 당당한 지 궁금했었어…" "……" "너무 궁금해서 뒤를 좀 캐봤더니… 너 엄청난 비밀을 숨기고 있었더라…?" "… 혈한이라는 조직의 정보라도 입수한 모양이지?" "그래, 맞아. 솔직히 놀랐어. 네가 어떻게 그렇게 실력이 막강한 지, 이제야 알겠어." "그래서 어쩌라는 거지?" "최근, 재미있는 얘길 들었어. 그 조직에서 널 찾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더구나…" "……!!" 미노가 채희를 잡아세웠다. "너 설마…!" "아마… 네가 생각하는 게 맞을 거라고 생각되는데…"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웃는 채희. 그와 동시에 미노의 눈이 싸늘한 빛을 발했고, 꺅- 하는 채희의 비명이 들렸다. 소란에 고개를 돌린 시혁과 예찬, 류예와 은샘… 그리고 환희와 새휘까지… 모두의 눈이 크게 변했다. 가늘기만 한 미노의 팔에 채희가 목을 잡혀서 들어올려진 광경에 놀라 다가온 시혁과 예찬. "… 죽여버리겠어…!" "왜, 왜 이래… 큭… 너, 지, 진짜… 으윽!" "… 살아서 돌아 갈 생각은… 하지마라…" 미노가 채희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파랗게 질린 얼굴의 채희가 숨이 막히다는 듯 켁켁댄다. 그 모습을 차가운 눈으로 지켜보고 있는 미노. "미노야! 그만해! 정말 사람 죽일 셈이야?!" 예찬이 미노를 말렸지만, 그런 예찬을 향한 미노의 눈빛은 죽어있었다. 초점없는 미노의 눈동자를 본 예찬이 그 자리에 굳어버린 듯 움직이지 못했다.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낀 새휘가 미노의 뒷 목을 쳐 기절시켰다. 쓰러지는 미노를 잡은 시혁. 그와 동시에 의식을 잃으려는 채희를 다그치는 새휘. "대체 무슨 말을 한 거야!" "… 노를… 칠… 상…어…" 찰싹- "똑바로 말해!" "도미노를… 하아… 망칠 수만 있다…면 상관… 없… 었어…" "무슨 짓을 한거야!" "… 혈한의 두… 목에게… 도… 미노가… 하아… 여기… 있다고 하아…하아… 말했어…" 새휘의 얼굴이 굳었다. 무척이나 싸늘해진 눈동자. 채희의 명치를 가격해 기절시킨 새휘. "미노야… 미노야!" 흐릿하고 차가운 미노의 눈동자가 빛을 발했다. "괜찮아?" "… 죽여버리겠어…!" 채희를 향해 걸어가던 미노의 움직임이 순간 멈췄다.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비명소리. 미노는 인상을 찌푸리고는 밖으로 뛰어나갔다. "제길… 벌써 이 곳까지 오다니…!" 뛰어나가려는 새휘를 잡은 시혁. "무슨, 대체 무슨 일이야!" "미노가… 미노가 위험해요!" 32. 마린고 운동장에 서 있는 수많은 떡대들과 그들이 타고 온 것으로 보이는 검은 차량들. 족히 100명은 넘어보이는 대 인원과 맞대면하고 서 있으면서도 무서워하는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들을 보는 미노의 눈은 한없이 차갑고 싸늘한 회색빛. 심장을 얼려버릴 듯한 미노의 무표정에서 풍겨지는 살기는 고등학생이 낼 수 있는 살기 따위가 아니었기에 미노를 보고있던 떡대들이 흠칫- 하고 몸을 떨었다. "… 일부러 찾는 수고를 덜어주다니… 고마워해야 하려나…" 소름끼치게 징그러운 미소를 지으며 떡대들의 중앙으로 걸어나오는 남자. 그를 본 미노의 표정에는 아무런 감정도 나타나 있지 않았다. "그렇게 노려볼 것까진 없잖아…? 눈빛 좀 풀라구…" 담배를 피워 물며 말하는 설현. 비릿한 미소를 입술에 건 설현이 능글맞은 눈빛으로 미노를 주시했다. "예뻐졌군… 어렸을 적에는 느낄 수 없었던 섹시함까지… 정말 너란 애는…" "입 닥쳐." 미노의 입에서 흘러나온 낮고 섬뜩하기 이를 데 없는 목소리에 설현이 얼굴을 구겼다. 물고있던 담배를 지져밟은 설현이 날카로운 눈으로 미노를 쳐다본다. "일부러 마중까지 나와줬는데, 이런 식으로 나오면 곤란하지…" 피식- 미노의 입술에 잔인한 미소가 걸렸다. 주위에 불고있는 바람까지 얼려버릴 것 같은 미노의 살기에 설현은 눈을 크게 떴다. "과연 크게 될 녀석이군…" "… 닥쳐." "얌전히 차에 타는 게 좋아." "웃기지 마." "괜히 다치지 말고 순순히 말 들어." 설현의 말에 지니고 있는 무기를 꺼내드는 떡대들. 미노를 죽이러 온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될 만큼, 엄청난 숫자. 나이프, 쇠파이프, 야구배트와 오토바이 체인… 갖가지 무기로 무장한 떡대들을 싸늘한 눈으로 쳐다보는 미노. "… 솔직히 죽이러 왔다고 말하시지… 그게 솔직한 표현일 테니까…" "내 말에 따르지 않으면 손해보는 건 너일텐데…?" "글쎄… 날 건드리면… 당신들이 입게 되는 피해도 그리 적지만은 않을거야…" 미노의 입가에 걸린 미소에 설현의 몸이 떨렸다. 조폭 생활 50년만에 이런 살기를 느껴보기는 처음이었다. 그렇기에 무슨 짓을 해서라도 미노를 자신의 손에 넣어야만 했다. 조직을 더욱 크게 키우기 위해서는 미노가 필요했기에… "너무 자만하는 것 같은데… 넌 아무리 그래도 한낱 고등학생에 불과해." 피식- "그러는 당신도 파렴치한 인간에 불과해." "네게 살 수 있는 기회를 주는데도 거절하는 건가?" "당신에게 목숨을 구걸할 만큼 절박하지 않아. 어서 부하들에게 명령내리시지, 날 죽이라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당신이 내 손에 죽어야 할 거야." 살의가 깃든 미노의 목소리에 설현이 얼굴을 구기며 뒤로 물러났다. 그와 동시에 떡대 하나가 미노의 앞으로 나와 마주섰다. "꼬마, 살살할테니 조용히 회장님 말씀대로 따르는 게 좋아." 피식- "죽게 되더라도… 날 원망하지는 마. 어리석은 네 녀석들의 두목 때문이니까…!" 땅을 박차고 앞으로 도약한 미노가 몸을 띄워 남자의 턱을 올려찼다. 휘청거리며 남자가 뒤로 물러나자 미노는 그 때를 기다렸다는 듯 남자의 곁으로 파고들며 복부에 주먹을 꽂았다. "커억-" 명치를 정확하게 가격한 미노의 공격에 남자의 입에서 위액이 토해져 나왔다. 긴 다리를 뻗어 남자의 관자놀이를 정확히 가격한 미노. 휘청거리는 남자의 한쪽 팔을 잡아 꺾자, 으드득- 하는 소리가 들리며 남자의 비명이 터져나왔다. "으아악-!" "… 입 닥쳐." 퍼억- 남자의 얼굴을 짓뭉게버리는 미노. 그런 미노의 행동을 꽤 흥미롭다는 듯 바라보고 있는 설현. 떡대 하나가 쓰러지는 것을 신호로 삼아 일제히 미노에게 덤벼드는 일당들. 휘둘러오는 연장들을 가볍게 피한 미노가 뒤에서 얼굴을 노리며 뻗은 남자의 오른발을 왼손으로 막았다. 반격을 해오는 남자의 다리를 반대쪽 손으로 막은 미노가 발이 땅에 닿기 전에 몸을 비틀며 발 뒤꿈치를 들어 남자의 무릎을 찍었다. 빠각- "으아아악-!" 무릎뼈가 박살이 나며 남자가 주저앉았다. 무게 중심을 무너뜨리기 위해 미노는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떡대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퍼억- 퍽- 퍽퍽! 남자의 머리를 다리 사이에 끼고 꺾은 미노의 공격에 그 자리에서 기절해버린 남자. 그런 남자의 무릎을 밟고 도약해 위로 뛰어오른 미노가 공중에서 제비를 돌아 떡대들의 중앙으로 파고들었다. 현란한 몸동작으로 상대방을 압도하고 있는 미노의 실력에 설현의 입술에 비릿한 미소가 걸렸다. 연장을 들고 설치는 조무래기들을 상대하던 중 밀려오는 짜증을 참지 못한 미노가 살극무를 쓰기 시작했다. 으드득- "끄아악!" 퍼억- 퍽! 춤을 추는 듯 가벼운 미노의 몸놀림. 그런 미노의 모습에 살극무가 빛을 발했다. 명치와 미간, 관자놀이와 무릎을 자신의 팔꿈치와 주먹, 발과 다리, 뒤꿈치를 이용해 정확히 공격하는 미노. "커헉!" 으드득- 미노의 뒤꿈치에 찍힌 무릎을 매만지며 일어서려 노력하는 남자. 그런 남자의 무릎을 발로 꾸욱- 짓밟아주는 미노. "으아아아악!" 퍼억- 인상을 찡그리며 입을 밟아버리는 미노의 잔인한 행동에 공격을 하던 일행들이 멈칫- 거렸다. 그런 떡대들을 향해 도발하듯 검지와 중지를 들어 까딱거리는 미노. 미노의 도발에 넘어간 남자들이 미노에게 덤벼들었고, 그 결과는 참혹했다. 다리가 기이한 형태로 부러져있고, 얼굴은 알아보지도 못할만큼 짓뭉게져 있었으며 어깨가 빠진 놈들이 마치 좀비처럼 몸뚱이만 살아 움직이고 있는 모습들… 미노가 싸우는 모습을 보던 아이들의 눈에 경악이 가득했다. 저렇게 많은 인원과 싸우면서도 땀을 한 방울도 흘리지 않다니… 땀만 안 흘리는 게 아니라 숨도 차지 않는 모습이다. 냉혹함. 미노에게는 차갑고 싸늘한 기운만이 감돌고 있었다. 애송이들에게는 감히 써먹지 못할 위험한 살극무의 효과가 발휘되는 순간이었다. 퍼억- 쉬지 않고 움직이며 상대방을 쓰러뜨리는 미노의 모습에 설현의 입이 다물어질 줄을 몰랐다. 얕봐도 너무 얕봤다… 몇 분 안 되어 쓰러질 미노의 모습을 상상했던 설현으로써는 의외의 결과였다. 미노의 실력은 자신의 생각을 훨씬 뛰어넘고 있었다. 게다가 듣도보도 못했던 위험한 기술까지 쓰며 자신들의 부하를 쓰러뜨리고 있는 미노를 보자 온 몸에 전기가 흐르는 듯한 짜릿한 쾌감까지 들었다. "후후, 정말 탐나는 녀석이야…끝내주는 군…" 이미 미노의 주위에는 30명 이상의 인원이 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상태였다. "미노야!" 고개를 돌린 미노의 눈에 새휘와 시혁, 예찬과 은샘, 류예와 우주, 그리고 환희가 보였다. "위험해!" 퍼억- 미노가 한 눈을 파는 사이, 뒤에서 쇠파이프로 미노의 어깨를 가격한 남자. 어깨를 부여잡으며 작은 신음을 흘린 미노가 남자의 명치를 뒤꿈치로 찍었다. 켁- 소리도 못하고 그대로 앞으로 꼬꾸라져버리는 남자. 미노가 인상을 쓰고 일어나 새휘에게 소리쳤다. "뭐하는 거야! 당장 들어 가!" "너 혼자 싸우게 놔 두진 않아!" 그 말을 끝으로 주먹을 휘두르는 새휘. 새휘의 발길질에 네 명의 떡대가 바닥으로 쓰러져 내렸다. 퍼억- "바보, 그렇게 넋놓고 있다가는 당하고 말아!" 새휘의 뒤를 노려오는 떡대를 처리한 미노가 새휘에게 소리쳤다. 그런 미노와 새휘를 보덕 떡대들이 새휘에게 다가섰다. 퍼억- 미노의 긴 다리가 떡대의 관자놀이에 명중했고, 거품을 물며 쓰러지는 남자. "늬들 상대는 나라는 걸 잊지 말란 말이다, 새끼들아!" 새휘를 떡대들의 밖으로 밀어낸 미노가 중앙으로 파고들었다. "이건 내 싸움이야! 끼어들지 마!" 퍼억- 퍽퍽! 미노가 더욱 잔인하게 상대방을 압도하고 있었다. 허리를 꺾인 상대를 뒤꿈치로 찍어올린다거나, 발 뼈가 부서진 남자의 발을 짓밟는다던지… 미노의 무차별적인 공격이 계속되자 떡대들은 자신들이 밀린다는 것을 알았는 지, 품에 넣어뒀던 나이프를 꺼내들었다. "미노야!" "비겁하잖아, 당신!" 설현에게로 달려든 새휘를 떼어내는 떡대들. 여전히 미노는 앞에 있는 떡대들을 상대하느라 현란하게 움직이고 있다. "애송이들은 그런 거 가지고 노는 게 아니야!" 나이프를 들고있는 남자의 팔을 발로 찬 미노. 그 바람에 들고있던 나이프를 바닥에 떨어뜨린 남자가 우왕좌왕한다. "병신새끼." 싸늘하게 내려다보던 미노가 다리를 뻗어 남자의 턱 뼈를 올려찼다. 으드득- 뼈부러지는 소리가 들리며 남자가 얼굴을 부여잡고 뒹굴었다. 그런 남자를 보던 미노가 발을 들어 남자의 턱을 밟았다. "끄아악!" 퍼억- 주위를 살피던 미노는 어느새 주먹을 휘두르고 있는 시혁과 우주, 새휘와 은샘을 보고는 인상을 찡그렸다. 바보같이…! 그만큼 끼어들지 말라고 했건만 왜 말을 안 들어! 시혁에게서 고개를 돌리던 미노는 익숙하게 빛나는 물체가 시혁에게 다가가는 것을 보고는 시혁을 밀어냈다. 푹- "… 미노야!" "… 이… 끼어들지 말라고 했잖… 으윽!" 푹- 미노가 칼에 찔린 것을 본 떡대가 자신의 칼을 미노의 몸에 찔렀다. 섬뜩한 소리가 들리며 미노의 입에서 피가 토해져 나왔다. "미노야… 도미노!" "정신차려, 미노야! 도미노!" 풀썩- 미노는 눈 앞이 흐릿해져 오는 것을 느끼며 의식을 놓았다. 33. 8시간이 넘는 대 수술을 거친 미노. 다행히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고, 목숨에는 지장이 없다고 했다. "정말 회복이 빠르군요, 보통 사람들 같으면 석 달은 입원해야 했을텐데…" "전 강하거든요!" 활짝 미소를 짓는 미노. 미노가 병원에 입원한 지 3주가 지났다. 놀라운 회복력으로 말끔해진 모습의 미노가 의사를 향해 웃음지었다. 그런 미노를 곁에서 따뜻한 모습으로 지켜보고 있는 이현과 시혁, 예찬과 류예, 은샘과 환희, 그리고 새휘까지… 미노의 곁에 늘어선 천연적인 미소년들 때문에 간호사들이 행복하게 그들을 향해 웃음지었지만 돌아오는 건 한결같이 싸늘한 무표정. "자, 그만 가야지…" 이현이 미노의 짐을 들었고, 그 모습을 보던 미노가 눈부시게 예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병실을 나서자 복도에 서 있던 여자애들이 시혁일행을 보고는 꺅꺅댄다. "헤에- 선배들의 인기는 역시 대단해요!" "… 귀찮아." "이런 거 좋아하지 않아." "시끄러운 게 싫어." "나 역시, 사람이 북적대는 건 질색이야." "아씨, 짜증나게 팔짱은 왜 껴! 야, 너 안 꺼지냐?" 우주의 살벌한 외침에도 불구하고 계속 매달려있는 여자. "아, 진짜… 꺼지라는 소리 안 들려?" 매달리는 여자를 계속 뿌리치며 걷고있는 우주. 귀찮다는 표정을 얼굴에 가득히 띄운 채 성질을 부리고 있다. 좋다는 여자애에게 그렇게 매정하게 대할 것까진 없잖아… "저기…! 선배가 조금 성격이 까칠해서 그렇지, 그렇게 나쁘진 않거든? 그러니까…!" 매달리는 여자의 앞을 가로막은 미노가 여자를 향해 말했다. 그러자 여자는 미노를 이건 또 뭐야…? 란 눈으로 보며 인상을 찌푸린다. "너한테 물은 거 아니거든? 별게 다 지랄이야." 파앗- "방금 뭐라고 했냐…?" "어, 어머… 이런 걸 좋아하시는 거예요? 그럼 저 얼마든지 할 수 있어요!" 화가 난 우주가 여자애를 벽에 밀어붙였다. 그걸 좋아서 하는 행동인 줄 착각한 여자가 미노를 향해 더욱 강한 욕설을 퍼붓는다. "얼굴도 못생긴 게 왜 앞에서 알짱대고 지랄이야, 누가 너보고 물었어? 물었냐구!" 표독스럽게 쏘아대는 여자애를 무시하고 있는 미노. 미노는 그저 같은 여자라서 용서가 되었을 지 몰라도, 그녀의 뒤에 있던 남자들은 엄청나게 열받아 있는 모습이다. "너… 방금 한 말 다시 말해 봐." "네! 저 할 수 있어요! 얼굴도 못 생긴…!" 퍼억- "다시 한 번… 말해볼래?" "네? 네… 어, 얼굴도 못…!" 퍼억- "… 다시… 말해 봐…" "어, 어, 얼굴…!" "… 세상 하직하고 싶냐…?" "네?! 그게 무슨 소리세요! 전 아직 죽고 싶지 않아요!" 여자애를 향해 주먹을 치켜드는 우주를 말린 류예. 겁에 질려있는 여자애를 향해 부드럽게 웃어준 류예가 여자애에게 얼굴을 가까이 댔다. 그리고는 순식간에 싸늘하게 얼굴을 굳힌다. "누구한테 감히 그딴 소릴 해…?" 돌변한 류예의 모습에 얼굴이 하얗게 질린 여자애. 그런 여자애를 류예에게서 떼어낸 은샘이 여자애의 머리를 손으로 잡았다. 꼭 키스할 것만 같은 자세에 얼어있는 여자애. 하지만 얼굴을 가까이 하던 은샘은 잡고있던 여자애의 얼굴을 벽에 확- 밀어붙인다. 코가 닿을 듯 말 듯한 거리에서 멈춘 은샘의 손. "성형하게 만들어줄게, 어디 저렇게 못생긴 얼굴이 나오게 만들어 봐… 네 재주껏." 싸늘한 웃음을 지어주고는 돌아선 은샘. 미노에게 못생겼다고 욕을 한 벌을 톡톡히 치루고 있는 여자애였다. 힘이 빠져 고개를 돌린 여자애의 옆에 등을 기대고 선 시혁이 보인다. 싱긋- 너무나도 눈부신 미소지만, 보는 이에 따라서는 소름끼칠 정도로 무서울 때가 있는 시혁의 미소. 그저 좋다고만 생각한 여자애가 하하하… 라고 작게 웃는다. "세상을… 참 편하게 살고 있었던 것 같네?" "네? 아, 네! 부모님이 교사셔서…" 싱긋- "그래? 그럼…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겠네?" "네… 네?!" 저기요… 시혁선배… 웃으면서 그런 말 하지 말라니까… "얘한테 나쁜 말 하면… 너 쥐도 새도 모르게 죽는 수가 있다…" 허리에 차고있던 칼을 슬쩍 꺼내보이는 이현의 행동에 자지러 질 듯이 비명을 질러대는 여자애. 그러니까, 이현아… 그런 위험한 물건은 지니고 다니지 말래두 그러네… "야산 구경하고 싶지 않아? 밤에… 목만 내놓은 채로… 늑대 울음소리를 들으면서… 별이 가득한 밤을 구경하고 싶지 않아…? 원하면 그렇게 해줄게… 산에 묻는 거, 그렇게 어려운 거 아니거든." 새휘의 무서운 발언에 부들부들 떠는 여자애. 저기… 새휘오빠… 아무렇지 않게 그런 무서운 말 하지 말라니까… 무표정으로 그런 말을 하면 얼마나 무서운 지 알아…? "… 마린고 도미노, 건드리려면… 뼈가 갈리는 고통을 맞볼 준비를 하고 건드리도록 해…" * "넌… 해서는 안되는 짓을 했어…" "너 미쳤어? 도미노, 이게 무슨 짓이야!" "… 저기, 아저씨들… 미안하지만 흙 좀 더 채워줘요." 밤에도 위력을 발휘하는 미노의 미소에 이현이 붙여놓은 가드들이 구덩이에 흙을 채웠다. 머리만 내놓고 땅에 묻혀있는 채희. 깔끔하고 도도하던 모습은 어디로 간 건지, 헝클어진 머리와 표독스러운 두 눈만 반짝이고 있다. "이현이가, 이현이가 알면 가만히 둘 줄 알아?!" "… 가만히 둘 거야." 뒤에서 들려오는 이현의 목소리에 얼굴을 하얗게 굳힌 채희. 본 적 없을 정도로 차가운 얼굴로 채희를 노려보고 있는 이현이었다. 그런 이현을 향해 애처로운 눈빛을 보내는 채희. "이현아, 부탁이야… 나 좀 살려 줘… 응?" "…… 내가 왜?" "너, 너 내 약혼자잖아! 우리 곧 결혼할 사이잖아!" 피식- "혼자 약혼하고 결혼하고 지랄을 하세요." 싸늘한 목소리를 흘린 이현이 채희를 내려다보았다. "소이현! 너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손을 흔들어 가드들을 보낸 이현이 미노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그 모습을 보는 채희의 표정이 구겨졌다. "야, 도미노! 너 죽을 줄 알아! 여기서 나가기만 해 봐!" "… 나올 수 있으면 나와 봐…" 조롱하듯이 웃은 이현이 미노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그 모습에 나오려고 발악을 하는 채희. "나와보라구… 뭐, 나오지 않는 게 더 좋으려나…" 말을 마친 이현이 미노를 나무에 밀어붙였다. 달콤한 키스를 선사하던 이현의 입술이 아래로 미끄러져 내렸다. "자, 잠깐만! 뭐하는 거야! 그만두지 못 해?!" "네가 와서 말려보라구…" 채희를 자극하며 미노의 목덜미에 입을 맞추는 이현. 이현의 긴 팔이 미노의 허리를 감아 당겼고, 그 바람에 진한 포즈가 되어버린 두 사람. 그런 두 사람을 지켜보던 채희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너무해… 너무하잖아!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너만 생각했었단 말이야!" "… 해서 될 일이 있고, 안 될 일이 있어…" 미노의 이마에 살짝 입을 맞춘 이현이 싸늘한 눈동자로 채희를 바라본다. "어째서… 왜 이렇게까지 잔인하게…!" "진짜 잔인한 짓을 한 게 누군 지 생각해 봐… 넌 사람의 목숨을 우습게 여겼어… 화분을 떨어트리고 조명을 넘어뜨려서 미노를 죽이려 했다구…!" "널 위해서였어! 저런 보잘 것 없는 녀석과 있는 것보다… 나와 있는 게 너에겐 이득이 많잖아! 예전엔 넌 이득이 없으면 여자들과도 가까이 하지 않았었잖아! 그런데 어째서 이번은 다른거야! 어째서 여자가 아닌 남자에게 그렇게 다정하게 대할 수 있는 거냐구!" "… 아직도 모르겠냐…? 도미노… 여자야." "… 뭐?" "여자라구. 너랑 똑같은 여.자. 넌 여자는 항상 여리고 약하다고 떠들어댔지만, 내가 본 미노의 모습은 전혀 그렇지가 않아. 무척이나 강하지." "도미노가… 여자라고? 어째서… 왜? 왜 여자인데? 왜!" "… 처음부터 여자였어, 그걸 모른 건 너 혼자였을 뿐…" 시혁 일행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는 급히 고개를 아래로 떨구는 채희. 만족스럽다는 듯이 채희를 본 시혁이 미노의 손을 잡아당겼다. "너의 약혼자인 소이현만이 아닌… 우리들의 연인이기도 해." 34. "넌 뭐야, 이 새끼…! 컥!" "등신." 싸늘한 미노의 목소리. 붉은 빛의 조명이 비춰지고 있는 건물 안. 미노의 뒤로 처참하게 쓰러져있는 떡대들이 보인다. 방금 전, 미노의 일격을 받은 남자는 공격 한 번 해보지 못하고 기절해 바닥을 뒹굴었다. 퍼억- 고통에도 소리조차 지르지 못하고 바닥으로 쓰러지는 떡대들. 75층. 층수를 확인한 미노의 얼굴이 확연히 굳었다. 앞 길을 방해하는 떡대들을 꾹꾹 밟아 준 미노가 복도 끝에 위치한 방 앞에 섰다. 고급스럽게 장식무늬가 들어간 문을 보며 비소를 지은 미노가 다리를 올려 문을 걷어찼다. 쾅- 갑자기 일어난 일에 놀란 설현이 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 쪽을 바라본 설현은 흰 코트를 걸치고 나타난 미노의 모습에 눈을 크게 떴다. 타락천사. 아래서부터 떡대들을 처리하느라 미노의 옷에는 그들의 피가 묻어있는 상태. 흰 옷에 튀어있는 피는 얼마나 치열한(?)싸움을 치루고 올라온 건지를 말해주는 듯 했다. "주, 죽은 게 아니었나?!" 피식- "… 그런 어정쩡한 녀석에게… 이 도미노가… 당할 것 같아…?" "어디서 겁도 없이…!" 설현은 급히 비상벨을 울렸다. 부하들을 자신의 방으로 소집해 미노를 끝장 낼 생각이었던 설현은 5분이 지나도 부하들이 나타나지 않자 인상을 찌푸렸다. 피식- "아쉽게도… 더 이상 당신의 부름에 응답할 수 있는 자들은 없는 것 같군…" 미노의 싸늘한 눈빛에 설현의 얼굴이 두려움으로 물들었다. 굳게 다문 입술은 파르르- 떨리고 있었고, 얼굴을 욹그락붉그락하게 만든 설현이 쾅! 하고 책상을 내리쳤다. "밥 값도 못하는 새끼들…!" "… 내가 당신 앞에 무릎꿇는 상상을 했었나보군… 아쉽지만 그렇게는 안될 것 같아…" "건방진 년…! 헉!" 미노의 손 끝에 있던 단도가 설현의 관자놀이 옆에 정확히 명중했다. 여전히 싸늘한 미노의 눈빛. 붉은 입술에 걸려있는 잔인한 미소에 설현의 머릿 속이 하얗게 지워졌다. "날 죽이지 못할 시엔… 당신이 내 손에 죽임을 당할 거라고… 미리 얘기 했었잖아…" "… 미, 미노야… 난 네가 정말 이 조직을 이어받았으면…! 허억!" 또 하나의 단도가 설현의 관자놀이 옆에 명중했다. 어느새 설현의 등에는 식은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눈 앞에 보이는 미노는 더 이상 10살의 어린 꼬마가 아니었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강했다. 잿빛의 눈동자에 비춰지는 살기… 미노의 온 몸에서 풍겨지는 싸늘함에 설현은 죽음의 두려움을 느껴야만 했다. "명심해 둬… 다시 우리 가족이나 내 소중한 사람들에게 손을 대려는 짓을 했다가는… 그때는 정말 당신의 목숨 줄을 끊어주겠어. 비겁하고 치졸한 목숨이라도 연명하고 싶다면… 섣부른 행동은 하지 않는 게 좋을거야." 잔혹함. 미노는 어렸을 적부터 마음먹은 일이 있으면 꼭 이루어내고 마는 성격이었다. 그 성격이 이렇게 차갑게 돌변할 수 있다는 것이 설현에겐 믿어지지 않았다. "사람이 어떨 때 가장 강해지는 줄 알아…?" "……?" "… 소중한 것을 지키고 싶어하는 마음이 생겼을 때야…" "……!!" "더 이상의… 어리기만 했던 도미노가 아니라는 걸 기억해 둬…" 미노가 코트자락을 휘날리며 방에서 나갔고, 설현은 다리에 힘이 풀어져 바닥에 주저앉았다. 떨리는 마음을 간신히 진정시킨 설현이 미노가 나간 곳을 향해 뛰어나갔으나, 복도의 광경을 보고는 경악을 금치 못한다. 피를 토하고 널부러져 있는 조직원들. 이렇게 많은 인원이 한 사람에게 무너졌다니… 미노의 실력을 제대로 실감한 설현은 허탈한 듯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하하… 마, 말도 안 되는… 이런 말도 안되는 일이… 하하하…" 한편, 피가 묻은 옷을 벗어던진 미노가 방금 싸움을 한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밝은 미소를 지었다. 따사로운 햇볕이 내리쬐는 하늘을 쳐다보고는 눈부신 미소를 짓고 있던 미노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이제… 괜찮아요, 엄마… 아빠…" * "너 방금 뭐랬냐? 내가 호구로 보이냐?" "누가 먼저 그랬는데?" "조용 안 하냐?!" 짜악- "왜 이래? 맨날 이래! 걸핏하면 사람을 때리고! 말로 하란 말이야, 입은 뒀다 뭐해?!" "뭐라고?!" 짜악- 남자의 손이 사정없이 여자의 뺨을 후려쳤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미노가 인상을 구기고는 그들에게로 다가갔다. 탁- 들어올려진 남자의 손을 막은 미노. 그런 미노를 본 남자가 인상을 팍- 하고 쓰며 미노를 노려본다. "그러면 안 되지, 여자를 때리는 건 남자가 할 짓이 못 된다고." "넌 뭐야?" "마린고, 도미노인데?" "상관하지 말아요." 여자가 흐트러진 머리를 정리하며 미노에게 쏘아붙였다. 그런 여자를 힐끔- 하고 바라본 미노가 차가운 시선을 남자에게 던졌다. "어떤 여자든 마음은 상처받기 쉽거든? 그러니까 절대 여자는 때리면 안 돼… 어, 저게 뭐지?" 퍼억- 미노의 주먹이 남자에게 뻗었고, 미노의 일격을 받은 남자가 바닥에 나뒹굴었다. 그러자 쓰러진 남자의 곁으로 간 여자가 미노를 향해 말했다. "당신이 잘못 안 거야! 내 남자친구라고…!" "아아… 그래?" 미노가 예쁜 미소를 지으며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미노에게 맞은 곳을 손으로 문지르며 일어나는 남자. "그렇다고…!" 일어난 남자가 미노에게 주먹을 휘둘렀지만, 약간 고개를 옆으로 돌린 것으로 간단히 피한 미노. "그럼… 세상에서 제일 아껴줘도 모자랄 애를… 왜 때리고 그러는데?!" 퍼억- 미노의 주먹이 남자의 명치에 꽂혔고, 남자의 허리가 굽혀지자 바로 주먹으로 턱을 올려 쳐 날려버리는 미노. 상당히 화가 났다는 걸 보여주 듯, 차갑게 변한 미노의 눈빛. "제길, 저 기분 나쁜 자식은 뭐야!" 자신을 부축하는 여자를 미노에게 밀어버리고는 꽁지가 빠져라 도망치는 남자. 그런 남자를 보고 비웃음을 짓던 미노가 자신에게 기대있던 여자를 떼어냈다. "남자친구를 사귀려거든, 좀 더 괜찮은 녀석을 고르는 게 어때?" 싱긋- 하고 눈부시게 예쁜 미소를 지어 준 미노가 골목을 벗어났다. 그런 미노의 뒷모습을 보며 얼굴을 붉히는 여자. "마린고… 도미노… 정했어, 저 녀석으로…" 다음 날, 창가에 앉아 하늘을 보고 있는 미노의 얼굴은 아름다운 미소가 번져있었다. 하늘에서 보낸 천사라고 해도 믿을만큼 예쁜 얼굴. 드르륵- 문이 열리는 소리에 시선을 옮긴 미노. 그런 미노를 본 여자애가 활짝 웃으며 달려와 안겼다. 와락- 갑자기 일어난 일에 얼어버린 미노가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고는 정신을 차려 자신에게 매달려 있는 여자애가 누군 지 생각해보려 애썼다. "저기, 너… 누구야?" "어제는 정말 고마웠어…! 네 말대로 좀 더 괜찮은 사람과 사귀기로 결정했어!" 아… 어제 밤, 골목길에서 맞고있던… 그, 근데 이 애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 그것보다 좀 떨어져 주지 않을래? "꺄아- 미노님! 그 여자분은 누구죠?!" "미노님, 저희들을 버리실 생각이신가요?!" "미노님- 저희들은… 저희는…!" 미노홀릭 회원들이 울먹이는 눈으로 미노를 보자, 매달려 있던 여자애가 미노의 앞을 막아섰다. "내 이름은 남초희! 미노의 여자친구야!" 쪽- 미노의 볼에 쪽- 소리가 나게 입을 맞추고는 미노의 품에 안겨 웃는 초희란 여자애. 저… 저기요, 누구 맘대로 내 여자친구라는 거야… "아, 저기! 농담이니까 그렇게 인상 쓸 필요없구…!" "어머, 농담이라니 무슨 말을 그렇게 해?! 나 농담한 적 없다구!" "저, 저기… 나는 그러니…! 읍!" 으… 으아아아… 입술에 닿은 이 따뜻한 감촉은 뭐란 말인가…! "농담 아니니까, 앞으로 미노 곁에 다가오지 마!" 35. 한숨을 푹- 내쉬고 있는 미노와 그런 미노의 옆에 팔짱을 끼고 앉아 미소를 짓고 있는 초희. 그 광경을 보고 있는 반 아이들과 재미있다는 듯이 웃고만 있는 이현. 아아… 이럴 줄 알았으면 구해주는 게 아니었는데… 나 착한 일 하고도 왜 이렇게 일이 꼬이지…? (네가 너무 잘나서 그런 걸 어떡하겠니.) "저기요, 누, 누나…" 미노의 떨떠름한 표정을 보고는 살짝- 웃은 초희가 왜? 하는 눈빛으로 미노를 보고있다. "그, 그만 수업하러 가, 가야… 하지 않겠어요…?" "응? 벌써 그렇게 된 거야? 치이… 아쉽다! 하루종일 붙어있고 싶은데!" 나, 난 죽어도 싫어! 시도때도 없이 볼에 뽀뽀를 해대는 통에 반에서 우스운 꼴이 되어버렸다구! 절대, 죽어도 싫어…! "그럼 미노자기- 이번 시간 마치고 봐!" 쪽- 미노의 뺨에 입을 맞춘 초희가 발랄하게(?) 뛰어나갔다. 초희는 미노보다 한 살 위인 18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 종일 시달리다 보니 몸에 힘이 다 빠진 미노였다. "하아-" "큭큭… 인기 많다, 도미노." 얄밉게 웃고있는 이현을 향해 가볍게 주먹을 선사한 미노가 책상에 엎드렸다. 정말 피곤해… 여자라는 존재가 이렇게 귀찮을 줄이야… 차라리 시끄럽지만 귀찮지는 않은 팬클럽 회원들이 더 낫겠다고 생각한 미노였다. "옥상이나 갈까…!?" 이현이 미노의 손목을 잡아끌고 밖으로 나갔다. 초희에게 시달릴대로 시달리느라 힘이 다 빠져버린 미노는 이현에게 거의 끌려가다시피 가고 있다. "후아-" 피식- "질투나는데…?" "바보, 무슨 소릴 하는거야…" 미노가 피곤하다는 듯 팔을 난간에 걸쳐놓으며 턱을 괴었다. 그 모습을 보던 이현이 미노를 구석으로 데리고 갔다. 깔려있는 매트 위에 미노를 앉힌 이현이 자신의 다리를 베게 삼아 미노를 눕혔다. "편하다…" "도미노, 너 초희라는 애랑 잘해보려는 건 아니겠지?" "그걸 말이라고 해? 여자가 여자랑 사귄다느니, 그런 어설픈 소리는 하지도 말라구." "쿡쿡… 알았어. 안 할게…" 싱긋- 하고 웃은 이현이 손을 들어 미노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편안함을 느끼며 눈을 감은 미노. 살랑거리며 불어오는 바람에 흩날리는 미노의 흑발은 보면 볼 수록 아름다웠다. "… 나, 한 시간만 잘게…" "응, 옆에 있을테니까 안심하고 자."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눈을 뜬 미노가 자신의 손목시계를 쳐다보았다. 그리곤 피식- 웃는다. "정확하게 한 시간…"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피식- 웃은 미노는 자리에서 일어났고, 이현을 보고는 미소지었다. "다리저리겠다…" "… 안 저려." 자고 있다고 생각한 이현이 눈을 뜨자, 미노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뒤로 물러났다. 그러다 뒤에 있던 뜀틀에 뒤통수를 꽝- 하고 박고는 인상을 찌푸린다. "아야야…" "… 너 자꾸 그렇게 나 자극할래…?" "무슨 헛소리야…! 아파 죽겠구만…!" 소리를 빽- 하고 질러 준 미노가 이현을 향해 혀를 쏙- 내밀고는 학생회실로 내려왔다. 교실에 갔다간 분명 또 쪽쪽대는 남초희가 자신의 힘을 쫘악- 하고 빼 버릴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어서 와~ 근데, 표정이 왜 그래?" "시혁선배- 나 옥상에 있는 뜀틀에 머리 박았어요…!" 눈물까지 글썽거리는 미노를 보던 시혁이 피식- 하고 웃으며 미노에게 다가갔다. "조심하지, 어쩌다가 그렇게 세게 박았어…?" "우씨… 소이현, 나쁜 놈…!" 똑똑- "이봐, 욕을 하려면 안 듣는데서 해야지…?" 문에 삐딱하게 기대 선 채로 미노를 보고있는 이현. 으으- 저 사악한 녀석…! 밉지않게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미노를 향해 다가간 이현이 미노의 머리를 콩- 하고 쥐어박았다. "아야! 아프잖아!" "아프라고 때린거야… 바- 보." 울상을 지은 미노가 쇼파에 풀썩- 하고 주저앉으며 인상을 찡그렸다. 뚱- 한 표정으로 이현을 보던 미노가 이내 홱- 하고 고개를 돌려버린다. 그 모습을 보던 이현은 피식- 하고 웃으며 옆에 있던 의자에 앉았다. "이현아, 미노 괴롭히지 말랬잖아." 은샘이 미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런 모습을 보던 이현이 순간 짖궂은 표정을 짓는다. "나보다 미노를 더 잘 괴롭히는 사람이 있는데…" "응?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은샘의 물음에 이현의 눈빛이 류예와 우주, 환희에게 닿았다. "선배들 반에 전학 온 남초희, 걔가 도미노 킬러거든요. 피식." 초희의 이름이 나오자 몸을 부르르- 떠는 미노. 세상에서 제일 무서워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미노는 주저없이 대답할 것이다. 남초희라고… "뭐…? 초희란 애가 미노를 좋아한단 말이야?" "그렇다니까요, 아침부터 시달리다가 걔 피해서 이리로 도망쳐온 거예요." 이현의 말에 류예와 우주가 사실이냐는 뜻을 품은 눈동자로 미노를 쳐다봤다. 힘 없이 고개만 끄덕이는 미노. "아아, 경쟁자가 너무 많다구…" 어디서 불쑥- 나타난 건지 어느새 미노의 옆에 앉아있는 새휘의 모습에 미노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은샘에게 매달렸다. 대, 대체 어디서 나타나는 거에요! 정상적으로 모습을 드러낼 수는 없는 거예요?! "나채희가 잠잠해졌다 싶더니, 이제는 남초희인가…" 시혁이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고, 시혁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새휘와 우주, 은샘. 류예는 더욱 재미있어지겠다며 낮게 웃었고, 언제온 건지 문에 기대 서 있던 예찬이 미소를 지으며 미노를 향해 다가왔다. "누구한테도 안 뺏길 자신있으니까 상관없지만… 왠지 기분나쁜 걸?" * "자기야- 아~ 해 봐, 내가 먹여줄께." "아, 아니요… 저 배가 안 고파서요… 선배 많이 드세요." 찌릿- "그러지 말구, 한 입만 먹자! 특별히 너 주려고 싸온 거란 말이야-" 애초에 나는 도.시.락.을 부탁한 적이 없.거.든.요? 멋대로 가져와서 남의 책상 위에다 펼쳐놓다니… 아니, 그것보다 지금 다른 애들이 쳐다보는 거 안 보이는 거냐구… "내가… 흐흑… 내가 싫은거야? 응…? 난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자기의 건강을 챙겨주려…!" 덥석- 우물우물. … 꿀꺽. "꺄아! 먹는 것도 어쩜 이렇게 귀여울까- 자, 한 입만 더 먹자!" 울먹이는 초희의 얼굴이 보기싫어 내밀고 있던 계란말이를 먹었더니, 또 하나를 내민다. 더 이상은 무리야… 나 달걀 알레르기 있다고…! "안 먹을래." "하나만- 딱! 하나만 더 먹자- 응?" … 덥석. 우적우적. ……… 우엑. 결국 참지 못한 미노가 화장실로 뛰어가 먹었던 것을 모두 게워냈다. 쿨럭거리며 입을 헹군 미노가 핸드티슈를 뽑아 손을 닦았다. 놀라 뛰어온 초희가 미노의 팔을 잡고 흔들며 묻는다. "미노야! 너 왜 그래? 어디 아픈거야? 응?" "… 선배…" "응응! 뭐가 문제인 지 말해 봐!" "여기 남자화장실이거든요…?" 미노의 말에 뒤로 살짝 고개를 돌린 초희의 눈에 일을 보다 얼어있는 남자들이 보인다. 꺄악- 하고 소리를 지르며 붉어진 얼굴로 급히 밖으로 뛰어나가는 초희. 단순한건지, 멍청한건지… "미, 미안해! 미노야…" "알면 앞으로는 도시락 같은 거 싸오지 마요, 나 점심 안 먹으니까." "왜, 왜 안 먹는데? 응?" 마린고 식단은 고급스럽게 짜여져 있는데다 맛도 좋았다. 그래서 대부분의 학생들이 식당을 이용해 급식을 하고 있지만, 미노만은 그런 이 학교 급식이 싫다. 달걀 알레르기가 있는 미노로써는 일주일에 세 번 이상이 달걀로 이루어진 식단이 맘에 들 리 없었다. "상관말고 교실로 가요." "미노야… 화난거야? 미안해, 다신 안 그럴게." "선배한테 화낼만큼의 힘도 없으니까… 그만 가요." 조용히 미노에게서 떨어져 계단을 올라가는 초희. 그런 초희를 보던 미노가 천천히 교실로 걸음을 옮겼다. 바닥이 흔들리는 것 같은 착각이 들기 시작하더니, 교실로 들어서는 문이 두 개로 보인다. 달걀을 먹었을 때 나타나는 현상. 바로 게워냈음에도 불구하고 그 증상이 나타나고 있었다. "제길…" 나직하게 욕설을 읊조린 미노가 문을 통해 힘겹게 교실 안으로 들어섰다. 미노를 보며 미소를 짓고 있던 이현이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낀 것인지, 미노에게 다가왔다. 그와 거의 동시에 풀썩- 하고 바닥으로 쓰러진 미노. "꺄아! 미노야!" "미노님! 미노님이 쓰러지셨어!" "미노야! 도미노, 정신차려! 왜 이래!" 이현이 미노를 품에 안았다. 미노의 이마를 짚어본 이현은 체온이 상당히 높은 미노를 보고는 눈을 크게 떴다. "제길, 도미노! 정신차려!" 36. "큰일났네…" 새휘의 나즈막한 중얼거림에 이현과 시혁의 눈을 크게 떴다. 너무나도 진지한 새휘의 표정. "미노… 잘못되는 거 아니지?" 시혁이 안쓰러운 눈빛으로 침대에 누워있는 미노를 바라보았다. 그런 시혁의 표정이 웃겼는 지 피식- 하고 웃어버리는 새휘. "그렇게 걱정 안해도 돼." "큰일이라며… 그런데 걱정 안 해도 된다니, 형 너무 매정한 거 아냐?" "새휘 형, 진짜 너무한 거 아니예요?! 미노가 아픈데 어떻게 웃을 수가 있어요?!" 퍽- 따지고 드는 우주와 은샘의 머리를 가볍게 양 손으로 쥐어박은 새휘. 새휘에게 맞은 곳을 감싸며 울상을 짓고 있는 우주와 은샘. "으- 왜 때려요!" "선배, 아프잖아요! 지금 장난할 때예요?!" 인상을 찡그리고 있는 두 사람에게 싱긋- 하고 미소지은 새휘가 허리에 팔을 얹고는 말했다. "목숨이 위태롭…!" "그럼 얼른 병원으로 옮겨야…!" 퍽- "… 나도 말 좀 하자, 응?" 미노를 옮기려던 이현을 쥐어박은 새휘. 한숨을 푹- 내쉬고는 미노의 땀에 젖은 머리칼을 쓸어넘긴다. "목숨이 위태롭다거나 하는 건 아니라고 말하려 했는데, 어째 참을성이 없냐?" "그냥 괜찮다고 말하면 될 거 가지고 왜 목숨타령이에요!" "그러니까 놀라지!" 발끈해서 외치는 은샘과 우주. 생각을 나타내는 걸 싫어하는 류예와 환희도 안심이라는 듯 입술에 옅은 미소를 걸었다. "… 늬들이 모르는 거 알려주는 건데, 생색 좀 내면 안 되냐?" 짖궂은 새휘의 표정에 못 말리겠다는 듯 피식- 하고 웃어버리는 시혁. "그럼, 괜찮은 거지?" "괜찮긴한데, 딱… 한가지 문제가…" "문제라니…?" 조금은 곤란한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는 새휘에게 얼른 말하라는 듯 주먹을 쥐어보이는 이현. 그런 이현을 보던 새휘가 홱- 하고 고개를 돌려 무시해버리자 휘청- 거리며 부들부들 떠는 이현이었다. "선배…!" "뭐, 조금있으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거야…" "그만 좀 애태우고 말해…!" 시혁의 다그침에 어깨를 으쓱- 해 보인 새휘가 하는 수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미노는 아프고 나면… 엄청난 파워가 생기거든…" "엄청난… 파워?" "그러니까… 으앗!" 미노가 몸을 일으키자 하던 말을 멈추고 급히 미노의 옆에서 떨어지는 새휘. 엄청나게 차가워진 미노의 눈동자가 시혁일행을 바라보았다. "미, 미노…야?" "그만 둬, 얼른 뒤로 물러나 소이현!" "무, 무슨…!" 타악- 날아오는 주먹을 용케도 잡은 이현. 주먹을 날린 사람은 다름아닌 미노였고, 그런 미노를 놀란 눈으로 쳐다보고 있는 이현. "왜, 왜 이래…? 선배…?!" 차가운 눈동자로 그들을 바라보던 미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퍼억- 미노의 발길질에 옆에 있던 의료구급함이 박살났다. 그 모습을 보던 시혁과 이현, 은샘과 우주의 입이 쩌억- 하고 벌어졌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지 모르겠던 예찬마저 얼굴에 놀라운 표정을 띄우고선 미노를 보고있다. "미, 미노… 왜 저래?" "아아, 시작됐다…" "뭐가!" "데빌모드…" 새휘가 한숨을 쉬며 낮게 중얼거렸다. "야, 그것보다 쟤 아픈 애 맞아?" "… 데빌모드에 진입했어… 그것보다 밖으로 못 나가게 얼른 막아!" 새휘가 양호실 문을 열려는 미노를 잡아세웠다. "미노가 지금 이 상태로 양호실 밖으로 나가면… 우리 학교 애들 반은 죽은 목숨이라구…! 으앗- !" 팔을 잡고있는 새휘를 무릎으로 가격해 바닥으로 내동댕이 친 미노가 문을 활짝- 열어재꼈다. 바닥을 짚고 일어난 새휘가 아픈 곳을 매만지며 미노를 보고있다. "데빌모드라는 건… 자기한테 보이는 인간을 죽기 직전까지 패버린다는 거야…" "… 뭐야?!" "밖으로 나갔으니, 이제 말리기는 글렀어… 한바탕 난리가 나겠군…" 퍼억- 퍽! "으악- 야, 도미노! 너 미쳤어?!" "닥치고 죽어." 이미 한 녀석을 밟고있는 미노를 보며 혀를 찬 새휘가 미노를 남자애에게서 떼어냈다. "미노야, 그만해!" "도미노, 정신차려!" "미노야… 왜 이러는 거야!" "… 꺼져버려… 제길, 이것들은 다 뭐…" 퍼억- "소, 소이현…" "… 미안해, 아프게해서…" 품에 쓰러진 미노를 안아든 이현이 낮게 중얼거렸다. "… 이제, 괜찮은 거예요?" "응, 다행이다. 어렸을 때는 제어가 가능했는데, 지금은 나도 어떻게 말릴 수가 없거든…" "좀 더 빨리 말했으면 좋았잖아! 그것보다 쟤… 어쩔거야…?" 미노에 의해 밟힌 한 남자애가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져 있다. 한숨을 푹- 내쉰 시혁이 쓰러져 있는 녀석의 친구로 보이는 남자애에게 명령했다. "갖다버려." "에엑- 시혁선배!?" "아, 미안미안… 병원으로 데려 가…" 남자애를 부축해서 데려가는 것을 보던 시혁이 낮게 중얼거렸다. "왠지… 짜증나…" * 미노가 눈을 떴을 때, 자리를 지키고 앉아있는 시혁이 보였다. "시혁… 선배…" 오랫동안 잠을 잔 탓일까, 보이쉬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그런 미노를 따스한 눈길로 보고 있는 시혁. "괜찮아?" "응… 아, 저기…" 뭔가를 알고 있는 듯, 얼굴을 붉히며 이불을 끌어당겨 얼굴을 반쯤 덮은 미노. 그런 미노의 모습이 귀여워 풋- 하고 웃음을 터트린 시혁. "달걀알레르기 있다며…" "네… 저기… 미안… 미안해요…" "정말 그렇게 미안해?" …… 끄덕끄덕. 그런 미노를 향해 생긋- 하고 미소를 지은 시혁. "너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싶어…" 미노의 어릴 적 모습을 알고 있는 새휘에게 약간의 질투를 느끼는 시혁이었다. (이 녀석, 귀엽잖아!) "그러니까… 조금은, 우리들에게 너의 내면을 보여줘도 되지 않을까…?" 따스한 목소리. 시혁의 말에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미노. "모두 좋은 녀석들이고, 너의 투정… 웃으면서 받아줄 수 있는 녀석들이야… 그러니까 조금은 우리에게 너를 보여줬으면 해…" "… 그럴께요, 선배. 조금씩이지만… 아주 천천히겠지만…" 미노가 침대 맡에 기대앉았다. 말끔해진 모습, 본래 자신이 알고 있는 미노의 모습이 맞았다. 웃고있는 미노의 머리칼을 쓰다듬는 시혁. "착하다, 우리 미노…" 따스하게만 느껴지는 시혁의 손길에 갸르릉거리며 눈을 감은 미노. 순간, 미노의 입술에 느껴지는 촉촉한 감촉. 시혁의 입술이 미노의 입술에 겹쳐졌다. 아직은 열이 조금 남아있는 미노의 목을 손으로 감싼 시혁이 더욱 깊게 미노의 입 속을 탐했다. "선배…! 반칙이잖아요-" 은샘의 목소리에 싱긋- 하고 웃은 시혁이 미노의 이마에 짧게 입맞추고는 밖으로 나갔다. 시혁의 거친 키스로 얼굴이 붉어진 미노가 이불을 끌어당겨 머리 끝까지 덮었다. "바보, 숨 막혀 죽을래?" 미노가 덮고 있던 이불을 끌어내리며 웃는 은샘. 언제봐도 믿음직하다. 겸연쩍은 듯 샐쭉- 하고 웃음지은 미노. "이현이도, 시혁선배도, 우주선배도… 꽤 세게 나오는데?" "… 아, 저기… 그게… 그건 그러니까…" "이러다가 뺏기는 거 아닌 지 모르겠다…" "… 에?" "승부욕 끓어오르게 만드시네. 피식." "… 은샘…아? 으앗!" 미노의 팔을 잡아 자신에게로 끌어당겨 안은 은샘. 두근거리는 심장소리가 미노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 설마, 거절하려는 건 아니겠지?" 얄밉게 예쁜 미소를 지은 은샘이 미노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겹쳤다. 허리에 감았던 손을 풀어 미노의 턱을 들어올린 은샘. (드디어 최은샘 승부욕 발동!) "… 뒤에서만 지켜주는 건, 오늘로 마지막이야." 37. "으아아앗- 선배! 그만 좀 따라오라구요!" "싫은 걸- 난 자기가 있는 곳 어디라도 따라 갈 거야-" 복도에서 마치 술래잡기를 하듯 뛰어다니고 있는 미노와 초희. 인상을 가득 쓰고는 있는 힘껏 뛰고 있는 미노의 달리기 실력은 육상선수급. 그런 미노를 쫒아오고 있는 초희의 얼굴엔 웃음이 가득했다. 벌써 30분이 넘게 뛰고 있으면서 땀 한 방울 흘리지 않는 미노도 초특급으로 신기했지만, 그런 미노의 빠른 달리기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쫒아다니고 있는 초희가 더 대단하게 느껴지는 아이들이었다. "미노자기- 같이…! 꺄앗!" 풀썩- 뭔가에 발이 걸려 넘어지려는 초희를 붙잡은 미노. 하아- 하고 낮은 한숨을 쉬더니 자신의 품에 안겨있는 초희를 본다. "선배- 그러니까 그만 따라오라고 했잖아요, 정말." "잡았다, 미노!" 와락- 하고 미노의 품에 안겨드는 초희. 어이어이… 애들이 보고있는 거 안 보이는 거냐구… 다들 이상하게 생각할 거 아냐… "머, 멋지다…" … 에? "지금 봤어? 왠지 절제된 것 같은 감정과 서로를 향해 뜨겁게 몸부림치는 것 같은 눈빛!" …… 하아-? "꺄- 난 이럴 때가 좋더라!" …… 그러니까… 뭐가…? "미노가 초희선배를 바라보는 그 불타는 눈빛… 캬아- 멋있어!" … 어이어이, 누구의 눈빛이 불탄다고…? 아아… 이게 전부 선배 때문이잖아요…! 그만 좀 앵기고 사태파악 좀 하라구요, 정말! 뚜벅- 뚜벅- "여어, 꽤나 정겨운 모습이다…?" 비아냥거리는 목소리에, 미노의 시선이 앞으로 향했다. 덩치로 봐도 미노의 3배가 넘을 것 같은 남자. "어이, 계집애… 넌 저리로 꺼지고, 예쁜아… 나 좀 보지 않겠어?" 눈에 힘을 주고 초희를 보던 덩치는 미노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곧 시선을 미노에게 던졌다. 이틀 전부터 쓸데없이 말을 걸어오던 남자, 유도부 주장 강태준. 곱지만은 않은 미노의 시선에 훗- 하고 웃으며 무스로 넘긴 머리를 쓰윽- 하고 매만지는 태준. "넌 뭐야, 왜 또 나타나서 난리야!" "… 어이, 넌 좀 찌그러져 있어라… 자꾸 떽떽거리면 꽤 반반한 그 얼굴에 줄 그어주는 수가 있다." 태준의 말에 움찔- 하고는 미노의 뒤로 쏘옥- 하고 숨어버리는 초희. 미노의 등 뒤에 숨은 채 얼굴만 빼꼼히 내민 채로 태준을 보고있다. 그런 초희를 향해 콧방귀를 뀌어준 태준이 미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예쁜아, 우리 유도부에 들어오지 않을래? 네가 강하다는 건 익히 들어서 알고 있으니까… 우리 부에만 들어 와 준다면, 널 특별하게 대접해 줄 생각인데 말이야… 어때?" 피식- "난 유도부 따위에 관심없어." 어깨에 걸쳐져있던 태준의 손을 털어낸 미노가 삐딱한 시선으로 태준을 올려다봤다. 미노의 쌀쌀맞은 반응에 눈썹을 꿈틀거리는 태준. "뭐가 못마땅한거냐! 이 강태준이 너의 편이 되어주겠다는데도 왜 거절을 하는거지?!" "… 소리 좀 치지 말아줄래? 덕분에 고막이 나갈 뻔 했다고." 한 쪽 귀를 막은 채로 인상을 찡그리고 있는 미노. 사람의 넋을 빼놓을 정도로 매혹적인 자태. 그런 미노를 보는 태준의 뺨이 붉어졌다. "… 내 의사는 전에도 이미 밝혔으니, 더 이상 찾아오지 말아줬으면 좋겠…!" 탁- 태준의 투박한 손이 미노를 당겨 자신의 품에 안았다. 기분이 나빠진 미노가 팔꿈치로 태준의 턱을 노렸지만, 그런 미노의 공격을 간단히 막은 태준이 미노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무, 무슨…! 읍!" "꺄, 꺄아아악! 떨어져! 미노한테서 떨어지란 말이야!" 초희가 주먹으로 태준을 때려댔지만, 운동으로 인해 단련된 몸이 여자의 주먹에 타격이나 입겠는가… 미노의 입을 억지로 벌린 태준이 다소 거칠게 미노의 입을 탐했다. 거인의 괴물에게 잡힌 가녀린 공주가 힘 없이 당하는 모습을 연상케하는 모습에 아이들의 표정이 경악에 찼다. "놔, 놔, 이 자식아!" "유도부에 와라!" "… 글쎄 안 간다…! 읍!" 발버둥치는 미노를 간단히 제압해버린 태준이 미노의 와이셔츠 안으로 손을 옮겼다. 살갗에 닿아오는 꺼림칙한 느낌에 인상을 찌푸린 미노가 다리를 뻗으려 할 때, 어디선가 들려오는 명쾌한 타격소리. 퍼억- 뒤통수를 맞은 태준이 앞으로 꼬꾸라졌고, 밑에 깔릴 뻔한 미노를 자기 쪽으로 끌어당긴 새휘. 바닥에 大자로 뻗어있는 태준을 향해 혀를 끌끌 차던 새휘의 시선이 미노에게 닿았다. "휴, 괜찮냐?" "… 제길! 죽여버리겠어!" 미노가 새휘의 손을 뿌리치고 태준에게 달려들었다. 새휘의 발길질에 뒤통수를 정확하게 가격당한 태준이 눈을 깜빡이고 있을 때, 미노가 발을 들어 태준의 입을 밟았다. 구둣발로 서슴치않고 태준의 입을 밟아 뭉게는 미노의 눈은 어느새 싸늘하게 식어있었다. "씨발, 너 뒤지고 싶어서 환장했지…" 왠만해서는 욕설을 내뱉지 않는 미노를 아는 새휘의 눈이 놀라움으로 커졌다. 호오- 하는 약간의 감탄사를 흘리며 미노를 보고있는 새휘. (어이, 말릴 생각은 하지도 않는거냐?) "이 기회에 분명히 밝혀두지. 첫째, 난 유도부따위에 눈곱만큼도 관심없어. 둘째, 너 따위 새끼의 호의에 감사하지 않아. 그리고 마지막 셋째, 남색을 밝히려거든 게이바에나 가라구." 퍼억- 태준의 턱을 발로 힘껏 올려차 준 미노가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복도를 벗어났다. 미노가 가는 것을 본 초희가 따라가려하자 고개를 저어 저지하는 새휘. "왜, 왜요…?" "너 갔다간 바로 땅 속에 묻히는 수가 있다." 너무나 진지한 표정으로 얘기하는 새휘. 그런 새휘를 보던 초희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새휘에게서 멀어져갔다. 훗- 하고 작게 웃음지은 새휘가 미노의 어깨를 잡았다. "꽤 무섭잖아…?" "제길… 도미노 성격 많이 죽었네, 씨발." "… 왜 그래…?" "저 새끼 손이 내 옷 속으로 들어왔었다고. 빌어먹을…" 입술을 벅벅- 문지르며 욕설을 읊조리는 미노. "문찬혁 녀석이 생각나서 그런거지…?" "… 그 자식 이름은 꺼내지도 마!" 피식-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구나… 5년 전의 일을…" "닥쳐…!" 자신을 향한 미노의 눈동자에 살기가 깃들었다는 것을 느낀 새휘가 다급히 손을 올려 아니라는 뜻을 밝혔다. 5년 전, 미노를 겁탈하려 했던 문찬혁의 기억이 아직도 머릿 속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었다. 안쓰러운 미소를 지은 새휘가 투박하게 걸어가던 미노를 뒤에서 끌어안았다. "뭐… 뭐야…" "그 기억… 이제 잊을 때도 되지 않았니?" "잊어…? 절대 안 잊어! 그 자식을 내 발로 밟아죽이기 전까진 죽어도 못 잊는다구…" "알았어, 강요하지 않을게… 대신, 내가 보는 앞에서 아파하지는 마… 네가 내 앞에서 아픈 모습을 보이면… 너보다 내가 먼저 그 자식을 찾아내서 죽여버릴 지도 모르니까…" * 학생회실의 문을 열고 들어오던 예찬은 자고있는 미노의 모습을 보고는 조용히 문을 닫았다. 조심스럽게 미노의 곁으로 다가간 예찬이 흘러내려져 있는 이불을 덮어주었다. 싱긋- "… 귀엽게도 자네." 자는 아이를 향해 혼잣말을 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웃겼지만, 남에게 이런 친절을 베풀 수 있는 자신의 모습에 더욱 놀란 예찬이었다. 하지만 놀란 것도 잠시, 이내 피식- 하고 웃어버리며 예쁜 눈동자로 미노를 쳐다본다. "왜 이렇게 빈틈투성이야…" 미노를 보며 작게 읊조린 예찬이 고이 의자를 꺼내 앉았다. 세상에서 가장 예쁜 미소를 띄운 채 미노를 보고있는 예찬이었다. "… 으음…" 얕은 신음을 흘리며 뒤척이던 미노가 이내 눈을 사르르- 하고 떴다. 자신의 눈 앞에 커다랗고 맑은 푸른 눈동자가 보이자 화들짝- 하고 놀란 미노가 눈을 깜빡인다. "서, 선배…" "그렇게 허점투성이로 있는 거 너무 위험하지 않아…?" "… 에?" "내가 아닌 다른 녀석이 들어왔다면, 너 이미 잡아먹히고도 남았을 걸?" 짖궂은 미소를 지으며 미노를 보던 예찬이 눈을 찡긋- 해보이고는 캐비넷을 열었다. 수북히 쌓여있던 서류들 중 하나를 뽑아들어 만족스러운 표정을 한 예찬이 미노의 곁에 앉았다. "응…? 뭘 보는 거예요?" "일주일 후의 방학식 일정, 내 담당이라서 오늘까지는 마쳐야 하거든." 펜을 잡고는 뭔가를 써내려가는 예찬. 도중에 뭔가가 걸리는 지 고개를 갸웃- 하고서는 다시 손가락 사이에서 펜을 굴리는 예찬. "다 됐다." "… 에? 벌써요?" "응!" 무지무지 예쁜 미소를 지으며 미노를 보는 예찬. 놀란 표정으로 자신을 보고있는 미노에게 들고있던 서류를 건네 준 예찬. "저, 정말이다…!" "그럼, 거짓말인 줄 알았어?" "이, 이렇게나 완벽하게 금방 끝내면서 왜 마지막까지 남겨뒀어요?" "아…" 예찬은 말끝을 흐리더니 의자에서 일어나 창가로 향했다. 눈부시게 밝은 햇살이 예찬의 머리칼에 닿았다. "… 너무 일찍 끝내버리면 재미없잖아." "뭐가 재미없는데요?" 싱긋- "… 선생들이 초조해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즐거움이 사라져버리거든." 어이어이, 이 사람 꽤 위험하잖아… 환하게 웃으면서 저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다니… 예찬선배만은 다를 줄 알았는데, 역시 '학생회는 학생회' 라는 건가… (뭔 소린지… 웅얼웅얼.) 드르륵- 문을 열고는 무표정으로 미노에게로 걸어 와 풀썩- 하고 주저앉은 이현. 왜, 왠지… 이 녀석 엄청나게 살벌한 눈빛이… "왜 말 안 했냐?" "무, 무슨 소리… 아니, 것보다 그 차가운 시선은 뭐…! 꺅!" 이현이 미노의 손목을 잡아 자신 쪽으로 끌어당겼다. "왜, 왜 이래…!" "이현아…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선배 앞에서 그런 진한 포- 즈를 취해도 괜찮은 거야?" "유도부 강태준… 아침에 너한테 집적거렸다는데, 왜 말 안 했어." 예찬의 말을 가볍게 무시해버린(이현아, 그래도 예찬이는 선배잖아…;) 이현이 미노를 다그쳤다. "됐어, 그런 일은 나 혼자서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일이니까." "…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데, 그 새끼 손이 네 옷 속으로까지 들어갔냐…?" "잠, 잠깐만… 이현아, 그게 무슨 소리야?" 예찬이 미노에게서 이현을 떼어내며 물었고, 이현은 거칠게 앞머리를 쓸어올리고는 예찬을 향해 말했다. "유도부 강태준이라는 새끼가, 아침에 얘한테 강제로 키스한 걸로도 모자라서 옷 속으로 손을…!" 콰앙- ! "지금 그 말, 분명한 사실이겠지…?" "용서할 수 없어…" "가만 안 두겠어!" 뛰어나가려는 은샘과 우주를 무표정한 얼굴로 보고있는 시혁. 그러더니 이내 고개를 젓는다. 씨익- "그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어…" 서, 선배… 왠지 등에서 살기가 느껴지는 것 같은… 완전히 마왕이야… 그것도 대마왕이야…! "유도부 강태준이라는 녀석은, 주장이라고 알고 있는데…" 류예가 흘린 말에 입에 미소를 거는 시혁. 저, 저기요…? 왠지 모르게 엄청난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좀 불길한 예감이 드는 건 제 착각이겠죠? 눈부시게 아름답지만 장미에는 가시가 있는 법일까, 시혁의 잘생긴 얼굴에서 나타나는 웃음은 결코 호의적인 미소만이 아니었다. "유도부… 전부 집합시켜." 38. 역시, 학생회의 위력은 대단했다. 선생님들도 못 건드리는 학생회에 감히 대항하는 자가 없었기에, 회장의 외침에 한 사람도 빠짐없이 학교 앞에 집결한 유도부. "주장, 강태준… 나와라." 살벌한 시혁의 부름에 즉각 대령하는 태준. 시혁의 뒤로 시선을 옮긴 태준이 미노를 보고는 씨익- 하고 웃는다. (네 놈, 그렇게 당하고도 아직 정신을 못 차린 것이냐!) "강태준, 아침에 2층 복도에서 불미스러운 사건을 일으켰다고 들었다." "……" 여전히 미노에게로 향해있는 태준의 시선. 미노의 옆에 학생회 간부들이 늘어서자 그제서야 흠칫- 하며 고개를 돌린다. "대답하지 못한다는 건, 사실을 인정한다는 뜻이겠지?" "저… 그건…!" "유도부 전체에게 명령한다, 잘 들어라." "네!" 우렁찬 목소리가 베어나왔고, 시혁은 싸늘한 눈동자를 태준에게 옮겼다. 그리고는 이내 싱긋- 하고 웃는다. (어째서 그렇게 싸늘한 눈으로 웃을 수 있는 거냐고…!) "학교에 굉장한 소문이 퍼졌는데, 너희들이 그 소문을 못 들었을 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내 말이 맞나?" "네!" "그럼 주장의 죄를 증명해줄 수 있겠지?" "네!" 씨익- "… 40명의 인원이 모두 너의 죄를 증명하겠다고 나섰는데, 넌 어쩔거지?" "그, 그건…" 시혁의 말에 쭈뼛거리며 뒤로 서서히 물러나는 태준. 차시혁… 한마디로 대단하다고 밖에 설명할 수가 없다. 온 몸에서 뿜어져나오는 카리스마와 따라갈 자가 없을 정도의 리더쉽을 갖춘 최고 중의 최고. 운동으로 몸을 단련한 태준이지만, 역시 그도 인간인지라 시혁의 모습을 보고는 살짝 곤란한 표정을 짓고 있다. "어쩔 거냐고 물었어, 산 증인을 등장시키길 원하나…?" "아, 아냐! 그, 그래! 잘못을 인정해! 하지만…!" "그만. 내가 듣고싶었던 건 네 잘못을 시인하는 말이었으니까." 태준의 말을 가볍게 잘라버린 시혁이 유도부 일행에게로 다가갔다. 시혁이 다가오자 흠칫- 하는 남자들과 꽃미소를 풀풀 날리는 여자들. "… 모두들 들어서 알고 있을 거라고 본다. 학교의 질서를 어지럽힌 인간은… 용서할 수가 없다." 저기… 선배, 그럼 제가 학교의 질서란 말인가요… 그것보다 왜 그렇게 살벌한 눈을 하고… 즐겁다는 표정으로 웃고있는 건데요…? "너의 처벌은 결정되었어." 태준에게로 다가간 우주가 선배임에도 불구하고 반말을 내뱉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준은 한마디도 대들지 못한다. (대들었다가… 학교에서 매장당할 일 있냐…) "처, 처벌이라니…" 탁탁- 태준의 어깨를 탁탁- 하고 쳐 준 류예가 태준을 보고 싱긋- 웃는다. 그 모습을 보고 얼굴을 발그레- 하고 붉히는 태준. 하지만 이내 싸악- 굳어버린 류예의 표정에 눈에 띄게 굳어버린 태준. "너의 처벌은, 이제 곧 회장이 말해줄거야." 유도부 전체를 돌아보던 시혁이 류예의 눈빛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입을 열었다. "옥상에 매달아." 시혁의 말 한마디에 돌처럼 굳어버린 태준과, 싸- 해진 주변의 분위기. 저기… 선배,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사람을 옥상에 매달수가 있나요…? (생매장까지 감행했던 애가 할 소리냐?) "주장, 농담은…!" "얘도 같이 매달아." 겁도 없이 회장의 말에 반항했다가 옥상에 매달릴 지경이 된 불쌍한 남자애. 얼마 지나지 않아, 옥상에는 인간 에드벌룬(;)이 매달리게 되었다. "서, 선배… 너무 심하지 않아요…? 중력도 엄청나서 되게 아플텐데…" "심하지 않아." "선배… 저 때문에 이러실 필요까지는…" "모두의 생각이야." "그치만…" 미노를 꼬옥- 끌어안은 시혁. 이내 따스한 눈으로 미노를 쳐다본다. "저런 것보다… 네가 상처입었단 생각에… 내 심장이 더 아파…" * "자기야- 오늘 나랑 갈 데가 있어!" "시간없어요." "거짓말- 내가 다 알아봤는 걸?" "뭘 알아봐요." "너 학교마치면 바로 집으로 간다며- 가끔은 놀기도 해야하잖아?" "그건 맞지만 싫어요." 팔에 매달려 앵앵대는 초희의 물음에 짧게 대답하는 미노. 오전에 수업이 없는 관계로 아예 7반에 자리를 잡아버린 초희였다. "선배…" "선배라구 부르지 말구, 너두 자기라구 해 봐." 내가 미쳤어요? 같은 여자보고 자기라고 부르게?! 설령 겉모습이 남자라고 해도 절대 그런 닭살돋는 멘트는 못 날린다구요! "싫어요." "그럼, 나랑 친구들 같이 만나 줘." "싫어요." "그럼 자기라고 불러 줘." "무리예요." "그럼 둘 중에 하나를 택해, 친구를 만나주든가, 자기라고 불러주든가." "……" 상당히 곤란하다는 미노의 표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생글거리고 있는 초희. 어이어이, 당신 상대방 기분은 생각하고 있는거야? "… 알았어요." "꺄아- 정말이지? 정말?" "알았다구요." "근데 뭘…?" 휘청- 이 사람이 진짜…! 누구 놀리는 것도 아니고… 그런 건 미리 물어봤어야죠! "친구… 같이 만나줄게요." 사복으로 갈아입고 나온 미노는 초희의 옷차림을 보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하이힐까지는 좋은데… 너무 노출이 심하잖아요, 선배. "왜? 예뻐서 그렇게 보는거야?" "선배, 노출이 심해요." "괜찮아, 괜찮아. 이 정도는 입어줘야한다구!" 대체 뭐가 이 정도는 입어줘야 한다는 건지… 미노는 초희와 함께 [데킬라] 라는 술집으로 들어섰다. (장소를 옮기라는 미노의 말을 싸그리 무시한 초희가 일방적으로 끌고 온 것) "얘들아!" "오- 남초희!" 길게 뻗어있는 테이블에 앉아있는 세 명의 여자와 그들의 남자친구로 보이는 남자들. 일단 왔으니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은 미노는 접대용 미소를 얼굴에 띄웠다. "세상에, 끝내주게 잘생겼잖아!" "그치그치?!" "… 근데, 너무 예쁜 거 아냐? 초희 네 외모가 딸려보여…" "난 괜찮아, 우리 자기만 괜찮으면 난 좋으니까!" 뭐가 괜찮고 뭐가 좋다는 건지 모르겠네. "안녕하세요, 우린 초희 친구들이에요." "… 까딱." 약간은 건방지게 보일 수 있지만, 다른 누군가가 아닌 미노의 행동이기에 용서가 되었다. 간단한 자기소개를 하고는 자리에 앉아 술잔치(?)를 벌이는 초희와 그의 친구들. 물론, 미노는 옆에서 물만 할짝이고 있다. "초희야, 네 남자친구 술 못 마시니?" "세상에- 남자가 술도 못 마시는 거야? 너무 순진하다!" "얼굴이 되는데 그런 게 무슨 상관이야…?" 갖은 수다를 떨어대는 여자애들을 지나쳐 화장실로 들어서려던 미노. 짜악- "같이 좀 쓰자는데 무슨 말이 많아, 이 년아!" "자, 잘못했어요… 흐흑…" 네 명의 날라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한 여자애. 미노는 남자화장실로 가려던 발걸음을 돌려 여자화장실로 향했다. (어이, 이봐 너 지금 남자라고!) 탁- "뭐야? 이 새끼는…" "이 새끼가 아니라 도미노." "뭐? 하하, 웃기는 새끼네… 여기 여자화장실이거든?" "저쪽으로 가려는데, 못생긴 늬들이 예쁜 애를 괴롭히고 있는 게 보이길래…" "뭐?! 이게 진짜 죽을라고…!" 탁- 여자애가 뻗은 주먹을 가볍게 잡아버린 미노. 당황한 여자애를 보며 싱긋- 하고 꽃미소를 날린 미노가 주먹을 놓아주며 말했다. "그냥 가, 덤비는 것도 상대를 봐가면서 덤벼야지." 한껏 낮아진 미노의 음성에 줄행랑을 놓는 여자애들. 그런 여자애들을 싸늘한 표정으로 보던 미노가 괴롭힘을 당하던 여자애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 괜찮아?" "고, 고마워요…" "별로, 그럼-" 밖으로 나가려던 미노는 여자들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쳇, 하는 짧은 말과 함께 화장실 칸 막이 안으로 들어섰다. 물론, 옆에 있던 여자애와 함께. "으읍…!" "쉿- 저 사람들 나갈 때까지 잠시만 이대로 있자. 아무 짓도 안할테니까. 응?"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는 여자애의 입을 막았던 손을 떼는 미노. "야, 근데 초희 이번에는 진짜로 사귀는 걸까?" "설마, 원우랑도 진짜로 사귄다고 하고선 얼마 안 가서 차 버렸잖아." "그렇겠지…? 아, 그치만 그 얼굴은 정말 아까운데…" "이름이 도미노라고 했던가…? 진짜 잘생기긴 잘생겼더라…" 밖에서 들려오는 얘깃소리에 여자애가 미노를 쳐다봤다. 그런 여자애를 향해 가볍게 웃어준 미노. 또각- 또각- "오, 초희야!" "뭐야, 늬들 여기 있었던 거야?" "야, 남초희… 너 이번에는 진짜냐?" "뭐가?" "남자친구 말이야!" "그럼, 진짜지!" "또 얼마 안 가서 깨질 게 뻔하다, 네 성격이 어디 가겠냐?" "안 맞아서 내가 누군 지 잊어버렸냐…?" "아, 아니야! 잊을 리 없잖아… 근데, 너 진짜 어떻게 그런 남자를 만났냐?" "싸움은 좀 해? 덤벼오는 새끼들 많을텐데, 걔랑 같이 있는 거 너무 위험한 거 아니냐?" "마린고등학교 1학년 7반 도미노… 끝내주는 싸움꾼이야." "… 뭐?" "천의얼굴이라고 들어봤지…?" "서, 설마…! 그 천의얼굴이 네 남자친구란 말이야?!" "70명의 인원과 싸웠으면서도 상처하나 없이 나왔다는 그 사람이?!" "그렇다니까…" 또 한번 놀라운 눈동자로 미노를 보는 여자애. 하지만, 이번은 미노의 얼굴이 조금은 찡그려져 있다. "역시 남초희다, 그럼 이번에는 정말 오래가겠네? 진도는 어디까지 나갔어?" "전혀, 나갈 생각이 없는 가 봐." "뭐? 아하하, 그게 정말이야?" "응, 조금은 시시해지려고 한다니까." "뭐야- 너 걔 얼굴이랑 싸움실력보고 좋아한 거 아니었어? 그럼 그거 다 연기야?" "조금은 스킨쉽을 해줬으면 좋겠는데… 전혀 하지 않으니까 짜증이 난다구." "하하, 남초희가 이렇게 화내는 모습은 처음보는데?" "나도 여자라구, 오늘도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구!" "너 옷차림보고 대충은 예상했었다, 오늘 일 치룰거냐?" "뭐, 그렇다는 거지." "매번 똑같은 수법 지겹지도 않냐?" "할 수 있음 너도 해보든가." "하여간 잘났어, 남초희." "그래, 나 잘났다! 깔깔." "하하하하-!" 콰앙- "피식… 꽤나 재미있는 얘기네." 39.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는 듯,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며 벽에 기대어있는 미노. "… 네, 네가 여기 왜…!" "Need not to know." (알 필요 없어.) 유창하게 영어를 구사한 미노가 피식- 하고 웃고는 초희에게로 다가갔다. 미노가 다가올 수록 점점 뒤로 물러나는 초희. "이… 이러지 마…" "내가 뭘 어쨌는데, 무슨 짓이라도 했어?"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는 것을 알고는 눈을 질끈- 하고 감은 초희. 초희의 앞에 차가운 냉소를 짓고 서 있던 미노가 손을 들어 초희의 어깨를 잡았다. 흠칫- "… 잘난 듯 떠들어대더니, 왜 아무 말도 못하는 건데?" "그, 그런 게 아니야… 뭔가 오해를…!" 피식- "역겨운 변명 늘어놓지 말고… 그만 꺼져." "… 미노야, 나… 나 정말 네가 좋아서 그랬어…!" 자신의 팔을 붙잡은 초희의 손을 싸늘하게 쳐다보는 미노. 이내 다른 손을 들어올려 털어내버린다. "함부로 손대지 마…" 너무나 차가운 낮은 목소리. 미노의 팔을 잡았던 초희의 손이 아래로 미끄러져 내렸다. "… 네가, 네가 날 봐주지 않잖아…" "적어도 내가 아는 사람은, 상대방에게 자신의 사랑을 강요하지 않아…" 바닥에 주저앉은 초희를 지나쳐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밖으로 나가는 미노. 왁자지껄하게 떠들고 있는 술집 안의 사람들의 모습에 인상을 살짝 찡그리고는 주저없이 출입문을 열어재꼈다. 네온사인이 반짝이는 거리를 걷고있는 미노. "… 저기 봐, 잘생겼다!" "마린고 도미노야!" "꺄아- 진짜? 정말 저 사람이 도미노야?!" "그래! 천의얼굴로 유명한 도미노!" "세상에- 실제로 보게되다니!" 수군거리는 여자들을 힐끔- 하고 바라보던 미노가 어두운 골목길 안으로 들어섰다. 그 때, 미노의 팔을 끌어당겨 입을 막은 남자. "으읍… 으으읍…!" "도미노, 꽤 유명해졌던데…!" 문찬혁… 여전히 소름끼치는 목소리. 술을 마셨는 지, 역겨운 술냄새가 미노의 코를 통해서 전해져왔다. 대체 어쩔 셈이야…! "흑월회 총수에게 꽤나 예쁨을 받는 모양이지?" 제길… 미노는 한껏 인상을 찌푸렸다. 반쯤 풀린 눈동자, 가누지 못해 벽에 기대있는 몸뚱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찬혁의 손은 단단하게 미노를 옭아매고 있었다. "… 놔, 놓지 못해?!" "어렵게 찾았는데, 또 놓치면 내가 너무 불쌍하잖아…" "놔, 당장 이 손 놔!" 발버둥치는 미노의 손을 움켜쥔 찬혁이 미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내게 오겠다고 말해." "싫어. 당장 놔!" "말하란 말이야!" "… 설령 너한테 죽는 일이 있어도, 그런 제안… 받아들이지 않아." 퍼억- 미노의 고개가 옆으로 돌아갔다. 무식하게도 여자의 얼굴을 주먹으로 가격한 찬혁. 찬혁의 눈에는 취기가 돌아 뵈는 게 없는 듯 보였다. "… 칫." "내 소유가 되겠다고 얘기 하지 않으면, 여기서 널 덮칠거야…" "… 지랄하고 있네." 퍼억- 팔꿈치로 찬혁의 턱을 가격한 미노가 반대쪽 벽에 기대며 숨을 몰아쉬었다. 방금까지 녀석의 품에 안겨있었다는 것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화가 나 견딜 수가 없다. 찬혁을 보는 미노의 눈이 차갑게 식었다. 씨익- "마침 내가 기분이 별로였는데, 걸려줘서 매우 고마워." * 퍼억- "… 크헉!" 요란하게 신음을 흘리며 바닥에 쓰러져 있는 찬혁과, 그런 찬혁의 목을 밟고있는 미노. 이미 많이 얻어터진 모양새. "그, 그만…!" 퍼억- "크윽… 제기랄! 도미노!" "… 무슨 일이지…? 아직도 할 말이 남았나…?" 죽을 힘을 다해 소리치는 찬혁과는 달리, 매우 태연한 표정으로 찬혁을 밟고있는 미노. (엄청나게 살벌하다.) 그런 미노를 보는 찬혁의 눈동자에 두려움이 깃들었다. "그만… 그만해, 그만!" 꾹꾹- "좋아, 이대로 고이 땅 속에다 묻어줄까…?"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 미노. 가로등 불빛을 온 몸으로 받고있는 예찬이 보였다. "… 서, 선배…" "비가 오면 더 좋을텐데, 아쉽다…" 진짜 아쉬운 듯이 말하고 있는 예찬의 모습에 미노는 찬혁의 위에 올려뒀던 다리를 내렸다. "여긴 어떻게 오셨어요?" 싱긋- "처음부터 있었어, 그치?" 쓰러져 정신을 잃을 듯 말 듯 하고 있는 찬혁에게 묻는 예찬. 그런 예찬의 모습에도 "으으으…" 하는 신음만 흘릴 뿐 다른 대답을 할 수 없을 지경이 되어버린 찬혁. 쿡쿡- "어이, 정신 좀 차리라구." "… 으윽…" 예찬이 옆에 있던 나뭇가지를 주워 찬혁을 찔렀지만, 숨만 몰아쉴 뿐인 찬혁. 가만히 나뭇가지를 내려놓고는 미노의 어깨에 손을 걸친 예찬. "미노야, 불쌍하기까지 하다…" "… 오늘 기분이 좀 별로였어요." 어깨를 움직여 예찬의 손을 털어낸 미노가 골목길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왠일인지 차가워진 미노의 모습에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걷는 예찬. "집에 가는거지?" "… 네." "이현이네 가는거지?" "…… 끄덕." "오케이, 그럼 빨리가자!" 예찬의 손이 미노의 손목을 낚아챘다. 으, 으엑- 하는 비명을 지르며 예찬에게 이끌려 어디론가 가는 미노. "여, 여기는…!" "응, 시혁선배네 집! 들어가자!" "저, 저기요…! 선배…!" 미노의 외침을 가볍게 무시하고 집 안으로 끌고들어온 예찬. "왔네." "어서 와-" "기다렸다구!" "… 에?" "얼른 여기 와서 앉아!" "무슨… 저기, 잠깐만요…!" "일단 앉아 봐…!" 어쩐 일인지 시혁의 집에 모두 모여있는 이현과 학생회 간부들, 그리고 환희와 새휘까지… 어리둥절한 미노가 시혁과 이현의 중앙에 앉았고, 앞에 있는 촛불에 불을 밝히는 은샘. "생일 축하해… 미노야." 40. 미노는 한마디로 자신의 생일에 관심이 없다고 하는 게 맞을 듯 했다. 자신의 생일을 챙겨주는 건, 부모님밖에 없었기 때문에… 집을 나와서 생활한 지 3년이 넘어가고 있었고, 이제 생일따위 미노에게는 아무래도 상관이 없었다. 드르륵- 쾅! 평소와 같이 등교를 해 교실에 있던 미노가 어젯밤을 회상하고 있을 때, 뒷 문이 열리며 익숙한 여자가 들어섰다. 느릿하게 고개를 돌려 여자를 바라보던 미노는 칫, 하고는 시선을 돌려버린다. "오랜만이다, 도미노." "그냥 가라, 너랑 말 섞기 싫다." "네 하찮은 발목때문에 덕분에 편히 잘 쉬었다구, 감사인사 하러 온 거야." "… 응." 창 밖을 내다보며 무심한 어조로 말하는 미노. "아직도 학생회간부들이 너 지켜주는 모양이다…?" "내 몸은 내가 지켜, 그 누구에게 도움받지 않아." "아, 그래…? 그럼… 어디 지켜보시든가." 짝짝- 명은비가 손뼉을 두 번 치자, 미리 대기하고 있었던 듯 열려있는 뒷 문에서 스무 명 남짓한 패거리가 들어섰다. "무서우면 지금이라도 잘못했다고 빌어, 그리고 학생회 간부들에게서 떨어지라구." 피식- 미노의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다. 차가운 것도, 싸늘한 것도… 그렇다고 잔인한 것도 아닌 평범하지만 너무나 예쁜 미소. 미노가 웃음짓는 것을 본 패거리들은 얼굴을 붉게 물들였다. "내가… 너 따위를 왜 무서워해야 하지…?" 자리에서 일어난 미노가 조금은 짙어진 눈동자로 패거리들을 쓰윽- 하고 훑어보았다. 동네 건달들을 끌어모아 놓은 것 같은 모습에 미노의 인상이 찡그려졌다. "덕분에 정.학. 먹어서… 너무 잘 쉬었거든…? 그래서 너도 병원에서 편하게 쉴 수 있게 해주려구." 피식- "이런 인원으로는… 그 흔해빠진 병원 문 앞에도 못 데려 가." 어느새 차가워진 미노의 눈동자. 미노의 낮은 목소리가 교실 안에 울려퍼졌고, 교실로 들어오려던 아이들은 교실 안의 상황에 복도 창문에 매달려 보기만 할 뿐이었다. 미노의 실력을 아는 아이들이었기에 이제는 여유롭게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고 있다. 간혹 몇몇 아이들이 핸드폰을 꺼내 동영상 촬영을 준비하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이 곳을… 네 무덤으로 만들어 주겠어." "… 할 수 있다면…" 비릿하게 미소지은 미노가 멍청하게 서 있는 패거리에게로 한 발자국씩 다가갔다. 여전히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얼굴에는 여유로운 표정이 묻어나는 미노. "얘들은 어디 깡패들이냐…?" 미노가 은비에게 물었고, 팔짱을 끼며 기세등등하게 외치는 은비. "깡패따위가 아냐…조폭이라구…" 조폭…? 말라빠진 멸치를 방불케하는 작은 몸집. 그리 큰 것도, 작은 것도 아닌 평범한 키에 다소 멍청하게 보이는 녀석도 보인다. 이런 것들을 전문용어인 양.아.치. 라고 부른다지. "아아… 양아치들은 양아치답게 뭔가 무기를 들어야하지 않나…?" 너무나 위험해 보이는 미노의 도발. 하지만… 그걸 보는 상대방의 입장은 달랐다. 매혹적으로 빛나는 미노의 붉은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낮은 목소리는 온 몸에 전율이 흐르게 만들었고, 자신들에게로 향한 맑고 투명하지만 싸늘한 눈동자는 상대방을 압도하는 포스가 느껴졌다. "조폭이라니까!" 피식- 은비의 외침에 미노가 차갑게 미소지었다. "이름있는 조폭이 아니라면 나한텐 그저 조무라기에 불과해." "얕보지 않는 게 좋을 걸…? 우리 영역에서 최고의 싸움꾼이니까." "… 그렇게 대단한 싸움꾼이라면… 상대방에 대한 정보는 미리 파악하고 오셨겠네…?" "흥, 네가 뭐가 그렇게 대단하다고 정보를 파악해야 하는데?" 피식- 은비의 말에 입술에 잔인한 미소를 건 미노. "… 내 몸에 작은 상처라도 입힐 수 있다면, 늬들이 이긴거야. 하지만…" "하지만…?" "내게 손 끝 하나라도 대지 못했을 경우엔… 살아서 돌아갈 생각따위… 일찌감치 버리는 게 좋아." * 편안한 얼굴로 눈을 감고 벽에 기대어 있는 미노. 살랑거리며 불어오는 기분좋은 바람에 살며시 미소를 짓는 미노였다. "나 참, 이런 곳에 있었던 거야?" 시혁의 목소리에 미노는 아무 말 없이 손을 내밀었다. 미노가 내민 손 위에 자그마한 캔디를 놓아준 시혁. "잘 먹을게요!" 기다렸다는 듯이 딸기맛 캔디를 입에 넣고 오물거리는 미노의 옆에 주저앉은 시혁. 시혁의 블랙홀 같이 깊은 눈동자가 미노에게 닿았다. "에…?" 피식- "역시… 안되겠다." "에…? 뭐가요…?" 미노가 궁금증을 발하며 물었지만, 시혁은 그저 웃기만 할 뿐 말이 없었다. 그런 시혁에게 매달려 가르쳐달라고 떼를 쓰는 미노. "선배- 가르쳐 줘요-" "글쎄… 1500년 후엔 가르쳐줄까…?" "에에- 치사해! 그러지 말구 가르쳐 줘요- !" "너한테는 평생 안 가르쳐 줄거다, 바보." "에엑- 선배 지금 나보고 바보라고…!" 주먹을 지켜드는 미노를 보며 웃은 시혁이 미노에게서 멀리 달아났다. 그런 시혁을 따라가던 미노가 이내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시혁에게로 다가갔다. "선배-" 싱긋- "응…?" 낮은 어조로 자신을 부르는 미노를 향해 눈부신 미소를 띄우며 답하는 시혁. 햇살이 비치는 벽에 기대어 여유로운 표정을 짓고 있는 시혁을 보던 미노가 확- 하고 다가섰다. 하지만 왠일인지 피하지 않는 시혁. 바로 앞까지 다가선 미노를 보고도 그저 웃기만 한다. "에… 선배한테는 안 통해…" 피식- "뭐가 안통하는데?" 시혁의 말에 뾰루퉁- 한 얼굴로 웅얼거리는 미노. "악마 놈이 이렇게 다가오면 난 왠지 움직일 수가 없던데… 선배한테는 안 통하나봐…" "소이현…?" "네… 재미없…!" 미노의 눈이 커졌다. 점점 다가오고 있는 시혁에게서 뒷걸음질치는 미노. "저, 저기… 서, 선배…?" 싱긋- "응." 으으- 나 아무래도 말실수한 것 같은데… 저번에 시혁선배 어머니에 대해 물었을 때보다 더 무서워…! "음… 저, 저기… 시, 시혁…선배…?" 악마 놈의 포스보다 더 강해! 그냥 강하기만 한 게 아니라 엄청나게 강해…! 으아, 어쩌면… 아니, 어쩌면이 아니라 이쪽이 훨씬 더 무서워…! 탁- "으엣-!" 싱긋- 시혁이 팔을 뻗어 미노를 벽과 자신의 사이에 가두었다. 눈부시게 잘생긴 시혁의 얼굴이 미노의 투명한 눈에 비쳤고, 그런 미노를 물끄러미 보고있는 시혁. "서, 선배…?" "이런 방법이 있었구나…?" "에…?" "꼼짝 못 하는 걸 보니… 꽤 재미있는데…?" 마왕…! 악마 놈보다 백배, 아니 천배는 더 사악해…! "선배- 왠지 바뀐 것 같은… 읍!" 시혁의 입술이 미노의 입술에 겹쳐졌다. 아련하게 퍼지는 딸기향 때문이었을까… 미노는 심장이 두근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 아니야… 설마… 그냥 선배일 뿐인데… 심장이 두근거리다니… 바보같아… "좋아해…" "……!" "이 지구상에 있는 그 누구보다도… 네가 좋아." 댓글 101 인쇄 | 스크랩(0)▼ 월햐소설 여준공 능력도 되면서 왜렇게 남자들한테 힘을못써 ㅠ 09.10.14 17:42 답글 ◀이전 1 2 3 다음▶ 등록 텍스티콘 0 / 300자 회원은댓글을 쓸수 없습니다. 등록 텍스티콘 0 / 300자 글쓰기 답글 최신목록 | 목록 | ▲윗글 | ▼아랫글 ▲윗글 | 남장† 위험한 도발, 미치도록 차가운 그 녀석의 키스에 길들여지다 41~50 2008.02.10 ▼아랫글 | 남장† 위험한 도발, 미치도록 차가운 그 녀석의 키스에 길들여지다 21~30 2008.02.10 ▲top 서비스 약관/정책 | 권리침해신고 | 카페 신고 | 이용약관 | 카페 고객센터 | 검색비공개 요청 Copyright (c) Daum Communications Corp. All rights reserved. ------------------------------------------------------------------------------------ 남장소설ㄲt페boy (http://cafe.daum.net/boyhamr) 제목 : 남장† 위험한 도발, 미치도록 차가운 그 녀석의 키스에 길들여지다 작가명 : H. 체리비。 메일 : moon-sters@daum.net">moon-sters@daum.net 연재장소 : 남장소설카페 총 편수 : 60편 장르 : 남장소설 ------------------------------------------------------------------------------------ - 위험한 도발, 미치도록 차가운 그 녀석의 키스에 길들여지다 41. "… 선… 배…?" "알아. 이미 네 맘에 소이현 녀석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 쯤…" "……" "내 사랑… 부담주지 않을거야. 강요하지도 않을 거고… 강제로 사랑해달라고 말하지도 않을거야… 그러니까 내 고백으로 인해서… 네가 힘들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선배…" 싱긋- "자- 돌아가 봐. 교실에서 그 녀석이 목 빠지게 널 기다리고 있을테니." 아무렇지 않은 듯 웃은 시혁은 미노를 7반 교실에다 던지듯 보내고는 학생회실로 돌아왔다. 문을 여니, 언제왔는 지 류예가 창가에 앉아 책을 보고 있다. 공허하지만 진지하게 보이는 눈동자가 시혁을 향하자, 어째서인지 류예의 시선을 피해버리는 시혁. "회장… 왜 그래?" "아무 것도…" 탁- 류예가 읽고있던 책을 접으며 시혁에게로 다가왔다. 캐비넷 위의 서류들을 매만지던 시혁은 류예의 인기척을 느끼고도 뒤를 돌지 않았다. 류예 녀석의 눈을 봤다간… 마음 속에 묻어두었던 자신의 감정을 낱낱이 말하게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숨기고 있구나…?" "……!" 서류를 살피던 시혁의 손이 순간 멈칫- 했다. 그 모습을 놓치지 않고 본 류예가 따스한 눈으로 시혁을 본다. "사랑이라는 거… 감출수록 더 아픈거라더라…" 피식- "그런 게 어디있냐…?" "여기. 여기있는 차시혁이 그 증거잖아." "……" "I want you to be happy." (나는 네가 행복했으면 해.) 피식- "쓸데없는 말을…" "허튼소리 하는 게 아니라는 건… 형이 더 잘 알잖아…" "… 류예야…" "그러니까… 뭐든지 솔직하게 하는 게 좋은거야… 그게 차시혁의 방식이잖아." 시혁을 향해 부드럽게 미소지은 류예는 문을 열고는 밖으로 나갔다. 류예가 간 곳을 멍하니 보고있던 시혁은 이내 피식- 하고 웃어버렸다. "사람을 제대로 볼 줄 아는 그 눈은… 몇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구나." 아무렇지 않은 척 행동하고 있어도, 녀석에게는 어김없이 들켜버린다. 2년 동안 힘든 일이 있을 때는 항상 그랬었다. 그때마다 시혁은 류예를 통해서 힘을 얻고는 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시혁은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하하하- 하고 웃어버렸다. "솔직하지 못한 차시혁은, 차시혁이지만 차시혁이 아니다, 이거지?" 한편, 학생회실을 나온 류예는 밖에 서 있던 네 사람을 보고는 싱긋- 하고 웃었다. 방금 한 대화를 모두 들었냐는 듯… 말하고 있는 류예의 웃음. "… 전부, 솔직하지 못하는 주제에…" 피식- "그러게…" 류예와 우주가 마주보고 웃었다. 어쩔 수 없다는 듯 두 사람을 보고있는 새휘. "솔직하지 못하지만, 이미 마음은 정한 것 같은데…?" "할 수 없잖아요… 회장이 저렇게 참고있는데…" "지금 이 시점에서 아무것도 힘이 되어주지 못하는 우리들이니까…" 싱긋- "웃으면서 회장형을 밀어줄 생각이예요, 난." "싸움도 잘하고, 가끔 위험한 일에 말려들기도 하는 녀석이지만…" "우리 역시 미노가… 좋으니까." 정말로 눈부시게 활짝 웃고있는 류예와 우주, 예찬과 은샘의 모습에 시혁은 낮게 웃음을 지었다. 미노는 어렸을 적부터 묘하게 사람을 끌어당기는 마력이 있는 듯 했다. "모두 다 행복해질 수는 없는 거니까…" "… 반드시 겪어야만 할 그 아픔, 우리가 대신 감당해도 좋아요…" "정말 소중하지만…" "아까운 내 감정… 접어버리더라도…" "미노가 아프지 않다면…" "우리들은 그것으로 충분히 행복하니까…" * 철썩- 파도가 부서지는 소리를 들으며, 환히 미소짓고 있는 미노. 방학을 맞아 2박 3일의 여행으로 바다에 온 것이었다. "미노야- 이리 와 봐!" "우와- 예쁘다!" 하얗게 바위에 부딪혀 부서지는 파도. 그 모습을 보고있는 미노의 얼굴에는 생기가 넘쳐흘렀다. 모든 것을 떨어버리고 이제서야 진정한 행복을 찾은 듯, 정말 밝게 웃고 있다. "이대로… 괜찮아?" "응." "… 그래." "너희들은…" 싱긋- "물론…" "괜찮아." 예찬과 미노가 바다를 보며 환호성을 터트리고 있을 때, 시혁과 류예, 환희와 새휘가 서로를 보며 웃음지었다. 이대로 저 파도처럼 부서져버린다고 해도 좋았다. 같은 하늘 아래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 "어이- 거기 두 사람,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거야? 그만 밥 먹으러 가야지!" "알았어- ! 지금 가- !" 새휘의 외침에 응답한 예찬이 미노를 데리고 식당 안으로 들어섰다. 고급스러운 식당 내부를 보고는 입을 쩌억- 하고 벌리는 미노. 그런 미노의 모습을 보며 귀엽다고 쿡쿡대며 웃는 일행들. "뭐예요, 웃지 말라구요- 칫." "하하… 미안, 미안. 안 웃을 게." 말로는 안 웃는다고 했지만, 계속 쿡쿡대는 우주와 이현의 머리를 한 대씩 주먹으로 쥐어박은 미노.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웃는 두 사람에게 얼굴을 가까이 들이 댄 미노가 차가운 말투로 한마디를 던졌다. "그만 웃지 않으면 팔팔 끓는 솥 안에다 던져넣을거야…" 그 모습을 보고는 뚝- 하고 웃음을 그친 두 사람. 허리에 팔을 걸치며 투박하게 걸어 자리에 앉은 미노가 그제서야 앞에 놓인 요리를 보고 눈을 휘둥그레- 떴다. "대, 대단해…!" "이 주변은 모두 시혁이네 집안 소유라서, 저 바다 역시 개인 소유의 해안이야." 개인 해안이라니… 대체 이 사람은 얼마의 돈을 가지고 있는 거란 말이냐… 뭐, 천장을 유리로 만들고 그 위에 둠을 얹어 만든 저택에서 살고 있는 걸 보고 어느정도 짐작은 했었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이야… "자, 다들 먹어봐." 팔을 걷은 채, 음식이 담긴 접시를 내오고 있는 시혁과 류예. 왜… 두 사람이 웨이터 역활을…? "따로 시중드는 사람이 마침 쉬는 날이거든…" 뜨끔- 마치 미노의 생각을 읽은 듯이 말하는 시혁의 모습에 미노는 침을 꼴깍- 하고 삼켰다. 잠시 시혁을 보던 미노는 싱긋- 하고 웃는 시혁을 보고는 나이프와 포크를 집어들었다. "… 잘 먹겠습니다!" 미노가 음식을 입 안으로 넣으려는 순간, 식당의 문이 열렸다. 그리고 들어온 네 명의 여자모습에 일행의 표정이 굳었다. 또각- 또각- "… 역시 여기 있었군…?" 42. "… 공주님이라도 된 기분이겠다, 도미노." "진짜 재수없어. 주제를 알아야 할 것 아냐?!" 아무런 표정없이 그들을 보고있는 미노. 그런 미노의 모습을 보던 이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현이 일어나자 얼굴에 활짝 웃음을 띄우는 채희. "개인해변일텐데, 무슨 권리로 들어왔지?" 차가운 어조. 시혁이 주머니에 손을 꽂아넣으며 물었다. 덕분에 미노에게로 향하던 이현의 걸음이 멈추어졌다. "여기 호텔에 예약했거든요, 우리는 단순한 손.님.이예요." 드르륵- 한껏 무표정하던 미노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그 때를 기다렸다는 듯, 미노의 머리칼을 잡아 바닥으로 내동댕이 친 나채희. "무슨 짓이야!" "미노야!" "괜찮아…?" 바닥에 넘어진 미노를 부축한 은샘과 환희. 괜찮다며 손을 들어 저지한 미노가 앞머리를 쓸어올리며 일어났다. 한껏 차가워진 눈동자로 네 명을 보고있는 미노. "네가 그렇게 쳐다보면 어쩔건데?" "빽있으니까 무서울 것 없다 이거야?" "… 무서운 게 없는 건 너희들." 짜악- 미노의 고개가 돌아갔다. 덤벼들려는 새휘와 우주, 은샘을 막은 미노가 입가에 흐르는 피를 손등으로 쓰윽- 하고 닦았다. "찢어지게 가난해서 부잣집에 팔려갈 뻔한 주제에 뭘 믿고 그렇게 당당한 지 모르겠다?" "어머, 진짜? 얘네집 진짜 그렇게 가난해?" "세상에- 용케도 마린에 들어왔다?" 살기가 가득한 시선으로 채희를 보고있는 이현. 하지만 그걸 즐기는 듯, 이현을 보며 싱긋- 하고 웃고있는 채희. 미노의 살짝 감은 듯한 눈에서 느껴지는 차가움. 싸늘하고 차가운 회색빛의 눈동자가 초희를 향했다. 흠칫- "… 아직도 내게 할 말이 남았나…?" "미, 미노…!" "그 더러운 입에 내 이름을 올리지 마…"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미노의 모습에 놀라는 류예와 환희. 미노와 마찬가지로 차가운 시선으로 그들을 보고있는 시혁과 우주, 그리고 이현. 채희와 초희, 은비와 또 한 명의 여자를 흥미롭다는 듯이 보고있는 예찬과 새휘. "가난뱅이 주제에 함부로 설치고 다니는 모습이 참 꼴불견이더구나?" 싱긋- "… 그저 돈 많은 남자 하나 물어보려고 야한 옷차림으로 밤에 외출하는 늬들보다야 덜하지." 미노의 말에 얼굴을 구긴 채희와 은비가 미노에게로 달려들었다. 그와 동시에 눈을 감는 미노. 맞을 것이라고 예상했는 지, 채희와 은비의 입에 미소가 걸렸다. 하지만… 눈을 감고, 손도 발도 쓰지 않은 채… 간단하게 피해버리는 미노의 모습에 잠시 주춤한다. "늬들과는 차원이 틀려, 다음부턴 여자라고 봐주는 것 없으니 각별히 조심하는 게 좋아." 미노의 경고에 잠시 주춤거리는 채희와 은비. 그 두 사람을 보고있던 초희와 또 한명의 여자가 걸어나왔다. 이건 뭐냐…? 라는 듯한 눈으로 둘을 보는 미노. "그땐 정말 오해한거야… 믿어 줘!" "… 난 너한테 최선을 다했어, 더 이상 뭘 바라지?" "차갑게… 차갑게… 이렇게 매정하게 대하지 말아 줘…" 탁- 초희의 손목을 잡고 뒤로 꺾은 미노. 인상을 구긴 초희의 손에서 뭔가를 빼낸 미노가 입술에 잔인한 미소를 걸었다. "이걸로… 날 노릴 생각이었어?" "……" "좋아, 그렇다면 한번 해 봐." 미노가 뒤로 돌아 목의 한 부위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 곳을 겨냥해서 찔러, 그럼 보란듯이 내가 네 눈앞에서 사라지게 될테니." 칼을 든 초희의 손이 떨렸다. 손을 주머니에 꽂은 채, 뒤로 돌아 서 있는 미노. 위험천만한 미노의 행동에 모두의 눈이 놀라움으로 물들었다. "날 죽이기 위해서 그런 어설픈 연극까지 해대고, 정말이지…" "할… 어… 난…" "찔러 봐, 너한테 그런 용기가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초희의 눈빛이 짙어지는 가 싶더니, 칼을 든 손을 천천히 들어올렸다. "미노야…!" "위험해!" "도미노…!" 매혹적인 웃음을 띈 미노가 사르르- 하고 눈을 감았다. "못 해… 난… 난 못 해… 할 수가 없어…!" 눈물을 흘리며 바닥에 주저앉은 초희. "미노야, 미안해… 미안해… 흐흑." "… 됐어, 일어나…" 미노가 초희의 팔을 잡아끌었다. 그런 미노의 목을 와락- 하고 끌어안은 채 울음을 터트리는 초희. "널, 널 미워했었어… 죽이고 싶을만큼 싫어했었어… 그치만… 그치만…!" "이 상처…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구나…" 초희의 쇄골 한쪽에 새겨진 십자가 모양의 상처. 그런 초희의 상처를 엄지손가락으로 살짝 매만지는 미노. "… 너… 설마…!" 피식- "… 가라, 이제." 탁- 일어나는 미노의 손을 잡은 초희. 미노를 잡아세운 초희의 눈이 커졌다. 미노의 손등 왼쪽에 새겨져있는 십자가모양의 상처. "그 때… 그 때 그 애가… 너였니…?" "……" "흐흑… 미안해… 몰라봐서… 미안해… 미안…!" 스륵- 초희의 손을 털어낸 미노가 계단을 올랐다. 멍하니 그 뒷모습을 보고있던 새휘가 탁- 하고는 주먹을 쥐어 손바닥을 내리쳤다. "… 생각났다, 남초희가 누군지." * - 미노& 초희의 과거 - 덩치가 엄청난 사내들에게 둘러쌓인 예쁜 얼굴의 소녀. 자그마한 체구에도 불구하고 자기보다 몇 배가 넘는 사내들을 차례차례 무너뜨려간다. 현란하게 움직이는 몸동작, 가벼운 착지와 도약. 움직임은 또 얼마나 빠른 지, 눈으로 따라갈 수 없을 정도다. 얼마나 움직였을까, 소녀를 둘러싸고 있던 사내들이 모두 땅으로 곤두박질쳤다. "저 꼬마에게 우리 혈한의 내노라하는 실력자들이 무너지다니." "타고난 싸움꾼이야, 그러니 보스가 후계자로 찍어놓으시지." "저만한 실력이면 보스와 맞먹겠는 걸?" "모르는 소리 마, 저번에 보니까 보스가 밀리더라구." "끝내주는구만. 어디서 저만한 인재를…" 탁- "모두 제자리로 돌아 가!" 소녀의 말에 일사천리로 움직이는 사내들. 하나같이 모두 검은 양복에 덩치는 소녀의 몇 배가 넘으면서도 7살이 될까말까한 꼬마에게 쩔쩔매는 모습이다. "저, 후계자님…! 컥!" 퍼억- 소녀의 주먹이 사내의 턱을 올려졌다. 아픈 턱을 매만지며 인상을 찌푸리던 사내가 소녀의 눈을 보고는 급히 표정을 굳힌다. 너무나도 차가운 회색빛, 금방이라도 심장을 얼려버릴듯한 냉혹함에 일순간 장내가 적막함에 휩싸였다. "그렇게 부르지 말랬지…" "죄, 죄송합니다!" 힐끗- 하고 사내를 본 소녀가 유유히 몸을 돌려 집 안으로 들어갔다. 욕실에 들어가 가볍게 몸을 씻은 소녀가 옷을 챙겨입었다. 약간 물기가 깃든 윤기나는 머리카락, 헐렁한 셔츠사이로 보이는 쇄골이 눈부시게 아름답다. "어디 가십니까?" "잠깐 나갔다 올게." "그렇다면 저희도 함께…!" "됐어, 불편해." 짤막하게 거부의사를 밝힌 소녀가 대문을 열고 나왔다. 앞으로 쭉- 뻗어있는 한적한 도로를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유유히 걷고있는 소녀. 간간히 불어오는 바람결에 흩날리는 흑발이 너무나 예쁘다. 우유빛처럼 새하얀 피부, 조금은 날카롭지만 공허하게 빛나는 맑은 눈동자, 오똑한 코와 매끄럽게 보이는 붉은 입술. 이 모든 것이 소녀가 상당한 외모를 지녔다는 것을 확인시켜주고 있었다. 퍼억- 앞쪽에서 나는 둔탁한 타격음 소리에 소녀의 걸음이 멈췄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걸음으로 소리가 난 곳으로 움직이는 소녀. 퍼억- 퍽! 바닥에 나동그라진 선그라스를 쓴 남자들. 그들을 보던 소녀의 인상이 살짝 구겨졌다. "여어- 꼬마아가씨, 우리랑 같이 놀자니까 그러네…? 응?" "놔, 놔! 우리 아빠보고 너희들 혼내주라고 할꺼야!" "킥킥킥, 그래? 어디 한번 해 봐, 재미있겠는데?!" 탁- 흰 원피스를 입은 여자아이에게 향한 남자의 손을 잡은 소녀. 남자가 안간힘을 써봤지만 소녀에게 잡힌 손은 빠지지 않았다. "넌 뭐야?!" "도미노." "뭐야?!" "한국말 모르냐? 등신." 퍼억- 한 방의 주먹에 나가떨어지는 남자. 그런 동료의 모습을 보던 다른 남자들이 덤벼왔고, 몇 분 안되어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모든 남자들을 바닥에 눕혀버리고는 흰 원피스를 입은 여자애에게로 몸을 돌린 미노. "괜찮아…?" "피… 피가 나…" 왼쪽 손등에서 흘러내리고 있는 피를 보는 미노. 큰 눈에 그렁그렁하게 눈물을 맺고는 그런 미노를 보고있는 여자아이. "칫." 할짝- 흐르는 피를 혀로 핥은 미노가 여자아이를 메마른 눈동자로 쳐다본다. "아무것도 아냐, 이런 것쯤." "… 으… 으읍… 내, 내 피를… 내 피를 줄께…!" 옆에 있는 나뭇가지를 들어 목을 찌른 여자아이. 살짝 베어나오는 피를 본 여자아이가 이내 와앙- 하고 울음을 터트린다. "아파…! 으아아앙- 아파…!" 그런 여자아이를 살짝 토닥이는 미노. "… 됐어, 울지 마." "내 피를… 주려고 했는데… 그랬는데…!" "이런 상처, 아무것도 아니야. 그러니까 울지 마." "… 응. 훌쩍, 내 이름은 초희야. 남초희. 구해줘서… 흡… 고마워…!" 싱긋- "아디오스." 탁- "저기…!" "……?" "네 이름은… 뭐야?" "… 도미노." 43. "… 미안해, 미안해… 그 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어…" "무리도 아니지, 신경쓸 것 없어." "용서해 줘, 그 동안 널 괴롭혔던 거… 정말 미안해… 흐흑." 미노의 앞에 무릎을 꿇은 채 울고있는 초희. 벌써 1시간째… 다리가 저려 일어날만도 한데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가만히 지켜보던 미노가 창가로 다가가 문을 활짝 열었다.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에 미노의 흑발이 물결치듯 흩날린다. "겨울이었지, 그 때가…" 옛날을 생각하는 듯, 공허한 눈동자로 창 밖을 보고있는 미노. 맑고 투명한 눈동자에는 구름이 떠가는 모습이 그대로 비칠 것만 같다. "흐흑… 미노야…!" "… 이제 그만 울어, 나 역시 널 처음 본 순간부터 알았던 건 아니니까." "미안해… 정말, 정말 미안해…" "정말 그렇게 미안해…?" "응…! 나, 나 정말…!" "… 내게 널 용서할 자격같은 건 없어, 그러니까 그만 울고 네 친구들에게로 가." "화나지 않았어…? 어째서… 어째서…?" 싱긋- "뭔가… 허무하다고 해야하나…?" 미노가 미소를 지어보이고는 방에서 나갔다. 맥이 빠져버린 듯, 주저앉아 미노가 나간 곳을 보고있는 초희. "바보, 멍청이… 그냥… 그냥 쭉 모른 척 해주지…" 초희가 손을 올려 쇄골에 남겨져있는 상처를 보듬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생각나지 않았던 그 때… 풍성한 겨울향기처럼 그렇게 미노를 만났었다. 어린나이에도 불구하고 어른들을 한방에 때려눕히는 실력, 누군가 함부로 덤비지 못할 정도로 냉정하고 차가운 분위기. 그 녀석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특유의 분위기였다. 그리고… 그때 맡았던 상쾌하고 신비로운 느낌의 향기. 그 향기만은 영원히 초희의 기억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 흐흑… 이제서야… 이제서야 간신히 찾았는데… 어째서…" 어렸을 적, 그 일이 있은 후 몇 번이나 그 골목을 찾아갔었지만 만날 수 없었다. 위기에 몰리면 볼 수 있을까, 란 생각에 일부러 연극까지 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저번처럼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스쳐지나가다 보는 것도, 집을 찾는 것도, 구세주처럼 등장하는 것도… 모두 볼 수 없었다. "… 바보같아… 남초희, 정말 바보같아…"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은 초희가 예쁜 미소를 짓는다. 오른 손을 들어 왼손에 차고있던 시계를 벗겨내자, 쇄골과 같은 상처가 새겨져있다. 일부러 새긴 것 같은… 너무나 인위적인… "처음으로… 좋아했었던 사람이었는데… 반했다고 표현해도 좋을만큼… 그만큼 좋아했었는데… 여자인 줄도 모르고… 바보같이…" * 저녁노을이 한창인 오후… 붉게 물든 노을이 너무나 예쁘고 또 아름답다. 빨간색의 물감을 뿌려놓은 듯, 금방이라도 땅을 향해 쏟아질 것만 같은 모습. 덕분에 모래사장도 붉은 빛을 띄고 있다. 바닷가에서 불어오는 약간은 짠내음이 묻어있는 바람을 맞으며 앉아있는 미노. "… 여기서 뭐해?" 이현이었다. 살짝 웃음을 지은 미노가 고개를 돌려 다시 바다를 바라본다. 그런 미노를 힐끗- 하고 본 이현이 미노의 옆에 앉았다. "… 예쁘잖아, 그냥 보고있었어." "너보단 아니야…" "……!" "… 라고들 하잖아, 영화에서 보면." 밉지 않게 이현을 살짝 흘겨준 미노. 그 모습을 보며 쿡쿡대던 이현이 미노의 어깨를 팔로 감쌌다. "바다는… 항상 파란색이야. 그래서 좋아해…" "가끔 폭풍을 일으켜서 난동을 부리지만 않는다면 늘 좋을텐데." 피식- "응, 근데… 난 조용한 바다보다 바위를 부실듯이 새차게 물결치는 바다가 좋아." "… 어째서?" "… 내 모습 같아서." "……" 물끄러미 미노의 옆모습을 보고있는 이현. 약간은 놀란 듯했던 이현의 눈에 따스함이 깃들어있다. "… 도미노…" "응…?" "난, 그래서 네가 좋아." "……!" 미노의 놀란 눈동자가 이현을 향했다. 하지만, 따스한 눈동자로 보고있는 이현을 보고는 이내 살짝 웃는다. "고마워…" "지금처럼만…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정말 좋겠다." "… 시간이 흘러가는 걸 막으려고 하면… 사람은 벌을 받게 될 거야." "… 그럼 넌, 아쉽지 않아?" "지나간 시간은 아쉽지만… 그 시간동안 쌓였던 추억이 가슴속에 녹아있으니까… 전혀 아쉽지 않아. 가슴 속의 추억은 시간처럼 흘러 가 버리지 않을테니까." "지금 이 순간의 시간도… 네 가슴 속에 남아있는 거지…?" 미노가 작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현의 손이 미노의 작은 얼굴을 감쌌다. 허리를 숙여 미노의 입술에 입을 맞춘 이현. "… 내 시간… 너한테 줄게… 그러니까 이대로 계속 내 옆에 있어." 44. 흰색의 침대 위에서 아기처럼 새근거리며 잠들어 있는 미노. 미노를 깨우러 왔던 예찬은 너무나 예쁜 미노의 모습에 잠시 멈칫하고는 나즈막히 미소지었다. 조금 열려진 창문으로 바닷바람과 함께 따스한 햇빛이 새어드는 방 안. 그 곳에서 마치 작은 천사처럼 잠들어있는 미노의 모습은 남자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예뻤다. "… 으음…" 인기척을 느낀 것일까, 미노가 눈을 떴다. 창가에 기댄 채 예찬이 시리도록 푸른 눈동자로 미노를 보고있다. "선배…? 으앗…! 왜 여기있는 거예요!" 이불을 머리끝까지 끌어올려 덮어버리는 미노. 그 모습에 쿡쿡거리며 웃던 예찬이 미노의 곁으로 다가가 앉았다. "괜찮으니까 나와도 돼." "선배 나빠요! 자고있는 사람을 몰래 훔쳐보는 게 어디있어요!" "알았어, 앞으로 안 훔쳐볼테니까 그 예쁜 얼굴 지금 좀 더 보여줘." 싱긋- 하고 웃은 예찬이 미노가 덮고있던 이불을 걷었다. 발그레해진 얼굴로 예찬을 보고있는 미노. 그런 미노의 모습에 예찬은 이마를 짚으며 웃었다. "… 하하하하!" "거봐, 웃을거면서! 이거 놔요!" "아, 미안미안… 그런 게 아니라…" "그럼 뭐예요!" "너무 귀여워서…" "… 에?" "그 아방한 표정이 귀여워서 웃은거야… 나도 모르게 긴장이 풀어져버리는 것 같달까…?" "긴장…? 선배 긴장했었어요? 왜요?" 여전히 귀여운 표정으로 물어오는 미노의 모습에 예찬은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크고 까만 눈망울로 쳐다보고 있는 미노를 보다, 자리에서 일어난 예찬. "옷 갈아입고 내려와, 아침 먹을거야." "… 응, 알았어요." 싱긋- "아래층에서 보자." 탁- 밖으로 나가려던 예찬의 옷을 잡은 미노. 조금 의아한 표정을 짓던 예찬이 강아지같은 표정으로 자신을 보고있는 미노를 보고는 피식- 하고 웃었다. "… 할 말이라도 있어?" "그게… 그러니까…" "걱정 마, 녀석들한테는 얘기 안할테니까." 예찬의 한마디에 활짝- 미소짓는 미노. 그런 미노의 모습에 예찬은 웃으며 미노의 머리카락을 흐트리고는 밖으로 나갔다. 달칵- 문을 닫은 예찬이 아래층으로 가기위해 걸음을 옮겨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1층에 도착해 식당으로 들어서니 언제 모였는 지 다들 자리에 앉아있다. "어라? 이현이는?" "그 녀석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는데, 새벽에 전화받고 서울로 갔어." "갑자기 서울에는 왜?" "글쎄…" 잠시 서로를 보던 시혁과 예찬은 발소리에 계단으로 눈을 옮겼다. 물기를 머금은 검은 흑발, 새하얗고 뽀얀 얼굴, 까맣고 투명한 눈동자… 조금 큰 옷을 입은 탓인지, 흘러내린 옷 사이로 보이는 미노의 쇄골과 어깨선이 보는 사람을 아찔하게 만들었다. 그런 외모때문이었을까, 식당에 있던 외부인들의 눈이 모두 미노에게로 향했다. "예쁘다…!" "세상에, 어쩜 저렇게 피부가 하얗지?" "선 가는 것 좀 봐… 엄청나게 예쁘잖아…!" 식당에 있던 사람들이 자그마한 목소리로 탄성을 내뱉고 있을 때, 미노의 뒤에서 쿵쾅거리는 발소리가 들렸다. 여자아이 두 명이 장난을 치며 뛰어 놀고있는 듯 했다. "꺄악- !" 발을 잘못 디딘 여자아이 한 명이 계단 아래로 곤두박질 쳤다. 탁- 떨어지는 여자아이를 가로채 품에 안고는, 가볍게 바닥에 착지한 미노. 싱긋- "많이 놀랐니?" "……" 대답없이 눈물을 머금은 눈으로 미노를 보고있는 여자아이. … 상당히 귀엽게 생겼다. 여자아이에게 시선을 맞춘 미노가 눈부신 미소를 지었다. "예쁜 얼굴에 상처내지 않으려면 조심히 다녀야지." "… 내가… 예뻐요…?" 피식- "응, 엄청." 수줍은 듯이 베시시- 웃는 여자아이를 보는 미노. 그와 동시에 계단 위에서 뛰어내려온 또 한 명의 여자아이. "엄마, 엄마! 이 오빠가 나림이 구해줬어!" 계단을 향해 손짓하는 여자아이. "… 고, 고마워요. 어떻게 감사인사를 해야할 지…" 싱긋- "아니예요." 웃고있는 미노를 보던 아이들의 어머니가 미노의 옆에 있는 아이들을 향해 말했다. "자, 나림아, 고맙다고 인사해야지?" "… 응!" 미노의 옷을 잡아당기는 여자아이. 살짝 미소지은 미노가 아이의 키에 맞추어 무릎을 굽혔다. 쪽- 미노의 뺨에 뽀뽀를 한 나림이. "고맙습니다!" 싱긋- "… 예쁘구나, 정말." 미노는 어렸을 적부터 예쁘다는 말을 많이 듣고싶었다. 하지만, 강한 미노에게는 예쁘다는 말보다는 대단하다는 말이 먼저 들려왔다. 자신이 못 들어서 그런 것일까… 미노는 어린 아이들을 향해 항상 예쁘다고 말해주는 게 버릇이 되어버렸다. "오빠, 나림이랑 놀자!" "… 나림아, 그러면 안 되잖니. 자, 엄마랑 예림이랑 같이 아빠한테 가야지." "싫어, 예림이도 오빠랑 놀래!" 미노의 팔을 끌어안은 아이들. 조금은 난처한 표정이 되어버린 아이들의 어머니가 미노를 향해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엄마 말을 잘 들어야지 착한 아이가 되는거야." "… 평소에 잘 들었으니까 나림이 착해!" "맞아, 예림이도 착해! 그러니까 오빠랑 놀거야!"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던 미노가 시혁일행에게 시선을 던졌다. 그런 미노를 보고 웃고있던 시혁과 류예, 그리고 예찬과 은샘이 미노에게 다가왔다. "꼬마 아가씨들, 그 오빠가 그렇게 좋아?" "좋아요!" "응, 진짜 좋아요!" "… 그럼, 저쪽으로 갈까?" 예림이를 보던 류예가 살짝 미소지으며 시혁을 본다. 미노를 보던 시혁은 아이들의 어머니께 살짝 허리를 굽혀 목례를 하고는 말을 건넸다. "괜찮으시다면 저희와 합석하시죠." "아, 물론 감사하지만 아이들 때문에 죄송해서…" 싱긋- "괜찮습니다, 가시죠." "고마워요…" 그리하여 합석하게 된 일행들. 마치 당연하다는 듯 미노의 옆에 앉은 나림이와 예림이. "얘들아, 오빠들 귀찮게 하면 안된다? 알았지?" "응! 알았어요!" 미노를 보던 나림이가 씨익- 하고 웃었고,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 웃음을 터트린 시혁일행. 하나같은 꽃미남에 귀여운 아이들과 꽤 미인인 어머니까지… 주변의 시선이 모두 미노가 앉은 테이블로 향했다. 그 때, 연락을 받은 아이들의 아버지가 계단을 통해 내려왔다. "나림아- 예림아-" "아빠!" "와- 아빠다!" 자리에서 손을 흔드는 아이들. 평소에는 달려왔을 아이들이 움직이지 않자 조금은 의아해 하는 남자. "오호, 보아하니 옆에 앉은 그 오빠에게서 떨어지지 않고 싶은 모양이구나?" "응!" "맞아, 나림이의 은인이야!" 미노의 팔을 꼭- 끌어안고 있는 아이들 때문에 미노는 아까부터 밥을 못 먹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아이들을 간간히 보고 있는 미노. "여기 앉으세요." 류예가 자리를 마련해 권하자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 앉은 남자. 식사를 하던 도중에도 꼼꼼하게 나림이를 챙겨주는 예림이와 미노의 팔을 놓지 않는 나림이. "나림아, 오빠 팔을 놔줘야지?" "… 괜찮아요, 그냥 두세요." "괜히 고집이 세서…" 싱긋- "동생 생긴 것 같아서 좋은데요, 뭘." "아냐!" 발끈하고 외치는 나림이를 살짝 놀란 눈으로 보는 미노. "나림이는 오빠 좋아해! 오빠 신부 할거야!" "안돼! 예림이만의 왕자님이란 말이야!" 나림이와 예림이의 투덜거림에 살짝 미소지은 미노가 그런 아이들을 양 팔로 끌어안았다. "엣…!" "오빠는… 엄마 아빠 말씀 잘 듣는 아가씨를 신부로 맞을거야." "그럼 나림이는 말 잘들을거야!" "예림이도! 예림이도 할 수 있어!" 둘의 외침에 아이들의 부모님을 향해 눈을 찡긋- 해보인 미노. 그런 미노를 향해 살짝 웃은 아이들의 어머니. "얌전히 밥 먹어야지?" "네에- !" 아이들을 보고있던 미노가 작게 미소지었다. 그걸 보던 시혁이 허리를 숙여 미노의 귓가에 속삭였다. 싱긋- "… 꼬맹이들한테까지 질투를 느끼게 만들다니… 역시 네가 최고야." 45. 똑똑- 밖에서 들려오는 노크소리에 미노의 시선이 문에 닿았다. 찾아올 사람이 없을텐데… 하고 고개를 갸웃- 한 미노가 문을 열었다. "… 도미노님 되십니까? 룸서비스입니다." "에? 그런 거 시킨 적 없는데…" "아, 그거 우리 아빠가 보내신 거죠? 그쵸?" "오빠, 나림이 배고파!" 침대에서 튀어오르듯 문 쪽으로 쪼르르- 하고 달려온 예림이와 나림이. 잠시 둘을 쳐다본 미노가 '보이'에게 살짝 고개를 숙이고는 들어올 것을 권했다. "… 동생들인가요? 귀엽군요." "아… 아니예요. 우연히 알게된 꼬마들인데…" "그렇게 말한다고 내 눈을 속일 수는 없지…" "… 네?" 미노의 물음에 '보이'는 방금 전까지 짓고 있던 어둡고 침침한 얼굴에 화사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고개를 저어 아무것도 아니라는 표시를 해 보인 '보이'가 문을 닫고 나갔다. 달칵- 문이 닫기는 소리가 들리자 미노는 요리가 담긴 그릇의 뚜껑을 열었고, 그릇에는 보기에도 군침이 돌만큼 먹음직스러운 음식이 담겨있었다. "으음… 그냥 먹어도 되려나…" "괜찮아, 분명 우리 아빠가 보내신 걸꺼야!" 아이들의 말도 일리가 있지만, 왠지 '보이'의 낮은 음성이 신경쓰였다. 똑똑히 듣지는 못했지만, 분명 뭔가가 있어보이는 눈치였다. 그런 사람이 가져다 준 음식을 그냥 먹어도 될까…? "미노오빠- 안 먹을거예요?" "나림이 배고파요!" 아이들의 칭얼거림에 미노는 머릿 속을 맴도는 생각을 접고 스테이크를 아이들의 접시에 잘라 덜어주었다. 큼지막하게 구워진 스테이크를 보며 눈을 반짝이는 아이들. "맛있어!" "꺄하핫- 진짜 맛있어! 우리 아빠 최고!"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있는 미노의 얼굴에 작은 미소가 지어졌다. 너무나도 부러운 시선이 아이들에게 닿았다. 자신도 분명 아이들의 또래였던 시절, 저렇게 해맑게 웃고있어야만 했다. 하지만 미노는 웃을 수 없었다. 항상 상대방을 경계하고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상대방의 움직임을 미리 예측하고 바람의 변화를 피부로 느끼며 조금의 틈도 허용하지 않아야 했다. 기억하기 싫은 과거가 떠오르자 미노는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 제길, 쓸데없는 것까지 떠올라 버렸어." 낮게 욕설을 내뱉으며 앉아있던 자리에서 일어나 욕실로 걸음을 옮긴 미노. 세면대에 다가가 물을 틀고는 차가운 물을 얼굴에 끼얹는다. "… 정신차리자, 도미노." 타월에 얼굴을 닦고 욕실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 미노. 그런 미노의 눈에 침대에 누워 새근거리며 잠이 든 아이들이 보였다. 피식- "아무리 졸렸어도 포크랑 나이프는 쥐고 자는 게 아니지." 웃으며 아이들의 손에 들린 나이프와 포크를 카트 위에 올려둔 미노. 아이들을 제대로 눕혀준 미노가 미니냉장고의 문을 열었다. "물이… 없네…" 잠시 한숨을 쉬던 미노의 시선이 카트에 닿았고, 속으로 나지막하게 럭키! 를 외친 미노가 카트에 놓여있던 물병의 뚜껑을 열었다. 얼음 속에 담겨있어서 그런지 갈증을 해소하는데는 최고인 시원함이 미노의 목을 타고 전해졌다.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조금 남은 물병의 뚜껑을 닫고는 제자리로 되돌려 놓은 미노. 휘청- 카트에서 등을 돌려 한 발자국을 뗀 순간 엄청난 어지럼증이 밀려들었다. 눈 앞의 물체가 두 개로 보이는 가 싶더니, 결국에는 몸이 균형을 잡지 못하고 바닥으로 쓰러져 내렸다. "… 제길, 대체 이게 무슨…" 달칵-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누군가가 둔탁한 발자국으로 미노가 쓰러져있는 앞으로 다가왔다. "… 헤에, 꽤 반반하게 생겼군." 눈 앞이 흐릿한 관계로 상대가 누구인지 조차 구분할 수 없다. 미노는 점점 빠져나가는 힘을 느끼며 힘겹게 들고있던 고개를 아래로 떨구었다. "… 꼬마들은 어떻게 할까요?" "내버려 둬. 우리가 명령받은 상대는 이 녀석이니까." 남자의 입술이 옆으로 그어지며 미소를 자아냈다. 너무나 차갑고도 섬뜩한… 잠시 미노를 보던 남자가 침대 위에 자고있는 아이들의 옆에 백룡이 새겨진 검은 반지를 올려놓았다. 씨익- "… 부디 일찍 일어나라구, 꼬마들." * 장미향이 가득 찬 방 안. 상당히 고급스러운 책상과 그 위에 놓여있는 최신식의 컴퓨터 한 대가 보인다. "여기는…" 미노가 지끈거리는 머리를 손으로 감싸며 중얼거렸다. 넓은 방에 빼곡히 꽂혀있는 책은 도서관을 연상시킬만큼 많다. 몸이 자유롭다는 걸 느낀 미노는 조금씩 몸을 움직여 바닥으로 내려섰다. 휘청- 중심을 잡지 못하고 침대 위로 다시 앉아버린 미노. 아무래도 일어서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핸드폰을 생각해내고는 주머니에 손을 넣어봤지만, 잡히지 않는다. "… 제길, 연락할 방법이 없잖아…" 잠시 주위를 둘러보던 미노는 옆에 놓여있는 바퀴달린 의자를 보고는 웃음을 지었다. 저 의자에 앉을 수만 있다면, 적어도 컴퓨터를 통해 여기가 어딘지는 알 수 있을 터였다. 잠시 끙끙대던 미노가 힘겹게 의자에 앉는 데 성공했다. "럭키." 의자에 앉은 채, 책상에 다가간 미노는 컴퓨터의 본체에 꽂혀있는 수많은 코드들 중, 하나를 빼고는 그 곳에 품에 지니고 있던 USB를 연결했다. 잠시 후, 화면이 밝게 빛나는 것을 확인한 미노가 만족한 듯 미소지었다. 타다닥- 타닥- 타다다닥- 타다닥- 미노의 손가락이 자판 위에서 빠르게 움직였다. 그와 동시에 화면에는 알 수 없는 영문자와 로마자가 섞인 문자열이 나열되었고, 마지막으로 엔터를 치려는 순간, 누군가의 손이 미노의 손보다 더욱 앞서 엔터를 눌렀다. "… 솜씨가 보통이 아니신데, 조금 놀랐어." 귀에서 느껴지는 숨결과 낮은 목소리. "건물의 설계도를 손에 넣을 정도라… 아, 이건가…?" 남자가 컴퓨터에 연결되었던 USB를 빼내었다. 컴퓨터의 전원을 끈 남자가 창가로 다가가 문을 열었다. "… 미안하지만, 이건 넘겨줄 수 없어." 남자의 손에 들려있던 USB가 창문 아래로 떨어졌다. 그 모습을 본 미노는 이미 예상했었다는 듯, 조금의 표정변화도 보이지 않았다. 남자의 등 뒤로 보이는 하늘은 이미 어둠이 깔리고 있었다. 미노의 시선을 눈치 챈 남자가 낮게 웃으며 물었다. "자- 이제 어떻게 할 거지?" "처분을 기다릴 수 밖에 없겠지…" "… 어떻게 그렇게 침착할 수 있는거지…?" 남자의 눈동자에 의혹이 깃들었다. 그것을 본 미노가 피식- 하고 웃는다. "계집애들처럼 꺅꺅대는 걸 기대한 모양이지…?" "… 넌 그렇지 않다는 건가?" 남자의 말에 대답을 하지 않은 채, 입술에 미소를 걸고 여유만만인 표정으로 보고있는 미노. 그런 미노의 모습에 남자가 눈을 감으며 피식- 하고 웃음지었다. "… 재미있군, 오랜만에 흥미가 생겼어…" 남자의 손이 미노의 어깨를 감쌌다. 뿌리치려 남자의 손을 잡았지만, 균형을 잃어버린 지금 상태로는 조금의 반항도 허용되지 않았다. 잠시 얼굴을 찌푸린 미노가 칫, 하며 남자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조금은 날 봐주는 것도 괜찮지 않나…?" "착각하지 마. 약기운이 떨어지면 네 놈을 때려눕혀 줄 테니까." 피식- "기대되는 군." 남자의 팔이 미노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평소같았으면 간단하게 뿌리칠 수 있었지만… 맘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몸을 느끼며 인상을 찌푸렸다. 풀썩- 남자의 손에 의해 침대 위로 내동댕이쳐 진 미노. 천천히 손을 올려 메고 있던 넥타이를 푸는 남자의 모습을 보던 미노가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려버렸다. "당신… 누구지?" 미노의 목소리를 들은 남자가 작게 웃으며 미노의 곁으로 다가가 앉았다. 반대편으로 돌려져 있는 미노의 얼굴을 보고는 엄지와 검지로 턱을 잡아 시선을 마주보게 만든 남자. "내 이름은 류시안이다." "… 날 여기로 데려온 목적은…?" "후후, 마치 취조하는 것 같은 말투군. 자신에게 닥친 위험을 감지하지 못하는 건가…?" "… 대답해." "도발인가… 피식- 상당히 위험한 자세인 건 알고 하는 소리겠지…?" 침대에 쓰러진 채, 약기운에 의해 조금은 흐릿한 눈동자로 류시안이라는 남자를 보고있는 미노.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갑고 냉정한 말투… 시안은 미노의 도발에 온 몸에 소름이 돋아오는 것을 느꼈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미노의 자태는 보는 사람의 심장을 설레게 만들 정도로 매혹적이었다. "과연 마왕의 소유물은 다른데…?" "… 쓸데없는 소리 지껄이지 마." "글쎄, 쓸데없는 소리인 지 아닌 지는 곧 알게 될거야." "… 무슨 소릴…! 읍!" 시안의 입술이 미노의 입술에 겹쳐졌다. 버둥거리는 미노의 팔과 다리를 자신의 손과 몸으로 가볍게 눌러버린 시안. 시안의 손이 미노가 입고있던 셔츠 안으로 들어왔다. 흠칫- 하고 몸을 떤 미노가 거세게 발버둥쳤지만, 평소에 힘에 비해 1/3의 위력도 나타나지 않는다. "… 이상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역시 여자였군." 46. 미노가 있는 방의 문을 열고 들어오던 시안은 문 옆에 놓여있는 음식그릇을 보고는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 아무것도 먹지 않다니, 일찍 죽고싶은가…?" "내 목숨따위 당신과는 상관없잖아." "그래. 하지만 내 말을 듣지 않는다면 넌 여기서 단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어." "… 애초에 그럴 작정으로 날 여기에 가둬둔 거잖아…?" "후후… 여전히 도도한 고양이시군." 탁- 시안의 손이 미노의 턱을 잡아 강제로 시선을 맞추었다. 아무것도 묻어있지 않는 공허한 미노의 눈동자를 보며 피식- 하고 웃은 시안은 미노의 얼굴에 닿아있던 손을 떼고는 창가 쪽으로 다가갔다. "… 널 괴롭힐 생각은 없지만 그렇게 비협조적으로 나오시겠다면 이쪽에서도 힘을 쓸 수 밖에 없겠는 걸…?" "웃기는 군. 그깟 깡패새끼들 몇 십명이 몰려온다고 해도 겁나지 않으니까 멋대로 해." "호오- 역시 여자다운 말투는 아니군." 흥미롭다는 듯이 침대에 기대있는 미노를 보고있는 시안.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시안의 핸드폰이 울렸다. [류시안, 죽고싶어서 환장했냐…] 핸드폰 너머로 이현의 차가운 말투가 들려왔다. 이현의 목소리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린 미노가 시안의 손에서 핸드폰을 뺏으려 했지만 뻗은 손은 시안의 손에 잡혀버린 상태. 게다가 잠시 잠든 사이, 무슨 약을 먹은건지 미노의 체력은 상당히 고갈되어 있었다. 시안은 그런 미노를 향해 피식- 하고 웃어준 후, 잡고있던 손목을 놓으며 침대 위로 미노를 내동댕이쳤다. "상당히 앙칼진 녀석을 데리고 있던 걸… 제법 흥미로워." [바칠 각오는 되어있겠지… 네 놈의 그 더러운 목숨을…] "글쎄, 네가 여길 찾아낼 수만 있다면 생각해보지… 앞으로 한 시간 안에 말이야." [… 충분해, 그 정도의 시간이라면.] "피식- 그렇다면 난 여기에 도착했을 때 네 놈의 망가진 모습을 상상하면서 느긋하게 기다리고 있겠어." [미노를 건드린다면 네 놈도 끝장이라는 걸 명심해.] "그것도 재미있겠군. 행운을 빌어, 흑월회 킹… 소이현씨." 뚝- 전화를 끊은 시안이 짙게 웃으며 핸드폰을 접어 미노가 쓰러져 있는 침대 위로 던졌다. "방금 전의 통화로 흥미로운 걸 알게됐어…" "… 흥, 그딴 거 알게 뭐야…" 퉁명스러운 미노의 반응에 여유로운 웃음을 지으며 미노의 곁에 다가온 시안이 미노의 턱을 잡아 자신의 눈을 보게 만들고서는 살짝 허리를 굽혔다. 흠칫- 하고 놀란 미노가 시안에게서 떨어지려 고개를 흔들었지만, 시안은 그런 미노를 잡아 벽에 밀어붙이고는 얼굴을 가까이 했다. 피식- "… 모르지는 않겠지, 내가 널 가지고 싶어한다는 걸." * 벌컥- 쾅! 닫혀있던 문이 거세게 열리며 살벌한 표정을 한 이현이 들어섰다. 이미 이현의 움직임을 예상했다는 듯, 차분한 표정으로 쇼파에 앉아 다리를 꼬고있는 시안. 느릿하게 움직인 시안의 눈동자가 이현에게 닿았다. "… 기다리고 있었어." "내 손에 죽기를 그렇게 간절히 바라고 있었는 지는 미처 몰랐는데…" 피식- "날 끝장낼 생각이었다면 부하들을 데려왔을텐데, 왜 혼자 온거지?" "연극하지 마, 미노는 어디있지?" "… 옆 방에 재워뒀어." "… 류시안." "걱정되잖아, 그 애가… 몹시 걱정되서 죽을 것 같은 표정이야. 지금 네 녀석의 표정은." "…… 그래, 죽을 것 같아. 아니, 어떻게 숨을 쉬었는 지 조차 모르겠어." 피식- "… 솔직해서 좋군, 그만 가 봐." "……!" "내 맘이 바뀌기 전에 어서 데려 가라구. 여기서 변해버리면, 죽여서라도 네게 넘겨주지 않을 것 같으니까…" 시안을 보고있던 이현이 발걸음을 돌렸다. 이현이 방에서 나가는 것을 본 시안이 낮게 웃었고, 감겨있던 눈을 뜬 시안의 입술에서 아련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 네가 부러워 미치겠다, 소이현. 그 녀석을 데려갈 수 있는 자격을 가진 네 녀석이…" 47. 후덥지근한 날씨때문에 인상을 살짝 찡그린 채, 손부채질을 하고 있는 미노. 2박 3일간의 바다여행은 일정보다 빨리 막을 내렸다. 선캡을 쓴 채, 파란색 남방의 팔을 두 번 접어 걷은 미노는 유유히 한 쪽 손을 주머니에 꽂은 채, 많은 인파가 북적이는 거리를 걷고있다. "어머, 저기 쟤 멋있지 않니?" "그러고보니 꽤 예쁘게 생긴 얼굴인데?" "그치그치? 옷 입은 스타일도 딱 좋아!" 수다떨기를 좋아하는 여자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건, 미노가 싫어하는 것들 중 하나. 세 명의 여자들이 나시를 입은 채, 발을 동동구르며 자신의 얘기를 하는 것을 듣던 미노가 피식- 하고 웃었다. 그런 미노의 모습에 쓰러질 듯 휘청대는 여자들. "꺄악- 방금 웃는 거 봤어? 응?!" "캡이야! 완전히 내 스타일이잖아! 어쩜좋아-" "너무 좋아! 연예인일까?" "연예인이면 어떻고 아니면 어때, 저렇게 완벽한 사람이 눈 앞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황홀 그 자체인데!" "하긴- 그건 소진이 네 말이 맞아." 보는 사람에 따라서 다른 것일까… 미노의 웃음에 가까이 가던 사람이 자연스레 미노를 비켜갔다. 냉기를 풍기는 차가운 웃음. 멀리서보면 그저 예쁘게 웃는 것으로밖에 안 보이겠지만, 사실상 가까이서 보는 웃음은 차원이 달랐던 것. 잠시 여자들을 힐끗- 보던 미노가 조금 더 걸어가 초록색의 간판이 싱그럽게 느껴지는 카페로 들어섰다. 딸랑- 청아한 방울소리가 카페 안에 울려퍼졌고, 미노는 쓰고있던 선캡을 벗으며 가게를 쓰윽- 하고 둘러보았다. 기다렸다는 듯, 종업원 하나가 카운터에서 달려나와 미노를 반긴다. "이, 일행이 있으신가요?" 싱긋- "조용한 자리 좀 추천해줄래요?" 에어컨이 풀로 가동되고있는 카페 안은 밖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 더위에 찌든 사람들이 시원한 카페에 삼삼오오 모여들었고, 덕분에 장사가 잘 되는 듯, 종업원들의 입가에도 자연스럽게 미소가 걸렸다. 미노의 눈부신 미소에 얼굴을 붉게 물들인 종업원이 한쪽에 마련된 자리로 미노를 이끌었다. 안내를 받은 미노가 자리에 앉았고, 메뉴판을 내미는 종업원. "… 냉커피 주세요." "아, 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카운터 쪽으로 도도도- 하고 까치발로 뛰어가는 종업원을 보던 미노가 창 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강렬한 태양빛이 도로를 녹여버릴 듯, 뜨겁게 내리쬐고 있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더위는 인간의 최대의 적이라고도 불릴만큼 대단했기에, 거리는 사람들의 높은 언성에 묻힐 것만 같다. 손에 뭔가를 들고 초록불이 깜박거리는 횡단보도로 뛰어든 한 사무직의 여자. 갑작스러운 여자의 출연에 신호대기를 하고있던 운전자들의 입에서 욕설이 튀어나왔다. 금방 깜박이기 시작한 횡단보도의 신호였기에, 아직은 몇 십 초 정도의 시간이 있었다. 그런데도 함부로 욕을 지껄여대는 운전자들을 향해 삿대질을 하며 언성을 높이는 여자. 아무런 표정없이 그들을 흥미로운 눈으로 지켜보던 미노의 곁에 종업원이 다가왔다. "기, 기다리셨죠… 냉커피입니다." "… 아, 고마워요." 살짝 고개를 끄덕인 미노가 손을 뻗어 냉커피가 담긴 잔을 잡았다. 스트로우를 도톰한 입술에 물고는 한 모금 마신 후, 만족한 듯 웃음지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가게는 더위를 피해 온 사람들로 인해 분주해졌고, 조금의 소란스러움을 느낀 미노가 조금 남은 커피를 입 안에 머금었다. 쨍그랑- "어, 어머 손님 죄송합니다!" "씹, 이게 뭐야! 옷이 더러워졌잖아!" "죄,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어떻게 할거야! 앙?!" "세, 세탁비는 드리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손님." 콰앙- "뭐야?! 내가 그깟 푼돈이 아쉬워서 이러는 건 줄 알아?!" "아, 저기… 정말 죄송합니다! 죄송해요." "말로만 죄송하다고 해선 안되잖아!" 종업원의 머리채를 비틀어 잡는 남자. "꺄악-! 왜 이러세요!"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에, 가게에 있던 손님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연약한 여자가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는데도, 남자들은 서로 눈치만 볼 뿐 아무도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 "아, 아파요…! 놔주세요, 손님!" "당장 엎드려서 닦으라구… 그럼 놔줄테니…!" 종업원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걸 보면서도 비열한 미소를 짓고있는 남자. 깍두기를 연상시키는 얼굴에다 목에는 굵은 금목걸이를 한 남자가 거만한 표정으로 종업원을 내려다본다. 서서히 인상이 구겨지는 가 싶더니, 머리채를 움켜잡았던 손을 풀며 벽 쪽으로 종업원을 밀친다. 지금대로라면 얼굴을 정면으로 벽에 부딪혀버릴 상황. 탁- "읏…" 미노는 등에 느껴지는 아픔에 살짝 인상을 찡그리고는 자신의 품에 안겨있는 종업원을 봤다. 벽에 부딪히려는 순간, 미노가 종업원을 안은 채로 충격을 흡수하며 등을 부딪혔던 것. 위험했던 순간을 감지한 남자들이 움찔거리며 반응했지만, 정작 아무도 테이블에서 자리를 뜨지는 않았다. 그런 남자들을 향해 싸늘한 시선을 던져준 미노가 옆에 서 있던 여자에게 종업원을 맡겼다. "수, 수련아…!" "혼절한 것 뿐이니 괜찮을 겁니다." 눈물을 글썽거리는 여자를 향해 안심하라는 한마디를 던져준 미노. 그런 미노의 모습에 덩치의 표정이 한없이 구겨졌다. "이봐, 넌 뭐야!" "… 많이 컸다. 백상어." * 냉기가 감도는 미노의 눈동자를 본 남자는 흠칫- 하고 몸을 떨었다. 그런 남자를 향해 차갑게 웃고있는 미노. "누, 누구냐!" "… 기억력이 나쁜 것도 여전하군." 눈을 살짝 감았다 뜨는 동작에도 묻어나는 강한 자의 여유. 잠시 낮게 웃음짓던 미노가 순식간에 미소를 지워버리고는 차갑게 입을 열었다. "말단인 주제에 말투가 건방지잖아… 네 녀석." "나이도 어린 새끼가 어디와서 까불어!" 남자의 주먹이 날아왔지만, 살짝 고개를 옆으로 움직인 것만으로 그 자리에서 피해버린 미노. 싸움에 숙련되지 않은 사람이 봤을 때는 상당한 빠르기였다. 하지만 미노에게는 그저 어린아이가 겁 없이 내지르는 애송이 수준의 주먹이었다. "대체, 누구냐! 네 놈은!" "도미노… 내 이름을 잊어버려선 안되지!" 퍼억-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미노의 다리가 앞으로 뻗었다. 깔끔하게 올려차기 한방으로 백상어를 바닥에 눕혀버린 미노. "이제야… 기억났냐…?" "혀, 형님…!" 꾸욱- 미노의 발이 백상어의 목을 짓눌렀다. 숨쉬기가 곤란해진 백상어가 얼굴이 빨개져 켁켁댔지만, 미노의 표정은 변함없이 싸늘하다.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경고했었잖아…" "큭… 죄, 죄송… 크엑… 하, 합… 크윽… 니다…" "흥." 바닥에 뻗은 채, 미노에게서 벗어나려 육중한 몸뚱이를 들썩거리는 백상어. 그런 백상어를 내버려둔 채, 백상어가 입고 있던 윗 옷 주머니를 뒤져 지갑을 꺼낸다. 제법 두둑한 지갑의 두께를 확인한 미노가 씨익- 하고 웃으며 백상어를 향해 얼굴을 들이댄다. 여전히 목을 밟은 채로, 자신의 다리에 팔꿈치를 올린 채 턱을 괴고서 말이다. "제법 두꺼운데… 어디서 이렇게 갈취를 심하게 하셨나…?" "그, 그런 것이 아니라…! 케켁!" 꾸욱- "거짓말 하지 마." 너무나도 예쁜 미소를 짓고있는 미노. 지금 이 상황이 아니었다면 분명 상대방을 유혹하는 거라고 생각 될 만큼 매력적인 목소리였다. 아무 말도 못하고 버둥거리는 백상어를 힐끗- 본 미노가 지갑을 뒤져 초록색의 지폐를 꺼냈다. "저기요-" 조금 전에 정신을 차린 수련이라고 불린 여자가 화들짝 놀라며 미노를 본다. 그러다 미노가 부드럽게 웃는 것을 보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이 사람이 죄송하다구 병원비로 쓰라고 하네요, 물론 받으시겠죠? 싱긋-" 미노의 손에서 팔랑거리는 30만원 정도의 지폐. 선뜻 받기가 겁나는 지, 망설이는 종업원을 향해 웃음지어준 미노가 백상어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냉정한 표정으로 자신을 보고있는 미노를 본 백상어가 겁을 집어먹고는 무작정 고개를 끄덕였다. 싱긋- "거봐요, 내 말 맞잖아요? 얼른 받아요." "… 아, 저기… 가, 감사합니다…" 백상어의 눈치를 보던 수련이 친구로 보이는 여자에게로 급히 뛰어갔다. 애써 뺏은 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 말도 못하는 건, 미노가 있기 때문이리라. "백상어." "… 으윽… 네… 네!" "아까 저 여자 분을 밀어버릴 때 쓴 손이 오른쪽이었지…?" 차가운 말투. 어느새 회색빛으로 변해버린 미노의 눈동자를 본 백상어가 고개를 급히 끄덕였다. 조금이라도 허튼 짓을 했다가는 금방 저 세상으로 보내 버릴 것만 같은 눈. 이제는 돈이든 뭐든 상관없으니 목숨만 부지하기를 바라고는 무조건 Yes로 대답하는 백상어. "… 일어나라." 발을 내린 미노가 무심한 어조로 말했고, 눈치를 보던 백상어가 느릿하게 움직여 미노의 곁에 섰다. 씨름선수로 나가도 될만큼 상당한 덩치를 자랑하는 사내가 여리여리한 소년에게 꼼짝도 못한다는 상황이 그저 아이러니하기만 하다. 우스운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얼굴에 미소를 띄운 사람은 없었다. 순간, 눈으로 따라가지 못할 정도의 빠르기로 움직인 미노. 퍼억- 으드득! "끄아아악-!" 섬뜩한 소리가 들리며 백상어가 무릎을 꿇은 채 왼손으로 오른쪽 어깨를 감쌌다. 으스러져버린 어깨가 흐느적거리며 바닥을 향해 축 늘어져 있다. "오늘은 특별히 어깨 하나로만 끝내주지." "크윽… 으으윽…!" "그 잘난 주먹을 믿고 너무 설치지 않는 게 좋아." "윽… 으윽…" 아픔을 참으려 이를 꽉- 깨물고 있는 백상어. 그런 백상어를 힐끗- 본 미노가 옆에 놓여있던 지갑에서 만원짜리 세 장을 꺼내 던져준다. "이건 네 몫이다, 몸조리 잘해라." 48. 태양 빛이 가득히 내리쬐고 있는 거리를 유유히 걷고있는 미노. 그저 평범하게 걷고있을 뿐인데도 사람들은 미노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남녀가릴 것 없이 모두 한번쯤은 뒤를 돌아보게 만드는 외모는 충분히 그 위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꺄아- 저기 봐, 마린고 도미노야!" "어머, 어머! 천의얼굴이잖아! 나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야!" "꺅-! 너무 잘생겼잖아!" 여기저기서 터져나오는 탄성을 가볍게 흘려버리고는 갈 길을 재촉하는 미노. 그때, 미노의 앞으로 꽤 준수하게 생긴 외모의 남자가 다가왔다. "학생, 모델 한번 해 볼 생각 없어?" "… 에?" "외모도 상당하고, 또 인기도 많이 끌 것 같은데 말이야." "… 모델하면 돈 많이 벌어요?" "으… 응? 다, 당연하지!" "얼마나요?" "네 인기가 올라갈 수록 보수도 올라가는 거지." "헤에- 그런거에요?" 입술에 검지손가락을 댄 채, 남자를 보고있는 미노. 페로몬을 남발하는 미노의 모습에 주변에서의 함성이 더욱 더 커졌다. "꺄악- 저것 좀 봐, 귀여우면서 엄청 섹시하잖아!" "저 도톰한 입술! 꺄악- 멋있어 멋있어!" "완전 좋아! 도미노 짱! 천의얼굴 짱!" 이젠 대놓고 거리에서 꺅꺅대며 소리를 지르는 여자들. 그런 여자들은 신경도 안 쓴다는 듯이, 여전히 그 모습을 고수한 채 남자를 보고있는 미노. "음… 할게요, 모델이라는 거." 미노의 대답에 살짝 웃음을 짓던 남자가 지갑에 있던 명함을 꺼내 건넨다. [Enjoy 엔터테인먼트 실장 정선우] "주소 있으니까 내일 한번 와 볼래?" "음… 그러죠, 뭐." "그래, 10시까지 적힌 곳으로 오면 돼. 알았지?" "약속은 지키니까. 그럼-" 짤막하게 인사하고는 남자들의 곁을 스쳐지나가는 미노. 제법 당당하고 쿨한 미노의 모습에 놀란 눈을 하던 선우는 이내 입술을 미끄러뜨리며 웃는다. "저 아이라면… 녀석도 매우 흡족해 할 것 같은데…?" 손에 들려있던 명함을 대충 주머니에 집어넣은 미노는 그대로 택시에 올랐다. 눈을 감고는 편안하게 등을 기대있던 미노는 문득 차가 움직이지 않는 것 같은 느낌에 눈을 떴다. 깜빡 졸은 탓인지, 어느새 택시는 번화가를 지나는 도로에 멈춰있다. "아저씨, 왜 안 가요?" "앞에 사고가 난 모양인데? 아까부터 도통 움직일 생각을 안하네." 시계를 본 미노는 인상을 찡그리며 지갑에서 2만원을 꺼내 기사에게 내밀었다. 20분이나 지체됐잖아, 제길. "수고했어요." 짤막한 인사와 함께 뒷 문을 열고 내린 미노가 멈춰 선 차들 사이를 가로질렀다. 대략 30분 정도를 뛰었다 싶을 때, 집 앞에 겨우겨우 도착한 미노. 가쁜 숨을 몰아쉬며 현관으로 들어선 미노는 안에서 느껴지는 시원함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 이… 현아…" 방금 샤워를 마친 듯한 이현의 모습. 물기를 머금은 검은 머리카락이 착 가라앉아 섹시함을 물씬- 풍겨왔다. 흑회색의 바지를 입고는 흰색의 와이셔츠 단추를 반 쯤 풀어놓은 모습은 여전히 멋지게만 보인다. 잠시 멈춰 서 있던 이현이 긴 다리를 휘적휘적 움직여 미노에게로 다가갔다. "… 뭐야…? 그 표정은." "아… 아무것도 아냐…!" 피식- "… 반했냐…?" "미, 미쳤냐! 바, 바, 반하긴 내가 뭘!" 허리를 숙여 팔로 무릎을 짚고 가쁜 숨을 토해내던 미노가 이현의 말에 급히 상체를 세우며 고개를 도리질한다. 그런 미노의 모습에 쿡쿡거리며 웃는 이현. "바, 바보! 웃지 마!" 고개를 홱- 돌려 방으로 가려는 미노를 잡아 벽에 밀어넣고는 두 팔 사이에 가두는 이현. 눈빛이… 다르다. "왜, 왜 그래…" "내 허락도 없이… 어디 갔었던 거야…?" 매혹적인 목소리. 미노가 어떻게든 이 상황을 모면하려 베시시- 하고 웃었다. "그, 그냥… 답답해서 바람 좀 쐬러…" 미노의 머리카락을 만지며 차갑게 말하는 이현. "거짓말 하지 마…" 이현이 미노에게로 몸을 더욱 밀착시키며 검지손가락을 굽혀 미노의 턱을 들어올렸다. 몇 달이 흘렀지만, 처음봤을 때와 똑같이 미노를 숨막히게 만드는 이현의 눈빛. 미노에게로 허리를 굽힌 이현이 미노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겹쳤다. 미노의 입 안을 이리저리 탐닉하던 이현이 입술을 떼고 미노를 품에 안았다. "다시는 말 없이 사라지지 마… 미치는 줄 알았으니까…" * 쇼파에 앉아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는 이현과, 그런 이현의 옆에 무릎을 굽혀 양 팔로 끌어안고 앉아있는 미노. 외출에서 돌아온 후, 욕실에 가는 것만 허락하고는 한시도 옆에서 떨어뜨려 놓은 적이 없다. 뾰루퉁- 한 미노의 표정을 보고 피식- 하고 웃은 이현은 미노의 뒷 목을 끌어당겨 입술을 겹쳤다. "무, 무슨…! 읍!" 살짝 벌어진 미노의 입술 사이로 잽싸게 파고든 이현의 혀가 부드럽게 움직였다. 미노의 허리를 잡고 자세를 안정시킨 이현이 미노의 고개를 뒤로 젖혀 거칠게 키스했다. 새하얗고 예쁜 목선을 따라 입을 맞추던 이현이 미노의 쇄골에 얼굴을 묻었다. "자, 잠깐만…! 읏-" 따끔한 느낌에 미노가 인상을 찡그렸고, 그 때 탁자 위에 놓아두었던 이현의 핸드폰이 울렸다. 지이잉- 지이잉- "저, 전화 와…! 잠깐…!" "… 내버려 둬." 차갑게 말한 이현은 미노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겹쳤다. "바, 받아… 그, 급한 전화일 수도 있잖… 아…!" "…… 제길." 나지막하게 욕을 읊조린 이현이 살짝 인상을 찡그리고는 핸드폰의 플립을 열었다. "뭐야." 이현의 키스로 인해 붉어진 얼굴을 양 손으로 감싸고 있는 미노. "… 알았으니까 거기서 기다려." 플립을 닫은 이현이 키 홀더를 손에 들었다. 이현의 움직임을 느낀 미노가 고개를 들었고, 그런 미노의 입술에 다시 한 번 짤막하게 입맞춤한 이현. "다녀올게, 기다리지 말고 먼저 자." 이현이 밖으로 나갔고, 듣기 좋은 포르쉐의 엔진소리가 이내 골목을 벗어났다. 아직도 화끈거리는 입술을 손가락으로 살짝 훑은 미노가 욕실로 들어섰다. 차가운 물을 한바탕 뒤집어쓰고 나서야 좀 진정이 됐는 지, 활짝 웃는 모습이다. 8시가 넘은 시각, 방금 한 샤워로 인해 잠은 달아나버린 지 오래. 잠시 고개를 갸웃- 한 미노는 외출하기 위해 옷을 갈아입었다. "어머, 얘 정말 그렇더라니까?" "꺄하하- 응! 맞아!" "아, 한잔만 더 하자고!" 야시시하게 옷을 입은 여자가 전봇대에 삐딱하게 기대어 담배를 피며 통화 중인 모습, 남자친구의 팔에 매달려 갖은 애교를 다 떨어대는 여자. 그리고 술에 취해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아저씨가 비틀거리며 걷는 모양새까지… 11시가 넘은 시간, 미노는 시내의 골목을 배회하며 구경을 하고 있었다. 간혹 미노의 외모를 보고는 팔을 붙잡고 늘어지는 여자들이 있었지만 그런 그들을 향해 눈길도 주지 않으며, 골목을 유유히 벗어나는 미노. 멈칫- 한 높은 건물의 옆에 어둡고 좁은 골목 안에서 키스를 나누고 있는 커플을 본 미노는 순간 일시정지를 당한 듯 그 자리에 멈춰섰다. 놀라움과 함께 당혹스러움이 겹친 미노의 눈동자가 작게 떨렸다. "움, 저 사람 아닐거야… 아니겠지…? 근데… 이현이랑 똑같이 짙은 검은색 머리네… 눈도 똑같고, 코도 똑같고, 입술도… 헤에- 내가 잘못 본 거…" 무심결에 미노가 있는 쪽을 돌아 본 남자. 그 곳엔… 이현이 있었다. 놀라움을 띄던 미노의 눈빛에 슬픔이 깃들었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눈빛을 하고 슬프게 웃는 미노. "……… 소이현 바보………… 그러니까…… 이제 안녕… 소이현……" 놀라 쫒아오려는 이현을 따돌리고 다른 골목길로 접어든 미노. 후들거리는 다리를 애써 지탱하고 벽에 기대자, 달빛을 가리고 있던 구름이 걷히고, 캄캄하기만 했던 골목길 사이로 은은한 파란 빛이 내려앉았다. 또르르- 미노의 볼 위로 한 방울의 눈물이 흘렀다. 심장이 부서져버릴 것 같은 느낌. 떨리는 눈꺼풀을 애써 감은 미노가 하늘을 향해 고개를 치켜들었다. 피식- "특별하지 않았어… 다른 여자와 똑같았을 뿐이야…"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던 미노는 고개를 아래로 푹- 떨구고는 감았던 눈을 떴다. 심하게 떨리고 있는 미노의 눈동자. "사랑받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어…" 49. 쏴아아- 예고없이 내리는 비를 고스란히 맞고있는 미노. 흑진주처럼 아름다운 미노의 흑발이 물기를 머금었고, 까맣고 투명했던 눈동자는 어느새 짙은 회색빛으로 변해있다. "킥킥, 그래서 그 새끼가…" 툭- "씹, 뭐냐?" "……" "이봐, 너! 묻고 있잖아!" "……" "아- 씨발. 야, 끌고 와." 빨강머리의 한마디에 옆에 있던 녀석들이 미노에게로 다가가 어깨를 잡았다. 걸음을 멈춘 미노가 고개를 들었고, 담배연기를 미노의 얼굴을 향해 내뱉는 빨강머리. "후- 귀가 먹었냐? 엉? 부딪혔으면 사과를 해야 할 것 아니냐고…!" "……" "씨발, 대답 안 하냐?!" "… 비켜." "뭐? 방금 뭐라 그랬냐?" 피고 있던 담배를 지져밟은 남자가 턱 짓으로 한 곳을 가리켰고, 알았다는 듯이 미노의 어깨를 잡고는 골목길 구석으로 데려가는 남자들. 파앗- 미노의 몸이 빨강머리에 의해서 벽에 밀쳐졌다. "윽…!" 미노의 머리칼을 휘어잡은 빨강머리. 그 덕분에 미노의 입에서 옅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아, 씨발. 오늘 별게 다 개기… 하! 이것봐라, 존나 이쁜 새끼네?" 미노의 얼굴을 들어 이리저리 돌려보는 빨강머리. "이런 시간에 혼자 다니면, 나 덮쳐주세요~ 라고 하는 거잖아… 응?" "……" "존나 건방지네, 대답 안 하냐?" "… 손…… 떼." 굳게 닫혀있던 미노의 입술이 열리고, 보이쉬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살기를 가득 담은 회색빛 눈동자가 빨강머리에게로 향했다. "뭐냐, 그 눈빛은?" "…… 내 몸에 손 대지 마." "미쳤냐? 갑자기 무슨…! 헉!" 빨강머리의 목에 겨눠진 날이 선 칼. "거기까지… 이제 그만 내게 넘겨." "… 누, 누구야… 네 녀석은…!" "베이고 싶지 않으면 얌전히 물러나는 게 좋을거야." 차갑고 냉정한 목소리. 몸에 열이 오른 탓에 눈 앞이 희미해진 미노가 얕은 숨을 내쉬며 소리가 난 곳으로 눈을 돌렸다. 흐릿한 인영. 하지만… 어디선가 본 적 있는 뒷모습. "하아…… 다… 당신, 누구… 야……?" 몸이 옆으로 기운다는 것을 느낀 미노가 눈을 감았다. 정신을 잃은 것인지, 축 처진 미노를 보던 시안이 인상을 찡그렸다. "도저히 너한테서 눈을 뗄 수가 없어…" * 시안의 침대에서 입에는 온도계를 물고, 뾰루퉁하게 앉아있는 미노. 잠시 쇼파에 앉아 눈을 감고 있던 시안이 스르륵- 하고 눈을 뜨더니 미노에게로 다가왔다. "입 벌려." 얌전하게도 입을 벌리는 미노. 온도계를 뺀 시안이 체온을 보고는 옆에 있던 물과 약을 내밀었다. "먹어." "……" 시안이 내민 약을 멀뚱멀뚱 보고만 있는 미노. "감기약이야." "……" "얌전히 먹는 게 좋을텐데…" 반 협박으로 나오는 시안을 빤히 쳐다보던 미노가 고개를 홱- 하고 돌려버린다. 미노를 보는 시안의 눈빛이 짙어졌다 싶더니, 미노에게로 허리를 굽혀 턱을 들어올린다. "얌전해질 때까지 길들여주지." 시안이 미노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겹쳤다. 미노의 입술을 물어 입을 연 시안이 미노의 허리를 팔로 감아 당겼다. 저항하는 미노를 가볍게 제압해 침대에 넘어뜨린 시안. "읏- 하아… 이, 이게 무슨 짓…!" 시안의 입술이 미노의 목선을 타고 어깨를 침범했다. "하지…읏- 그만 둬…!" 시안에 의해 입고있던 미노의 셔츠의 단추가 반 이상이 풀어져 있었다. 어깨를 잡아 반항을 못하게 하던 시안의 움직임이 순간 멎었다. 피식- "… 간밤에 즐거웠나보군." 시안의 손이 미노의 쇄골을 쓸었다. 너무나도 차가운 눈동자. "……" 시안의 눈을 본 미노는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싸늘한 시선, 경멸에 찬 눈초리. … 미노의 몸이 미세하게 떨려왔다. "… 돌아가도 좋아." 미노의 위에서 물러난 시안. "……… 가라니…… 나…… 어디로 가야… 하는… 건데…?" 울먹이는 목소리. 미노를 향해 등을 보이던 시안이 미노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큰 눈동자에 고여있는 맑은 눈물. 이불을 끌어당겨 손으로 꼬옥- 쥔 채, 고개를 아래로 떨군다. 톡- 미노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 싫어…… 가고 싶지 않아… 흐윽… 자신이…… 자신이 없어… 흐흑…" 흐느껴우는 미노를 감싸안은 시안. "나… 흐흑… 죽을 것 같아… 심장이… 아파서… 죽어버릴 것 같아… 흐으윽…" 시안의 허리를 끌어안은 미노가 와앙- 하고 울음을 터트렸다. 그런 미노를 한 팔 가득 끌어안고는 눈을 감은 시안. '지켜주고 싶어… 부서져버리지 않도록…' 50. 세련된 블랙의 컬러와 은은한 조명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스튜디오. 많은 모델들이 각자 개성에 맞는 옷을 고르며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 모습이다. 서로 잘 보이려 재잘대는 모델들과는 딴판으로 주위의 공기를 압도하는 포스로 앉아있는 미노. 턱을 살짝 치켜든 채, 도발하는 모습이 보는 사람을 아찔하게 만든다. "… 굉장한데?"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화들짝- 하고 놀란 미노. 어느 틈에 온 건지, 못 보던 남자가 미노의 옆에 앉아 턱을 괴고는 보고있다. "… 뭐야, 당신." 미노의 차가운 반응에도 여유로운 웃음을 잃지 않는 모습이다. 다른 모델들을 밖으로 내보낸 후, 미노에게로 시선을 돌린 남자. "모델 경험은 있어…?" "있을 리가 없잖아, 그딴 거." "… 흐음- 아직 초짜구나." 깔보는 듯한 말투에 눈썹을 꿈틀거린 미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으로 다가가던 미노의 앞에 나타난 커다란 렌즈. 눈썹을 찡그린 미노가 카메라에 가려있는 남자에게 터벅터벅 다가갔다. 남자를 벽으로 밀어붙인 미노가 팔꿈치로 남자의 목을 눌렀다. "… 지금 장난해?" 피식- "카메라 앞에서도 주눅들지 않다니, 제법인데?" "…… 칫." 팔을 거둔 미노가 남자를 놓아주고는 밖으로 나가기 위해 문을 향해 걸어갔다. 탁- 나가려는 미노의 팔을 낚아 챈 남자. 또 무슨 일이냐는 듯한 미노의 눈빛에 싱긋- 하고 웃는 남자. 웃는 게 보는 사람 열받을 정도로 예쁘다. "원래 성격이 그렇게 급해?" "… 저승 가기 싫으면 더 이상 자극하지 마." "좋아, 그 대담함… 꾸미지 않은 솔직함… 맘에 들었어." 미노의 눈빛을 보고도 아무렇지 않게 웃는 남자. 보통 사람이라면 겁을 먹고 벌써 멀리 도망쳤을만큼 싸늘함을 품고있는 미노의 눈동자. 그런 눈을 보고도 아무렇지 않게 웃고있다. "…… 당신 정체가 뭐야…?" "당신이 아니라, 내 이름은 천비안이라구…" "… 쳇." 고개를 홱- 하고 돌려버리는 미노의 모습을 보며 쿡쿡거리며 웃던 비안이 손을 올려 미노의 머리를 흐트리며 환히 웃었다. "Ok, 접수완료. 내일부터 작업이다." * 스튜디오를 나와 무작정 걷고있는 미노. 주머니에서 쉬지않고 울려대는 전화가 귀찮게만 느껴진다. [시혁선배] 잠시 망설이던 미노는 슬립을 열었다. "아, 선배! 왠일이에요? 그새 나 보고싶어졌어요?" […… 응, 어디야…?] "어, 어디긴요! 집이죠!" [이현이네…?] "마, 맞아요…! 이현이네…!" 와락- "… 여기가, 그 자식 집이야…?" 미노를 뒤에서 끌어안은 시혁. 툭- 핸드폰을 떨어뜨린 채, 고개를 숙인 미노. 안들키려고 했는데… 어째서, 어째서 알아버린거야… "보고싶었어…" "………" 아련한 시혁의 음성이 미노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분명히 걱정하고 있었을 시혁을 생각하니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 울어도 돼…" "……!" 선배… 선배는 어떻게… 어떻게… 내가 듣고싶은 말만 골라서 해주는 거예요… 떨리는 눈동자로 시혁을 보던 미노가 시혁의 허리에 팔을 감았다. "…… 무서웠어요… 나, 정말… 흐흑… 선배… 흐흐흑…" 아무 말 없이 미노를 꼬옥- 안아주는 시혁. 한참을 시혁에게 안겨 울던 미노가 훌쩍이며 시혁의 품에서 떨어졌다. "… 보지마요, 나 눈 부어서 괴물같을거야…" 살짝 투정이 섞인 귀여운 미노의 목소리에 시혁은 피식- 하고 웃었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슬픈 눈을 하고 있던 시혁이 웃자, 미노는 베시시- 하고 웃으며 시혁을 올려다본다. "나 괴물같죠…?" "아니, 제일 예뻐." "헤에- 아부가 점점 느네요, 선배." 아무 말 없이 미노를 보던 시혁이 팔을뻗어 미노를 끌어 안았다. 기분좋게 풍겨오는 플로럴 향기를 느끼며 눈을 감은 미노. "나 좋아해달라고 말하지 않아…" "……" "넌 그 자리에 가만히 있으면 돼…" "……" "내가 너한테로 갈게…" "……" "… 대신, 밀어내지만 마…" 댓글 64 인쇄 | 스크랩(0)▼ 01081925050 흑흑~~~점점 ㄷㅓ 복잡해지궁 힘들어지눈것같에욤!!!ㅎㅎ 08.06.27 22:14 답글 이쁘다☆ 재미있어요!!!ㅎㅎㅎ 08.07.19 00:01 답글 행복찾아삼만리 재밋어욤~~~~~~!!ㅎㅎ 08.08.04 13:57 답글 노랑 +_+ 재미있어요! 08.08.11 10:01 답글 goddess -0- 우후훗 ㅋㅋㅋㅋ 재미있어요 ㅋㅋㅋ 08.08.15 21:56 답글 레이♥ 재밌어여~~ 08.09.05 16:06 답글 lemon tree 과연 미노 어니는 누굴선택할까료??? 08.10.11 03:05 답글 달콤한-Girl 이현이 바람둥이 ㅠㅠ 남자들은 다 늑대(?) 08.10.27 21:34 답글 내남자， ㅠ_ㅠ.. 미노 인기많다,, 부러웡 ㅠ 꽃돌이! 08.11.17 23:08 답글 은빛악마♥ 남자가 늘어나고 잇어~ㅠㅠ부럽당~ㅠㅠ이현이는 뭐니!!! 08.11.20 16:29 답글 네모박스① 잘봤어요^^ 09.07.06 05:47 답글 이병현미오 잘봤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09.07.26 01:08 답글 미묘천설 미노, 능력있는 여자였구나? 09.10.05 22:18 답글 월햐소설 또 미노에게 반한사람 나오네 부러버 09.10.14 18:45 답글 ◀이전 1 2 다음▶ 등록 텍스티콘 0 / 300자 회원은댓글을 쓸수 없습니다. 등록 텍스티콘 0 / 300자 글쓰기 답글 최신목록 | 목록 | ▲윗글 | ▼아랫글 ▲윗글 | 남장† 위험한 도발, 미치도록 차가운 그 녀석의 키스에 길들여지다 51~60(完) 2008.02.10 ▼아랫글 | 남장† 위험한 도발, 미치도록 차가운 그 녀석의 키스에 길들여지다 31~40 2008.02.10 ▲top 서비스 약관/정책 | 권리침해신고 | 카페 신고 | 이용약관 | 카페 고객센터 | 검색비공개 요청 Copyright (c) Daum Communications Corp. All rights reserved. ------------------------------------------------------------------------------------ 남장소설ㄲt페boy (http://cafe.daum.net/boyhamr) 제목 : 남장† 위험한 도발, 미치도록 차가운 그 녀석의 키스에 길들여지다 작가명 : H. 체리비。 메일 : moon-sters@naver.com">moon-sters@naver.com 연재장소 : 남장소설카페 총 편수 : 60편 장르 : 남장소설 ------------------------------------------------------------------------------------ - 위험한 도발, 미치도록 차가운 그 녀석의 키스에 길들여지다 51. [류- 세이가 코보레타 나츠노 소라네 가이코메타] "유성이 떨어지는 여름 하늘 소원을 빌었어…" [이- 츠모 아노 히-토노 소바니 이사- 세테] "늘 그 사람 곁에 있게 해주세요…" [아사니나리 마치쥬 히토가 아후레 유큐타비니] "아침이 되어 거리에 사람들이 넘쳐나면서…" [다이지나 카니시미모미 우시나이- 소] "말로는 전할 수 없는 마음을…"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일본어를 해석하고 있는 미노. 유리잔에 담겨있는 스트로우를 빙빙 돌리며 장난을 치고 있다. 햇빛이 비치는 자리에 앉아, 다른 곳을 향해 시선을 두고 있는 미노의 모습에, 카페 안에 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미노에게로 향했다. 그걸 아는 지 모르는 지, 입가에 약간의 미소를 띈 채 노래를 흥얼거리는 미노. 탁- 손목을 낚아채는 느낌에 놀란 미노가 고개를 돌렸고, 고개를 돌리자 바로 앞까지 클로즈업 되어있는 시안의 얼굴을 보고는 눈을 깜빡인다. "뭐, 뭐야…?" "널 쳐다보는 녀석들의 눈빛이 장난이 아닌데…?" "…… 에?" 시안의 어깨 너머로 시선을 옮긴 미노. 미노의 시선을 느낀 사람들이 얼굴을 붉힌 채, 다른 쪽으로 황급히 고개를 돌린다. "으앗- 자, 잠깐만…!" 미노의 팔을 끌어 밖으로 나가는 시안. 대기되어 있던 차에 미노를 던지듯 밀어넣은 시안이 차에 올랐다. 부드럽게 핸들을 꺾어 자리를 떠나는 리무진. 겨우 변호사 주제에 리무진을 타고다니다니, 대체 정체가 뭐냐구…! "류시안! 이게 무슨 짓이야…!" 미노의 외침을 무시한 시안이 운전석과 뒷좌석을 구분하는 중앙창을 닫아버린다. 리모콘을 대충 던져버린 시안의 눈동자가 미노에게 닿았다. "… 에?" "집에 갈 때까지 얌전히 있어." 차가운 목소리. 순간 입을 꾹- 다문 미노가 시안을 뚫어지게 쳐다본다. 미노에게서 시선을 돌린 채, 등받이에 기대 눈을 감고있는 시안. 길고 짙은 까만 속눈썹, 날카롭게 뻗은 콧날과 자연스럽게 이어진 적당히 도톰한 입술. 꽤나 잘난 인간이라고 생각하던 미노가 시안에게로 향해있던 시선을 거두었다. 달칵- 멈추기 무섭게 차에서 내린 시안이 미노의 손목을 잡아 집 안으로 들어섰다. 현관 문을 닫은 시안이 미노를 맞은 편 벽에다 밀어넣고는 양 팔 사이에 가둔다. "가, 갑자기 왜 그래… 무섭게…" "화가 나…" "…… 에?" "네게 다른 녀석들의 눈길이 닿았다는 게 미치도록 화가 나…" "……!" 미노의 머리칼을 만지며 차갑게 말하는 시안. 허리를 숙인 시안이 미노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겹쳤다. 살짝 열린 미노의 입 안을 부드럽게 탐하던 시안이 미노의 허리에 팔을 감았다. "… 그만… 가만있어…" 발버둥치는 미노의 귓가에 나즈막히 속삭인 시안. 너무나 부드럽고 매혹적인 목소리에 정신이 아득해진다. "나한테 널 맡겨 줘…" 들을수록 기분 좋은 시안의 목소리. 하지만… 가슴 한 쪽이 허전한 건 변함이 없다. 미노가 느릿하게 고개를 떨구었다. 아래로 떨구어진 미노의 머리를 감싸 안은 시안. 시안의 가슴에 미노의 이마가 닿았다. "조급하게 다가서지 않을게… 날 떠나길 원하면 언제든 가도 좋아… 죽을만큼 아프겠지만… 다시… 차갑고 냉정한 나로 돌아가게 되겠지만… 적어도…… 널 보내는 내 결정에 대한 후회는 없을테니까." * 침대에서 새근거리며 잠들어있는 미노의 앞머리를 매만지는 시안. 하얗고 예쁜 얼굴에 찰랑거리며 내려온 흑발은 눈부시게 아름답다. 지이잉- 지이잉- 전화가 울리자 방 문을 닫고 밖으로 나온 시안. 액정에 뜬 전화번호를 보고는 얼굴을 굳힌다. "… 무슨 볼 일이지?" 차가운 목소리. 낮게 가라앉은 시안의 목소리가 음파가 되어 거실에 퍼졌다. [미노… 이번에도 네가 가로챈 거냐?] "무슨 소린 지 모르겠군." [시치미 떼지 마, 당장 돌려받겠어.] "… 소이현, 네 녀석은 정말 자기중심적이군." [뭐야?!] "미노를 멋대로 다루고 있잖아. 멋대로 상처입히고, 눈물흘리게 만들고선 사과하면 그만인가? 오해라고, 사랑하는 건 너 뿐이라고 그럴 듯한 말만 지껄여대면… 상처받고 눈물흘렸던 그 마음을 치유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거냐?" [입 닥쳐… 입 닥치란 말야…!] "너 따위 녀석이 함부로 다루어도 될 만큼, 그런 여자 아냐. 길바닥에서 굴러다니는 여자들처럼 막 대해도 되는… 그런 여자 아냐. 한없이 소중해서… 보는 것만으로도 설레어 미쳐버릴 것 같은 그런 여자야. 그러니까 죽고싶지 않으면, 함부로 상처입히지 마…" […… 보고싶어.] "……!" [당장이라도 사랑한다고 끌어안고 입맞추고 싶어… 아프게 해서 미안하다고… 눈물 흘리면서 애원하게 된다고 해도… 놓치고 싶지 않아… 그러니까… 부탁이야… 가르쳐 줘…] "……" [미노가 하라는 대로 모두 다 할 거야… 바보가 되라면 바보가 될 거고, 보기싫으니 죽어버리라고 한다면 그렇게 할테니까… 그러니까… 그러니까 미노… 내게 돌려 줘… 류시안, 처음이자 마지막 부탁이다…] 슬프게만 들리는 목소리. 여태까지 이렇게 슬프게 얘기했던 적이 있던가… 시안은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이번에도… 간신히 손에 넣은 보석을… 박물관이라는 이름 아래… 놓아주어야 하는건가… 다른 사람의 눈에 의해서 아름다움을 평가받고… 다른 사람의 품 안에서 빛나는… 그 모습을 지켜볼 수 밖에 없는건가… "… 내가 데려다 주는 것 보다는, 직접 데려가는 게 더 낫겠지…" [……!] "잘 알아 둬… 이번이 마지막이야. 다시 이런 일이 생긴다면 널 죽여놓을테니까. 단단히 각오하고 잘해." 짤막하게 주소를 얘기해 준 시안이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차가운 바람이 시안의 머리칼을 흐트렸다. 달칵- 누가 업어가도 모를만큼 곤히 자고있는 미노. "마지막이야… 이렇게 눈 앞에서 널 놓아주는 짓은… 다음에 이런 일이 생긴다면… 그게 언제가 되든… 널 가질거야." 시안이 미노에게로 허리를 숙여 입술을 겹쳤다. 약간은 투정섞인 소리가 새어나왔지만, 개의치않고 달콤한 키스를 선사하는 시안. "죽는 것보다… 더 아플 지도 모르지… 세상을 다 잃은 것처럼 허전할 지도 몰라… 비록 이 세상에서 말하지 못한 내 마음… 죽어서라도 전할 수 있다면… 그땐 전해도 될까… 한번도 입 밖으로 꺼낸 적이 없어서 어색할 지도 모르지만… 그 때가 온다면… 반드시 말해줄게." 시안이 슬프게 미소지으며 감겨있는 미노의 눈에 입맞추었다. "사랑한다고……" * 몇 시간 후, 초인종을 누른 이현을 맞는 시안. 여전히 자신만만 해 보이는 시안의 모습에 살짝 인상을 찡그린 이현. 달칵- "누구 왔…!" 욕실 문을 열고 나오던 미노가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가운을 걸친 채, 머리에 수건을 감은 미노의 모습을 본 이현 역시 얼어붙었다. 천사가 강림한 것처럼… 모든 것이 아름다운 미노의 모습. "미안해…" "… 싫어…! 그만해!" 미노가 그 자리에서 귀를 막고 주저앉았다. "거짓이라고는 하지 않아…" "…… 그만 둬… 이제 더 이상은… 변명따위 듣고싶지 않아!" "미노야…" 부르지 마… 그렇게 슬픈 목소리로… 그렇게 간절하게 내 이름을 부르지 마… 그래놓고선… 또 상처입힐 거잖아… 싫어… 더 이상은… 더는 상처받기 싫어…! "미노야…" "… 부탁이야, 더 이상 내 마음을 짓밟지 말아 줘…" 두 사람을 보던 시안은 키 홀더를 가지고 밖으로 나갔다. 문을 닫고 차고로 나온 시안은 은색 아우디에 몸을 실었다. 끼익- 마찰음과 함께 속력을 높이며 차고를 빠져나가는 시안의 차. '다시 우리가 만난다해도 이 세상은 아닐 것 같아… 나… 이제는 사랑한다고 말할 수도, 널 안을 수도, 네가 있는 곳까지 찾아나설 수도 없지만… 내 가슴을 스쳤던 바람에게… 내 한숨에 닿았던 햇살에게 대신 말할게… 꿈 속에서라도 네가 들었으면 좋겠어… 사랑해… 널… 아주 많이… …… 사랑해…' - 시안 독백 中 "미노야…" "… 실은…… 나… 아주 많이 불안해… 이렇게 나즈막하게 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이 정말 네가 맞는 지… 날 향해 고백하던 네 얼굴이 정말 네 것이 맞는 지… 혼란스러울 때가 한 두번이 아니야… 언젠가는 벗어버릴 허물만 보고있는 건 아닐까하고 생각하면… 그대로 숨이 막히고 정신이 아찔해 질 정도로 불안해서 죽을 것만 같아…" 미노의 손목을 끌어당겨 안은 이현. 품에서 느껴지는 따스함에 미노는 참고 있던 눈물을 흘렸다. "… 한가지만 기억해. 내 감정… 내 감정의 깊이는 사랑이라는 말로도… 다 표현할 수 없어… 인간의 제한된 언어로는 감히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깊다는 사실… 절대로 잊어서는 안 돼…" "…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면… 얘기해줬어야지… 말로 하지 않으면 내가 어떻게 알아…" "지금 널 안고 있는 내 손이 전하는 진심… 네 눈동자를 보는 내 눈 안의 진심… 말로는 표현할 수 없어… 말주변이 없어서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 지도 모르겠지만… 그렇지만… 젠장, 이 마음을 표현할 적당한 말이 없어." 이현의 품에 안긴 미노가 눈을 감았다. 이대로도 괜찮다고… 서로에게 서툴고 아직 많이 미숙하지만… "고마워… 나 찾아줘서… 나 버리지 않아줘서… 고마워…" 미노를 안고 있는 이현의 팔에 힘이 들어갔다. 다시는 놓치지 않으려는 듯, 꼬옥- 끌어안은 이현이 미노의 목덜미에 가볍게 입맞추었다. '이 녀석을 너무 사랑해…' * 퍼억- 이현의 고개가 돌아갔다. 입 안에 고인 피를 퉤- 하고 뱉어낸 이현의 시선이 시혁에게 닿았다. 피식- "제법 주먹이 센데…?" 입 가에 흐르는 피를 손등으로 닦아낸 이현. 그런 이현의 뺨을 다시 주먹으로 가격하는 시혁. 퍼억- "칫, 존나 아프네." "… 네 녀석에게 상처받은 미노가 몇 배는 더 아팠을거야, 일어나!" 바닥에 쓰러진 이현의 멱살을 잡아 일으킨 시혁이 다시 한 번 주먹을 날렸다. 퍼억- 퍽- "윽…!" "… 끝까지 아껴줄 자신이 없으면 함부로 다가서지 마…!" 퍼억- 이현의 고개가 꺾였고, 터진 입술에서 피가 새어나왔다. 인상을 찌푸리며 손 등으로 대충 닦아내는 이현. 그렇게 얼마쯤 시혁의 주먹에 일방적으로 맞았을까… 바닥에 쓰러져버린 이현을 꼿꼿이 서서 내려다 보는 시혁. "미노만… 그 녀석의 마음만 아니었다면… 널 죽기 직전까지 패버렸을거야… 널 다치게 만들었다고 원망받더라도… 그 녀석만 아프지 않다면… 미움받는 것쯤 일도 아냐… 하지만… 그 녀석은 널 다치게 만든 이유가 자신이라고 생각하고… 분명 미안해 할 테니까… 분명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 좋은 녀석이니까… … 널 더 이상은 건드리지 않아. 하지만 기억해 둬… 이대로 포기하겠다는 건 아냐. 언제가 되든 지, 미노가 또 다시 아파하는 날이 온다면… 그 땐 미움받을 각오하고 널 없애버릴거다." 이현을 보던 시혁이 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멈칫- 시혁이 걸음을 멈추자 의아하게 쳐다보는 이현. 그런 이현을 향해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말을 잇는 시혁. "나 차시혁은… 죽을 때까지 한 사람만 보니까…" "………" "… 나한테 뺏기지 않으려면 미노에게 잘해 줘." 걸음을 빠르게 해 밖으로 나가버리는 시혁. 시혁이 나간 곳을 보던 이현이 피식- 하고 웃었다. 정장을 입고 뒹구는 바람에 온통 흙투성이다. "도미노… 너 정말 끝내준다." 52. "으아아- 따라오지 마!" "도미노! 너 당장 이리 안 오냐?!" "으아아앙- 살려 줘! 난 아직 죽기 싫단 말야!" 민소매 셔츠를 입고, 목에는 머플러를 두른 채 모자를 쓰고 오클리 백팩을 멘 미노가 빠르게 거리를 질주하고 있다. "여어- 미노야!" "어이어이, 우리가 그렇게 보고싶었냐? 그렇다고 이 더운 날 땀나도록 열심히 뛰어올 필요는 없잖냐…" 우주의 목소리. 멋진 모습으로 서 있는 일곱 명의 꽃미남들. 오늘은 모두 함께 놀이공원에 가기로 했던 날이었다. 그랬기에 미노는 일정보다 급히 촬영을 마치고 약속장소로 오고 있던 것이었다. "… 헉헉… 아, 쬐그만게 달리기는 엄청 잘 달려… 후우…" "꺄아악- !" 이현의 목소리에 발작하듯 뛰어올라 시혁에게 매달린 미노. "이현아, 애 그만 좀 괴롭혀." - 은샘 "아아, 젊은이들은 어딜가나 활달하구만." - 새휘 "후후- 나름대로 꽤 재미있는데…?" - 류예 나 참… 그렇게 남의 말 하듯 하지 말라구요! 적어도 난 정말 죽는 줄 알았으니까! "그 망할 사진기자가 너한테 찝적대길래 몇 대 갈긴 것 뿐이잖아!" "미노야, 촬영할 때 무슨 일 있었어?" 부드럽게 물어오는 예찬. 아까 그 상황이 생각났는 지, 도끼눈을 하고선 이현을 보는 미노. "여어, 무섭다." - 새휘 "엄청 살벌한데…?"- 환희 "아, 버스왔다!" - 예찬 놀이공원으로 향하는 버스가 도착했다. 물론, 최고로 잘나가는 부잣집 도련님이지만, 미노의 강력추천으로 인해 버스를 타고 가기로 한 것이다. (분명 각자 차를 탔다면, 어디 왕이라도 납시는 줄 알겠지.) "와- 신기하다." - 새휘 "구경할 맛 나겠는 걸…" - 은샘 "이렇게 단체로 앉아가다니… TV에서만 보던 풍경이야!" - 예찬 "흐음… 연구대상으로 알맞은 걸…" - 류예 여기저기를 두리번거리며 구경하는 네 사람. 그런 네 사람을 보던 기사가 소리를 꽥- 지른다. "이봐, 학생들! 차를 탔으면 돈을 내야지!" "… 돈?" - 환희 "무슨 돈…?" - 예찬 "돈을 내야 하는거야…?" - 류예 이럴 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푹- 숙인 미노. 천하에 내노라하는 집안 도련님들이 버스타는 법을 알고 있을 리 없지. 스윽- 그 때, 미노의 뒤에 있던 시혁이 만원짜리 두 장을 요금통에 넣어준다. "저 바보 녀석들 것까지 전부 다." "선배, 그래도 너무 많은데…" "됐어, 들어가자." 거스름돈은 아예 받을 생각도 하지 않는 겁니까?! 하아… 나 왠지 괜한 짓을 한 것 같아… "와아- 이 차 소리 무지하게 나!" - 은샘 "매연도 엄청 나오는데? 이게 바로 환경공해의 시작이지." - 예찬 "윽- 왜 이렇게 덜컹거려…!" - 환희 "… 대중교통 수단이라는 거… 그리 좋은 것만은 아니구나…" - 류예 각자 한 마디씩을 던지고 있는 네 사람을 보던 미노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떨구었다. 하아- 역시 무리인가… 이 사람들에게 서민(?) 문화를 배우게 한다는 건… 어라라? 앉은 채, 창가 모서리에 팔을 올려 턱을 괴고는 밖을 보고있는 시혁. 가끔 차가 덜컹거릴 땐 간간히 인상을 찌푸렸지만, 그리 싫지만은 않은 모습. "이 차 고장 난 거야? 왜 이렇게 가다가 섰다가 하는거지?" - 예찬 고장났을 리가 없잖아요… 버스니까 손님을 태우기 위해서는 각 정거장에 서는 게 당연하다구요. "우와- 밖에 사람 장난아니게 많아!" 한창 손님이 많을 시간이고, 방학을 맞아서 놀이공원에 놀러가는 애들도 많을테니 사람이 많은 건 지극히 당연한 일. "설마 다 타는 건 아니겠지…?" 버스 정거장에 사람들이 있다는 건 버스를 타기 위함인데, 게다가 여긴 놀이공원으로 직행하는 이 버스 전용인데 당연히 다 타죠. "에엑-!" 문이 열리고, 우르르 쏟아져 들어오는 사람들을 보고는 외마디 비명을 지른다. 덕분에 버스를 타던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뒷 좌석으로 몰려버렸다. "환희야, 우리 꼭 동물원 원숭이가 된 것 같은 기분인데?" 어찌 말이 없다 싶었다. 우주선배의 한마디에 타격을 입은 사람들이 상당히 무서운 눈으로 우릴 야린다. "잘생겼다, 그치?" "어떡해, 연예인일까?" "설마… 나 한번도 TV에서 본 적 없는 걸?" "꺄아- 전부 진짜 잘생겼어!" 그 와중에도 눈치없는 여자애들은 얼굴을 붉히며 힐끔거린다. 하지만… 앞에 있었던 병원 사건에서 사람들이 많은 걸 극히 싫어하는 이들의 표정은 상당히 굳어진 상태. "멋있어 멋있어!" "말이라도 걸어볼까? 꺅!" "버스 섰을 때, 모른 척 하구 확 안겨버릴까? 응?" "꺄악- 너무 스릴있다, 너!" 서로 내놓은 의견에 맞장구를 치며, 깔깔거리며 수다를 떤다. 다른 사람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걸 지극히 싫어하는 미노였기에, 역시 이번에도 표정이 살짝 굳어져있다. "어이- 너." 미노의 앞으로 다가온 한 남자. 며칠동안 씻지 않은 것 같은 까무잡잡한 얼굴빛, 정리하지 않아 지저분하게 자라나온 수염과 능글맞은 눈빛. 게다가 온 몸에서 풍겨오는 역한 술냄새까지. 으아- 이 아저씨 대낮부터 술 왕창 마셨구만… "야, 임마. 어른이 말을 걸면 대답을 해야할 것 아니냐고… 끅." "… 별 게 다 걸리적거리네." "안 그래도 저 꺅꺅대는 계집애들 때문에 시끄러워 죽겠구만, 당신은 또 뭐야?" 조용히 말하는 이현과, 발끈해서 외치는 우주. 그런 두 사람을 막은 사람은 다름아닌 시혁이었다. "……" "회장 형…" 자신의 앞(정확히 말하면 미노의 앞)을 가로막고 선 시혁을 아니꼽게 쳐다보는 남자. 키는 시혁이 한참은 컸기 때문에, 남자는 더욱 인상을 가득 쓴다. "넌 뭐야, 임마!" "나이도 드실 만큼 드신 분이 말투가 거치시군요." "뭐야?! 이런 싸가지없는 새끼를 봤나!" "더 이상 소란피우지 말고 자리에 앉으시죠." "뭐 이런 새끼가 다 있어…!" 발끈한 남자가 시혁의 멱살을 틀어잡았다. 움찔하는 다섯 명(이현, 류예, 예찬, 은샘, 새휘)을 손으로 제지하고는 차가운 빛으로 남자를 보는 시혁. "다시 한 번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앉으시죠." "이 새끼가 보자보자하니까 어른을 뭘로보고… 으악!" 자신의 멱살을 잡고있던 남자의 한 손을 잡아 뒤로 꺾어버린 시혁. "계속 고집부리시겠다면, 어쩔 수 없군요." "아악- 이거 안 놔?! 놔, 이 새끼야!" "나이드신 분께 이러는 게 예의에 어긋난다는 건 알지만, 다른 손님들께 방해가 됩니다. 적당히 하시죠." "아직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새끼가…!" "어른답지 못한 어른보다야 애들이 낫죠." 시혁의 포스에 겁을 먹은 것일까, 잠시 후 남자는 조용히 물러났다. 간단하게 버스에서 일어난 사건을 마무리시킨 시혁이 살짝 허리를 굽혔다. "소란을 피워 죄송합니다, 기사님." "아? 아하하, 아니야! 항상 골칫거리였는데 자네가 있어서 다행이군." "맞아! 저번에도 하마터면 사고가 날 뻔 했다니까?!" "얼마나 무서웠는 지 몰라! 근데 별일이네, 항상 여자한테 시비를 걸더니 이번에는 왠일로 남자애한테 시비를 걸었대?" "야, 여자보다 더 이쁘잖아." "아… 그런가…" 수군대는 손님들을 향해 살짝 고개를 숙인 시혁이 미노의 앞에 손잡이를 잡고 섰다. "… 괜찮아?" "아, 응! 괜찮아요! 고마워요, 선배." 싱긋- 예쁜 미소로 답하는 시혁. 그런 시혁을 보던 이현이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몇 분 후, 버스는 놀이공원 앞에 도착했고 미노일행은 많은 인파에 섞여 놀이공원 안으로 입장했다. "우와아- 멋지다!" "오- 괜찮은데?" "가끔은 이런 것도 좋을 것 같군." "선배, 이거봐요!" 어느 틈에 산 건지, 양 손에 솜사탕을 들고있는 미노. 분홍색의 솜사탕을 한 입 베어 문 미노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웃는다. "헤헤, 맛있다!" '아, 너무 귀여워…' - 예찬 '저렇게 예쁘게 웃으면 보는 사람은 어쩌란 거야…' - 은샘 "꺄- 미노오빠!" 멀리서 팔짝거리며 뛰어오는 두 명의 꼬마들. 기다렸다는 듯이 팔을 활짝 벌려 안은 미노. "꺄아! 오빠들 잘 왔어요!" "초대해줘서 고마워, 꼬마아가씨들." "나림이 키 많이 컸어요! 그러니까 이제 미노오빠 여자친구 할 수 있어!" "예림이도! 예림이가 나림이보다 훨씬 키 더 커!" 말은 그렇게 하지만, 솔직하게 말하자면 도토리 키 재기란다. "그보다, 둘이서 다니다가 길이라도 잊어버리면 어쩌려구…" "아니에요! 우리 엄마 저- 기 있어요!" 예림이가 가리킨 방향으로 시선을 옮긴 미노. 과연, 긴 갈색 머리를 고급스러운 핀으로 틀어올린 여자가 살짝 인사했다.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느라 수고가 많았어요, 호호… 남편이 기다리고 있으니 이쪽으로 오세요." 나림이와 예림이의 아버지인 분은 바로 얼마전에 새로 지어 요즘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놀이공원의 오너. 바닷가에서 있었던 일로 초대권을 보내주셔서 오게 된 것이었다. 사방이 금테를 두른 듯, 윤이나는 건물 안으로 발을 옮긴 일행들은 VIP용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나오셨습니까, 사모님." "언제나 수고가 많네요, 다들." 고풍적인 미소를 지으며 경비원들에게 인사하는 여자. 고개를 숙이고 있던 경비원들이 미노일행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런데, 이 분들은…" "아, 오늘의 특별 게스트예요. 그럼 수고들 해줘요."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누르고는 자신의 구역으로 걸음을 옮기는 경비원 한 명. 상당히 고급스러운 건물 디자인. 설계부터가 손이 아주 많이 갔을 것 같은 느낌이 물씬 풍긴다. 밖에서 보는 것 보다 안에 들어서니 더 굉장하게 느껴지는 심플한 디자인이 건물을 더욱 넓어보이게 만들었다. 딩동- 62층이라는 붉은 글씨와 함께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고, 바닥에 깔린 카펫을 밟으며 사장실로 향하는 일행들. 똑똑- "아, 들어와요." 문을 열고 들어가니, 안경을 끼고 업무를 보고있던 남자가 보인다. 흔히 볼 수 없는 미남형으로 잘생긴 얼굴. 바다에서 봤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무게가 실린 모습. "하하, 잘 와줬어요. 이리 와서 앉아요." 사장이 권하는 자리에 앉은 미노일행. 차를 내오겠다는 비서를 만류하고 직접 차를 끓이러 나간 사모님. "여러분들께 좋은 선물을 준비했어요, 이비서. 가져와요." "네, 사장님." 잠시 후, 뭔가를 담아 카트를 끌고 나오는 비서. 카트 위에 올려져 있던 뭔가를 각자가 앉은 자리의 앞에 놓아주고는 다시 사라진다. "자, 앞에 놓인 아이디를 손목에 착용하세요." "에…?" "특별한 분들께만 나눠드리는 이 아이디는 폐점시간인 11시까지 유효하며, 음식과 간식 모든 게 공짜니 맘껏 즐겨주시기 바래요." "하, 하지만 이런 걸 받아도 되는 지…" "부담갖지 말고 신나게 놀아주세요, 그게 저의 바램이니까요." "아… 감사합니다!" "단, 이 아이디는 잃어버리면 재발급이 불가능하니 잃어버리지 않게 확실히 착용해주세요." 아이디를 들어 손목에 착용한 미노일행. 찰칵- 거리는 금속음과 함께 시계와 비슷하게 생긴 푸른 색 아이디가 미노일행들의 손목에 자리잡았다. 사장실을 나와 놀이공원의 입구로 들어가는 미노. 그 뒤에 나란히 줄을 선 이현과 시혁, 그리고 예찬, 우주, 류예, 환희, 새휘 순서로 들어간다. 띡- "이야- VIP시군요!" "마음껏 즐겨주세요!"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깍듯이 인사하는 사원들에게 살짝 고개를 숙여보인 미노. "꺄아아악-!" "이야호-!" 롤러코스터를 탄 사람들의 탄성이 미노의 귓가에 들려왔다. 눈을 반짝이며 줄을 선 미노를 보며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피식- 하고 웃는 시혁일행. "어이어이, 처음부터 너무 고난이도 아니야?" "에에- 우주선배 무서운 거예요?" "하아? 이 서우주가 저런 기계덩어리를 무서워하다니 말이 되냐?" "헤에- 진짜요? 진짜 무서운 거 아니죠?" "글쎄, 아니라니까. 좋아! 롤러코스터인지 뭔지, 확실히 즐겨주도록 하지!" 잠시 후, 미노일행의 차례가 왔고 자리에 앉아 안전바를 내리자 상태를 확인한 사원이 출발하라는 신호를 줬다. 천천히 높은 곳에 도달한 롤러코스터. "자아- 모두 손을 높이 올리는 거야!" 우주의 외침에 모두 함께 손을 위로 뻗었다. 그리고 상당한 속도로 아래로 하강하는 롤러코스터. "꺄아아아-!" "미노야, 무서우면 안전바 놓지 마라! 킥." "아, 안 무서… 꺄아아악!" 자지러질 듯 소리를 질러대는 미노.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흐르고, 롤러코스터가 멈춰섰다. 큰 눈에 눈물을 그렁그렁하게 맺은 채, 퇴장하는 문으로 걸어나오는 미노. "하하하- 하여간 엄청 귀엽다니까…" "씨이… 놀리지 마요!" "하하- 알았어, 알았어." 꿍- 한 표정으로 우주를 보는 미노의 머리를 흐트린 예찬이 다음엔 뭐탈까… 하며 안내도를 따라 어디론가 이동했다. 가는 도중에 발견한 자그마한 동물원. 사막여우가 쪼르르- 나무 사이로 들어가 모습을 감춘다. "와아- 귀엽다!" "잠깐 보고갈까?" "응!" 해맑게 웃는 미노를 데리고 동물원 안으로 들어선 시혁일행. 신기한 동물들을 눈을 반짝이며 쳐다보던 미노가 한 곳에 멈춰섰다. 아무것도 없이 그냥 모래만 가득 있다. "에…? 여긴 왜 아무 것도 없지…?" "그러게…" 유리에 얼굴을 댄 채, 안을 살피고 있던 미노. 그런 미노의 눈 앞에 길고 반질반질한 몸뚱이를 가진 뭔가가 늘어섰다. "비… 비…" 얼음. 그 상태로 굳어버린 미노가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옆을 향해 손짓했지만, 아무도 잡히지 않는다. 눈 앞에 바로 보이는 붉은 혓바닥을 낼름거리는 파충류. 눈싸움을 하듯 유리에 따악- 붙은 채 얼어버린 미노로써는 어찌 할 바를 몰랐다. "비, 비단… 비단… 흐흑… 으아아앙…!" 미노의 울음소리를 듣고 옆에서 뛰어온 이현과 시혁, 그리고 우주와 예찬. "미노야! 왜 그래, 무슨 일…!" "흐어엉- 비, 비, 비… 흐아앙- !" 노란색과 흰색이 섞인 비단구렁이와 한바탕 눈싸움을 벌이고 있는 미노의 모습을 본 일행들의 표정이 경악에 찼다. "너… 지금 뭐하냐…?" "미노야…?" "떼, 떼어 줘… 흐흑… 이것 좀 떼어 줘어…!" 울먹거리며 달달 떨고있는 미노를 보던 시혁이 피식- 하고 웃으며 미노를 일으켜세웠다. 그런 미노의 움직임을 따라 몸을 길게 뻗어 유리창 너머로 배를 보이는 비단구렁이. "비… 비… 비… 비단… 비단…" "야야, 안돼겠다. 얘 쑈크오겠다." "일단 밖으로 나가는 게 좋겠어." 시혁은 약을 가져오겠다며 은샘과 함께 놀이공원의 의무실로 향했고, 이현의 품에 기대어 간신히 동물원에서 나온 미노. "괜찮아? 미노야…" "흐윽… 윽…" "자, 약 가져 왔어." 시혁이 건넨 약을 삼킨 미노가 조금 진정이 됐는 지, 멍- 해진 눈으로 이현과 시혁, 은샘과 예찬을 본다. "좀 괜찮아…?" "…… 끄덕끄덕." "바보같이, 왜 바짝 붙어서 안을 들여다 봐!" "아, 아무 것도 없어서… 혹시라도 작은 동물이면 어떡하나 해서…" "비단구렁이는 더우면 모래 속에 들어가서 몸을 식히는 파충류라구. 그것보다 많이 놀랐나 봐… 얼굴이 하얗게 질렸어. 어떡해…" 시리게 파란 눈에 슬픈 빛을 띈 예찬이 미노의 얼굴을 매만졌다. 아직도 불안한 지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는 미노를 보는 이현. "어라, 이현이?" 하이 톤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향해 시선을 옮긴 이현과 미노. "꺄- 이현이 맞잖아! 여긴 왠일이야? 응?" "… 떨어져." "왜 그래에- 그 날 이후로 연락이 안 되서 내가 얼마나 불안했는 지 알아?" 이현의 팔에 팔짱을 끼며 옆에 앉는 여자. "강민지. 떨어지라는 말 못 들었냐?" "왜 그래- 내가 뭐 화나게 했어?" 계속 앵앵대며 이현의 팔을 잡고 흔드는 민지. 미노는 생각났다는 듯, 피식- 하고 웃었다. "저번에 키스하던 여자네… 이름이 민지였구나." "미노야, 오해하지 마." "응? 얜 누구야? 와아- 예쁘다!" 눈치없게도 이현의 팔을 잡은 채, 미노에게로 얼굴을 들이민 민지. 그런 민지의 얼굴을 검지손가락을 튕겨 밀어버리는 미노. 따악- "꺄악-" "역겨운 얼굴 들이밀지 마." "뭐라구…?! 어머, 뭐 이런 애가 다 있어?!" "씨발." "뭐야?! 너 방금 욕했니?! 응?!" 민지를 힐끗- 하고 본 미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싸늘한 눈초리로 이현을 보는 미노. "교통정리 잘하고 와라, 소이현." 차갑게 한마디를 뱉은 채, 어디론가 걸어가는 미노. "도미노! 기다려, 아 씹! 안 떨어지냐?!" "뭐야! 얘기해 봐! 너 나 사랑하는 거 아니었어?! 근데 쟨 뭐야! 그 동안 나랑 연락 끊은 게 저거 때문이었냐구!" 툭- "이봐, 말 조심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민지의 구두를 발로 툭- 하고 찬 우주. 그런 우주의 행동에 눈꼬리를 매섭게 치켜뜨는 민지. "넌 또 뭐야! 아씨, 짜증나게!" "내가 짜증나는 건 너야. 당장 그 자식한테서 떨어져." 이현을 턱으로 가리키며 말하는 우주. 미노를 따라간 시혁과 은샘, 류예, 환희를 제외한 세 사람… 우주와 예찬, 그리고 새휘가 이현의 곁에 있었다. "너 방금 이현이한테 자식이라고 했어? 너 미쳤니? 응?!" "… 더 미치는 꼴 보고 싶으면 계속 그렇게 나대든지." "하- 이거 완전 미친 놈이네. 야…!" 탁- "씹, 어디다 대고 삿대질이야, 손가락 부러지고 싶냐?" "이거 놔! 이현아, 이 미친 놈은 뭐야! 얘기 좀 해 봐!" "나중에 연락할테니까 그냥 가라." "못 가! 뭐 이런 천박한 것들이 다 있어?! 아씨! 진짜 짜증나!" 피식- "그 하이 톤의 목소리 다시는 못 내게 성대 잘리고 싶냐? 귀가 존나게 아프거든…? 뭘 그리 꽥꽥 대는 지…" 비아냥거리며 말하는 새휘를 향해 독기어린 눈을 치켜뜨는 민지. 하이힐을 신은 채 쿵쾅거리며 걸어와 새휘를 올려다 보는 민지의 모습에 아니꼬운 표정으로 민지를 내려다보는 새휘. 하이힐을 신었는데도 불구하고, 새휘보다 머리하나는 작은 민지였다. "넌 또 뭐야, 얼굴 좀 반반하다고 아무데나 나서는 거 아냐! 알아?!" "화장품으로 떡칠한 얼굴 안 치우면 바로 아스팔트에 갈리는 수가 있다." 역시나, 상당히 무서운 발언을 웃으면서 하고 있는 새휘. 하지만 평소와는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왠만해서는 바뀌지 않는 새휘의 눈빛에 차가움이 스며들고 있었다. "안 가냐? 토 쏠린다." "하- 내가 누군 지 알고 너희 지금 이러는 거야? 나 강민지야! Y그룹 외동딸 강민지라고!" "네가 누구든 관심없으니까 꺼지세요." 민지에게로 향해있던 시선을 이현에게로 던지는 새휘. "소이현,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좀 알아야 되지 않겠냐…?" "……" "저번에 미노 연락 안 됐던 사건, 이거(?)랑 관련 있는거냐…?" 민지를 턱으로 가리키며 묻는 새휘. 그런 새휘를 보던 민지가 화를 내며 씩씩댄다. "왜 날 물건 취급 하는거야! 이현아, 얼른 애들 풀어서 얘들 다 묻어버려!" "넌 좀 닥치고 있어." 낮아진 새휘의 목소리. 섬뜩함이 묻어나는 새휘의 목소리에 날뛰던 강민지가 씩씩대며 자리에 앉았다. "미노 저렇게 돌변하게 만든 이유가 뭐냐…" "나… 알고있어." 예찬이 파란 눈에 살기를 띈 채, 입을 열었다. 새휘를 보던 예찬이 이현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다 정리된 거 아니었어…?" "뭘 정리하라는 거야! 아까 그 계집애 같은 녀석이나 정리하라…!" 퍼억- "씨발, 입 함부로 놀리면 다음엔 안 봐준다. 알았냐?" 민지의 옆에 있던 나무가 쪼개져 바닥으로 떨어졌다. 가공할 만한 우주의 주먹세기에 민지가 몸을 떨며 이현에게 달라붙었다. "얘, 얘네 뭐야? 깡패야? 응?" "… 손 떼." "이현아…!" "가 있어, 좀!" "… 알았어… 전화 해 줘야 해?" "가." 조심스럽게 이현의 곁에서 멀어지는 강민지. 그런 민지를 보고있던 이현이 허리를 숙여 다리에 팔을 걸치고는 손을 깍지꼈다. "너 뭐하는 녀석이냐." "저거(?)랑 키스하는 모습을 미노가 목격했다는 게 사실이야?" "……" "사실이냐고 묻고있잖아!" "하아- 회장 형은 그래도 너한테 믿음을 줬어. 근데 또 이런 식으로 배신을 때려…?" "아냐, 그런 게…" "그럼 뭐야! 미노 이외의 여자에게 입맞춤한 이유가 뭐냔 말이야!" "실수였어." "하- 뭐? 실수…?" "술 취해서… 엄청 앵겨대니까… 키스해주면 가겠다고 해서… 그랬던 것 뿐이야." 퍼억- "그걸 말이라고 하냐…? 그걸 본 미노의 마음은 어땠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새휘가 기대 있던 나무에 주먹을 내질렀다. "미안해하고 있어, 잘해 줄 거야." "벌써 몇 번째냐… 솔직히 미노가 싫어졌으면 그렇다고 말해! 더 이상 가지고 노는 거 두고볼 수만은 없어!" "싫지 않아!" "……" "싫은 게 아냐… 그런 게…" "장난으로 접근했던 거라면 이제 그 맘 접어. 더 이상 여린 녀석의 마음을 상처입히지 말란 말이야!" "… 장난같은 게 아냐, 진지해.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어. 내 목숨만큼이나 진지하게 대하고 있어. 하지만… 일이 자꾸 꼬여버려… 이런 내가 내 자신도 치가 떨리도록 싫다구…!" 타박- 타박- "… 놓치지 않을거다." 낮게 깔린 시혁의 목소리. 검은 빛을 띄던 시혁의 블랙홀 같은 눈동자에 푸른 빛이 깃들었다. "양보하는 일 따위 없어. 무슨 일이 있더라도 너에게서 빼앗을거다. 세상에 너보다 훨씬 좋은 조건의 남자가 많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면… 너도 조금은 조바심을 느끼게 될테지. 그 고통을 뼈저리게 느껴 봐." 강한 의지가 담긴 차가운 목소리. 그런 시혁을 보던 예찬과 시혁이 눈을 크게 떴다. 분명히 화가 나 있다고 말하고 있는 시혁. "… 시혁선배." "시혁아…" "지금 당장가서 그 여자랑 해결하고 와. 만약 해결하지 못하겠다면, 미노는 내가 갖겠어. 난 내 손 안에 들어온 것을 놓치는 법은 없으니, 각오하는 게 좋을거다." 이현이 느리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이현을 보던 시혁이 발걸음을 돌렸다. "… 기대하도록 하죠." 이현이 살짝 고개를 까딱- 해보이고는 놀이공원을 빠져나갔다. 그런 이현을 보며 차갑게 웃은 시혁이 예찬과 우주, 새휘와 함께 미노에게로 갔다. 벤치에 앉아 콜라를 마시고 있는 미노. "다음엔 뭐하고 놀까…?" "으엣-!" 옆에 앉아 말하는 새휘를 보고는 화들짝- 하고 놀란 미노가 휘청거리며 손에 들고 있던 콜라를 떨어뜨렸다. 밉지 않게 새휘를 흘겨본 미노가 바닥에 뿌려진 콜라를 보며 울상을 짓는다. "내 콜라…" "어이어이, 그 반응은 내가 콜라보다 못하다는 거야?" "그런 말이 아니잖아, 새휘 형." 은샘이 못말린다는 듯이 고개를 살짝 저었다. "콜라가 그렇게 좋아? 그럼 내가 몇 개라도 가져오도록… 읏- 차거!" 시혁이 웃으며 새휘의 볼에 콜라 캔을 갖다 댔다. 미노의 앞에 캔 하나를 내민 시혁. "아, 고마워요!" 친절하게도 미노의 콜라 캔의 마개를 딴 후에 주는 시혁. 그런 시혁의 모습에 헤에- 하고 살짝 웃던 미노가 스트로우를 꽂아 한 모금 마신다. 미노를 보던 시혁이 손에 들려있던 봉지에서 콜라를 꺼내어 예찬과 류예, 은샘과 환희에게 나누어준다. "뇌물이냐… 차시혁?" - 새휘 "닥치지 못하겠느냐…" - 시혁 "쳔…!" - 미노 마시던 콜라를 뿜어낸 미노가 콜록거리며 기침을 한다. "콜록콜록… 켁, 시혁선배 그런 말도 할 줄 알았어요? 콜록…" "차시혁은 대마왕이라는 걸 잊은거야?" "아! 그랬었지, 참!" "저런 바보녀석의 말에 맞장구 치는 거 아냐." 새휘를 살짝 흘겨준 시혁이 미노에게 손수건을 내밀었다. "으에- 안돼요! 선배, 손수건 더러워져요!" "괜찮아, 써도 돼." "음… 고마워요." 시혁에게서 손수건을 받아든 미노가 입 가를 박박 문지른다. "… 안돼겠다, 이리 줘." "아니에요, 괜찮아요! 혼자 할 수 있는데…! 앗- !" "말은 죽어도 안 들어." 시혁이 손수건을 받아 미노의 입가를 닦아주고는 만족한 듯 웃는다. 너무나 예쁘고 따뜻한 미소에 살짝 얼굴을 붉힌 미노. "자아, 이제 어디가지?" "으음… 전망대!" "오케이, 가자." 캔을 모아 쓰레기통에 집어넣은 미노가 손을 탁탁- 털며 전망대를 향해 걸었다. 도중에 보이는 여러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즐거운 듯 웃고 있는 미노. 남자로 변장했지만, 타고난 아름다움은 감춰지지 않았다. 미노가 지나가는 곳 마다 사람들의 탄성이 끊이질 않았고, 그런 사람들을 신경쓰지 않은 채 주위의 풍경을 보며 마음껏 미소짓는 미노. "신기해… 이렇게 행복할 수 있다니." - 예찬 "저 녀석을 보고있으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 - 류예 "회장 형에게 감사해야겠는 걸, 덕분에 보물을 발견했으니까." - 은샘 "약하고 가냘픈 몸으로 얼마나 많은 싸움을 했을까 생각하면… 대단해, 정말." - 새휘 "즐거워, 이렇게 함께하는 순간들이." - 시혁 "미치도록 좋아, 저 녀석을 볼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 우주 저 멀리 뛰어가던 미노가 뒤를 돌아 손을 흔든다. 그와 동시에 얼굴에 한가득 미소를 짓는 시혁 일행들. "선배들-! 빨리와요! 은샘아- 여기 경치 진짜 좋아!" "응- 곧 갈게!" 미노의 부름에 응답하며 행복한 미소를 짓는 시혁이었다. 그 후로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노을을 보기 위해 관람차에 탄 시혁과 미노. "와아- 예쁘다!" 무섭지도 않은 지, 유리창에 딱- 달라붙어 밖으로 보고있는 미노. 자연스럽게 입가에 걸려있는 예쁜 미소에 시혁이 낮게 웃음지었다. "정말… 예쁘네." "응응! 너무 예뻐요!" 붉게 물든 산등성이를 위에서 내려다보는 기분은 정말 최고였다. 해를 바로 앞에서 보고있는 것 같은 황홀한 기분. 저녁노을 때문일까, 미노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미노야…" 다리를 꼰 채, 의자에 앉아 미노를 나즈막히 부르는 시혁. "에? 왜요?" "… 이쪽에서 봐봐. 더 예뻐." "와, 진짜요?!" 쪼르르- 시혁이 있는 곳으로 다가가 창문에 코를 박은 미노. 여전히 눈을 반짝이며 노을을 보고있던 미노의 손목을 잡아 끌어당긴 시혁. "으앗- !" 놀란 듯 눈을 깜빡이는 미노. 그런 미노를 빤히 보던 시혁이 입을 열었다. "… 키스… 해도 돼…?" "…… 에엑- ! 서, 선배 무슨 말을…! 읍!" 시혁의 입술이 미노의 입술을 지긋이 눌러왔다. 입을 열지 않는 미노를 보던 시혁이 손을 들어 미노의 얼굴을 감쌌다. 부드럽고 달콤하게 파고드는 시혁. 붉은 노을을 등진 채, 감미로운 키스를 선사하던 시혁이 입술을 뗐다. "선배로써, 마지막 키스야." "……!" "다음 번엔, 널 좋아하는 한 남자로 네게 입맞출거야." * "덥지않아? 에어컨 틀어줄까?" "아뇨, 괜찮아요." "정말 신기하단 말이야, 왜 모델들은 땀을 안 흘리는 거지?" 겨울에 발간하는 패션잡지의 표지를 찍기 위해 한창 열을 올리고 있는 스튜디오. 뜨거운 조명을 받고있는데도 미노는 땀 한 방울 흘리지 않는 깔끔한 모습이다. "있지, 준아 모자는 어떤 게 좋을까?" 비안이 양 손에 모자를 든 채, 고민하고 있다. 미노의 얼굴에 메이크업을 하고 있던 여준이 그런 비안을 힐긋- 하고 본다. "왼쪽이 더 나은 것 같은데…" "음… 역시 그런가, 있지- 이것 좀 봐 줘!" 모자 하나를 가지고도 저렇게 진지하게 고민하는 모습이라니… 역시 프로는 뭐가 달라도 다른건가… "다 됐다, 이제 나갈까?" "응!" 여준이 미노와 함께 스튜디오로 나왔다. "수한씨, 모델분 준비 다 됐어요… 어머, 뭐해요?" 쇼파에 길게 누워 엎드려 있는 수한. 그런 수한의 모습에 살짝 놀란 여준이 의문을 터트렸다. "으음… 다음 자세를 구상 중이야." "에이, 거짓말." "거짓말 아냐!" 꽥- 하고 소리를 지르며 쇼파에서 일어나는 수한. 붉은 머리칼을 휘날리며 꿍- 한 표정으로 여준을 흘겨보는 수한이었다. "음… 이렇게 말이죠?" 방금 수한이 누웠던 자세로 엎드린 미노. 손등을 베고 자는 시늉을 하는 미노의 모습에 환한 웃음을 짓는 수한. "맞아, 바로 그거야!" "오- 느낌 괜찮은데?" "그치!" "아, 그럼 이쪽 모자가 더 어울리려나…? 삐뚤어지면 이상하니까." "조금 삐뚤어진 것도 귀여울 것 같은데요?" "그래? 음, 좋아. 일단 촬영해보자." 마지막으로 미노의 옷매무새를 정리해준 비안이 카메라를 보며 섰다. 찰칵- 찰칵- "지금 그 상태 좋아, 고개를 좀 더 왼쪽으로." 찰칵- "살짝 턱을 들어, 도발하듯이. 오케이." 찰칵- 찰칵- "역시, 비안이가 뽑은 모델은 다른데?" "굉장하죠…?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저 아이에게 향해있어요. 확실히 무대체질이에요. 왜 여태껏 발견하지 못했는 지…" 밝은 조명 아래서 여러가지 자세를 취하고 있는 미노를 보는 사람들. "카메라 앞에서도 기죽지 않아요, 저것보세요. 오히려 활기 차 보이죠…? 주위를 압도하는 저 아이의 존재감은 정말 최고예요." "과연 비안이의 말이 맞아, 저 녀석을 모델로 해서 찍은 잡지가 출간됐는데, 표지를 보고 샀다고 하는 편이 맞을거야. 지금도 서점에서 재고부족요청이 엄청 나." "그만큼 멋진 녀석이라는 건가…" 찰칵- 찰칵- "이제 서서 찍어볼까…?" 쇼파를 치우고는 자리에 선 미노. 그런 미노의 앞에 카메라를 위치시킨 수한이 급히 카메라 셔터를 눌러댄다. "잠깐만, 수한아. 모델한테 뭘 하라고 지시하지도 않고 그냥 막 찍는거야?" 여준의 물음에도 대답하지 않은 채, 계속해서 찰칵- 거리는 셔터음을 방출하는 수한. "모델이 상당히 맘에들었나봐. 저 녀석, 저렇게 기분좋은 표정은 처음 봐." 비안이 팔짱을 끼며 말했고, 슬쩍- 수한을 본 여준이 웃으면서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몇 시간 후, 마지막촬영이 끝났고 어느새 시간을 보니 저녁 10시가 넘었다. "수고하셨어요-" "아, 수고했어. 미노씨." "모두들 수고 많이 하셨어요!" 피식- "무슨 소리야, 자기가 제일 힘들었을텐데…" "아… 하하, 그럼 저 먼저 가볼게요!" "다음에도 같이 일하자. 찡긋-" 수한이 윙크를 해보이고는 계단을 내려갔고, 잠시 멍- 하게 있던 미노는 시계를 보고는 급히 스튜디오를 빠져나왔다. "으아아앗- 늦어버렸다!" 귀엽게 비명을 지르며 뛰어가는 미노의 앞에 나타난 검은 그림자. "여어- 잘 나가시는 모델분께서 이런 야심한 밤에 혼자 다니시면 되나…" "… 뭐야." 달칵- "요즘은 제법 조용히 살고 있는 모양이지…?" 옆에 있던 검은 차의 뒷 문이 열리고, 모습을 드러낸 남자. 다름아닌 미노의 큰아버지 도설현. "내 경고를 무시한 거야?" 차갑게 가라앉은 미노의 목소리. 그런 미노를 흥미롭다는 듯이 쳐다보던 설현은 피고있던 담배를 지져밟았다. "이게 과연 뭘까…" 설현의 손바닥에 놓인 한 쌍의 반지. 피가 엉겨붙은 모습이었지만, 용케도 그 반지가 무엇인지를 안 미노가 설현에게로 덤벼들었다. "내 놔! 당신 무슨 짓을 한 거야! 아악- 이 자식들아, 이거 놔!" "꽤 거칠군. 후후… 차에 태워." 미노의 팔을 묶은 채, 뒷 좌석으로 미노를 밀어넣은 남자들. "놔! 놓으란 소리 안 들려?! 놓으란 말야, 이 새끼들아!" "얌전히 있는 게 너에게도, 지금 내 손에 있는 두 년 놈들에게도 좋을거다." "당신이 뭔데 그딴 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놔! 가도 내 발로 가!" "계속 반항한다면, 전화 한 통으로 녀석들의 목숨을 끊어놓는 수가 있을텐데…" "… 빌어먹을…!" "큭큭, 출발해."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담배를 입에 무는 설현. 팔을 묶여버린 미노의 얼굴을 향해 담배연기를 내뱉은 설현이 손을 들어 미노의 턱을 잡았다. "큭큭, 과연 상당한 외모야…" "손 떼…" "널 이 상태 그대로 늑대들이 우글거리는 방에 던져놓으면 어떻게 될 지 정말 궁금하군, 크하하하!" "미친새끼… 악독한 인간!" "하하하, 좋아. 그렇게 쏘아붙여야 도미노답지." "닥쳐!" 짜악- 입 안에서 느껴지는 비릿한 피 냄새에 인상을 찌푸린 미노. 혀를 굴려 터진 곳을 찾아내고는 설현을 향해 피가 섞인 침을 뱉어냈다. 퉤- "아직 온전한 정신이 남아있다면 그거나 핥아. 개새끼." 미노를 향해 달려들려는 조직원을 손을 들어 저지한 설현이 손수건을 꺼내 얼굴에 묻었던 피를 닦아냈다. 인상을 찌푸린 설현이 미노의 턱을 끌어당겨 강제로 입맞췄다. "윽- 씨발, 뭐하는 짓거리야!" 설현의 배를 걷어찬 미노가 거친 욕을 하며 설현에게 소리쳤다. 아무래도, 이 새끼 변태가 아닌 듯 싶다. "큭큭, 조금 뒤면 내 발 아래 무릎을 꿇게 될 거다." "평생 꿈만 꾸다 뒈지시지. 그런 순간을 결코 오지 않을테니." 끼익- 차가 멈춰선 곳은 허름하고 낡은 창고 앞. 자신의 팔을 끌어당기는 떡대를 발로 차 넘어뜨린 미노가 차갑게 그들을 본다. "함부로 내 몸에 손 댔다간 죽여버릴거다." 살기가 가득 퍼져있는 눈동자를 본 조직원들은 몸을 떨었고, 그런 그들을 향해 놓아두라는 손짓을 한 설현이 담배를 바닥에 떨구며 걸음을 옮겼다. 철컹- 드르륵- "네 눈으로 잘 보라구. 저기 있는 두 년 놈들의 모습을." "……!" 피가 흘러내려 엉망이 된 얼굴의 남자와 뺨이 심하게 부어오른 여자. 미노의 표정을 보던 설현이 뒤에 있던 부하에게 밧줄을 풀어주라고 명령했다. 스륵- 미노의 팔을 결박하고 있던 밧줄이 힘없이 잘려나갔고, 그와 동시에 앞으로 달려나간 미노. "엄마!!!!!!! 아빠!!!!!! 정신차려요!!!!! 제발!!!!!!" "… 으윽… 미, 미노야…!!" "흐흑… 아빠, 아빠 괜찮아? 응?!" "왜… 왜 네가 여기에…!!" "엄마!! 엄마!! 흐흑… 엄마 많이 아팠지?! 미안해… 미안해!" "바보같이…! 왜 왔어…! 얼른 가, 얼른 도망 쳐!!" "싫어, 싫어!!! 같이 갈 거야!!! 죽어도 같이 죽을거야!!!" 스윽- "미… 노야… 너 만이라도… 얼른 가… 어서…!! 쿨럭-" "아빠!!!! 포기하지마!!!! 내가 구해줄게!!! 그러니까 힘내!!! 흐흑… 제발!!!!" 터벅- 터벅- "감동이 짠- 하게 밀려오는 모습이지만, 거기까지만 보도록 하지." 설현의 외침에 미노의 팔을 잡은 두 명의 사내. "안돼!!! 놔, 놔!!!!! 놓으란 말이야!!!!" "부, 부탁이니 미노만은 제발…! 컥!" 퍼억- "아아악- !!!!! 아빠!!! 건드리지 말란 말이야!!!! 이 나쁜새끼야!!!!" 사내들을 때려눕히고는 설현의 멱살을 움켜쥔 미노. 그런 미노를 잡아 한 쪽 구석으로 밀어버리는 설현이었다. 설현의 힘에 의해 바닥을 구른 미노가 손을 들어 앞머리를 쓸어올렸다. 너무나도 차가운 눈빛. 파랗고도 싸늘한 그 눈동자에 붉은 살의가 깃들고 있었다. "안돼!! 미노야!! 쿨럭쿨럭- !" "부탁이에요!!! 미노만은 건드리지 말아줘요!!! 제발!! 우리는 어떻게 되도 상관없으니까…!" 피식- "무슨 소리야… 바보같이." "미노야- ! 제발 가! 얼른!" "우린 상관하지 말고 어서가거라! 어서!" 필사적으로 외치고 있는 미노의 부모님. 그런 엄마아빠를 보던 미노가 입가에 잔인한 미소를 걸었다. "가라니… 어딜… 나 안 가…" "미노야- 부탁이다, 얼른 도망쳐!" "… 엄마, 아빠… 나한테 조금만 시간을 줘…" "무슨, 무슨 소리야! 제발… 쿨럭쿨럭- 도망 쳐!" "안 가! 저 빌어먹을 개새끼들을 죽이지 않고는 못 견딘다고!" "미노야! 안 돼!" "안된다! 미노야!" 미노의 시선이 엄마아빠를 향했고, 살짝 미소짓는다. 그런 미소의 의미를 알 리 없는 부모님은 놀란 눈으로 미노를 볼 뿐. "조금만… 조금만 기다려줘요…" "미노야 안된다, 터무니 없는 짓이야!" "… 곧… 구해줄게." "미노야, 안돼!" "다칠거야! 그만 둬!" "헤헤, 걱정 마. 죽어도 내가 이겨." 퍽- 퍼억- 눈깜짝할 사이 설현의 뒤에 서 있던 떡대들 두 명을 깔끔하게 날려버린 미노. 망설임없는 움직임을 본 설현이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들었다. 구석에서 각자 각목을 들고 나타나는 수많은 인원들. "자아- 이 정도면 너의 상대가 될 만하겠지." 피식- "그럼 오랜만에 재미있게 놀아들 보자구, 애송이씨." 미노가 차갑고 잔인한 미소를 입가에 건 채, 팔 목과 발목에 묶여있던 쇳덩이를 떼어냈다. 바닥에 떨어진 쇳덩이가 먼지를 일으키며 바닥을 움푹- 들어가게 만들었다. "호오- 꽤 재미있어지겠…!" 콰앙- ! 설현의 머리 바로 옆을 스쳐 창고에 부딪힌 쇳덩이. 순간 흠칫- 하며 얼어붙은 설현. 그런 설현을 붉은 빛이 감도는 살의가 가득한 눈으로 쳐다보는 미노. "… 당신, 당신도 덤벼." "큭큭큭, 난 애송이들이 노는 자리에는 끼지 않는다." "지랄하고 있네. 머릿 수로 덤비지 않으면 그 잘난 웃음을 짓고 있는 머리가 뭉게질텐데." "두고보면 알게 되겠지. 시작해." 설현이 뒤로 물러나자 앞으로 슬금슬금 나오기 시작하는 무리들. 저번에 학교 사건으로 인해 미노의 실력을 본 떡대들은 잠시 주춤거렸지만, 칼을 꽂아넣었던 녀석을 생각해내고는 이내 만족한 듯 웃음짓는다. 손에 들려있던 쇠파이프를 휘두르려 앞을 본 떡대들이 자취를 감춘 미노를 보고는 의아한 듯 두리번거렸다. 그런 떡대들의 뒤통수를 쳐버리는 미노. 빠악- "위다, 등신새끼들아." 쇠파이프를 휘둘러오는 순간에 재빨리 위로 도약해 뛰어올랐던 미노가 자그마한 욕설을 내뱉으며 현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상당한 빠르기로 상대방을 쓰러뜨리고 있는 미노. "죽을 각오해. 미쳐버린 나에게 걸린 이상, 살려서 돌려보내진 않아." 퍼억- 퍽- 퍽! 퍽- ! 깔끔한 뒤돌려차기와 빠른 스피드를 이용해 건장한 사내들 다섯 명을 기절시킨 미노. 뒤에서 공격하는 사내를 흘깃- 본 미노가 몸을 옆으로 움직이며 피하고는 팔꿈치로 턱을 비껴치며 몸이 밀려나자 발을 뻗어 발뒤꿈치를 들어 명치를 찍어버린다. "커헉-!" "비겁하게 뒤에서 공격하냐, 겁쟁이새꺄." 말을 끝나기 무섭게 앞으로 도약한 미노가 바닥에 쓰러진 놈들을 밟으며 아직 멀쩡한 녀석들을 향해 발을 뻗었다. 사정 봐 줄 것 없이 안면을 노려오는 녀석의 얼굴에 주먹을 질러준 미노가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남자의 무릎을 내려쳤다. 으드득- 뼈부러지는 소리가 들리며 한 남자가 주저앉았다. 그 남자의 굽혀진 무릎을 밟고 뛰어오른 미노가 뒤돌려차기로 덤벼오는 남자 두 명을 날려버린다. "미, 미노야…!" "세상에나…!" 여태껏 미노가 싸우는 모습을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부부가 놀라움을 자아내며 미노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30분이라는 시간동안 쉬지않고 움직이면서도 숨이 찬 모습을 보이기는 커녕, 지친 기색도 보이지 않는 미노의 모습에 설현은 초조한 듯 담배를 입에 물었다. 여전히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싸우고 있는 미노. 휘둘러오는 주먹을 뒤로 움직이며 피하고는 주저할 것 없이 명치에 주먹을 내질러 주는 미노였다. 퍼억- 퍽! 퍽퍽- ! "끄아악- !" "으아아악!" "으악- ! 커억! 캭!" 꾸욱- "씨발, 존나 시끄러. 입 닥치세요." 뼈가 부러져 신음하고 있는 남자들의 입을 자근자근 밟아준 미노가 잔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들었다. 경악에 찬 사내들의 얼굴이 보이자 더욱 짙게 미소짓는 미노. "벌써 겁 먹어버리면 늬들 덩치가 아깝잖아, 새끼들아!" 퍼억- 퍽! 퍽퍽퍽! 퍽! 빠각- 팍! 다리를 올려 어깨를 내리찍는 미노의 공격에 들고있던 무기를 놓쳐버린 남자가 어깨를 부여잡고 바닥에 쓰러졌다. 그런 남자에게로 다가간 미노가 다리를 들어 무릎을 밟았다. 으드득- "끄아악-!" "비명소리가… 듣기좋군." 퍼억- 기절해버린 남자의 턱을 올려친 미노가 싸울 기세를 잃어버린 녀석들에게로 천천히 다가갔다. 미노가 다가갈 수록 점점 물러나는 사내들. 그들을 보는 미노의 눈에 차가움과 싸늘함이 자리잡았다. "덤비라구, 늬들도 편안하게 바닥에 눕혀줄테니." 퍼억- 공중에서 제비를 돌아 남자의 얼굴에 발차기를 먹여준 미노가 바닥에 가볍게 착지했다. 거품을 물고 기절해버린 사내의 팔을 꺾어버리는 미노. 빠각- "끄아아악-" 팔이 부러지는 아픔에 기절했던 남자가 정신을 차렸다. 그런 남자에게로 다가간 미노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남자를 내려다본다. "아픔을 느끼기도 전에 기절해버리면 재미없잖아. 더욱 고통에 찬 울음소리를 들려달라구." 악마. 악마보다 더한 잔인함에 겁을 집어먹은 사내들이 무기를 던지고 밖을 향해 달아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그들의 앞을 가로막은 미노. "그렇게 말짱하게 움직이는 모습들을 보니… 어째 비위가 뒤틀려. 좀비처럼 흐느적거리는 모습을 보여달란 말이야… 재미없게 도망가지 말란 말이다, 새끼들아!" 그 자리에서 뛰어올라 10명 중에 다섯 명을 기절시켜버린 미노. 어깨를 밟고, 입을 짓뭉게고, 목을 밟은 채 팔을 부러뜨리고 무릎을 박살낸 미노가 만족한 듯 미소지었다. "으흐흑… 흐흑…!" 얼마나 아팠는 지, 눈물을 흘리는 남자. 그런 남자의 흐느낌이 듣기 싫었는 지, 인상을 찌푸린 미노가 남자의 입을 밟아버린다. 꾸욱- "꼴사납게 쳐 울기는…" 마지막으로 살극무를 발휘해 다섯 명을 반 병신으로 만들어버린 미노가 느릿하게 설현에게로 시선을 던졌다. 얼마나 놀랐는 지, 도망 갈 생각도 하지 못했던 듯 그 자리에 얼어있는 설현. "으으…" 약간의 신음을 흘리고 있는 설현을 빤히 쳐다보는 미노. 차가움과 냉정함, 싸늘함과 냉혹함이 담긴 눈을 보던 설현이 다리에 힘이 풀렸는 지 바닥에 주저앉았다. 바닥에 흥건히 고여있는 비린내가 나는 핏방울들. 그 피가 고인 웅덩이에서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설현을 보고있는 미노. "구역질나지…?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모습을 보니까… 저기 사방에 뻗어있는 시체같은 놈들을 보고있으니까 토할 것 같지…?" "……" "근데, 난 피냄새가 좋아. 나한텐 저 두 분이 전부였어. 그 사람들을 잃기 싫어하는 내 마음을 당신이 이용하려 했다면… 잘못 짚어도 한참을 잘못짚은거야… 미쳐버린 난, 평소보다 3배가 넘는 위험한 기술을 사용할 수 있거든." 혼절해버린 설현의 윗 주머니를 뒤져 품에 있던 나이프를 꺼내 든 미노. 손수건으로 자루를 움켜 쥔 미노가 설현의 다리에 칼을 꽂아넣었다. 푹- "으아악- 으아아악!" "… 내 몸에 칼이 꽂혔던 순간에도 존나 아프더라. 그 아픔 당신이 직접 느껴봐." 허벅지에 찔린 칼을 뺄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덜덜 떨고 있는 설현에게서 반지를 빼앗았다. "이건 너 따위가 탐낼만한 물건이 아냐." 설현을 지나친 미노가 부모님을 옭아매던 밧줄의 매듭을 풀었다. 짙은 검은 색 눈에서 느껴지는 슬픔을 뒤로 한 채, 씨익- 하고 웃어보이는 미노. "헤헤- 거 봐, 내가 이길 거랬잖아." 53. [수술실] 불이 켜진 수술실 앞에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는 미노. 눈물이 나오려는 걸 억지로 참은 채, 환자복을 입은 어머니와 꼭 끌어안고 있는 모습이다. 얕게 찢어진 피부와 찰과상, 타박상을 제외하면 그나마 다행인 모습의 어머니와는 달리 미노의 아버지는 어머니를 보호하려다 많이 맞은 듯 싶었다. 두개골이 깨져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병원에 왔을 때 의사가 한 말이 미노를 절망하게 만들었다. 위잉- 자동문이 열리고, 의사가 뛰어나왔다. "최간호사! 혈액 아직 멀었어?!" "선생님, 큰일입니다! 혈액이 모자라요! 지금 혈액센터에 연락한다고 해도 시간이 부족한데, 어떡하죠?" "급한대로 o형이라도 가져 와!" "그게, 앞에 수술했던 환자가 모두 써버린 지라 o형 혈액도 남아있지 않아요!" "뭐야?! 큰일이군, 저대로 두면 위험해." 다각- 다각- "저희들이… 채혈할게요." 어떻게 알았는 지, 병원으로 뛰어들어온 은샘과 우주, 시혁과 새휘. 그리고… 많이 야윈 모습의 이현까지. "하, 학생들…!" "이미 병원에 연락해서 알아보고 같은 혈액형인 사람들만 온 거에요! 서둘러요!" "나도… 나도 하겠어!" 시혁의 말을 들은 미노가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그런 미노를 저지하는 이현. 너무나 슬프기만 한 눈동자. "넌 그냥 있어." "싫어, 이대로 있으면 미쳐버릴 것만 같아." "미노야… 괜찮을 거야." "…… 흐흑… 흡… 으응… 괜찮아야 해." 미노를 살포시 안아준 이현이 간호사와 함께 채혈실로 들어섰다. 그 뒤를 따라 급히 들어가는 은샘과 우주, 새휘. "우리 피를 다 써서라도 살려낼 거니까, 걱정 마." "… 믿어도… 믿어도 되는거죠…?" "물론이야, 믿어." 떨고있는 미노를 꼬옥- 하고 끌어안아 준 시혁이 채혈실로 들어갔다. "괜찮을 거야, 아빠 괜찮을거야. 미노야…" "… 응, 괜찮을거야. 분명… 나 믿고 기다릴래." 엄마를 안심시키기 위해 활짝 웃어보이는 미노. 말 못 할 정도로 슬프면서도 감정을 억제하고 스스로를 다스린다. 놀라울 정도의 자제력. "뭐야? 지금 수술이 잡혀있다고?" "네! 아직 앞에있는 환자의 수술이 덜 끝났다고 합니다." "빨리 끝내라고 전달해!" "피가 모자라 수술을 못하다가 방금 수혈을 받았답니다. 아무래도 빨리 끝내는 건 무리이지 싶은데…" "내 환자도 저대로 두면 다리를 못 쓰게 된다고! 아, 어쨌든 끝나면 바로 시작할테니 준비해 놔." 어디론가 뛰어가는 간호사를 보며 인상을 찡그리던 남자는 곧 침대에 눕혀져 오는 환자를 보고는 안절부절한다. 의사의 뒤로 줄지어 늘어선 검은 정장을 입은 수많은 사내들. 험악한 인상에 얼굴을 사정없이 구기고 있던 그들의 눈이 미노에게로 향했다. "저, 저 새끼야!" 손가락질을 하며 소리치는 한 명의 사내. 그런 사내가 가리킨 곳을 향해 일제히 고개를 돌리는 나머지 떡대들. "보스 다리를 이렇게 만든 새끼가 저 새끼라고요!" "… 뭐야?!!" 놀란 표정으로 미노를 보던 사내가 투박하게 걸어와 미노의 멱살을 잡았다. "미노야! 안된다, 이 놈들아! 당장 그 손 놔!" "아줌만 뭐야?! 저리 안 꺼져?" 미노의 엄마를 벽 쪽으로 밀쳐버리는 사내. 그런 사내를 발로 차 바닥에 눕혀버린 미노가 엄마를 잡았다. "엄마! 괜찮아?" "으응, 괜찮아. 미, 미노야! 뒤…!" 퍼억- 엄마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이미 미노의 다리는 남자의 턱에 위치하고 있었다. 육중한 몸뚱이를 휘청거리며 뒤로 물러나는 남자. "크윽- 애송이새끼. 꽤 하는구나." "백상어 나와라." 미노가 나즈막하게 백상어를 불렀고, 조직원들 사이에 끼어있던 백상어가 주춤거리며 앞으로 나왔다. "이 새끼가 어디서 백상어 형님을 함부로…!" 탁- 안면을 향해 날아온 주먹을 피하지 않고 잡아버린 미노. 그런 미노를 향해 놀라운 눈을 하던 사내는 손이 빠지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네 놈의 자랑거리가 바로 이 손모가지인가보지?" "뭐야?! 이거 안 놔?!" 으득- "으아악-!" "존나 아프지…? 백상어 어깨 부서진 거 봤겠지…? 그 새끼 어깨 박살낸 것도 나고… 니네 잘난 보스 다리 병신 만든 것도 나야. 그러니 네까짓 거 손모가지 부러뜨리는 건 일도 아냐, 알아들어?" "으으… 제기랄!" 사내가 나머지 손을 들어 주먹을 뻗었고, 그 순간 잡혀있던 사내의 손목을 꺾어버린 미노. 뿌드득- "크아아악-!" 흐느적거리는 손목을 부여잡고 바닥에 주저앉은 사내. 그런 사내를 내려다보는 미노의 눈초리는 싸늘하기만 하다. "내 말을 귓등으로 들었냐? 개자식아. 이 참에 늬네 조직생활 못하게 팔다리 망가뜨려 줘?!" 털썩- "죄송합니다, 제발 그것만은…!" 백상어가 한 팔에는 깁스를 한 채,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퍼억- 앞에 주저앉아 신음을 흘리고 있는 사내를 기절시켜버린 미노. 차갑고 냉혹한 회색빛눈동자가 백상어에게로 닿았다. "이 새끼 가지고 내 눈 앞에서 사라져. 마지막 경고다. 두 번 다시 이딴 더러운 짓거리 했다간… 늬들 목숨 하나로 끝나지 않을거다." 새파랗게 질린 백상어가 부하들을 시켜 기절한 사내를 들쳐멨다. 그런 조직원들의 옆에서 벌벌 떨며 미노를 보고있는 의사를 지나친 미노가 다리를 움직여 침대에 누워있는 설현에게로 다가갔다. "… 아직도, 내가 당신네 썩어빠진 조직을 이어주길 바래…?" "으으…" "진짜 보스라면 죽을 힘을 다해서 덤벼 봐. 이런 애들 장난으로 시시하게 만들지 말고." 소름끼칠 듯이 차가운 웃음을 지으며 설현에게서 멀어지는 미노. "내 소중한 사람을 건드린다면… 그 누구도 용서하지 않아. 설령… 피를 나눈 가족이라고 하더라도." 부리나케 밖으로 도망치는 조직원들을 냉혹한 눈으로 보는 미노. "미노야…" 엄마의 손을 잡으려던 미노가 몸을 움츠리고는 급히 화장실로 뛰어갔다. 시원하게 쏟아지는 물에 손을 담근 미노가 슬프게 미소지었다. "다른 사람을 아프게 한 손으로… 엄마를 만질 순 없잖아." * "엄마아- 아빠아-" 드르륵- 쾅! 검은색 바탕에 흰색의 글자가 박혀있는 민소매 셔츠를 입은 미노가 병실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매끈하게 잘 빠진 허리를 드러내는 옷을 입은 채, 화사한 미소를 짓고있는 미노. 덕분에 미노의 관능미는 초절정으로 끌어올려진 상태다. "나 촬영 마치고 왔어어-" 엄마의 품에 안겨 귀엽게 얼굴을 부비적대는 미노. 그런 미노를 보는 아빠의 입가에 자연스럽게 미소가 걸렸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미소를 얼굴에 가득 띄운 채, 촬영장에서 있었던 일을 말하고 있는 미노. "꺄아악- 미노씨! 싸인 좀 해주세요!" "미노씨- 사랑해요! 너무 멋있어요!" 사인지와 펜을 들고 미노의 곁으로 몰려든 팬들. 수많은 여자팬들에게 둘러싸인 미노가 난처하다는 듯이 인상을 찡그렸다. "으아아- 젠장! 밀지 마!" "꺄아악- 미노씨! 저도 해주세요!" "미노씨! 제게 입맞춤을- 꺅!" "사랑해요- 미노씨! 반해버렸어요!" 오랜만에 찾아온 평온한 분위기를 깨버린 불청객들을 향해 차.가.운 미소를 샤방- 하게 날리고 있는 미노를 본 가드들이 급히 뛰어들어왔다. 이대로두면 팬이고 뭐고 다 밟아버릴 것이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친 것이겠지. 가드들에 의해 밖으로 밀려나가는 팬들을 향해 웃으며 손을 흔드는 미노. 뚜벅- 뚜벅- 뚜벅- "안녕하세요! 저희왔어요!" 환하게 웃으며 들어오는 다섯 명의 꽃미남들. "이야- 좋아지셨네요!" - 우주 "점점 더 아름다워지시는 것 같네요, 어머님." - 예찬 (어머님을 유혹하면 어쩌자는 거니…) "바쁠텐데, 뭐하러 왔어요. 이제 조금있으면 퇴원할텐데." "당연히 찾아뵈어야죠. 많이 나아지신 것 같아 다행입니다. 이 녀석이 엄청 걱정했거든요." - 시혁 미노의 머리를 흐트리며 눈부신 미소를 짓는 시혁. 뒤에 있던 이현이 그 모습을 보고는 미노의 팔을 잡아채 자기 품으로 끌어당겼다. "앗- !" 외마디 비명과 함께 이현의 품에 안기다시피 되어버린 미노. 미노의 머리를 손으로 감싸 안은 이현이 매서운 눈빛으로 시혁을 본다. 그런 이현을 향한 시혁의 눈빛 또한 만만치 않게 차갑다. "이, 이것 좀 놔보라구-" 이현의 손에 잡혀있던 미노가 바둥거리며 반항하자 팔을 잡아버리는 이현. 그런 이현을 무시한 채 미노의 허리에 팔을 감고는 미노의 목덜미에 입술을 묻은 시혁. 이게… 이게 대체 무슨 짓이냐고오- ! "어이어이, 둘 다 부모님 앞에서 너무 진한 거 아냐?"- 우주 "회장형의 저런 모습… 나 처음 봐." - 은샘 "뭐, 눈이 즐거우니 그걸로 된 건가… 후후." - 류예(사실 진정한 대마왕은 이 사람일 지도.) 찰칵- 플래시를 터트리고는 씨익- 웃고있는 수한. 그런 수한의 옆에는 긴 은발머리를 땋은 채, 팔짱을 끼고있는 비안이 보인다. 씨익- "럭키, 이거 꽤 괜찮은데." 미노를 향해 사악한 미소를 날린 수한. "바보! 뭘 찍은거야! 당장 내 놔!" 도망가는 수한의 뒤를 쫒아 병실을 뛰어다니고 있는 미노. "사진 못 찍게 만들기 전에 당장 내 놔!" "그건 안되지- 난 절대 못 주니까 능력껏 뺏어보던가- 킥." 미노를 약 올리며 이리저리 피해다니는 수한. 그런 수한과 미노를 보는 미노의 부모님과 시혁과 이현, 우주, 예찬, 류예, 은샘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한참을 뛰어다니던 수한이 비안을 옆구리에 끼고는 병실 밖으로 줄행랑을 놓았다. (불쌍한 비안이, 오랜만에 얼굴 내밀었는데 한마디도 못하고 가다니…) "다음에 나올 잡지 표지는 이미 정해진거다! 다음에 보자, 도미노!" "거기 서! 서라구!" 미노의 외침을 무시하고 엘리베이터의 문을 닫아버리는 수한. 분노에 몸을 떨던 미노가 쿵쾅거리며 병실로 들어섰다. "으- 저 사악한 자식." "뭐, 그렇게 화낼 것까진 없잖아." - 우주 "그래, 미노야. 좋게 생각하면 되는 거잖아." - 은샘 그 후, 회진을 나온 의사를 본 미노와 이현, 시혁일행이 병원을 빠져나왔다. 중천에 떠 있던 해가 어느새 뉘엿뉘엿 산등성이를 향해 떨어지고 있다. "참… 미노야, 촬영이 없는 날이 언제야?" "음, 이번 주는 비어있는데… 왜요?" "여행이나 갈까, 둘이서." "… 에?" 탁- "에이, 시혁아. 미노에게 무슨 짓을 하려고…" 시혁의 어깨에 팔을 올리며 나타난 새휘. 역시나 불쑥불쑥 나타나는 새휘의 모습에 화들짝- 하고 놀란 미노가 뒤로 물러났다. "바보는 비켜있으라구." "아아, 안되지! 난 늑대들 사이에서 우리 미노를 지켜야한다구!" "내가 지켜." 단호하게 말하며 새휘를 떼어낸 시혁이 웃으며 미노에게로 다가가 뒤에서 미노를 끌어안았다. (시혁아, 너무 멋있는 거 아니니?) "선배가 아닌 한 명의 남자로써 네게 말하고 있는거야, 미노야." 두근- 두근- 시혁의 심장소리가 미노에게로 전해졌다. 덕분에 얼굴이 붉어져버린 미노. 둘을 보던 이현이 둘은 절대로 안된다며 반대하고 나섰고, 그 뒤를 따라 쿠데타(?) 비슷하게 반대하고 나서는 예찬과 우주, 은샘, 류예. (새휘는 말할 것도 없이 강력반대 중이다.) "절대 둘이서는 못 보내지!" - 우주 "회장형, 응큼해." - 은샘 "꼭 그런 것만은 아니잖아!" - 시혁 은샘의 말에 발끈하는 시혁을 보며 푸훗- 하고 웃음을 터트린 미노. 그런 미노의 모습을 본 은샘과 시혁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피식- 하고 웃었다. "… 하는 수 없지, 다 같이 가는 걸로 결정이다." - 시혁 멋드러지게 미소를 지으며 앞머리를 쓸어올린 시혁이 미노를 보며 작게 미소지었다. 세상에서 가장 값진 것을 보는 듯, 아주 행복한 눈을 하고서 말이다. * 시원하게 물살을 가르며 움직이고 있는 커다란 유람선. 갑판 위에 오른 미노는 하늘거리는 흰색의 드레스를 입고있다. 한 쪽에 마련된 테이블에서 칵테일을 즐기고 있는 여섯 명의 꽃미남들. "날씨가 좋아서 다행이지?" 난간을 잡고 아슬아슬하게 바람을 맞고있는 미노에게로 다가선 시혁이 들고있던 잔을 건넸다. "색깔이… 너무 예뻐요." 상쾌한 마린블루 색의 액체가 브랜드 글래스 안에서 넘실거렸다. 파인애플과 체리로 장식한 후, 스트로를 꽂아 멋스러움을 더한 모습. "블루하와이." "… 네?" "그 칵테일의 이름이야. 네게 잘 어울려." 예쁜 미소를 짓고있는 시혁은 누가봐도 정말 잘생겼다고 여길만 할 외모였다. 그런 시혁을 보며 살짝 얼굴을 붉힌 미노. 탁- "오오- 여자 많이 꼬신 솜씨야, 차시혁." "……" 애써 입을 꾹- 다문 채, 주먹을 부들부들 떨고있는 시혁. (좋은 시간을 방해받아 열받고 있다.) 그런 시혁의 어깨에 팔을 걸친 채 싱글거리는 새휘. 휙- "… 그럴 리가 없잖아, 바보녀석아." 어깨를 움직여 새휘의 팔을 털어낸 시혁이 새휘에게서 등을 돌렸다. 그런 시혁의 옆으로 가 난간에 기댄 새휘가 넌지시 시혁을 쳐다본다. "저런 술 종류도 알고 있는 걸 보면, 차시혁 너 사실은 날라리였던 거 아니냐?" "… 저 정도는 사교성을 기르는데 필요한 부분이라고." "헤에- 하지만 왠지 믿음이 안 가." 퍽- "난 네 그 표정이 믿음이 안 간다, 바보녀석." 새휘의 가슴을 살짝 터치(?)해 준 시혁이 비어버린 잔을 들고는 갑판 아래로 내려갔다. 시혁이 내려간 후, 얼마의 시간이 흐르고 이현이 조금은 꿍- 한 표정으로 미노에게로 다가왔다. "저기 좀 봐, 수평선 너머가 보일 것 같아." "… 도미노." "응?" "화… 많이났냐?" "… 므은? (무슨?)" (스트로를 입에 물고있는 상태라 발음이 안 좋다.) "놀이공원에서… 있었던…" 진지한 이현의 표정을 본 미노가 작게 미소지으며 손을 내저었다. "특별히 화가났다거나 그런 건 아냐." "……" 싱긋- "그래서…?" "… 응?" "교통정리는… 잘 한 거야?" "… 별로 그런 거 아냐." "응…?" "솔직히 많은 여자들을 안았던 건 사실이야. 널 알기 전까진… 난 아무래도 뒷세계에 연연하고 있었으니까…" "……" "흑월회는 단순히 조폭들만 상대하는 조직이 아냐. 연예계나 과학계, 심지어 정치나 외교쪽으로도 손을 뻗치고 있어… 그러던 중, 연예계의 이름난 스타들이 어둠으로 빠지게 됐고, 난 그런 도중에 여러 사람들을 만났어. 내가 돈을 대주면 여자들은 잠자리를 갖자고 하지." "……" 피식- "… 더럽지, 아마 그렇게 생각 할 거야. 이런 내가 널 탐내는 게 웃기는 일이라는 건 알아… 하지만…" "……" "진심으로 널 원하고 있어. 네가 소중하지 않았다면… 너희 집 빚을 대신해서 갚은 그 날, 그 대가로 바로 널 안았을거야." "……" "난 그 어떤 것과도 사랑에 빠지지 않는다고 자신하고 있었어. 널려있는 여자를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안는 내가… 사랑에 빠지는 웃긴 일은 일어나지 않을거라고 생각했거든." "……" "그런데… 있지, 미노야." "……" "내 심장이 널 갖고싶어해…" "……!" 미노의 드레스가 바람에 날렸다. 그와 동시에 이현이 미노의 허리에 팔을 감고는 입술에 덮치듯 키스했다. 처음 만났던 때와 같은 달빛아래, 바다향기가 맴도는 키스. "욕심이라고 이름붙여도 좋아, 널 원하는 내 마음은 진짜니까." * 시혁과 이현은 식당에 나오지 않았다. 모두 모여 식사를 하는 도중에도 모습을 나타내지 않은 두 사람. "헤이, 미노. 이거 마셔 봐." 새휘가 내민 잔을 받아든 미노. 붉은 색의 액체가 담긴 칵테일 글래스. "이건 뭐예요?" "글쎄- 시혁이한테 한번 가서 물어 봐." "으음, 알았어요!" 쏟아지지 않도록 조심하며 시혁의 방으로 향하는 미노. 도중에 보이는 야경에 넋을 놓은 채, 밖을 보고있다. 검은 밤하늘에 수놓아진 별처럼, 어둠이 내리깔린 도시에 간간히 비치는 불빛은 보는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놓을 정도로 아름다운 모습. 할짝- 새휘가 준 붉은색의 액체를 살짝 마신 미노. 달콤한 맛이 혀끝을 타고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 "맛있다- 헤헤." 왠지 몸에 힘이 빠지는 것 같은 느낌. 너무 오래 야경을 봐서 그런가, 하고 생각하던 미노는 시혁의 방으로 가던 길이라는 걸 깨닫고는 선미로 다가갔다. 벌컥- "어라아- 죄송합니다아- 모르는 분의 방에 들어와서요오-" "실례네, 나야." "… 아레레, 시혁선배다아-" 얼굴에 홍조를 띄고있는 미노를 본 시혁이 머리를 닦던 수건을 끌어내렸다. 상반신을 드러낸 채 앉아있던 시혁이 미노에게로 다가왔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무슨 일이야?" "음, 그게요오- ! 무슨 일 때문에 왔더라아-" 미노가 특제버릇인 '검지손가락 입술에 댄 채 생각하기' 를 하고 있을 때, 시혁이 미노의 손에 들린 잔을 빼앗더니 살짝 향기를 맡았다. "너 이거 마신거야?" "에…? 아, 맞다! 새휘오빠가 이거 이름 모른대서 물어보러 왔는데 조금만 마신다는 게- 야경이 너무 멋있어서, 반짝거리길래… 맛있어서…!" 횡설수설인 미노를 보며 피식- 하고 웃어버리는 시혁. "이걸 다 마셨으니, 당연한 건가…" 중얼거리는 시혁을 보던 미노가 탁자로 쪼르르- 하고 달려가 앉는다. 문득, 앞에 놓여있는 잔을 본 미노가 손을 뻗어 잔을 들었다. "선배- 이게 뭐예요?" "이거이거, 괜히 데려와서 술만 배워가는 거 아닌가 몰라." "빨리이- 가르쳐줘요! 선배가 마신 건 뭔데요-" 어린아이처럼 떼를 쓰는 미노의 모습에 작게 한숨을 쉰 시혁이, 웃으면서 미노를 본다. "휴, 어쩔 수 없나. 이름은 드림. 잠들기 전에 마시는 칵테일." "아아- 근데요, 선배." "… 왜 그래?" 부드러운 눈으로 미노를 보고있는 시혁. "나 좋아해요…?" 취기가 돌아 약간 흐릿한 눈동자, 감길 듯 말 듯한 아슬아슬한 모습으로 시혁을 보는 미노. 그런 미노의 모습까지 귀엽게만 느껴지는 시혁. "… 응, 좋아해." "왜요… 왜 좋아해요…?" "… 이유같은 건, 처음부터 없었어." "선배는… 선배는 왜!" 앉아있던 자리에서 벌떡- 하고 일어난 미노가 시혁을 꿍- 한 표정으로 본다. "왜… 왜 그렇게 친절해요…? 왜, 아무한테나 다… 다 친절하게 굴어요…?" "…… 무슨 뜻인지 물어봐도 돼?" 휘청거리는 미노의 허리에 팔을 감은 채, 미노의 턱을 잡아 위로 올려 자신을 보게만든 시혁. 아찔하기만 한 자세. "너무 친절하니까… 그러니까…! 읍!" 시혁이 미노를 안고 입을 맞췄다. 술 기운 때문인지, 반항하지 못하는 미노. 그런 미노를 안은 채, 달콤하고 상큼한 향이 감도는 타액을 섞는 시혁. "… 네가 먼저 유혹한거야." 시혁이 미노를 안아 침대로 옮겼다. 바둥거리는 미노의 팔을 잡은 시혁이 입술을 겹쳤다. "으… 하앗, 선… 선배… 하… 하지… 으읏-" 시혁이 미노의 목을 감싸고 있던 후크를 풀고는 입술을 아래로 미끄러뜨렸다. 가빠오는 숨을 참지 못 해 입술을 연 미노. 하지만 그마저 용납하지 않는 시혁이 다시 미노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겹쳤다. "… 아앗- 이, 이러지… 으응… 마… 아읏-" 조금은 야한 소리를 내는 미노를 보던 시혁이 피식- 하고 웃고는 미노의 위에서 내려갔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침대에 쓰러져있는 미노. 시혁에 의해 목과 쇄골에 남겨진 붉은 키스마크가 유독히 눈에 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지만 다음엔 책임 못 져." 쪽- 미노의 이마에 입을 맞춘 시혁이 셔츠를 챙겨입고 식당으로 갔다. 시혁의 모습을 본 새휘가 손을 흔들었다. "여어- 미노는?" "… 잔다." "야! 너 임마, 결국에…!" 퍽- "바보, 무슨 생각하는 거야." "윽- 하지만, 너에게 내가 준 칵테일 이름을 물어보라고 보냈더니 왜 자고있다는 건데! 그게 말이 안되잖아, 말이!" "… 그렇게 독한 술을 준 네 녀석 잘못이잖아." "아, 그거. 그냥 재미삼아서 준건데…" "젠장, 취해서… 그런 모습으로…" 시혁이 얼굴을 붉히며 이마를 짚었다. 살짝 흔들리고 있는 시혁의 눈을 본 새휘가 씨익- 하고 웃는다. "헤에- 차시혁. 그래서 순간 미노를 안을 뻔 했다, 이거냐?" "… 그런 모습을 보고도 멀쩡할 정도로 난 아직 사람이 되지 못했어…" 54. "으…" 약간의 신음을 흘리며 눈을 뜬 미노. 지끈거리는 머리를 손으로 감싸며 자리에서 일어나 주위를 둘러본다. "여기가… 어디지?" 침대에서 내려온 미노는 어제 입은 옷 그대로인 걸 알고는 고개를 갸웃- 했다. 새휘가 건네준 술을 손에 들고 선미로 나온 것까진 기억한다. 그런데 그 뒤에 무슨 일이 있었는 지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고 있다.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던 미노의 눈에 문득 옆에 놓여있는 옷가지가 보인다. [이걸 입도록 해.] 옷 위에 놓여있던 쪽지를 본 미노가 일단 욕실로 들어가 몸을 씻었다. 아직 물기가 가시지 않아 젖은 머리칼을 힐끔- 본 미노가 놓여있던 옷으로 갈아입고는 문을 열었다. 휘잉- 불어오는 바람에 미노의 물기어린 흑발이 흩날렸다. 투명한 눈동자로 수평선 너머를 바라보는 미노에게로 밝은 햇살이 내려앉았다. 흰 남방을 걸치고 약간은 헐렁한 검은색 진을 입은 미노가 눈을 감고는 바람을 느꼈다. 잠시 눈을 감고 있던 미노가 시간을 확인한 뒤, 갑판으로 가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 탁- 미노의 팔을 낚아채는 손길. 선실에 등을 부딪힌 미노가 살짝 놀란 표정으로 이현을 보고있다. 차가운 이현의 시선을 마주한 미노. "아, 아파… 이것 좀 놔 줘…" 이현에게 손목을 잡혀있는 미노가 아프다며 인상을 찡그렸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욱 단단하게 미노의 손목을 잡아오는 이현의 손. "왜, 왜 그래… 아프잖아…!" "씨발, 키스마크…" 이현이 미노의 목과 쇄골을 손으로 쓸었다. 나즈막히 중얼거리던 이현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또각- 또각- "… 미노가 아파하고 있잖아, 그 손 이만 놓지 않겠어?" 뒤에서 들려오는 시혁의 목소리에 이현이 고개를 돌렸다. 이현의 시선을 맞받아치던 시혁이 미노의 손을 잡아당겼다. 끌려가다시피 시혁의 품에 안기게 되어버린 미노. "… 불리해지니까 몸으로 협박이나 하고, 그야말로 최악이잖아…?" 미노를 안았던 팔을 풀어주고는 이현과 마주선 시혁. 차갑고도 냉정한 시혁의 눈빛이 이현에게 닿았다. "훗, 당신이야말로 비겁하잖아? 멋대로 저런 마크나 새기고 말이야…" 시혁에게 뒤지지 않을 차가움을 발하고 있는 이현. "… 말했었잖아? 선배가 아닌, 남자로써 다가가겠다고." "당신에게 넘겨줄 생각 따위 없어, 그러니 포기해." "이미 너에게 선전포고는 한 것 같은데, 난 무슨 일이 있어도 가지고야 말겠어." 시혁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당당하고 거침없는 시혁의 고백. 피식- "과연, 만만한 상대는 아닌 걸… 나름 재미있어." "……" 아무 말 없이 자신을 보고있는 시혁에게로 다가 선 이현. 매혹적인 붉은 입술이 떼어지며, 이현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상관없어, 저런 키스마크쯤… 내가 다시 새기면 되니까." 싱긋- "나 역시 관계없어, 분명 미노를 차지하는 쪽은 내가 될 테니까." 살짝 감았다 뜬 눈에 떠오른 자신감. 그런 시혁을 보던 이현이 한 쪽 입꼬리를 올리며 시혁을 지나쳤다. "… 곧 끝내주지, 당신이 지게 될 이 게임을 말이야." "승리의 여신이 마지막엔 누구에게 미소지을 지, 나 역시 상당히 기대하고 있어." 뚜벅- 뚜벅- "여어- 아침부터 너무 살벌하잖아…" - 새휘 뒤에서 들리는 새휘의 목소리에 시혁이 피식- 하고 웃고는 이현에게 향해있던 시선을 새휘에게로 던졌다. 그런 새휘의 뒤로 모습을 나타내는 은샘과 우주, 류예와 예찬. "너무 늦었다구, 다들." - 시혁 "무슨 소리야, 이제 6시라구." - 우주 "… 넌 대체 몇 시에 일어나는 거냐…" - 새휘 피식- "… 유감이지만, 한숨도 못 잤어." - 시혁 "아아- 회장 형 너무 사악해." - 은샘 살짝 인상을 찌푸린 은샘이 귀엽게 대꾸했고, 그런 은샘의 말에 동감이라는 듯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하는 새휘. "결국, 자기가 못잤으니까 우리도 재우지 않겠다는 심보구만…" "바보, 그런 거 아냐." 새휘를 밉지않게 살짝 흘겨 본 시혁이 천진난만한 미소를 짓고있는 미노를 본다. 그런 시혁의 곁에 다가온 새휘가 시혁의 어깨에 팔을 걸치고는 귓가에 나직하게 속삭였다. "미노가 눈 앞에 아른거려서 잠을 못 잤다구 네 얼굴에 다 쓰여있어." 새휘의 말에 움찔- 한 시혁. 그런 시혁의 반응이 재밌다는 듯 쿡쿡대며 웃던 새휘가 미노에게로 다가가 손으로 목을 감쌌다. "헤에- 키.스.마.크.가 꽤 눈에 띄는데-" "바.보.민.새.휘. 그 손 떼지 않으면 바다에 던져버릴 줄 알아." 퍽- 새휘의 배를 주먹으로 살짝(?) 가격한 시혁이 난간을 향해 다가갔다.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온 몸으로 받으며 서 있는 시혁. 풀어진 단추 사이로 시혁의 하얗고 매끈한 몸이 드러나고 있었다. 부드러운 미소를 띈 채, 블랙홀 같이 깊은 눈동자를 옮겨 먼 곳을 바라보던 시혁이 낮게 중얼거렸다. "난 역시… 미노, 네가 아니면 안돼." * [개학식 날] 시끌벅적한 분위기의 운동장을 가로질러 교실 문을 박찬 미노. "꺄악- 미노야! 잡지 봤어!" "언제 그렇게 유명한 잡지모델이 된 거야!" "네가 나온 잡지는 모두 다 샀다구! 진짜 멋져!" 미노의 등장으로 인해 교실 안에 있던 여자애들이 비명을 지르며 몰려들었다. 순식간에 여자애들 틈에 묻혀버린 미노가 살짝 인상을 찌푸리고 있을 때, 이현이 들어왔다. "꺄아아악- 이현아! 나 이거 봤어!" "이현이 너! 너무 섹시하잖아- 아무리 연출된 거라지만 진짜 멋졌어!" 배경을 감쪽같이 고치고 문제의 사진을 표지로 만들어버린 수한덕분에, 미노와 이현이 나온 잡지는 확실히 초절정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상태. 하지만, 인기따위 어찌됐든 상관없다는 듯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있는 미노. "젠장." 미노가 욕설을 내뱉자 정신을 차린건지, 슬금슬금 물러나는 여자애들. 70명이 넘는 인원을 상처 하나 입지 않고 해치운 천의얼굴이었기에, 감히 다가서지 못하는 것이었다. 아이들이 물러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 얼굴에 미소를 띈 채, 자리에 앉은 미노. 드르륵- "자, 다들 자리에 앉아!" 담임이 들어오고 곧이어 수업이 시작되었다. 2교시가 끝난 후, 어디로 간 건지 보이지 않는 이현의 가방. "또 땡땡이야, 이 날라리." 비어있는 이현의 자리를 보고는 살짝 한숨을 쉰 미노가 화장실로 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남자화장실인 것을 확인한 미노가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촤악- 머리부터 발끝까지 젖어버린 미노. 갑작스레 쏟아진 물세례를 그대로 맞아버린 미노가 천천히 손을 올려 얼굴에 흐르는 물기를 닦아냈다. 손에 묻은 물 색깔로 봐서는 아마도 뭔가를 빨고 난 물인 듯 했다. 상황을 정리하기도 전에 들려오는 기분나쁜 목소리. "아하하하! 일류 모델 스타일 다 구겼네에-?" 빈정거리며 나타난 여자들. 분명히 남자화장실임에도 불구하고 당당한 모습이다. "……" "네 까짓 게 감히 이현이한테 꼬리를 쳐?" 짜악- 미노의 고개가 돌아갔다. 붉게 물든 뺨에는 선명한 손바닥 자국이 남아있다. 휙- 미노의 머리칼을 잡아당긴 여자. 비로소 눈에 들어오는 여자의 얼굴을 본 미노가 입술에 미소를 걸었다. 손을 올려 자신의 머리를 잡고있는 여자의 손을 털어내는 미노. "분명, 강민지라고 했었나…" "그래! 용케 기억하고 있었네?" 피식- "그 못생긴 얼굴을 어떻게 잊겠어…" "… 뭐야?!" 짜악- 아까보다 더욱 세게 미노의 뺨을 쳐버리는 강민지. "계집애같이 생겨선 그 반반한 낯짝으로 남자들 좀 꼬셨겠다, 응?" "… 넘볼 걸 넘봐야지! 감히 네가 누구한테 꼬릴 쳐!" 촤악- 미노에게로 다시 한 번 끼얹어진 물. 들고있던 양동이를 구석으로 던져버린 여자가 민지의 옆에 섰다. 그 모습을 보며 차갑게 미소짓는 미노. "이현이는 내꺼야! 감히 너 따위가 넘볼만한 남자가 아니라구!" "… 그 썩어빠진 몸뚱이에서 나오는 숨결 느끼고 싶지않으니까 그만 입 닫아라." 나지막하게 울려퍼지는 목소리. 미노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고, 물기어린 눈동자로 여자를 본다. 그러자 민지의 옆에 서 있던 여자들이 쇠파이프를 들고 미노에게로 다가왔다. "죽지 않으려면, 대가리 잘 보호해라.킥." 쇠파이프를 높게 들어올린 여자가 미노를 향해 내리치려던 순간, 손을 뻗어 옆에 있던 여자의 넥타이를 끌어 자신의 앞에 위치시킨 미노. 퍼억- 쇠파이프로 배를 강하게 맞은 여자가 신음을 흘렸다. 이내 정신을 잃어버린 여자를 힐끗- 하고 본 미노가 잡고있던 넥타이를 놓았다. 스르륵- 그대로 화장실 바닥에 뻗어버린 여자. 말짱한 모습으로 서 있는 미노를 보고있던 강민지의 표정이 구겨졌다. "뭐하는 짓이야! 제대로 못 해!?" 빽- 하고 소리를 지르는 강민지를 보던 여자들 셋이 미노를 향해 덤벼왔다. 가벼운 몸놀림으로 여자들의 틈을 파고든 미노. 카랑- 카랑- 쾅- ! 손에 들려있는 쇠파이프를 화장실 칸막이 안으로 던져버리는 미노. 몸에 타격을 입히지 않고 단순히 무기만 빼앗은 것이었다. "… 뭐, 뭐야 이게…" "장난이 아니잖아!" "싫어, 우린 못 이긴다구!" "나, 난 가겠어…! 꺅- !" 불리함을 느낀 여자들이 급히 밖으로 빠져나가기 위해 움직였지만, 그들의 앞을 가로막은 미노. 서서히 고개를 든 미노가 매력적인 붉은 입술에 잔인한 미소를 걸었다. "늬들만… 즐기고 간다는 건 너무하잖아…? 이제, 내 차례라구." 55. "꺄악- 저게 뭐야!" "미노야, 너 왜 그렇게 젖었어?!" 밖에서 들려오는 소란스러움에 힐끗- 뒤를 본 미노. 걱정스럽게 쳐다보고 있는 여자애들을 보고는 피식- 하고 웃는다. "아무것도… 아냐, 그저… 재미있는 놀이가 하나 생각났을 뿐이야." 미노의 말에 고개를 갸웃- 하는 여자애들. 그들을 보던 시선을 강민지 패거리에게로 옮긴 미노가 눈을 살짝 감았다 떴다. 매우 여유로운 모습의 미노를 본 민지가 미간을 찌푸렸다. "뭐 이런 게 다 있어?" "존나 재수없어." 피식- "늬들도." 짤막하게 그들의 말을 잘라버리는 미노. "꺄아- 미노님! 누가 미노님을 이렇게 만들었나요?!" "저희가 지켜드리겠어요!" [미노홀릭] 회원들의 등장으로 더욱 인상을 찡그린 강민지. 자신을 도끼눈으로 보고있는 [미노홀릭] 회원들을 향해 빽- 하고 소리를 지른다. "늬들 눈 안 깔아?!" "어머어머, 웃겨! 네가 뭔데!" "맞아! 함부로 우리 미노님을 건드렸다가는 학생회가 가만있지 않을 걸?!" "… 흥, 그딴 거 내가 무서워할 줄 알아?!" 또각- 또각- "너희, 쟤가 누구인 지 모르고 있는 거 아냐…?" 노란머리카락을 베베꼬며 다가오는 여자. 비릿한 미소를 짓더니, [미노홀릭] 회장인 수현에게로 얼굴을 들이민다. "Y그룹 오너의 외동딸, 강민지. 들어는 봤겠지? 민지는 전국에서도 내노라하는 기업의 영애라구. 알아들어?" 웅성웅성. "세상에, 그게 진짜야?" "Y그룹이라면 꽤 영향력있잖아?" "어떡해, 수현아!" "우린 이제 죽-었다." 사색이 되어 뒤로 물러나는 아이들. 그런 아이들의 반응에 만족스럽다는 듯이 입꼬리를 말아올리며 웃는 강민지. "그래, 그렇게 나왔어야지. 이제 알겠니? 네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내 발 끝에도 못 미친다는 걸?" 미노의 어깨를 손가락으로 밀며, 건방지게 웃는 강민지. "훗, 알았으면 얼른 무릎꿇고 다신 이현이에게 꼬리치지 않겠다고…! 꺅-!" 짜악- 민지의 고개가 돌아갔다. 뺨을 맞았다는 사실에 흥분한 민지가 맞은 곳을 손으로 감싸고는 정면을 본다. "야! 너, 너 방금 나한테… 나한테 손 댔니?!" "… 아무리 사장의 영애라고 해도, 네게 사람들을 조롱할 권리는 없어." 차갑지만 똑부러지게 말하고 있는 수현. "네까짓게, 네까짓게 뭔데 감히! 감히 나한테 손을 대!" "이게 미쳤나!" "씨발, 죽여!" 여자들이 수현에게로 달려들었고, 그런 수현의 앞을 가로막은 미노. 수현에게 뻗는 손길을 모두 차단한 채, 싸늘한 눈으로 민지를 쳐다본다. "이 아이가 한 말, 틀린 것 같진 않은데." "… 뭐야?!" "빽믿고 너무 설치지 말란 소리야." "하, 너 웃긴다! 겁 안나니? 나, 전화 한 통이면 너 이 학교에서 쫒아낼 수 있어!" "해 봐." 망설임없는 미노의 도발. 그런 미노를 살짝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보던 민지가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건다. 울먹이며 자신의 아빠에게 뭔가를 설명하고 있는 민지. "킥킥, 넌 이제 죽었다." "사장님이 얼마나 막강하신데." "유후- 보내버려!" 다 이겼다는 듯이 쾌재를 불러대는 민지패거리. 하지만 그들을 보는 미노의 눈빛은 한없이 차갑기만 하다. "그, 그러지 마! 널 때린 건 나잖아!" "… 걱정 마, 사이좋게 쫒겨나게 해 줄테니…" 전화를 하는 민지를 무표정하게 보고있는 미노. 그런 미노를 보던 민지가 전화에 대고 수현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응- 아빠, 그래서 있죠- 어떤 못생긴 애가…! 꺅, 무슨 짓이야!" 탁- 핸드폰을 뺏어 발로 밟아버리는 미노. "… 나에 대한 얘긴 다 끝난 것 같은데." "그래! 하지만 저 년에 대한 건 끝나지 않았어!" "… 이 학교에서 쫒아내겠다고 한 건 처음부터 내가 아니었나…?" 낮아진 목소리. 미노에게 변화를 느낀 패거리들이 주춤거리며 물러나기 시작했다. 한 없이 싸늘한 미노의 눈동자와 몸에서 풍겨지는 냉기. 자칫하면 죽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릿 속을 지배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천만에- 미천한 주제에 감히 누구한테 손을 대? 쫒아내고야 말거라구!" "… 저 아이의 신상에 무슨 일이 생긴다면, 너희들은 목숨에 지장이 생길텐데…?" "하하하- 거만도 적당히 떨어, 내가 알아본 바로는 너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다던데?" "난 가진 것으로 내 가치를 평가받고 싶지 않아." "하하, 부러울 걸? 매일 맛있는 음식을 먹고, 멋진 차를 타고 쇼핑을 하는… 넌 꿈에도 누리지 못할 껄?" "… 꽤 흥미로운 얘기지만, 난 그런 것에 전혀 관심이 없어. 지금 내가 관심있는 건 단 하나…" "……?" "너희들을 내 손으로 어떻게 요리할까, 하는거야." "……!" 민지패거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걸 즐기는 듯한 미노의 모습에 더욱 경악에 찬 모습. 그들을 향해 다가가던 미노가 문득 걸음을 멈췄다. "… 오늘 일은 비밀로 해주겠어…?" 수현과 뒤에 있는 아이들을 향해 눈을 찡긋- 해 보인 미노. 황홀한 그 모습에 멍- 한 표정으로 고개를 연신 끄덕이는 아이들이었다. 그런 아이들을 향해 싱긋- 하고 웃어보인 미노. "절대… 비밀이야, 우리들만의." 비밀이라는 말에 침을 삼키며 더욱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들. 유혹하듯 살짝 허리를 숙이곤 검지손가락을 입술에 댄 채 나지막히 비밀이란 말을 흘리는 미노. "머, 멋있어…" "저러니까, 반하지 않을 수가 없잖아…" "아, 또 한 번 사랑에 빠져버렸어. 도저히 헤어나올 수가 없다구!" 아이들의 웅성거림을 듣던 강민지가 인상을 잔뜩 구겼다. "여기서 저 새끼 처리 못하면! 늬들이 나한테 죽을 줄 알아!" 패거리에게 명령을 내리는 민지. 곤란한 듯 민지와 미노를 번갈아 보던 여자들 중 한 명이 구석에 있던 쇠파이프를 꺼내 손에 들었다. "쓰는데 익숙하지 못한 무기는 자신을 다치게 할 뿐이야, 내려 놔!" "… 우, 웃기지 마!" 미노의 말을 무시한 채, 달려드는 여자. 휘둘러오는 파이프를 스텝을 밟듯 가볍게 피한 미노가 여자애의 곁으로 파고들었다. 안전거리를 확보하지 못한 여자애가 당황하고 있을 때, 가볍게 배에다 주먹을 질러준 미노. 퍽- "으윽-!" 아픈 배를 움켜잡고 바닥에 무릎을 꿇은 여자. 그런 여자를 더 이상은 건드리기 싫다는 듯, 물끄러미 보고있는 미노. 한 여자가 간단하게 무너져버리자 나머지 두 여자가 바닥에 쓰러진 여자와 기절한 여자를 데리고 밖으로 빠져나갔다. "겁 먹지 마! 제길! 돌아오란 말이야!" 바락바락 소리를 질러대는 민지. 눈물을 머금은 민지의 독기어린 눈동자가 미노에게 향했다. "너, 각오해. 절대… 절대 가만두지 않을거니까!" 민지를 보던 차가운 시선을 거둬버린 미노가 등을 돌렸다. 상대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하는 듯한 행동. 주머니에 손을 꽂은 미노가 밖을 향해 한 발자국 내딛었을 때, 뒷 머리에서 강한 통증이 밀려왔다. 퍼억- "죽어버려, 너 따위. 죽어버리라구!" 들고 있던 쇠파이프를 바닥에 던져버리는 강민지. 흑발 사이로 내려온 피가 어느새 미노의 얼굴을 덮고 바닥을 적시고 있었다. "미, 미노야… 어떡해, 미노야!" "미노야!! 정신차려!" 아이들의 목소리가 특정한 음이 없이 웅웅거리며 귀를 울렸다. 흐릿해지는 의식 속에서 강민지의 표독스러운 입술만이 징그러운 미소를 띄고 있었다. 풀썩- * 마린고 운동장에 선 엠뷸런스. 정문이 열리고 시혁의 등에 업혀 나오는 미노의 모습이 보인다. 이마에서 흐르는 미노의 피가 시혁의 어깨를 흥건히 적시고 있었다. "미노야! 정신차려!" "뒤를 부탁한다, 얘들아." "… 맡겨 줘, 회장 형." 사이렌을 울리며 급히 운동장을 빠져나가는 엠뷸런스. 차가 떠나는 것을 본 은샘과 류예, 예찬과 우주가 급히 전교생을 운동장에 모았다. 한편, 엠뷸런스에 미노와 함께 오른 시혁은 초조한 듯 미노의 손을 놓지 않고 있었다. "… 제발, 미노야. 힘을 내…" 슬프게만 들리는 목소리. 시혁의 손 안에서 점점 차가워져 가는 미노의 온기. "안돼, 미노야. 제발…" 급히 산소마스크를 씌우고 터진 곳을 압박해 지혈하는데도 불구하고, 피는 계속 나오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과다출혈로 목숨을 잃을 지도 모르는 위험한 상태.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의사진들이 대기하고 있었고, 미노는 그대로 수술실로 옮겨졌다. "시혁아!" "미노는! 미노는 어떻게 됐어요?" 뛰어온 것으로 보이는 새휘와 이현. 급히 오느라 옷도 갈아입지 못한 것인지, 이현은 검은색 카라에 흑월회의 문장이 박힌 옷을 입고있다. "시혁아, 미노 괜찮은 거지!?" "아직… 모르겠어." "대체 어떻게 된 거야!" 복도를 왔다갔다하며 안절부절하는 새휘와 이현. 두 시간 후, 시혁의 연락을 받은 미노의 부모님이 병원에 도착했다. "… 어떻게, 어떻게 됐어요? 우리 미노는…" "벌써 다섯 시간 째… 수술 중이에요." 새휘의 말을 들은 미노의 어머니가 쓰러질 듯 휘청거렸고, 그런 미노의 어머니를 붙잡는 아버지. "대체 누가 이런 짓을 했단 말이야!" "… 알아보고 있는 중입니다." 이현은 이미 사람을 풀어 각각의 정보망을 점령하고 있었다. 조그마한 단서 하나라도 남기지 않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있는 상태. 위이잉- 수술실의 불이 꺼지고, 굳게 닫혀있던 문이 열렸다. 산소마스크를 쓴 채, 머리에 붕대를 감고있는 미노의 모습. "선생님, 미노 상태는…" "수술은 매우 성공적으로 잘 끝났습니다." "그럼, 괜찮은 거죠?" "나머지는 환자 자신의 의지에 달려있습니다." "괜찮을거야, 미노는… 강하니까." "응, 반드시. 깨어날거야." 병실로 옮겨진 미노는 미약한 숨을 내쉬고 있다. 마취가 풀릴 시간이 이미 한참이나 지났는데도 깨어나지 않고 있는 미노. "왜, 왜 이렇게 오래 자는거야…" "미노야, 그만 일어나…" 아무 말 없이 미노의 손을 잡고있는 시혁. 서로의 손을 꼬옥- 잡은 채, 미노를 보고있는 미노의 부모님과 미노의 뺨을 쓰다듬으며 슬픈 눈을 하고 있는 이현. "미노야, 눈을 떠… 어서." 잠시 그들을 보던 시혁이 조용히 문을 열고 나갔다. 마침, 계단을 타고 뛰어오고 있는 다섯 명. "형!" "미노는!" "어떻게 됐어? 괜찮아?" "형! 얘기 좀 해봐요!" "… 수술은 잘 됐대." "수술 잘 됐다면 다행이잖아, 근데 표정이 왜 그래…?" "… 아직이야." "… 아직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의식이… 돌아오지 않아." "……!" 놀란 얼굴의 환희와 은샘. 잠시 시혁을 보던 예찬과 은샘, 우주와 환희가 미노의 병실을 향해 달렸다. 시혁과 함께 병원의 옥상으로 온 류예. "병명은… 병명은 뭔데?" "… 뇌진탕이래." "괜찮을거야, 형. 미노는 강하니까 금방 일어날거야." "단순한 뇌진탕이라면 벌써 일어나고도 남았어야 해! 평소보다 훨씬 더 창백하게 질려있고, 손도 너무 차갑다구." "……" 달칵- "회장 형! 큰일이야!" 숨을 몰아쉬는 은샘과 우주. "무슨 일이야!" "하아… 하아… 그게, 미노 상태가 좀 이상해." "……!" 급히 미노의 병실로 들어선 시혁과 류예. "미노야!" "… 괜찮아…?" 흐릿한 미노의 눈동자. 느릿하게 움직인 미노의 눈동자가 이현과 시혁, 예찬, 우주, 은샘, 새휘, 류예, 환희에게로 향했다. 핏기 없는 입술이 열렸고, 메마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 다들… 누구예요…?" "……!" "… 이 아이, 우리들 뿐만 아니라 자기 이름조차 기억해내지 못 해." 56. "… 기억장해요?" "정확하게 말씀드리면 역행성 기억상실입니다. 뇌의 외상 따위로 의식 장애가 일어났다가 회복한 뒤에, 장애가 생기기 이전 일정 기간의 경험이 생각나지 아니하는 증세인데…" "기억을, 기억을 영영 찾지 못하는 건 아니죠?" "… 찾을 수는 있지만 3일이 될 지, 3년이 될 지는… 환자 자신의 의지에 달렸습니다." 원장실을 나온 시혁과 이현, 미노의 부모님의 얼굴에 슬픔이 묻어났다. 편안한 분위기를 위해서 일부러 옆 동과는 다른 병동으로 옮긴 미노의 병실. 달칵- "… 어떻게 됐어?" "의사가 뭐라는데?"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던 은샘과 우주가 물었고, 시혁은 의사에게 들은 그대로를 병실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전달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침대에 잠들어 있는 미노. "… 학교에선, 어때?" "일단 쓸데없는 소문은 돌지 않게 조취해놨어." "… 그래, 수고했다." "근데… 회장 형." 조금 힘겨운 듯 보이는 시혁의 눈빛이 은샘에게 향했다. 뭔가를 알고있는 눈치. 새휘 역시 뭔가를 알고 있는 듯, 쉽사리 말문을 열지 않는다. "뭐야, 그 표정들은." "애들 다그쳐서 알아냈어." "… 뭘?" "미노 저렇게 만든 사람…" "……!" 시혁과 이현의 표정이 눈에 띄게 변했다. 잠시 둘을 보던 새휘가 밖으로 나가자며 말했고, 미노의 부모님을 제외한 모든 이들이 병원의 옥상으로 향했다. "우리도… 알고 있는 사람이야." "… 그게 무슨 소리야?" "오늘 전학왔대. 형들도 알고있지…?" "… 제길, 그 계집애…" 우주가 나즈막히 욕설을 내뱉었고, 싸늘하게 굳어진 이현과 시혁의 얼굴. "걔네 아버지, 그러니까 Y그룹 오너가 학교에 찾아왔었어." "…… 무슨 일로." "웃기는 데, 다짜고짜 미노를 퇴학시키라고 이사장을 협박했다더라." "… 뭐야?" "그래서, 설마 이사장 그 꼰대 말 들은 건 아니겠지?" "교장은 우리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데, 이사장은 아니니까…" "……!" "그럼 뭐냐, 결국 미노를 퇴학시키겠다고 말했단 소리야?" "……" 콰앙- "빌어먹을!" "용서하지 않겠어." "… 기다려." 달려가는 우주와 새휘, 이현을 말리는 시혁. 얼음처럼 차갑게 굳어있는 시혁의 얼굴에서는 왠지모를 섬뜩함이 느껴졌다. "그 쪽에서 배경을 이용했다면, 우리들도 똑같이 해줘야겠지." "… 서, 설마 회장 형…!" "그래, 그 설마야." 세계적인 대 재벌 US그룹의 뒷배경을 이용한다는 소리는 즉 이 세상에서 강민지를 매장시켜버리겠다는 의미와도 같았기에, 시혁을 보는 이들의 눈이 놀라움으로 커졌다. "자신이 최고인 줄 알았던 녀석에게, 이 세상의 무서움을 가르쳐 줄 생각이야." "… 그럼 우리들 역시 가만히 있지만은 않아." "어디 한 번… 해보자구." * 약 8000평의 대지 위에 지어진 6개의 건물. 잘 가꾸어진 잔디가 정원을 꽉 채우고 있는 예쁘고 웅장한 저택은 침실 29개와 욕실 40개, 수영장 3개를 갖추고 있다. "도, 도련님!" "… 잘 계셨어요? 아버지는요." "별채에 계십니다, 미리 연락을 해주셨으면 모시러 갔을텐데…" "괜찮아요, 아버질 뵙고싶은데요." "아,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집사로 보이는 사람의 안내를 받아 집 안으로 들어가는 시혁. 안으로 들어서자 고급스런 가구와 깔끔하고 세련된 인테리어가 된 집 내부가 보인다. 레드카펫이 깔린 계단을 거쳐, 10분 쯤 걸었을까… 별채가 보였다. 똑똑- "회장님, 도련님이 오셨습니다." "… 시혁이가?!" 손수 문을 열어 맞는 부부. 뛰어난 시혁의 외모가 증명이 되는 듯, 아름다운 중년의 여자와 신사적인 남자. 싱긋- "잘 지내셨어요?" "… 일단 들어오렴. 집사님, 차를 좀 부탁해요." "알겠습니다, 사모님." 집사가 인사를 하고 물러났고, 시혁은 부부의 맞은 편에 앉았다. "건강하게 잘 지낸거니?" "… 네, 아주 건강해요." "다행이구나. 한국에서 생활하느라 불편한 건 없고…?" "… 아버지." "무슨 일이냐, 얼굴이 안 좋은것 같은데…" 탁- 부모님의 앞으로 한 권의 책을 놓은 시혁. 미노의 전신사진이 표지로 실린 패션잡지를 본 부모님이 의아한 표정으로 시혁을 본다. "보신 적 있으시겠죠…?" "아아, 물론이지. 아주 맘에 드는 친구야." "… 제가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시혁의 발언에 토끼눈을 하고 시혁을 보는 부모님. 말도 안된다는 듯이 보고있는 부모님을 알만하다는 듯이 보던 시혁이 입을 열었다. "제 목숨과 맞바꿀 수 있는 아주 소중한 사람입니다." "… 시, 시혁아…" "여, 여보. 벼, 병원에 연락을 좀…!" "… 농담이… 아니에요." 부모님의 표정에 경악이 묻어났다. 가장 기대를 걸고있던 아들이 대뜸 와서 한다는 말이… 남자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라니… "시, 시혁아… 물론 이 친구가 예쁘긴 하지만…!" "저희 학교 학생입니다." "… 하, 하지만 말이다!" "여자예요." "… 뭐야?" "엄청 예쁜 남자로 보이지만, 여자예요." 곧 쓰러질 듯이 뒷목을 부여잡는 시혁의 아버지. 아무리 사랑에 눈이 멀었어도 그렇지, 남자를 여자라고 말하다니… 믿을 수 없는 상황에 휘청거리는 부모님을 보던 시혁이 한 장의 사진을 꺼내놓았다. "이, 이 여자는 또 누구냐…" "저 표지에 실린 인물과 동일인물입니다." "… 뭐야?!" 한 손에는 잡지를, 한 손에는 사진을 들고 유심히 비교하는 부모님. 연극 때 찍은 미노의 드레스 입은 모습이었다. 천상가인이라고 이름붙여도 좋을만큼 뛰어난 외모에 시혁의 아버지가 얼굴을 붉혔다. "… 정말, 정말 이 아이가…!" "여자란 말이니?!" "… 보신대로 입니다." "말도 안되는… 어떻게, 어떻게 이런…" 이해할 수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젓는 시혁의 아버지. 그런 부모님께 시혁이 여태까지 있었던 모든 일을 차근차근 말씀드렸다. 미노가 왜 남자역활이 되어야만 했고, 지금은 어떤 상황인 지 모든 정황을 밝힌 시혁이 부모님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시, 시혁아!" "… 도와주세요, 아버지." "이, 이게 무슨…!" "용서할 수가 없어요… 힘을 빌려주세요." "시혁아…" 무릎을 꿇은 시혁에게 조용히 다가간 어머니가 시혁의 어깨를 잡았다. "시혁아, 너 정말…" "미치도록 원하고 있어요… 제 모든 것을 버리고도 선택할 수 있을만큼… 그만큼 간절해요… 그러니까, 도와주세요… 아버지." 탁- "… 내 아들이 이렇게 목을 메는 걸 보니, 다른 건 묻지 않겠다." "여보…" "… 변했구나, 시혁아." "……" "어느 누구에게도 관심을 가지지 않던 너에게 이런 모습을 보이게 만들다니, 그 아이의 됨됨이는 따로 말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 "… 다짜고짜 이런 말씀 드리게 되서 죄송합니다." "아니다, 당연히 도와줘야지. 내 힘껏 도와주마." "… 여보…" 전화기를 향해 손을 뻗던 아버지가 이내 손을 거둬버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당장 한국으로 가야겠군, 그 학교 이사장을 직접 만나보지." "… 아버지." "걱정말거라, 하나뿐인 아들의 부탁하나도 못 들어주겠냐, 당신도 준비해요." * 마린고 운동장에 늘어선 8대의 벤츠와 그들의 가운데 흰색의 롤스로이스 리무진. 선그라스를 끼고 검은색 정장을 입은 전형적인 보디가드들이 문을 열자, 뒷 좌석에서 내리는 시혁과 시혁의 부모님. 미리 기다리고 있었던 듯, 예찬과 류예, 은샘과 우주, 환희와 새휘가 인사를 했다. "먼 길 오셨습니다." "… 오랜만이구나, 다들." 한 쪽에 서 있는 체어맨을 본 시혁의 아버지가 살짝 인상을 굳히더니, 시혁과 예찬, 류예, 은샘, 우주, 환희, 새휘와 함께 이사장실로 들어섰다. 똑똑- 형식적인 노크를 한 후, 안에서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문을 벌컥- 하고 열어재낀 우주. 이사장실에는 이미 예상했던 듯, 아빠와 함께 앉아있는 강민지가 보였다. 시혁이 안으로 들어섰고, 그 뒤를 따라 학생회 간부들이 따라들어왔다. "무, 무슨 일인가…" "도미노 학생을 퇴학시킨다고 들었습니다." 지극히 사무적인 말투. 위압감마저 느껴지는 시혁의 목소리에 이사장은 살짝 인상을 쓰더니 말했다. "그 이야기는 이미 얘기가 끝났네." 뚜벅- 뚜벅- "그렇다면… 제가 그 이야기를 다시 시작하죠."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들어선 시혁의 아버지. "이들이 뭐라고 말했는 지 모르겠지만, 그 동안 여러가지 일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흥, 그건 당신이 알 바가 아니야." 살짝 열려진 서랍 사이로 보이는 봉투에 아버지의 표정이 급격히 굳었다. "… 도미노 학생의 퇴학계… 없애시오." 콰앙- "이봐, 당신이 뭔데 없애라 마라야? 그 자식은 우리 딸을 못살게 군 쓰레기야…!" "말 조심해…!" 발끈하고 외치는 우주와 새휘를 제지한 시혁의 아버지가 거짓눈물을 훌쩍이고 있는 민지를 본다. "흐흑… 아빠, 우리 얼른 나가요… 흑…" "그, 그래. 가자꾸나…" 탁- 가드들이 문 앞을 막고 있는 상태. 복도를 점령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광경을 본 남자가 시혁의 아버지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당신 뭐야! 내가 누군지나 알고…!" "… 아, 아빠…? 왜 그래…?" 남자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가드들의 정장 깃에 달려있는 뱃지. 세계적인 대 재벌 US그룹을 상징하는 문양을 본 남자가 설마, 하는 표정으로 시혁의 아버지를 쳐다본다. "다, 당신이… 설마…" "… 차희준이요, Y그룹 오너 강도훈씨." "……!" "당신 딸이 미래의 우리그룹의 며느리가 될 아이에게 무슨 짓을 했는 지는, 알고 있습니까?" "무, 무슨 소린 지 난…!" "… 모든 기억을 잃어버렸다고 하더군, 당신 딸이 내리친 쇠파이프에 맞아서 말이지." 흠칫- "아, 아냐! 아빠 그게 아냐!" 떨리는 눈동자로 도훈의 팔을 흔드는 민지. "걔가, 걔가 나 이렇게 만들었다니까? 쇠파이프라니, 내가 그런 짓을 할 리가 없잖아…?" "그, 그래… 네가 그런 짓을 했을 리가 없…!" 촤라락- 봉투에 담겨져 있던 뭔가를 테이블에 쏟은 예찬. 차갑고도 시린 눈동자가 그들을 매섭게 노려보고 있다. "이걸 보고 당신이 판단해." 화장실에서 있었던 일이 찍힌 사진을 보고는 사색이 된 강민지. 사진을 들고는 손을 부들부들 떨며 보던 도훈이 민지를 쳐다본다. "… 아니지, 아니겠지? 응?" "아직도 당신 딸이 피해자로 보이는 모양이군…" [… 너 따위 죽어버려! 죽어버리라구!] 표독스럽게 외치는 민지의 목소리 뒤에 아이들의 비명이 울려퍼졌다. 미노가 쓰러지는 모습까지 생생히 담겨있는 영상을 본 도훈의 표정이 심각하게 구겨졌다. "그 때 있었던 일을 핸드폰으로 녹화한 애들이 있어, 이런데도 당신 딸이 한 짓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 "아, 아빠… 그, 그게 아냐…!" "민지… 너, 너…!" 뚜벅- 뚜벅- "두 사람의 오해를 풀 기회는 나중으로 미루도록 하지." "… 당신들은 대체…" "차희준, US그룹의 회장이자 차시혁군의 아비되는 사람이올시다." 희준의 말을 들은 이사장이 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찬찬히 희준을 살펴보던 이사장은 놀랐던 표정을 싹- 지우고는 금방 손을 모으더니 헤헤거린다. "아, 이거 실례했습니다." "외국에 있어야 할 내가 여기까지 왔다는 건, 무슨 뜻인 지 알고 계시겠죠?" "아, 그럼요. 그럼요." "… 당신의 자격을 박탈하겠습니다." "자, 잠깐! 퇴, 퇴학계를 없애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한 번 뱉은 말을 번복하는 취미는 없습니다, 나머지는 시혁이와 이 아이들에게 맡기죠. 물론, 저 아이와 어울린 그들을 처벌할 권리도 저 아이들에게 있으니… 당신은 어서 명의나 반납하십시요." 망설임없이 뒤를 돌아 이사장실을 나가버리는 시혁의 아버지. "온 김에, 그 아가씨를 보고싶은데…" "… 아무도 기억하지 못해요…" "잃어버린 기억이 무척이나 소중한 것이라면, 분명히 찾을 수 있을테니 걱정말거라." "바로 파리로 돌아가시나요?" "며칠 간 한국에 머무를 계획이다, 오랜만에 한국에 온 게 반갑다며 네 어머니는 동창회에 나간다고 하더구나." "아, 그러셨군요." "… 자, 그럼 난 이만 집으로 돌아가마. 이사장 건은 내게 맡겨라. 손을 써놓지."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회장님." "아아, 그냥 편하게 아저씨로 부르도록 해. 자네 아버님과도 친분이 있으니." "… 감사합니다." 리무진이 부드럽게 움직여 학교를 벗어났고, 시혁일행은 미노가 있는 병원으로 가기 위해 미리 대기시켜놓은 예찬이네 차에 올랐다. 달칵- "… 미노 상태는 좀 어때요?" "아직이야, 밥도 제대로 먹지 않고 계속 잠만 자는구나…" "… 이현이는요?" "방금 너희 오는 거 보고 나갔어." "… 그렇군요." 지이잉- 지이잉- "차시혁입니다." [… 이제부턴 내게 맡겨줬으면 좋겠어. 물론 학교에서의 일은 형이 처리하겠지만.] "Y그룹의 미래는 네게 달려있다는 말인 것 같은데…" [말이 통하는 군, 괜찮겠지?] "… 수고해라, 행운을 빌지." 전화를 끊은 시혁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입술에 걸었다. 그 모습을 의아하게 보고있는 은샘과 환희. "형, 무슨 일 있어요?" "좋은 일이라도 있는 거예요?" "… 녀석이 움직였어." "네?" "… 흑월회의 킹, 소이현 녀석이 움직이기 시작했다구." 시혁의 말에 고개를 갸웃- 하는 새휘와 우주. 그런 둘을 보던 시혁이 미노에게 시선을 던졌다. "단단히 화가났어… 그 녀석." "형- 말 돌리지 말고 단도직입적으로 얘기해요!" 피식- "녀석이… Y그룹을 도산시킬 계획이라는 거지." "설마! 그런 힘이 이현이에게 있다구요?" "흑월회에 대한 정보는 나도 들어서 알고있어, 회장형네 그룹과 맞먹을 정도로 엄청난 세력이래. 특히 뒷세계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흑월회의 뒷 물을 많이 먹는 정치계나 기업계는 빠삭하다고 봐도 무방하겠지." "… 그럼, 설마…" "… 그래, 없애버릴 계획인거야." 57. 일주일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빠짐없이 Y그룹의 정보를 모은 이현. 책상 위에 놓여있는 문서를 훑어본 이현이 서류철을 덮으며 의자에 기대었다. 똑똑- "들어 와." 문이 열리고 들어선 검은 옷을 입은 남자. 손을 모으고는, 이현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역시, 해외로 도망치려던 것 같습니다." "… 막았겠지?" "물론입니다, 출국금지령 내렸습니다." "… 그래, 쥐새끼 한마리도 빠져나가지 않게 하겠어." "괜찮으십니까? 피곤해보이시는데…" "… 견딜만 해, 그보다… Y그룹의 움직임은?" "유령회사들의 주식을 모조리 사들인 상태라, 상당히 위험합니다." "좋아, 앞으로 일주일 후가 D-day다. 녀석들에게 계획대로 행동하라고 해." "네, 총수님." 남자가 문을 닫고 밖으로 나갔고, 이현은 컴퓨터에 뭔가를 입력하기 시작했다. 스위스에 있는 은행계좌를 조회한 뒤, 엔터를 누르고는 프로그램을 닫은 이현. Y그룹이 사들인 주식은 모두 이현이 만든 가짜 회사의 것. 돈을 모조리 끌어다 주식을 사들였으니, 지금 Y그룹은 지금 당장이라도 부도가 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그 돈은 모두 스위스에 있는 이현의 계좌에 꼭꼭 입금되고 있었다. "지금쯤 부자가 되는 상상을 하며 헬렐레 하고 있겠지, 얼간이들." 똑똑- "들어 와." 이현의 앞에 들고있던 신문을 내려놓은 남자. "… 뭐야, 이게." "직접 보시는 게 나을 것 같아서 가져왔습니다." 이현이 남자를 보던 시선을 신문으로 옮겼다. 반으로 접혀있던 신문을 편 이현은 1면에 대문짝만하게 실린 기사에 인상을 구겼다. [인기 모델 도미노, 기억상실로 병원에 입원 중!?] 콰앙- "어떻게 된 거야!" "아무래도 저희 쪽의 압력을 무시하고 기사를 낸 것 같습니다." "… 기자 이름은?" "문창진입니다." "… 남의 불행이나 먹고사는 벌레같은 새끼들…!" 코트를 챙겨입고 밖으로 나간 이현. 이미 뒤에는 손을 써 두었고, 무슨 일이 생긴다면 바로 연락을 해 올 것이었다. 이현이 탄 검은색 벤츠가 멈춰 선 곳은 어느 신문사 앞. 콰앙- 신문사의 문을 박차고 들어온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들을 본 신문기자들의 눈이 휘둥그레해졌다. "다, 당신들은 뭐야?!" "여기가 어디라고 함부로 들락거리는 거야!" 퍼억- 이현에게 달려드는 한 명의 기자를 발로 차 넘어뜨린 남자. 자신을 쳐다보는 이현의 표정이 싸늘하다는 걸 느끼고는 황급히 자리를 뜬다. "… 한번만 말하지, 문창진이라는 새끼 어딨어." "무, 문창진?" "문기자 말인가?" 저벅- 저벅- "내가 그 문창진이요, 당신은 누구요?" 얍삽하게 생긴 얼굴을 들이민 남자를 본 이현의 표정이 구겨졌다. "당신이 도미노의 기사를 낸 작자신가?" "아아, 그래. 어렵게 구했…! 켁!" 탁- 이현이 손을 뻗어 남자의 목을 움켜잡았다. 숨이 막혀 캑캑대는 남자. 하지만 그를 보는 이현의 눈은 한없이 싸늘한 기운을 발하고 있었다. "똑바로 들어, 당장 정정기사 내 보내. 내 경고 무시했다가는 개죽음 당할 줄 알아." "켁… 이, 이거 놔…! 미, 미친… 새끼야…!" 피식- "그래, 네 놈때문에 미쳤어, 그러니 누구하나 죽이는 것쯤은 별로 대수로운 것도 아니야." "컥…! 포, 폭력혐의로 고소…! 고소하겠… 큭!" "멋대로 해, 지킬게 없는 사람이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 지는 잘 알 수 있겠지. 이제 난 더 이상 잃을 게 없어. 그러니 더러운 목숨이라도 연명하고 싶다면 시키는 대로 해. 알아들어?" 문창진의 목을 죄고 있던 손을 풀며 바닥으로 내동댕이 친 이현이 싸늘한 눈으로 그를 내려다 보았다. 아픈 목을 손으로 감싼 채, 쿨럭거리며 숨을 급하게 토해내는 문창진. "당신 하나쯤, 골로 보내는 건 일도 아냐." 살벌하게 경고를 던진 이현이 신문사를 빠져나왔다. "… 병원으로." 짤막하게 행선지를 말한 이현이 차에 올랐고, 부드럽게 움직이기 시작하는 벤츠. 소독약냄새가 진동을 하는 입구를 빠르게 지나쳐 미노가 있는 병실로 들어선 이현. 드르륵- 문을 열자, 병실에 있던 시혁과 예찬, 새휘, 은샘, 류예, 환희, 우주의 시선이 이현에게로 향했다. "이현아…" "너 어떻게 된 거야, 연락도 안 되고." "좀 바쁘게 처리할 일이 있었어, 그것보다… 미노는?" "화장실." "… 그래, 밥은 잘 먹어?" "전혀, 입 맛이 없는 지 남기는 게 더 많아." 탁- "잠깐, 우리 좀 보자." 시혁과 새휘가 이현과 함께 옥상으로 올라왔다. 제법 차가운 바람이 세 사람의 얼굴을 스쳤다. "… Y그룹, 도산하기는 커녕 꽤 큰 회사들의 주식을 사들이고 있는 것 같던데 괜찮은 거야?" "계획대로 진행 중이야, 그러니 걱정하지 않아도 돼." "하지만 말이야…" "다시는 날 수 없도록 날개를 꺾어 줄 테니, 지켜보기만 해." * 일주일 후- 문을 열고 들어서던 시혁과 예찬의 눈이 휘둥그레 해졌다. 활짝 웃으며 그들을 보고있는 미노. "… 미, 미노야…?" "왜요? 시.혁.선.배?" 미노의 발언에 잠시 눈을 깜빡이는 시혁. 그런 시혁의 모습을 보며 헤헤거리며 웃고있는 미노. "너, 너 설마…!" [원장실] "… 축하합니다, 완벽하게 기억을 되찾았어요." "정말, 정말인가요?" "그렇습니다, 본인이 얘기한 것과 여러분들이 한 얘기가 하나도 틀리지 않고 맞아 떨어졌어요." "…… 잘 됐다, 미노야!" "축하해, 미노야. 정말 다행이야…" "… 많이 힘들었을텐데…" 슬픈 눈으로 미노의 머리칼을 쓰다듬는 예찬. 그런 예찬을 향해 싱긋- 하고 웃어보이는 미노. "하지만, 그대로 있는 건 안된다고 생각했어요…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가 갈 거고, 비록 기억나지는 않았지만… 가슴으로는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생각한 거예요, 내게 있어서 가장 소중하고 중요한 사람들을 잊는 건 싫으니까…" "잘했어… 고마워, 미노야." "음, 뇌파검사에도 별다른 이상이 없고… 다른 외상도 없으니 앞으로 이틀 뒤에는 퇴원해도 될 것 같습니다." "… 얼른 기운차리자, 학교에서 할 일이 아주 많이 있다구." 미노에게 눈을 찡긋- 해보인 류예가 미노와 함께 원장실을 나왔다. 시혁은 전화로 이현에게 기억을 찾았다는 소식을 전해주었고, 바로 계획을 실행에 옮길거라며 오늘은 미노를 부탁한다는 말과 함께 전화를 끊은 이현. 플립을 접어 주머니에 넣은 시혁이 미노의 뒷모습을 보며 작게 미소지었다. '꿈 아니지? 내가 너무 간절히 원해서… 그래서 뜬 눈으로 꾸고있는 꿈 따윈 아니겠지, 그렇지?' 이틀 후, 미노는 무사히 퇴원을 할 수 있었다. 이현이 집을 비운다는 소식을 접해들은 미노는 당분간 시혁의 집에서 생활하고 있는 상태. "미노야, 뭘 보고 있는거야…?" [급진적으로 성장하고 있던 Y그룹의 오너 K씨의 자금 출자 의혹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외국으로 도피하려고 했다는 증거까지 발견되 수사는 급물살을 타게 되었습니다. 현장에 나가있는…] 삑- TV의 전원을 끈 시혁이 미노의 앞에 과일을 담은 접시를 내려놓았다. "맛있어, 먹어 봐." "… 음, 잘 먹겠습니다아-" 키위를 한 입 베어물은 미노가 만족한 듯 베시시- 하고 웃는다. 그 모습을 보며 작게 웃는 시혁. 전국에서 알아줄 정도로 잘 나가던 그룹이 무너져 내리는 순간이었다. 최고의 부흥기를 맞았다고 매스컴을 떠들썩하게 만들더니, 한 순간에 그룹의 이미지가 깎이는 동시에 파산할 위기에까지 이르렀다. 물론, Y그룹을 이렇게 만든 건 다름아닌 이현이었고, 이 일은 미노에게는 비밀로 하기로 했다. 분명 자신이 피해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미안해 할 테니까… "음, Y그룹이라는 곳 자금 사정이 안 좋았나 봐요?" "글쎄, 아무래도 그렇겠지?" 고개를 끄덕이며 키위를 맛있게 먹고있는 미노. 그런 미노를 보던 시혁이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미노야… 내일, 학교 가자." "… 에?! 진짜에요?" "아, 물론 네가 싫다면 아직 며칠 더 쉬어도…!" "아니, 아니에요! 나 갈래요!" 기쁘다는 듯이 웃고있는 미노의 머리칼을 살짝 흐트려 준 시혁. 잠시 후, 졸립다며 방으로 들어가는 미노를 보던 시혁이 쇼파에 기댄 채 핸드폰을 꺼냈다. "나야, 은샘아." [네, 회장 형.] "애들한테 연락해 놔, 내일 강민지 처벌할거야." [알았어요, 그렇게 할게요.] 플립을 닫은 시혁이 핸드폰을 접어 넣고는 눈을 감았다. 팔을 올려 눈을 가린 시혁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걸렸다. "그 동안 많이 봐줬으니, 이제 끝을 내야겠지…" 58. 교복을 가지런히 챙겨입은 미노가 시혁과 함께 차에 올랐다. 부드럽게 속력을 올리며 학교로 향하는 벤츠. 아직 학교에 가기에는 이른시간임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이 드문드문 보인다. "꺄아- 미노야! 학생회장도 같이 있어!" "진짜? 왠일이니, 너무 멋있잖아!" "좀 비켜 봐! 우리 미노님의 얼굴이 안 보이잖아!" 학교 앞 500m 거리를 꽉 메우고 있는 여학생들. 그들을 빠르게 지나쳐 마린고 운동장으로 들어선 벤츠가 멈췄고, 뒷좌석의 문을 열며 미노와 시혁이 내려섰다. "어서 와." 류예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미노와 시혁을 맞았다. 아이들의 끈질긴 질문공세에 인상을 살짝 찌푸린 미노가 교실 문을 열었다. 변함없는 모습으로 교실에 앉아있던 이현이 미노에게로 다가왔다. 싱긋- "여전히 예쁘네." "바, 바보! 무슨 소릴 하는거야!" 생각지도 못한 이현의 발언에 말을 더듬는 미노. 그런 미노를 보며 쿡쿡거리며 웃는 세 사람. 다각- 다각- "회장 형, 준비 ok예요." 은샘의 말에 작게 고개를 끄덕인 시혁이 은샘과 함께 교실 밖으로 나갔다. 그들의 뒤를 이현과 미노가 따랐고, 3층에서 내려오던 예찬, 우주, 새휘, 환희도 합세했다. 저벅- 저벅- 뒷 뜰에 나와있는 강민지 패거리를 본 미노의 얼굴에는 표정변화가 없었다. 차갑지도, 싸늘하지도, 냉정하지도 않은 무표정함. 미노를 발견한 강민지가 다짜고짜 미노에게로 달려들었다. "이게 전부 너 때문이야! 이 나쁜 새끼야!" 멱살을 잡힌 미노를 보고는 우주와 새휘가 민지를 떼어놓기 위해 팔을 잡았지만, 그냥 내버려두라는 듯 손을 들어 저지하는 미노. "너만! 너만 눈에 안 띄었어도, 이렇게까지 되진 않았어!" "……" "너만 없었으면 난 여전히 Y그룹의 외동딸이라는 명칭하에 떵떵거리며 살 수 있었어! 네가 내 인생을 모두 망쳐놓은거야! 알아?! 모두 너 때문이라고!" "… 그렇게 남의 탓을 한다고, 마음이 편해지니…?" "……!"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리면, 상처받은 그 기억을 치유할 수 있는거야?" "… 뭐야, 그 말투는…" "나 역시 그 기분이 어떤 지, 잘 알고 있어…" "… 닥쳐! 너 따위가 어떻게 알아! 헛소리 지껄이지 말란 말이야!" "너와 똑같이 그 상황을 겪어봤기 때문이야, 큰아버지 손에 의해 무너져가는 우리 아버지의 회사를… 이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이야… 그래서 알아." 미노의 말에 떨리는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고 있는 민지. 적잖이 충격을 받은 듯, 미노의 옷을 잡은 손을 풀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니다. 천천히 손을 올려 민지의 손을 떼어낸 미노가 민지를 내려다보았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할 수 없겠지. 아무것도 알지 못하면서 말만 번지르르하게 늘어놓는 사람은 상처받은 사람을 위로할 수 없어." "… 어째서, 왜 이렇게… 왜 이렇게 되어버리는 거야! 왜!" "너 때문에 일시적으로나마 기억을 잃었지만, 탓하지는 않아. 집착도 좋아. 사랑하는 방법이 잘못된 건 맞지만 사랑하는 거니까… 네 마음 잘 알았어." "흐흑… 뭐든 다 알 수 있다는 듯이 말하지 마… 흑… 그렇게 말하지 말란 말이야!" "…사랑을 얻기 위해 나를 때린 그 행동, 이해할 수는 있지만… 용서할 수는 없어. 날 쫒아내려고 다른 사람에게 부탁할 수 있는 생각을 했었지? 그것처럼, 나를 미워하는 그 마음도… 해결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었던 게 아닐까…?" 털썩- "으흐흑… 흐흑… 으흑흑…!" 바닥에 주저앉아 울음을 터트리는 강민지. 그런 민지를 보던 미노가 망설임없이 뒤를 돌았다. 몇 발자국 걸어가던 미노가 걸음을 멈추고는 시혁에게 시선을 던졌다. "조용히 학교 나갈 수 있게 선배가 도와줬으면 해요." "… 이걸로, 괜찮겠어?" "내가 쇠파이프로 맞았다고 해서, 나를 그렇게 만든 사람에게 똑같이 복수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예요. 집안일로 인해 충분히 충격받았을테고, 너무 몰아세우면 바닥으로 추락해버릴테니까…" "… 미노야…" "물론, 한 달간이지만 기억을 잃고 생활했었다는 건 억울해요, 하지만… 지금 저 아이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뿐이라고 생각해요." 약간의 미소를 띈 채, 건물 안으로 들어 가 버리는 미노. 대리석으로 된 바닥과 구둣발소리가 어우러져 기분좋은 멜로디를 만들어내고 있다. "선배들이 날 소중하게 여겨주는는 것처럼, 저 아이도 부모님에겐 무척이나 소중할테니까… 내 욕심을 위해서 상대방을 아프게 하는… 그런 일은… 난 할 수 없어요." * 그로부터 몇 주 후, 외국으로 유학을 갔다던 민지에게서 편지가 도착했다. 런던의 경치를 보면서 새롭게 시작하기 위해 모두들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편지에는 외국에서 사귄 남자친구와 함께 찍은 사진도 있었다. "음… 이름은 케빈 맥스터, 나이는 23살… 에엑! 23살?!" 민지가 보내준 남자친구의 신상정보를 읽던 미노가 눈이 휘둥그레해졌다. 그런 미노의 반응에 식빵 한 조각을 입에 물고있던 시혁이 미노에게로 몸을 기댔다. "뭐야? 왜 그래?" "아니, 남자친구 나이가 23살이라잖아요!" "… 그게 뭐 어때서?" "에엑- 어떻다뇨! 나이차이가 나잖아요!" "… 도미노, 너 민지를 몇 살로 생각하고 있는거냐?" "그야…" "시혁이랑 나랑 동갑. 즉, 19살이라는 거지." "그러니까! 차이가 많이 나잖아요!" 탁- "겨우 네 살 차이라구." 아무것도 아닌 것에 놀라지 말라는 듯, 미노의 어깨에 팔을 걸치고 말하는 새휘. 그런 새휘의 팔을 휙- 하고 멀리 떨쳐낸 시혁과 이현. "아아, 너무하는 거 아냐? 이래뵈도 난 미노와 어렸을 적부터 친분이 있었던 사이라고…!" "그래서 뭐." - 시혁 "상관없어요." - 이현 딱 잘라 말하는 두 사람의 모습에 새휘가 한숨을 쉬더니 어깨를 으쓱- 한다. "아아, 그래그래- 내가 졌다. 늬들을 누가 말리겠냐." 손을 머리 뒤로 보내 깍지를 낀 새휘가 의자에 털썩- 하고 앉더니 몸을 기대었다. 잔뜩 삐친 모습으로 기댄 새휘를 보며 쿡쿡거리며 웃던 미노가 새휘에게 다가갔다. 미노가 오는 것을 보고는 고개를 홱- 하고 돌려버리는 새휘. "화났어요?" "아니." "화났네." "아냐." "거짓말." "거짓말 아냐." "흐음-" 잠시 새휘를 보던 미노가 새휘에게로 허리를 숙였다. 바로 앞에 위치한 미노의 얼굴을 본 새휘가 눈을 깜빡거린다. "뭐, 뭐하는 짓이냐?" "… 삐쳤구나." "바, 바보! 삐치긴 누가 삐쳐! 삐치지 않았어!" "…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 분명히 삐쳤어." "아니라니까…!" 탁- "바보민새휘, 그만 인정해." - 시혁 "회장 형 말이 맞아요, 새휘 형." - 은샘 "무한한 낙천성을 가지고 있던 형도 삐치는 수가 있구나." - 류예 "이봐, 나 삐친 적 없다니까 그러네…?" - 새휘 새휘가 정말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미노를 빤히 쳐다본다. 하지만 그런 새휘를 향해 싱긋- 하고 샤방한 미소를 날려주는 미노. "새휘오빠, 오빠 버릇 있는 거 알아?" "… 버릇?" "응, 어렸을 적부터 늘 그랬어." "… 뭐야, 그런 적 없어." 싱긋- "있어, 적어도 난 알고 있으니까 속이려고 해도 소용없습니다." "바보, 그런 거 없다니까." 새휘가 있는 곳으로부터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의자에 거꾸로 털썩- 하고 앉은 미노가 턱을 괸 채, 새휘를 빤히 바라본다. "손." "… 뭐?" "오빠의 손버릇." 미노의 말에 어리둥절하게 새휘의 손을 보는 시혁일행과 이현. 당연한 반응이라는 듯, 살짝 미소짓는 미노. "오빠 지금, 손 깍지끼고 있잖아. 그게 바로 오빠가 삐쳤다는 증거야." 머리 뒤로 깍지낀 손을 푼 새휘가 정말이냐는 듯 미노를 본다. "어렸을 적부터 그랬어, 오빠 삐쳤을 땐 손을 머리 뒤로 깍지끼고 벽에 기대거나 의자에 기대거나. 둘 중 하나였거든. 여태까지 그런 것도 몰랐단 말이야? 종종 그랬으면서." "… 하하, 몰랐어." "거 봐, 오빠 삐친 거 맞았지?" "……!" 탁- "걸려들었군, 바보민새휘." "역시 미노야." "그런 거짓말을 생각해내다니, 또 한 번 놀랐어." "… 어라? 누가 거짓말이래요?" "응?" 싱긋- "진짜예요, 그 버릇." 눈부신 미소를 지어준 미노가 졸립다며 뒤로 돌아 책상에 얼굴을 묻었다. 새휘에게서 떨어져 미노의 곁으로 다가가 앉은 이현과 시혁. 두 사람이 다가온 것을 느낀 미노가 고개를 들며 자리에 똑바로 앉았고, 그런 미노의 귀 양 쪽에 입술을 가져다 댄 두 사람. "새휘에게만 오빠라고 부르다니, 불공평하잖아. 나 질투난다구." - 시혁. "오늘 밤, 집에서 깊은 대화를 나눠보자구." - 이현. 59. 풀썩- 이현이 밀치는 힘에 의해서 침대 위로 쓰러진 미노. 뭐, 뭐야…! 깊은 대화라는 게 이런 걸 말한 거였어?! "자, 잠깐…!" 슬금슬금 물러나는 미노의 발목을 손으로 잡은 이현. 탁- "으아아아앗- 이거 놔!" "… 가만히 좀 있어라, 내가 너 잡아먹냐?" "자, 잡아먹으려고 하잖아! 지금!" 피식- "알긴 아네." "뭐야?! 이거 안 놔, 이 변태!" "억지로는 안 해, 그러니까 나한테 맡겨." "마, 맡기긴 뭘 맡…! 읍-" 미노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겹친 이현. 반항할 틈도 없이 힘이 빠지게 만들어버리는 녀석의 키스. 이현의 손이 부드럽게 미노의 어깨를 쓸어내렸다. 처음 느껴보는 기분에 몸을 움찔거리는 미노. 피식- 미노의 반응에 살짝 웃은 이현이 미노의 목덜미에 입을 맞추었다. 귀를 잘근잘근 깨물자 미노가 인상을 찡그렸고, 그 모습을 보며 쿡쿡거리며 짖궂게 웃는 이현. "읏… 하지… 으음… 마… 아흣-" "… 아무 말 하지 말고, 나한테 집중해." 사랑스럽다는 듯이 베이비키스를 선사한 이현이 미끄러지듯이 손을 옮겼다. 이현의 손이 닿는 곳마다 미세하게 몸을 떠는 미노. "아앗… 그, 그만… 둬… 그, 그만…!" 피식- "오늘 밤엔 내 것으로 만들려고 했는데, 이거 아쉽게 됐는 걸?" "하아… 하아… 무슨 소릴… 바보같이…" 한 쪽 눈을 찡긋- 한 이현이 미노를 남겨둔 채, 거실로 나갔다. 열기가 남아있는 뺨을 손으로 쓸며 욕실로 들어가는 미노. 문득 거울을 보니, 제법 길어버린 미노의 머리칼이 어깨 바로 위에서 찰랑거리고 있다. "… 머리, 잘라야겠는 걸?" 한숨을 푹- 내쉬고는 욕조에 들어가 몸을 담근 미노. 따뜻하게 몸을 감싸오는 온도에 기분좋은 미소를 지으며 샤워를 시작한다다. 달칵- 샤워를 끝낸 후, 간단하게 옷을 챙겨입은 미노가 거실로 나왔다. TV채널을 이리저리 돌리고 있는 이현을 보고는 피식- 하고 웃는다. "되게 심심한가봐, 요즘엔 일 없어?" 젖은 머리칼을 수건으로 탈탈- 털고있는 미노. 그런 미노를 보며 살짝 얼굴을 붉힌 이현이 자신의 옆자리를 가리켰다. "이리와서 앉아 봐, 말려줄게." "괜찮아, 그냥 냅두면 저절로 마를텐데 뭐…" 탁- "으에엣-" 미노의 손목을 잡아끌어 자신의 옆에 앉힌 이현. "저번에도 해줬었는데, 뭘 그렇게 빼냐?" "빼, 빼긴 뭘 빼!" 피식- "알았어, 알았으니까 얌전히 있어." 부지런히 손을 움직이는 이현. 미노는 그런 이현을 힐끔- 보고는 리모컨을 집어들었다. "영화볼려고?" 이현의 물음에 미노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잠이 안 와서." "왜? 무슨 일 있어?" "모르겠어, 그냥… 이상하게 잠이 안 오네." 버튼을 누르던 미노가 리모컨을 옆에 놓아두고는 등을 편하게 기대었다. 미노를 보던 이현이 TV로 눈을 옮겼다가 미노에게 다시 시선을 던진다. "너 예술영화도 보냐?" "… 잠 안 올 때는 지루한 거 보는 게 좋다더라." "하긴, 그렇긴 하겠다." 미노의 머리칼을 부드럽게 헤집던 이현이 어느 정도 말랐다고 생각되자 손을 뗐다. 수건을 세탁실에 던져놓은 뒤, 미노의 옆에 자리를 잡은 이현. TV에서 흘러나오는 알 수 없는 전문용어들을 꽤나 흥미로운 눈으로 보고있는 미노. "… 재미있어?" "예술영화치고는 많이 지루하지 않은 것 같은데?" 피식- "그래, 그럼 어디 한 번 봐 볼까…" 영화는 꽤 오랜시간동안 방영되었는데, 모르는 용어가 나왔을 때는 인상을 찡그리면서 영화를 보았다. 11시가 넘은 시각, 잠이 올 때가 됐음에도 불구하고 더욱 더 또렷해지는 의식에 고개를 갸우뚱- 하고는 부엌으로 가 냉장고를 열어 물을 마시는 미노. 지이이잉- 지이이잉- 늦은 시간에 걸려온 전화에 살짝 의아한 표정으로 이현을 보던 미노는 받으라는 이현의 눈빛에 핸드폰의 슬립을 열었다. "여보세요?" [도승민씨 따님 되십니까?] * "… 네, 그런데요?" [여기 병원입니다, 가족 분께서 빨리 와주셔야 할 것 같아서…] 툭- 머릿 속이 텅- 비는 것 같은 느낌이 든 미노가 손에 들었던 핸드폰을 떨어뜨렸다. 미노의 반응이 이상하다는 걸 느낀 이현이 핸드폰을 들어 대신 전화를 받고는 코트를 챙겨 미노를 차에 태웠다. "마, 많이 다친 거 아니겠지…? 응?" "… 괜찮으실거야." "빨리, 빨리 가… 응? 제발…" 미노의 떨림을 느낀 이현이 엑셀을 밟으며 속력을 높였다. 병원 앞에 도착하고 문이 열리자 마자 스프링처럼 튀어나가는 미노. 그런 미노를 급히 뒤따라가는 이현. "아, 아빠…! 어, 어, 엄마…!" 피로 범벅이 되어있는 침대 위에 나란히 누워있는 엄마와 아빠.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덜덜 떨리는 손을 뻗어 엄마와 아빠의 뺨을 어루만지는 미노. 손으로 전해져오는 차가움에 미노의 눈이 커졌다. "말도 안 돼, 아니야… 이럴 리가 없어…!" 뚜벅- 뚜벅- "저희도 최선을 다했지만… 여기 도착했을 때는 이미 늦은 상황이라…" "… 어떻게 된 겁니까, 교통사고인가요?" 놀란 마음을 감추고는 차근차근 연유를 물어보는 이현. "… 총에 맞으신 것 같습니다." 의사의 말에 눈을 크게 뜬 미노. "무슨 소리야? 총에 맞다니! 그게 대체 무슨 소리냐구!" "두 분의 몸에서 탄환이 발견되었습니다, 근처에는 범행에 사용된 총도 발견되었구요." 경찰들이 하는 말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세차게 고개를 젓는 미노. "있을 수 없어! 우리 아빠엄마 평생 착하게 살아오신 분이란 말이야! 근데 어떤 새끼가 감히… 감히 어떤 새끼가! 안돼, 안돼! 나 왔잖아! 눈 좀 떠 봐! 엄마! 아빠!" "… 이만 영안실로 옮겨야 합니다." "아, 안 돼! 가지 마…! 나도 데려가란 말이야! 엄마!!!! 아빠!!!!" 싸늘하게 식어버린 엄마와 아빠를 붙잡고 오열을 하는 미노. "가지 마… 부탁이야, 데려가지 마… 흐흑… 갈려면 나도 데려 가…!" 털썩- 실신한 미노를 급히 침대에 옮겨 맥을 체크하는 의사들. 이현은 시혁에게 연락을 해 병원으로 오도록 했다. 몇 분 후, 시혁이 병원에 도착했다. 링겔을 맞으며 침대에 누워있는 미노를 보며 슬픈 표정을 짓는 시혁. "어떻게 됐어, 네가 한 말이 모두 사실이야?" "… 사실이야. 미노의 부모님은 총살되셨어." 뚜벅- 뚜벅- "실례합니다, 도승민씨 가족분인 도미노양과는 어떤 관계십니까?" "… 무슨 일이죠?" "장례절차를 밟아야 하는데… 미노양이 쓰러져 있어서…" 탁- "제가 대신하죠." 펜을 집어든 시혁이 익숙한 손놀림으로 차트를 작성 해 나갔다. 간호사와 함께 영안실로 향하는 시혁과 이현. 몇 시간 후,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응급실의 소란에 정신을 차린 미노. 초점없는 흐릿한 눈을 몇 번 깜빡이더니, 손을 움직여 팔에 꽂혀있는 링겔바늘을 빼버린다. "어, 어머! 환자분!" "비켜, 난 환자가 아니니까." "하, 하지만 피가 많이…!" 타박- 타박- "힘든 건 알지만, 몇가지 질문을 좀 해도 괜찮겠습니까?" 뱃지를 보여주는 형사. 잠시 그를 싸늘하게 쳐다보던 미노가 침대 맡에 기대어 앉았다. 미노가 얌전해진 것을 느낀 간호사가 급히 솜으로 피가 나는 미노의 팔을 감쌌고, 그런 간호사를 힐끗- 하고 본 미노가 형사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부모님께서 최근에 누구에게 원한을 사거나 할 만한 일은 없었나요?" "있을 리가 없잖아. 평생을 누구보다 착하게 살아오신 분들이니까." "그럼, 자살할 가능성 같은 건…!" 콰앙- 팔을 옆으로 뻗어 주먹으로 뒤에있는 벽을 쳐버린 미노. 한없이 싸늘해진 회색빛의 눈동자가 형사에게 향했다. "그딴 질문 할 거면 당장 비켜." "자, 잠깐만! 범인을 잡기 위해서는 이러는 수 밖에…!" 피식- "… 범인? 좋아, 그럼 내 질문에 대답해보시지." "뭐, 뭔가!" "총을 맞은 상처에 화상자국이 있었나?" "그, 그런 건 아무데도…" "자살하는 사람이 일부러 원거리에서 자신을 저격할 필요가 있었을까?" "… 그, 그건!" "또 한가지, 탄환이 박혀있는 깊이와 출혈량을 생각해 봐." "화, 확실히…" "… 질문을 할 거라면 좀 더 신중하게 하시지." 차가움이 묻어나는 미노의 말투에 형사는 흠흠- 하고 기침을 하고는 품에 넣어두었던 뭔가를 꺼내들었다. 투명색 비닐에 쌓인 검은색 물체. "어, 어디서 본 적 없나?" 잠시 형사를 보던 미노가 형사의 손에서 비닐을 빼앗아 찬찬히 살폈다. "이게, 우리 부모님을 살해한 총인가?" "… 시신의 바로 옆은 아니었지만, 근처에 떨어져 있었고 또 탄환도 일치하니 확실한 살인흉기지." "콜트 킹코브라… 국내에선 구하기 어려운 총인데, 어떻게 이런 걸 버리고 갈 생각을 했는 지 그게 더 궁금한데?" 미노는 눈에 띄게 차가워져 있었다. 온 몸을 휘감고있는 살기를 느낀 형사가 주춤거렸고, 미노는 비닐을 이리저리 돌리며 총을 살폈다. 그러던 중, 눈에 띄는 뭔가를 발견한 미노가 인상을 찌푸렸다. "일련번호는 지워져있고, 소유자조차 밝혀지지 않은 것 같은데… 확실히 이런 총이라면 총포사에서 흔히 들여놓을 물건은 아니지만 말이야." "어, 어떤가… 본 적이 있나?" 피식- "… 아니, 전혀." 미노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비닐을 형사에게 건넸다. 뭔가 생각나는 게 있으면 연락하라며 명함을 건네고는 병원을 빠져나가는 형사. 손에 들려있는 명함을 보던 미노가 입술을 옆으로 그으며, 잔인한 미소를 그었다. 찌이익- 찌익- 명함을 갈기갈기 찢어버린 미노가 피를 머금은 솜을 쓰레기통에 던졌다. 주변을 둘러본 미노는 이현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고는 간호사에게 물었다. "나와 같이 있던 남자, 어디있어요?" "… 아, 그 분이라면 영안실에…" 간호사의 말에 고개를 숙이고는 피식- 하고 웃은 미노. 옆에 놓여있는 다른 환자의 모자를 눌러쓴 미노가 간호사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병원을 빠져나왔다. 총에 새겨져있던 희미하지만 낯익은 이니셜. 미노의 눈은 차가운 회색이 되어있었고, 몸에서는 알 수 없는 살기가 느껴지고 있었다. 달칵- 택시를 잡아 이현의 집으로 온 미노는 간단한 옷가지를 챙겼다. 한 장의 종이 위에 뭔가를 끄적인 미노가 자신의 핸드폰을 벽에 던져 부셔버리고는 집을 나섰다. [부모님을 부탁할게, 때가 되면 돌아 올 테니까, 그때까지 나 찾지 말아 줘.] 60. [完] 3년 후- 안개가 자욱하게 낀 도시의 뒷골목. 검은색 코트자락을 휘날리며 한 사람의 인영이 안개 속에서 흐릿하게 모습을 나타내었다. 아무런 감정도 없어보이는 얼굴, 연회색 빛의 선글라스에 의해 가려진 눈동자. 소년의 희고 매끈한 손에 들려있는 데저트이글은 특유의 빛을 발하며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자신의 밑에 쓰러져있는 남자를 향해 서서히 손을 옮긴 소년은 한 순간의 주저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탕- 남자의 미간을 정확히 관통해 벽에 박힌 탄환. 눈을 감지도 못한 채, 돈을 담은 봉투만 손에 꼬옥- 쥐고 죽은 남자. 죽어버린 남자의 품에서 돈 봉투를 빼앗아 든 소년이 입가에 잔인한 미소를 걸었다. 간간히 불어오는 바람에 흩날리는 핏빛의 머리칼, 한 없이 싸늘한 기운에 휩싸인 가녀린 몸. 페라리에 오른 소년이 눈을 가리고 있던 선그라스를 벗었다. 돈가방을 뒷좌석에다 대충 던져버리고는 허리 뒷춤에 꽂혀있는 데저트이글을 확인한다. 시동을 걸고는 거칠게 엑셀을 밟아 거리를 빠져나가는 소년. 룸미러에 비춰지는 탁한 회색빛을 띄고 있는 소년의 눈동자는 공허하게 비어있었다. 끼익- 차를 세운 소년이 던져두었던 가방에서 얼마의 돈을 꺼내 안주머니에 넣었다. 철제로 된 계단을 올라가 망설임없이 문을 두드리는 소년. 쾅쾅쾅쾅- "하암- 체이스, 너냐?" 삐그덕거리는 문을 열고 얼굴을 내민 남자. 한국계의 인상으로 보이는 남자는 상대방을 확인하더니 보안룩을 풀었다. "새벽부터 일 있었냐? 하암- 졸려 죽겠군." "… 자는 건 상관 안 하는데, 왠만하면 방 좀 치우는 게 어때?" "아아, 그냥 신경쓰지 말고 대충 밀어놓고 앉아." 손을 흔들며 부엌으로 들어가는 남자. 그런 남자를 보던 소년이 남자가 말한대로 어질러진 옷가지 위에 걸터앉았다. 탁- "하암- 그 녀석 때문에 온 거지?" "응, 어때?" "구하는 데 얼마나 힘들었는 지 아냐?" "시끄럽고 보여주기나 해." 구석에 있던 박스에서 뭔가를 꺼내오는 남자. 남자의 손에 들려있던 것을 받아든 소년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어졌다. "원하는 게, 그거 맞지?" "… 빙고." 물건을 확인하고는 품에 있던 지폐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는 소년. "세어 봐, 맞나." "내가 너랑 거래 한 두 번 하냐, 됐어. 맞겠지." 바닥에 만들어둔 비밀 지하실에 탁자 위에 올려져 있던 돈을 넣은 남자가 체이스라고 불린 소년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 내일이네, 보고싶어서 어쩌냐." "그 동안 신세 많이 졌어, 렌." "진짜 손 뗄거냐? 너 원하는 거물들이 엄청나게 몰려들고 있어, 당장이라도 연락처 알려달라면서 협박한다구!" "… 그런 협박이 렌에게 통할 리가 없는 걸 알고 있을텐데 말이지." 스윽- "응? 데저트이글? 왜, 무슨 문제있냐?" "반동이 심해, 손 좀 봐 줘." "흐음, 알았다. 조금만 기다려." 남자가 능숙한 솜씨로 이글을 분해했다. 찰칵거리는 금속음이 기분좋은 멜로디를 이루고 있을 때, 소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렌, 당신 목숨이 몇 개라도 돼?" "응? 그게 무슨 소리냐?" "왜 이렇게 총을 허술하게 다뤄? 탄창이 꽉찬 총을 책상 위에 놔두다니 제정신이야?" "아아, 의뢰였어. 9시쯤에는 가지러 올 거야." 찰칵- 마지막을 알리는 금속음이 들리고 깔끔하게 개조된 이글이 렌의 손에서 빛났다. 깔끔하고 빠른 솜씨에 살짝 놀란 표정을 지은 체이스. "완벽하게 개조했던데? 네가 아닌 다른 사람은 쓸 수 없게 만들어놓다니 실력이 제법이야." "… 렌 만큼은 아니지." 렌에게서 이글을 건네받은 체이스가 손에 쥐어보고는 만족한 듯 허리 뒷 춤에 꽂아넣었다. 체이스의 차가운 눈동자가 검은색의 상자에 담긴 총에 닿았고, 살짝 인상을 굳히더니 이내 뚜껑을 닫는다. "그만 가야겠어." "많이 보고싶을거다." "… 한국가면 연락할게, 고마웠어. 렌." 두꺼운 철제문을 쾅- 소리가 나게 닫은 체이스가 계단을 내려와 페라리에 올랐다. 엄청난 돈을 들여 최신형으로 개조한 총을 차갑게 내려다 본 체이스가 거칠게 핸들을 꺾었다.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새벽이기에, 도로는 고요한 정적만이 감돌고 있었다. 그 정적을 깨는 페라리의 엔진음이 바람을 가르며 도로를 질주했다. 흰색의 세련된 집 앞에 차를 세운 체이스가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가 짐을 챙겼다. 짐이라고 해봤자, 옷가지 몇 개와 여분으로 챙겨두었던 소형권총. 전기불을 켜는 콘센트 옆에 있는 작은 원형의 고리를 당기자 벽으로 보였던 흰색의 벽이 겉혔다. 푸른색의 은은한 조명이 비치는 곳에 빼곡히 전시되어 있는 검은색의 물체들. 그들을 확인한 체이스는 방에 가 자신의 손이 닿은 곳의 모든 지문을 닦아내었다. 하루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휴식을 즐기던 체이스가 가방을 메고는 문득 통장을 꺼냈다. 엄청난 액수의 돈이 체이스의 통장에 입금되어 있었다. 쓴 웃음을 머금고는 방 문을 열고 콘센트 옆의 고리를 잡아당긴 체이스. 베레타와 리볼버를 챙겨 가방에 넣고는 고리를 당겨 전시장을 닫은 체이스가 집을 빠져나왔다. 8시에 출발하는 한국행 비행기를 타기위해 공항에 온 체이스가 우편물로 총기류를 미리 한국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보냈다. 아무런 의심없이 검문대를 통과한 체이스가 몇 시간 후, 한국에 도착했다. [저희 항공사를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흘러나오는 안내음을 깡그리 무시한 채, 톨게이트를 빠르게 빠져나오는 체이스. 귀에 꽂아둔 도청기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에 체이스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래그래, 오늘은 우리 그룹의 창립기념일이자 내 생일이 아닌가, 껄껄껄.] 듣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끼치고 구토가 밀려들 정도로 지독한 음성에 체이스의 표정이 더욱 더 구겨졌다. 밖에 대기되어 있던 차에 오른 체이스가 얼굴을 가리고 있던 선그라스와 모자를 벗었다. 핸들을 꺾어 공항을 벗어난 체이스의 핏빛머리칼이 바람에 흩날렸다. 몇 시간 후, 서울에 도착한 체이스가 자신의 명의로 사 둔 집에 도착한 우편물을 확인하고는 집 안으로 들어섰다. 오랫동안 살지 않은 집이었지만, 매일 사람을 시켜 청소해두었기에 집 안은 깨끗했다. 한 쪽에 짐을 풀고는 우편물의 포장을 뜯은 체이스. 데저트이글을 허리 뒷 춤에 꽂고는 유독히 검은색 상자에 담겨있는 하나의 낡은 권총을 뚫어지게 본다. 손잡이 부분에 새겨진 희미한 이니셜에 인상을 찡그리고는 상자의 뚜껑을 덮어버린다. 핑그르르- 하고 탄창이 돌아가며 리볼버에 탄환이 장전되었다. 익숙한 손놀림으로 빠르게 총기류를 정리한 체이스가 체인이 달린 검은색의 진과 흰색의 셔츠, 넥타이와 검은색 가죽가방을 멨다. 체이스의 가는 팔목에 채워져있는 은색의 팔찌. 손가락마다 끼워진 반지를 쓰윽- 하고 보고는 모자를 꾹- 눌러쓴다. 체이스의 한 쪽 귀에 걸려있는 붉은색의 귀걸이. 부모님의 피로 만든 결정으로 한시도 빼놓지 않은 악세서리 중 하나였다. 투스톤. 밟혀도 부서지지 않고, 떨어뜨려도 깨지지 않는 영원한 유리. 특별하게 세공된 세련된 디자인의 귀걸이를 소중하게 어루만진 체이스가 집을 빠져나왔다. 10시에 시작하는 파티, 체이스는 차고에 세워진 무르시엘의 시동을 걸었다. 엑셀을 거칠게 밟고는 핸들을 꺾어 파티 장소로 향하는 체이스. 황금색의 로비 문을 부드럽게 밀고 들어간 체이스는 회색의 선그라스 너머로 연회장을 둘러보았다. 한 쪽에 있는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은 체이스. 얼마 후, 연회장의 불이 꺼지고, 오늘의 주역인 그 자가 등장했다. 단상 위에 올라서는 늙은 중년의 남자를 본 체이스의 표정에 싸늘함이 깃들었다. 입술에 잔인한 미소를 건 채, 한시도 눈을 떼지 않는 체이스. 몇 분간의 인사치레를 끝낸 남자가 단상에서 내려갔고, 연회장으로 이어진 복도로 나왔다. 얼굴에 핀 웃음을 보고 얼굴을 굳힌 체이스가 발소리를 죽인 채, 남자에게로 더욱 다가갔다. "야, 회장님 오늘 좋으십니다!" "괜찮았나? 허허, 최고로 좋은 시간이야!" "갈아입을 옷을 마련해두었으니, 저 쪽으로 가시죠." "아닐세, 자네는 손님들을 접대해주게. 금방 오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회장님." 인사를 하고 연회장으로 돌아가는 30대 중반의 남자. 그를 보던 중년의 남자가 복도 끝에 위치한 방으로 들어갔다. 달칵- 문이 닫히기 전에 재빨리 손을 뻗어 문 사이로 통과해 방 안으로 몸을 들여놓은 체이스. 옷을 갈아입으려 뒤를 돌던 남자의 얼굴이 놀라움으로 물들었다. "네, 네 놈은 누구냐!" 남자의 외침에 비릿한 미소가 걸린 입술을 옆으로 그으며, 입을 여는 체이스. "선물은 잘 받으셨습니까…" "… 서, 선물?" 탁자 위에 놓여있는 검은색 상자를 손으로 가리키는 체이스. 그런 체이스를 보던 남자가 상자를 열었다. 상자 안에 담겨있는 반질반질하게 윤이나는 콜트 킹코브라. 남자의 눈에 탐욕의 빛이 아른거렸다. 그런 남자의 눈빛을 놓치지 않은 체이스가 입술에 걸고 있던 미소를 지웠다. "쥐어보셔도 괜찮습니다." 체이스의 나직한 목소리에 현혹된 것일까, 남자가 침을 삼키며 콜트 킹코브라를 손에 쥐었다. 만족스러운 듯이 웃던 남자에게로 다가간 체이스가 손을 뻗어 남자의 손에 잡혀있던 킹코브라를 빼내었다. "많이… 갖고싶어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고, 고맙네! 이런 값진 선물을 해주다니 최고의 선물이네…!" 피식- "전에도 한 자루를 손에 넣으셨다고 들었는데, 그건 어쩌다 잃어버리셨습니까?" "아, 그건 도둑을 맞아서… 하하. 내가 관리가 허술했지…" 스윽- 총을 쥐지 않은 손을 올려 모자를 벗은 체이스. 핏빛의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렸다. "3년 전, 어떤 부부를 죽인 범인이 아직 체포되지 않으신 걸 알고 계십니까?" "글쎄, 나는 잘 모르겠는…! 서, 설마!" 피식- 입술에 잔인한 미소를 건 체이스. 덜덜 떨며 자신에게서 멀어져가는 남자에게 콜트 킹코브라를 겨눈다. "자, 자, 잠깐…! 잠깐 기다리게!" "… 당신은 우리 부모님에게 기다림을 주었나?"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다 해주겠네! 그러니…!" "이미 죽어버린 사람, 살려낼 수 있는 재주 있으면 어디 한 번 부려 봐." "… 그, 그건 못하지만…! 대, 대체 뭘 원하나!" "썩어빠진 개새끼의 목숨." 품에 넣어두었던 소음기를 돌려 끼운 뒤, 킹코브라의 총구를 남자의 관자놀이에 가져다 댄 체이스. "지난 3년간, 난 죽을 듯한 지옥을 경험했는데… 네 놈은…" "사, 살려주게! 부탁이야! 도, 돈을 원하는 거라면 얼마든 지 주겠네!" "… 네 놈의 손을 탄 더러운 돈은 받지 않아." "지금의 내 암호명은 체이스, 너희 같은 쓰레기를 처리하는 사냥꾼이지." "자, 잠깐… 제발 내게 해명할 기회를 주게!" "… 해명? 조금이라도 당신에게 양심이 남아있었다면 그 날 바로 자수를 했어야 했어. 하지만… 당신은 권력을 이용해 경찰들의 입을 막고 수사를 종결시켰어." "나도 처, 자식이 있는 사람이야! 제발 한번만 용서해주게!" "내일 신문에 이런 기사가 실리게 될 거야. 3년 전의 부부살해의 용의자 D씨가 최책감을 못이겨 자살, 했다고 말이야." 찰캉- 금속음이 들리며 탄환이 장전되었다. 그 소리에 미소를 짓는 체이스와는 달리 벌벌 떠는 남자. "… 잘가요, 큰아버지. 지옥에서는 우리 부모님께 용서를 빌기를 바래." 피슉- 소음기를 통해 빠져나간 탄환이 설현의 관자놀이에 박혔다. 손수건을 꺼내 들고있던 총의 지문을 모두 닦은 후, 설현의 손에 쥐어주는 체이스. 검지손가락을 확실히 방아쇠에 걸고는 꾸욱- 눌러준 후, 벗었던 모자를 고쳐쓰고는 쓰러져버린 설현의 앞에 주저앉았다. "… 자신을 죽인 원흉이 누구인 지 밝혀지지도 않은 채, 수사가 종결되는… 그런 뼈저린 속쓰림을 당신도 한 번 느껴봐야지 않겠어…?" 싸늘한 눈으로 설현을 쳐다본 체이스는 주저없이 문을 열고 연회장을 빠져나왔다. 아무것도 모르는 채, 잔잔한 음악이 연주되고 있는 연회장을 힐끗- 하고 본 체이스가 주차장으로 가 무르시엘의 시동을 걸었다. "… 3년만인데, 날 기억해줄까…?" 집 앞에 차를 세우고는 집 안으로 들어가는 체이스. 피가 튄 옷을 세탁실에 던져넣고는 살짝 인상을 찌푸린 체이스가 거울 앞에 섰다. "… 이름뿐인 인형이 되어버렸구나, 도미노." 슬프게 미소지은 미노가 욕실로 들어가 몸을 씻었다. 한 시간 후, 욕실 문을 열고 나온 미노가 옷을 갈아입고는 핸드폰의 슬립을 열었다. 사람을 통해 알아낸 핸드폰 번호로 문자를 전송한 미노가 눈을 감고는 쇼파에 기대었다. [내일 오후 1시, 카페 '크림' 으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핸드폰을 꺼둔 채, 침대에 쓰러지듯 몸을 맡긴 채, 잠이 드는 미노. 하늘에 떠 있는 달빛이 창가로 은은하게 비춰지고 있었다. * 오랜만에 편안하게 잠을 잔 미노는 기지개를 켜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차가운 물로 저혈당의 몸을 깨운 뒤, 옷을 갈아입고는 시계를 본다. 12시 30분. 딱 맞게 준비했다고 생각한 미노가 핏빛의 긴 머리칼을 휘날리며 현관을 나섰다. 흑회색의 체인이 달린 바지와 흰색의 셔츠, 검은색의 조끼를 걸친 미노의 귀에서 반짝이는 투스톤. 작은 움직임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투스톤을 힐끗- 하고 본 미노가 주머니에 손을 꽂았다. 허리 뒷 춤에 꽂아놓은 데저트 이글의 감각을 느끼며 거리를 유유히 걷는다. 제법 차가운 바람이 미노의 머리칼을 흐트리며 볼을 스쳤다. "저기 좀 봐, 엄청 예쁘잖아…" "세상에, 정말 예쁘다…" 사람들의 시선을 무시한 채, 카페로 들어선 미노. 청아한 방울소리가 울리며, 종업원의 시선이 모두 미노에게로 집중되었다. 맑고 흰 피부. 그와 어울릴 것 같은 투명한 까만 색의 눈망울은 선그라스에 의해 감춰져 있다. 오똑하게 솟은 코와 어울리는 적당히 도톰한 붉은 입술과 까맣고 긴 속눈썹. 눈두덩이 아래로 내려앉은 살짝 긴 핏빛의 앞머리. 선그라스 너머로 카페를 둘러보는 미노의 눈에 익숙한 여덟 명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들의 곁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는 미노. "… 오랜만이야, 다들."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 여덟 명의 눈이 놀라움으로 물들었다. 여전히 쿨한 이미지를 간직하고 있는 시혁과, 눈빛 하나만은 여전히 변하지 않은 이현. 시릴 듯이 파란 눈동자에 슬픔을 가득 담고 있는 예찬과, 아무 말도 하지않고 보고만 있는 환희. 다행이라는 듯이 안심한 류예의 눈동자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눈을 하고 있는 은샘. 아무런 표정없이 자신을 보고있는 우주와, 놀란 눈으로 자신을 보고있는 새휘. 한참동안 그들 사이에는 적막만이 감돌고 있었다. 스윽- 손을 올려, 눈을 가리고 있던 선그라스를 벗은 미노. 한 순간에 놀란 표정이 된 우주와 시혁, 이현, 환희, 류예를 본 미노가 작게 웃었다. "나 잊어버린 거 아니지?" 와락- "바보!" 시혁이 팔을 뻗어 미노를 끌어안았다. 따뜻하게 느껴지는 시혁의 품에서 살짝 눈을 감은 미노. "선배, 오랜만이에요." "바보같이, 누가 그렇게 사라지래?!" "… 그냥, 정리할 게 있었어요." 탁- "… 도미노, 너 정말 미노 맞냐?" 시혁을 조심스럽게 밀어낸 미노가 새휘의 앞에 섰다.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눈으로 보고있는 새휘의 손을 잡은 미노. "나 맞아, 오빠." "… 확실히… 맞네, 우리 미노… 맞네." 환하게 웃는 새휘의 곁에 앉은 우주와 환희, 류예, 예찬, 은샘을 본 미노가 싱긋- 하고 웃었다. 오랫동안 웃지 않은 미노였기에 어색했지만, 힘껏 웃어보였다. 이제… 이제 다시는 웃을 수 없을테니까. "… 돌아 온 거지." 굳게 닫혀있던 이현의 입이 열렸다. 허스키하게 변한 음성이 더욱 매력적으로 울려퍼졌다. 이현의 물음에 미노는 대답하지 못했다. "대답해. 다시 우리 곁에서 멀어지지 않는다고." "… 이현아." "지금 당장 여기서 말하란 말이야!" "… 대답할 수… 없어." 쾅- "결국에는… 가겠다는 거야?" "… 미노야, 우린 너 절대 보낼 수 없어." "다신 떠나보내지 않아!" "가지 마…" 피식- "다들 건강해보여서… 다행이야." 콰앙- 우주가 탁자를 세게 내려치며 미노를 무섭게 노려봤다. 둔탁한 발자국으로 미노의 앞으로 걸어온 우주가 손을 뻗어 미노의 어깨를 잡았다. 얼마나 세게 잡았던 지 아파오는 어깨때문에 인상을 찡그린 미노. "건강해보여서… 다행이라고? 네 눈엔… 네 눈엔 이게 건강 해 보여?!" "… 미안해." "그만해! 듣기 싫어! 말도 없이 사라져놓고 이제와서! 이제와서…!" 스윽- 미노가 우주의 손을 털어내고는 팔을 뻗어 안았다. 눈동자에 가득 차 있던 눈물이 미노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많이… 아팠구나, 선배." 아련하게 울리는 목소리를 들은 우주가 미노의 머리를 손으로 감쌌다. "죽어있었어, 우리들 모두…" "……" "네가 우리 곁에 없었더라면, 우린 지금까지 아무것도 모르는 부잣집의 도련님으로 남았을 거야." "……"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방법도,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는 방법도… 함께 노는 방법도… 모두 네가 가르쳐 준 거였잖아!" "… 선배." "아직 다 배우지 못했잖아! 사람들과 어울리는 방법도, 즐겁게 웃는 방법도!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을 줄 수 있는 방법도! 아직 그런 것들은 하나도 가르쳐주지 않았잖아! 그런데… 그런데 왜 또 가려고 해… 안되잖아… 그러면 안되잖아, 미노야…" 탁- "… 그래, 미노야." "우주의 말이 맞아. 우린 여태껏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었어." "사람들에게 부러움을 받았고, 부모님의 뜻대로 회사를 이어받아야 한다는 생각밖에 하지 못했어." "하지만… 널 만나고 나서 우리들은 달라졌어." "확실히 내가 뭘 하고 싶은 지 알게 됐어…" "지금 우리가 변한 건, 모두 네 덕분이잖아… 미노야." "… 떠나지 마." "가지 마…" 우주의 뒤에 선 일곱 명의 남자들. 그들을 눈물이 고인 눈으로 보고있는 미노. "우리들에겐… 미노 네가 필요해…" 댓글 85 인쇄 | 스크랩(0)▼ ol슬ㅂ ㅣ 내용 전개가 갑작스럽네여 ㅋㅋ 08.02.24 01:33 답글 ┗ H. 체리비。 지금까지 아낌없는 성원 보내주시고 사랑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즐거운 시간 보내시기 바랄게요^^ 08.02.25 11:57 까끙히 재밌져요ㅠㅠ미노는결국엔그나쁜큰아버지를죽이고다시컴백하는구효!꺄~>_<어떤누구와연결되길바랫는뎅!시안이까지하면9명에게둘러싸여잇던미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08.02.26 21:27 답글 ┗ H. 체리비。 지금까지 아낌없는 성원 보내주시고 사랑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즐거운 시간 보내시기 바랄게요^^ 08.02.27 15:48 베니카(紅夏) 미노 너무 멋있어요>_< 08.02.28 13:20 답글 ┗ H. 체리비。 지금까지 아낌없는 성원 보내주시고 사랑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즐거운 시간 보내시기 바랄게요^^ 08.02.28 20:09 간지윤 악제발이현이랑!!도설현이거잘됫서낄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08.03.03 19:54 답글 waz5913 오늘 재미있는소설 하나를 발견해서 재미있었어요^^ 앞으로 소설 많이 써주세염~ 08.03.16 20:19 답글 아픈스크림♣ 오늘 이거 보느라, 시간 가는줄 몰랐어요 흠흠 시험공부 해야되는데..이리, 탱자탱자 놀아도 되런지요.. 에필로그&번외 편도 보고..ㅇ_ㅇ 이 소설보다 더 재밌는 소설찾아 없을수도 있겠다.. ...꽤나 슬프군요.. 08.03.23 20:32 답글 ＊쎄끈미net 오랜만에 아주제대로된 소설하나봣네요ㅋ; 08.04.04 10:28 답글 눈망울™ ㅠㅁㅠ 진짜 세끈미츼 말에 동감 해효 ㅠ 너무 재미있네효!! 잘보고갑니다아 ㅜ 08.04.15 00:02 답글 감정파괴 우왕여따가만댓글다라써먀안. 몰라그래두딥다이뻐이거열번도넘게봐쪄 안질려 >_moon-sters@naver.com 연재장소 : 남장소설카페 총 편수 : 60편 장르 : 남장소설 ------------------------------------------------------------------------------------ - 위험한 도발, 미치도록 차가운 그 녀석의 키스에 길들여지다 에필로그. [US그룹의 창립 50주년을 기념하는 파티에 참석해주신 여러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호화롭게 장식된 연회장에 고급스러운 드레스와 비싼 정장을 입고 모여있는 사람들. 한 손에 와인을 들고는 사람들과 친목을 도모하는 모습이 정겹게만 보인다. 중앙에 마련된 뷔페음식과 얼음을 깎아 만든 조각상이 분위기를 한층 돋구고 있는 가운데, 특별하게 눈에 띄는 일곱 명의 남자들과 그들에게 둘러쌓인 한 명의 여자. 웨이브진 긴 흑발이 여자가 움직일 때마다 부드럽게 흩어졌다. [… 그럼 다음 순서로 저희 US그룹의 차시혁 기획이사님을 모시겠습니다, 박수로 환영해주시기 바랍니다.] 시혁이 단상 위로 모습을 비추자 연회장에 모인 사람들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누가 봐도 부러움을 느낄 정도의 외모와, 그에 뒤지지 않는 배경과 능력. 쿨한 성격과 최고의 매너까지 갖춘 완벽한 시혁이었기에 사람들의 환호성이 당연한 것처럼 느껴졌다.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모든 사람들을 압도하는 시혁의 카리스마. "… 선배, 대단하다." "엄청난 라이벌이야, 아무리 나라도 이길 것 같지가 않은데?" 피식- 이현의 말에 살짝 실소를 터트린 미노가 마이크 앞에 선 시혁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시혁의 한마디 한마디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사람들. 이현, 류예, 은샘, 새휘, 환희, 우주, 예찬과 미노가 지켜보는 가운데, 인사를 끝낸 시혁이 단상 아래로 내려왔다. 그리고 몇 분 뒤, 중요 간부들의 인사가 끝나고 사회자가 마이크를 쥐었다. [… 이것으로 저희 US그룹의 창립기념파티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음식을 드시면서 천천히 즐겁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사회자가 단상 위에서 내려갔고, 연회장에는 잔잔한 음악이 깔렸다. 주황색의 불빛이 내리쬐는 가운데, 더욱 빛나보이는 미노의 앞으로 한 잔의 와인을 내민 시혁. "다들 와 줘서 고마워." "섭섭하게 무슨 소리냐, 당연히 와야지." "새휘 형 말이 맞아요." "하하, 그래. 다들 배 안 고파?" 툭- "장난아니게 고프다, 빨랑 밥 먹으러 가자." 새휘의 발언을 무시한 채, 미노를 에스코트하는 시혁. 휘청거리는 새휘를 보며 쿡쿡거리며 웃던 일행이 시혁의 안내에 따라 한 쪽에 마련된 테이블로 자리를 옮겼다. 웨이터가 내어주는 음식을 먹으며 즐거운 듯이 웃고있는 미노와 여덟 명의 남자들. 와락- "꺄아- 시혁오빠!" 시혁의 목에 매달린 중학생정도의 여자애. 갑작스러운 여자애의 등장에 놀란 미노와 시혁. "달아, 그러면 안되지. 오빠 식사 중이시잖아." 부드러운 미소를 띄며 이쪽으로 걸어오는 아름다운 여성. 그 여성을 본 시혁이 달이를 내려놓으며 살짝 허리를 굽혔다. "이모님, 오셨어요." "건강해보이는구나, 잘 지냈니?" "덕분에 잘 지냈습니다, 이모부님은…?" "회장님이랑 함께 계셔. 달이가 시혁이 보고싶다고 떼를 써서 데리고 왔어…" 싱긋- "소개해줄게, 이쪽은 이모시고, 이 녀석은 이모와 이모부 사이의 딸이야, 이름은 린 달." "안녕하세요!" 환하게 웃으며 인사하는 달이를 보던 미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노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난 이현, 류예, 예찬, 은샘, 우주, 환희, 새휘. "처음 뵙겠습니다, 도미노입니다." 달이의 어머니께로 살짝 허리를 숙인 미노. 찰랑거리며 앞으로 넘어온 흑발이 눈부시게 아름답다. "만나서 반가워요, 호호. 시혁이 너도 제법이구나. 이렇게 예쁜 아가씨를 다 알고 말이야…" "어머니께 얘기 들으셨을거라고 생각합니다만…" "응, 물론이야. 네가 사랑한다면서 무릎까지 꿇었다고 하던 걸? 후훗." "이, 이모님! 그런 말을…" 얼굴을 붉힌 시혁이 급히 이모의 말을 가로막았다. 그 모습이 재미있다며 웃고있는 시혁의 이모님과 미노, 그리고 이현. "그리고 이쪽은 후배이자 제 강력한 라이벌인 소이현." 피식- "안녕하세요, 소이현입니다." "반가워요, 이현군." "오랜만입니다, 이모님." "호호호. 네, 정말 오랜만이네요. 다들 좋아보이는데요?" 이모의 칭찬에 살짝 웃으며 인사하는 류예, 예찬, 우주, 은샘, 환희, 새휘. 한 동안 그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날 줄을 몰랐다. 시혁과 이현, 류예, 예찬, 우주, 은샘, 환희, 새휘가 옷을 갈아입으러 간 사이, 미노는 달이와 함께 로비에 있었다. "시혁오빠가 언니 얘기 되게 많이 한 거 알아요?" "… 그랬어?" "응! 나 매일매일 들었는 걸!" 싱긋- "몰래 들었지?" "아앗- 어떻게 알았어요?" "비밀이야." 달이에게 눈을 찡긋- 해 보인 미노. 그런 미노를 보며 얼굴을 살짝 붉히는 달이. "나 크면 미노언니처럼 예쁘게 될 거에요!" "지금도 충분히 예쁘다고 생각하는 걸?" "아니아니! 나 언니처럼 될거에요! 멋있고, 아름답고! 예쁘고! 정말 같은 여자가 봐도 예쁘다고 칭찬 할 만큼 그렇게 될 거라구요!" 싱긋- "응, 꼭 그렇게 될 수 있을거야. 달이 파이팅!" "응! 파이팅!" 미소를 지으며 서로를 보는 두 사람.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아래로 내려오는 여덟 명의 남자들을 본 달이가 미노의 귓가에 속삭였다. "언니, 솔직히 우리 시혁오빠가 제일 멋있죠?" "… 글쎄, 사람의 매력은 각자 다르니까… 보는 사람에 따라서 달라질 것 같은데?" "응응, 그것도 맞는 것 같아요. 하지만 왠지 성질나요!" "… 왜 화가 나는데?" "사촌만 아니었다면! 시혁오빠랑 결혼하자고 졸랐을텐데!" 타박- 타박- "여어, 금단의 사랑이 시작되려고 하는건가?" 새휘가 짖궂게 웃으며 달이의 머리를 흐트렸다. 그런 새휘의 머리를 주먹으로 한 대 쥐어박은 시혁이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한 동안 잠잠하다 했더니 또 바보민새휘가 되어버린거냐." "에잇- 시끄러! 사악한 대마왕!" "바보보단 낫다고 생각해." "뭐얏?!" 탁탁- "선배들, 사랑싸움은 집에 가서 하시라구요…" "에엑- 시혁오빠 그런 취향이었어?!" 우주의 발언에 화들짝 놀라며 일어나는 달이. 그런 달이의 반응에 재미있다며 웃고있는 류예와 은샘. "서우주! 무슨 바보같은 소리야!" "에이- 선배, 본능에 충실해야죠." " 그, 그러니까 본능에 충실하라는 건 무슨 뜻인건데…!" 발끈해서 외치는 시혁의 곁으로 다가온 이현이 미노의 팔을 잡아끌었다. 어정쩡한 포즈로 이현에게 안겨있는 미노. 승리의 미소를 지어보인 이현이 눈을 빛내며 시혁을 향해 입을 열었다. "선배가 그런 취향이었다니, 의외예요. 하지만 이걸로 라이벌은 없어졌으니까 미노는 제겁니다." "그런 건 네가 결정지을 문제가 아니잖아!" "선배는 새휘선배와 사랑을 싹틔우라구요-" 미노의 손을 잡고 밖으로 뛰어나가는 이현. 새휘와 우주의 머리를 주먹으로 갈겨 준 시혁이 급히 이현을 뒤따라 달린다. "소이현! 너 이 자식 잡히면 죽었어!" 시혁이 그들을 따라나가자 울상을 짓고 있던 우주와 새휘도 뒤따라달렸다. 분명, 이 세상이 끝날 때까지 미노를 향한 이들의 사랑은 식지도, 사라지지도 않을 것이다. 그리고 다음 생에서는 이들의 못다한 사랑이 결실을 이룰 것이다. 두근거리고 설레는 마음으로 서로를 꼬옥- 끌어안은 채, 절대로 놓지 않을 것이다. 미치도록 매력적인 여덟 명의 얼굴에 피어있는 아름다운 미소처럼… 그들을 꼭 닮은 예쁜 아이와 함께… 미소지을 그 날을… 우리들은 한 없이 기대한다. 번외- 작가와 함께하는 티타임- "안녕하세요- 체리비입니다." - 작가 "네, 작가님." - 우주 "어서오세요." - 은샘 "반가워요." - 예찬 "작가님, 안녕하세요." - 류예 "안녕하세요." - 이현 "와, 작가님이다!" - 환희 "이봐, 작가. 너무 늦은 거 아냐?" - 새휘 반갑게 손을 흔들며 아름다운 미소를 짓고 있는 여덟 명의 소년들. "새휘 군, 미안해요! 에필로그를 쓰고 오느라 늦어버렸지 뭐예요-" - 작가 "그럴 수도 있죠, 뭐." - 류예 자리에 앉아 책을 읽고있던 류예가 작가에게 살짝 웃어보였다. 잠시 그들을 둘러보던 작가가 한 명이 빠졌다는 것을 느꼈다. "어머나? 미노양은요?" - 작가 "그러고보니…" - 이현 "우리보다 먼저 도착 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 시혁 타박- 타박- "뭐예요, 다들. 나 욕하고 있었던 거예요?" - 미노 "어서와요! 기다리고 있었다구요-" - 작가 시혁과 이현의 중앙에 미노가 자리를 잡고 앉자, 질문을 시작하는 작가. "이현군, 달빛 아래에서 이현군이 미노양에게 선사한 키스가 미노 양에게는 첫 키스라는 거 알고 있었어요? - 작가 "알고있었어, 골목을 벗어나는데 이 녀석의 절규하는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렸거든, 풋." - 이현 퍽- "웃지 마, 짜샤." - 미노 이현의 머리를 주먹으로 가볍게 쥐어박는 미노. "미노 양, 다음 날 학교에서 이현군을 봤을 때 솔직히 심정이 어땠어요?" - 작가 "음… 솔직히 말하면 꽤나 잘생긴 놈이구나, 라고 생각했었어요." - 미노 "거짓말이지? 그 때 네 표정 완전 장난 아니었다구." - 이현 "정말이야, 바보. 근데 잘생겼구나, 라고 생각한 인간이 너였다는 게 문제였지." - 미노 "너 오늘 밤에 또 벌 받아볼래?" - 이현 "… 으으, 알았어. 얌전히 있으면 될 거 아냐." - 미노 이현의 협박에 미노가 꼬리를 내리고 꿍- 한 표정으로 이현을 쳐다본다. 가끔씩 이현이 눈에서 레이저를 쏘는 것 같으면 시혁의 뒤로 숨는 귀여움을 보이는 미노. "하하하, 시혁군은 옥상에서 미노양을 처음 만났죠?" - 작가 "음, 그렇네요. 사실 처음에는 잘 몰랐는데 어느 순간 보면 볼 수록 빠져들게 되더라구요. 후훗." - 시혁 "와아- 시혁군은 솔직하네요." - 작가 "누군가가 그러더군요. 솔직하지 않으면 차시혁이 아니다, 라고." - 시혁 "앗! 그건 분명히 류예군이…" - 작가 "네, 맞아요. 후훗. 형은 항상 자신을 숨기고 있어서 누군가 알아차리지 않으면 그 속마음을 알 수 없어요." - 류예 "그래요, 그건 류예군 말이 맞는 것 같네요. 그럼 류예군도 소설 속에서 미노양에게 조금이라도 호감을 가진 적이 있었어요? - 작가 "물론,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 류예 "어떤 면에서 호감을 느꼈는 지 말해줄 수 있어요?" - 작가 "굳이 말한다면, 주눅들지 않는 자신감이나 꾸미지 않은 솔직함에 반했다고 할까요." - 류예 "아아, 그거라면 분명히 비안군이…" - 작가 저 멀리서 긴 은발머리를 흐트리며 손을 흔들고 있는 비안이 보인다. 긴 다리로 성큼성큼 걸어와 작가의 옆에 의자를 끌어다 털썩- 하고 앉아버리는 비안. "비안군, 아쉽게도 비안군은 그렇게 많이 출연하지 않은 것 같아요." - 작가 "아아, 그러게요. 무능한 작가를 만나서 제 매력을 마음껏 뽐내지 못한 것 같군요." - 비안 비안의 말에 살짝 난처한 표정으로 웃고있는 작가. "자자, 얼른 다음 질문 시작하라구요." - 비안. "아, 그래요. 그럼 다음은 우주군에게 물을게요. 미노양에게 호감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었죠?" - 작가 "… 뭐, 계기라기 보다는…" - 우주 "미노양의 과거를 알았을 때, 아니었어요? - 작가 "… 아냐, 훨씬 전부터 녀석을…" - 우주 미노를 힐끔- 하고 보는 우주. 의아한 표정으로 자신을 보고있는 미노의 머리를 흐트려준 우주가 싱긋- 하고 웃는다. "미노양이 교실에서 불량배들과 싸울 때, 반했던 건가요? - 작가 "그 땐 놀랐을 뿐, 특별히 반했다거나 한 건 아냐." - 우주 "그럼 언제…?" - 작가 "… 처음에… 학생회실에 등장했을 때." - 우주 "에? 그땐 별로 특별한 일도 없었는 걸로 아는데요?" - 작가 "그냥… 찡그렸다가, 웃다가, 바보같이 굴었다가, 아방하다가… 바쁜 녀석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살짝 끌렸어. - 우주 "류예군도, 예찬군도, 우주군도, 은샘군도, 새휘군도, 환희군도… 자신들의 사랑을 포기했는데 후회하지 않았어요? - 작가 "전 아직 그 때의 제 마음이 확실하지 않았어요." - 환희 "소설 속에서의 저는 회장을 극히 존경하고 잘 따라요, 그렇기 때문에 후회는 안해요." - 류예 "사실 세 사람을 보면서 질투가 나긴 했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니까." - 예찬 "우주군은요? 우주군의 성격으로 봐서 포기하기가 쉽지 않았을텐데…"- 작가 "다른 사람곁에서 웃는 것을 볼 때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그것과 같은 거겠죠." - 우주 "하하, 속이 깊네요. 참, 예찬군은 미노가 불량배들에게 당할 뻔 했을 때 구해줬었죠?" - 작가 자신에게로 질문을 던진 작가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예찬. 빨려들어갈 것 같은 푸른색 눈동자가 너무나 예쁘다. "당신 나한테 반한거야?" - 예찬 휘청- 하는 작가를 잡아주는 비안. 어째서 저런 대사를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는건지 작가는 가끔 예찬이 무섭다. "상대방에게 친절을 베풀지 않는 예찬군의 성격을 보면 미노양을 도와줬다는 게…" - 작가 "아아, 그건 나도 잘 모르겠어, 나도 모르게 몸이 움직였으니까." - 예찬 "첫 눈에 반했다거나, 뭐 그런건가요?" - 작가 "그런 것과는 다른 느낌이었어, 그냥… 생각보다는 몸이 먼저 반응했으니까." - 예찬 거기까지만 말하고 작가에게서 눈을 돌려 앞에 놓인 차를 마시는 예찬. "은샘군, 은샘군은 미노양과의 키스신이 딱 한 번 있었네요?" - 작가 "네, 회장 형과 키스하는 모습을 보고는 승부욕이 끌어올라서 저질러버렸죠. 후훗." - 은샘 "음, 시혁군이 키스한 다음이었는데도 괜찮았어요?" - 작가 "확실히, 회장형과는 간접키스를 한 것이 되는군요, 이거 살짝 슬픈데요?" - 은샘 "하하하, 은샘군은 1학년인데도 학생회에 있었으면 성적이 좋았을텐데 나오지 않았죠?" - 작가 "아, 분명 성적을 봤을 때 제 등수는 나오지 않았었죠. 이현이가 오기 전에는 제가 2등이었어요." - 은샘 살짝 미소를 짓고는 손을 뻗어 차를 마시는 은샘. 은샘을 보던 작가가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새휘에게 시선을 던졌다. "소설 중에서 유독히 시혁군과 친구로 나왔는데, 일부 독자들이 시혁에게 관심이 있는 건 아니냐고 질문하시던데…" - 작가 "그건 독자들 마음 아니겠어? 난 그저 작가가 쓰는대로 행동할 뿐이니까 말이야." - 새휘 "아, 확실히… 유람선에서 미노에게 건네준 칵테일이 알코올 도수가 높은 건 알고 있었어요?" - 작가 "분명 이름이 러시안이었던가, 했었던 것 같은데… 꽤 높은 걸로 아는데." - 새휘 "근데 그 독한 칵테일은 미노에게 의도적으로 준 건 아니구요?" - 작가 "그것도 맘대로 생각하라구 해, 뭐… 차사모 회원님들을 위한 나름의 배려라고 해두지." - 새휘 "그, 그렇군요…!" - 작가 차를 홀짝이고 있는 비안에게로 시선을 던진 작가가 물었다. "비안군은 미노양을 봤을 때, 남자라고 생각했어요?" - 작가 "아, 물론. 조금의 수상한 면이 있긴 했는데 그러려니 했지." - 비안 "근데 지금은 여자인 걸 알았는데, 어때요? 남자였을 때보다 더 나아요?" - 작가 "확실히 나은 모습이야, 수한이 녀석이 알면 기뻐서 춤이라도 출 것 같은데?" - 비안 "그러고보니 병원에 왔을 때, 수한군때문에 비안군은 한마디도 못하고 사라져버렸죠?" - 작가 "응, 덕분에 수한이 녀석 스튜디오에서 손 좀 봐줬지." - 비안 "하하, 그렇군요. 그럼 모두들, 소설이 끝이 났는데 독자님들에게 할 말이 있으면 하세요." - 작가 "지금까지 사랑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 너무 미워하지 마세요, 피식-" - 이현 "처음부터 지금까지 아낌없이 성원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아-!" - 미노 "앞으로도 저희 잊지 않아주시기 바라고, 차사모 회원님들 사랑합니다." - 시혁 "마음 속에 기억한다고 약속해주실거죠?" - 은샘 "때로는 얼굴을 찌푸리면서, 때로는 웃으면서 봐주신 여러분들 모두를 사랑해요." - 예찬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우주 "비록 단역이었지만, 날 잊지 않아주길 바래." - 비안 "작가님도 수고하셨고, 많이 나오진 않았지만 나도 잊지 않아주길 바래." - 환희 "나 역시 어여쁜 숙녀분들을 사랑하니까 말이야, 잊지 말라구." - 새휘 작가의 손짓에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잡은 출연진들. "지금까지 함께 해 주신 여러분들 정말 사랑하고 감사드립니다!" - 출연진 일동 드림. The end 댓글 153 인쇄 | 스크랩(0)▼ あや 시안이는 09.08.02 18:38 답글 미묘천설 음? 음.... 아! 변호사 주제에 외제차 타고다니고 뻑하면 사람 납치하는 '그' 시안을 잊었다! 09.10.05 23:32 답글 월햐소설 잼게 봤어요 작가님 수고했어요 09.10.14 21:07 답글 ◀이전 1 2 3 4 다음▶ 등록 텍스티콘 0 / 300자 회원은댓글을 쓸수 없습니다. 등록 텍스티콘 0 / 300자 글쓰기 답글 최신목록 | 목록 | ▲윗글 | ▼아랫글 ▲윗글 | 하늘-[실버, 그녀의 유희♬] 1-10 2008.02.11 ▼아랫글 | 남장† 위험한 도발, 미치도록 차가운 그 녀석의 키스에 길들여지다 51~60(完) 2008.02.10 ▲top 서비스 약관/정책 | 권리침해신고 | 카페 신고 | 이용약관 | 카페 고객센터 | 검색비공개 요청 Copyright (c) Daum Communications Corp. All rights reserved.